원래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 (이하 뉴오더)의 풀 리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고양이가 멀티탭을 건드리는 불의의 사고로 세이브 데이터가 망가져서 중후반까지 진행했던 모든 것들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차마 다시 플레이할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게임 디자인 적으로 눈여겨볼 2가지를 추려봅니다.


1. 공간 탐색을 재미를 다시 강조하다.

1993년의 FPS의 맵과 2010년의 맵을 비교한 유명한 짤방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맥락을 무시한 멍청한 짤방이죠. 울펜슈타인, 둠 시절의 FPS는 기본적으로 던전RPG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이 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어딘가에 숨겨진 공간이 있진 않을까. 이런 긴장감이 그 시절 FPS의 핵심적인 재미였죠. 하프라이프는 복잡한 비선형적인 맵 구성을 퍼즐로 대체하는 대신 이제까지 게임 플레이와는 분리되어왔던 스토리텔링을 게임 플레이 안으로 포섭시켰습니다. 그리고 콜 오브 듀티에 와서는 그나마 있던 퍼즐조차도 버리고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장대한 모험극을 1인칭으로 즐기게 되죠. 그리고 이 스타일이 현재의 FPS 게임에선 주류가 됩니다. 애초에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맵 디자인도 바뀌어온 것인데 이런 맥락을 제쳐놓고 막연하게 과거에 비해 맵 디자인이 바보같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특히 게임 디자이너라면요.

뉴오더는 하프라이프 이후로 사라진, 바로 그 공간 탐험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자체는 선형이고 시나리오에 따라 강제로 하수구, 감옥 등 다양한 공간에 배치됩니다만 이 공간들은 콜옵 처럼 완전히 자동 선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미지의 공간을 탐험해서 길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갈림길도 있고, 지름길도 있고, 지름길을 잘 찾으면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하는 보너스도 있지요.

다만 공간 탐험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위에 보이는 1993년 게임처럼 방대한 맵을 탐험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선형 구조를 지닌 작은 던전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3층 건물의 1층으로 진입해서 옥상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한번에 1층에서 옥상까지 가는 중앙 계단이 없고, 각 층에서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그럼 전체적인 진행은 1층 -> 2층 -> 3층 -> 옥상으로 빠져나가는 선형 구조가 됩니다. 하지만 각 층은 서로 다른 레이아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 층의 비선형적인 공간을 탐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비선형 맵이 이어져서 선형 구성을 이루죠 실제로는 작은 비선형 맵도 어느정도 방향성을 지니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왼쪽 오른쪽 이 문을 열까 말까 두근두근하는 맛은 있습니다.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자체는 과거의 저 거대한 비선형 맵보다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콜옵 식의 진행에 익숙한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시리즈의 전통인 숨겨진 공간, 보물수집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저렇게 ?로 표시해놓으면 밝혀내지 못할 비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보물도 존재하고 보물이 있는 곳은 알겠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퍼즐인 경우도 많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다른 곳에 있는 환풍구를 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2. 튜토리얼과 성장, 게임의 결합 - PERK

성장 개념이 있는 FPS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망작이었던 2009년 울펜슈타인에도 있었고 파크라이에도 있었죠. 그런데 이전까지의 성장은 주로 스토리 진행에 따라 자동으로 어떤 능력이 주어지거나, 게임 진행으로 얻은 자원으로 구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보스를 죽였으니 보스가 가진 능력을 하나 준다거나, 혹은 이제 20레벨이 되었으니 스킬 포인트 1점을 가져가고 이걸 원하는 곳에 박으라는 식이었죠.

뉴오더의 PERK는 도전과제와 비슷하게, 행위를 통해 능력을 얻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의 예시를 보자면 헤드샷을 40번 하고 나면 무기를 바꾸는 속도를 높여주는 '퀵드로우'라는 특성을 얻는다는 식이죠. 나이프로 몇명의 적을 암살하고 나면 나이프를 던져서 암살할 수 있게 되고, 수류탄으로 사람을 얼마 이상 죽이면 수류탄 보유량이 늘어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선행 퍼크를 배워야 다음 퍼크를 열 수 있는 등의 연쇄도 존재하지요.

이 PERK 구성은 일단 특정한 행위를 반복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도전과제와 유사하지만, 이게 게임 플레이에 보너스 혹은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선 언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들이 단순한 동작을 무식하게 반복시킨다기 보다는 '벽에 엄폐한 상태에서 총 쏘기', '지휘관을 죽이기' 등 이 게임의 특징적인 행위를 반복시킨다는 점에서는 그 행위에 대한 튜토리얼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퍼크를 열기 위해 필요한 반복 횟수가 비교적 적고, 그림과 설명이 크게 따라나온다는 점에서 특히 이 튜토리얼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by 고금아 2014. 6. 16. 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