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일본에서 바하무트 류의 모바일 CCG게임들[각주:1]이 매출이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북미 앱스토어에서도 선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이런 게임들이 국내에서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매직 더 개더링'이나 '유희왕'과 같은 오프라인 TCG 문화가 척박한데다 일러스트 또한 소수의 소위 '오덕'들이 아닌 일반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본인 스스로가 이런 게임들을 해보지 않았고 그래서 이런 선입견이 생겼으리라.

예상을 뒤엎고 확밀아는 소위 '오덕 냄새'에도 불구하고 예상외로 많은 유저를 확보하였으며 매출 순위에서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이 성공 요인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존재한다. 역발상으로 일본 문화에 대해 익숙한 2~30대 젊은 층에 마케팅을 했다거나,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카드 게임이 흥했던 시기가 있었다거나 소셜 게임을 타고 게임에 대한 심리적 저항감이 줄었다거나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런데 여기에서 가장 본질적인 이야기가 빠져있다는 것을 모두가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밀아는 확실히 다른 모바일 CCG에 비해서 재미있다. 마치 WOW가 기존 MMORPG들의 시도를 모두 포함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확밀아는 기존 모바일 TCG의 게임 시스템을 매우 완성도 있는 모습으로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타 게임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시간을 소모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시간은 곧 돈이다. 많은 시간을 점유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많은 돈을 점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무도 확밀아가 갖는 게임 디자인에서의 강점은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림이 이쁘고 가챠를 많이 뿌리고 카드를 얻기 쉽다는 이야기는 해도 게임 디자인의 영역에서 확밀아가 거둔 성과는 논외로 치부되고 있다. 그냥 외주 돌려 일러스트만 빵빵하게 갖춘다고 모바일 CCG가 만들어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1. 모바일 CCG의 기본 구조

우선 첫째로 오프라인 TCG와 모바일 CCG는 카드를 사용한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자. 직접 얼굴을 맞대고 배틀을 하는 오프라인 TCG는 크게 3개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첫째, 사용자는 돈을 내고 카드를 뽑거나 다른 사용자와 교환을 통해 카드를 '수집'한다. 둘째, 배틀에 사용할 수 있는 카드는 한정되어있으므로 수집한 카드 중 일부를 추려서 '덱을 구성'한다. 셋째, 배틀 상에서 이 덱 안의 카드와 여러 자원들을 신중히 사용함으로써 '배틀'을 벌인다. '배틀'에서 이기기 위해선 좋은 카드가 필요하기 때문에 '수집'하며, 전략을 세워서 '덱을 구성'하고 다시 이 '덱'으로 '배틀'을 벌이는 순환 구조가 오프라인 TCG 게임의 핵심이다.

하지만 언제 접속이 끊어질 지 모르는 상태에서 짬짬히 즐기는 모바일 플랫폼은 이런 직접 '배틀'을 지속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배틀'의 게임 플레이가 '부족전쟁'과 같은 웹게임에서 볼 수 있는 비동기식 간접 대결로 축소된다. 대신 오프라인 TCG와 달리 표현이 용이하고 또 수요가 검증되어있는 '성장'이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여기에 부분 유료화 과금 특성상 어뷰징 우려가 있고 오프라인 흥정이 힘들어서 '교환'이 제거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더욱 오프라인 TCG와의 연결고리는 희박해진다.

오히려 시간에 따라 액션 포인트를 지급받고 매 행동마다 액션포인트를 지불함으로써 플레이가 본질적으로 단절을 전제로 한다는 점, 유저의 액션은 전투 자체가 아니라 자원을 분배해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 집중되어있다는 점, 공격자가 거의 무작위에 가까운 풀에서 대상을 선택해서 공격 명령만 내리면 공격자 방어자의 개입 없이 전투가 이루어지고 그 결과를 공유받는다는 점에서 모바일 CCG는 오히려 웹게임에 더 가깝다. 실제로 확밀아 이전에 등장했던 바하무트 같은 게임들은 웹 페이지 상에서 동작하고 있었다.

정리하자면, 모바일 CCG는 본질적으로 '카드'를 가지고 '수집' '성장' '덱 구성'을 즐기는 웹 게임이다. 카드를 트레이드해가며 갖고 노는 TCG와는 별개의 매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2. 하드하게 즐기는 캐주얼한 웹게임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모바일 CCG들은 다른 웹게임들보다 훨씬 캐주얼한 게임플레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족전쟁'이나 '아크메이지'와 같은 웹게임들은 정교한 생태계상에서 이루어진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분배하는지에 따라 다음 단계에서의 입수할 수 있는 자원의 종류와 양이 달라진다. 당연히 다음 단계에서의 전략은 이에 영향을 받는다. 농장을 늘려 성장을 확보할 것인가, 대장간을 늘려 공격력을 높일 것인가? 싼 보병을 많이 확보해 당장 군사력의 수를 늘릴 것인가 비싼 기병을 확보해 질을 높일 것인가? 항상 쉽지 않은 문제다.

반면 모바일 CCG는 미시적 관점에서 전략이 작용하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자원(카드, 게임머니)이 쏟아진다. 내가 어떤 카드를 덱에 포함시키고 어떤 카드를 어떻게 육성하든 내가 입수하는 자원에는 변동이 없다.[각주:2] 덱 구성 조차도 고민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 마다 '자동'을 고르면 정해진 제한 내에서 적절한 덱이 튀어나온다. 시간 되면 버튼을 누르고, 버튼을 누르면 자원이 쏟아진다. 이 자원으로 원하는 카드를 육성시킨다. 기본적인 플레이는 사실 이것이 게임인지조차 인지하기 힘들 정도로 캐주얼하다.

다만 여기서 PVP를 뛰기 시작하면서 헬게이트가 열리기 시작한다. 어차피 사실상 전략이라는 것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이상 좋은 카드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가 핵심적인 열쇠가 된다. 그리고 좋은 카드를 얻기 위해선 PVP로 보물을 강탈해와 보물을 완성하거나, PVP 랭킹에 들어 보상을 받거나, 돈을 내가 랜덤하게 카드를 뜯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얻은 카드에 그동안 얻은 쓰레기 카드와 게임머니를 쏟아부어 성장시키는 수 밖에 없다.

하드하게 즐기는 코어 유저들이 막대한 돈을 지불할 뿐, 본질적으로 모바일 CCG는 캐주얼한 게임이다. 하드코어하다는 인상에도 불구하고 일본 / 미국 시장에서 다운로드와 매출 순위 상위에 위치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3. 레이드의 등장

하지만 이런 기본 구조는 게임 플레이 깊이가 빈약하다는 것 외에 '수집'과 '성장'과 '덱'을 체감할 수 있는 기회가 PVP로 한정된다는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바하무트를 포함해 대부분의 게임이 공격시에 사용한 덱의 코스트 합계 만큼 유저의 공격 코스트에서 제거하는 형태를 지닌다. 따라서 PVP 플레이 자체는 몇시간 동안 충전했다가 한번에 포인트를 방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더군다나 보물을 어느정도 모아서 모을 보물이 없고 그렇다고 PVP 랭킹전에 뛰어들만큼도 아닌 애매한 쪼렙 단계에서는 PVP를 계속 플레이할 이유도 딱히 없다. 이 단계에서 캐주얼하게 즐기는 유저들이 하드하게 즐길 동기를 부여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이제 레이드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다. 탐험이라는 이름으로 수확을 하다 보면 랜덤하게 보스몹이 튀어나온다. 보스몹을 물리치면 카드를 포함한 보상이 주어지지만 일정 시간 내에 잡지 못하면 사라진다. 그리고 갖고 있는 카드들이 이 보스와의 전투에서 사용되며 보스와의 전투 기회는 PVP 플레이 기회와 상충된다. 보스몹은 잡을 때 마다 레벨이 올라간다. 이것이 레이드의 기본적인 구조다.

본 연구원이 이 구조를 처음 발견한 것은[각주:3] Deity Wars(이하 DW)라는 게임에서였고 이후 아야카시 음양록(이하 음양록)과 파이널 판타지 에어본 브리게이드(이하 FFAB)에서도 이 레이드를 찾을 수 있었다. 세세한 차이는 존재하지만(이 차이는 사실 제법 크지만) 기본적으로 이 레이드는 PVP를 대신해서 카드를 직접 사용하게 함으로써 성장을 체감시키고, 또한 보상으로 카드를 제공함으로써 플레이 동기를 유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DW의 레이드는 일단 한대라도 때리고 나면 친구들에게 공유되고, 참가만으로도 보상을 받는다는 점, 드문 확률로 더 좋은 보상을 주는 레어 레이드 보스가 있다는 점에서 확밀아와 유사한 점이 있다. (개인적으로 확밀아의 요정은 DW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추측한다.) 단, 덱에 포함된 카드가 모두 한꺼번에 전투에 투입된다는 것과 카드 별로 각기 HP가 있어 공격을 받으면 카드가 사라진다는 점은 다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덱이 강도를 결정하는 덱 코스트와 PVP/레이드 플레이 기회를 제한하는 배틀포인트가 분리되어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DW의 배틀포인트는 100점 만점으로 1분당 1점씩 차는데, PVP 공격시엔 50점을 소모하고 레이드 시엔 30점 / 50점 / 100점을 선택해서 사용할 수 있다. 뒤로 갈수록 공격 효율은 더 높아지지만 무조건 한대는 쳐야 친구들에게 공유할 수 있기 때문에 적절한 안배가 필요하다. (하지만 친구가 발견한 레이드 보스를 공격할 때엔 포인트를 소모하지 않는다.) 이 구조는 유저 입장에서는 단순하고 깔끔하지만 레이드 기회가 PVP 방어에는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모든 유저가 방어시에 풀덱을 사용하게 되고, 따라서 PVP가 보다 방어자 우선으로 돌아가 PVP 동기가 저해된다는 단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PVP 중심의 모바일 CCG에 협력 PVE 개념을 도입했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FFAB는 아예 레이드와 협력을 중심으로 게임을 개편하는 시도를 보였다. 우선 FFAB에서는 일반 탐험을 통해서는 카드와 게임머니를 얻을 수 없다. (카드는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확률이 현저하게 적다.) 대신 레이드를 통하면 카드, 게임머니, 직업 경험치 등을 얻을 수 있으며 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최대 3점의 BP[각주:4] 중 1점 혹은 3점을 소모하게 된다. (15분당 1점 회복) DW처럼 덱의 한도와 레이드 참여 기회는 무관하며 추가적으로 레이드에 대한 푸쉬 알림 기능까지 장착했다.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비공정단이라는 가상의 파티를 사용해 레이드를 하나의 거대한 메타게임 속에 묶어두었다는 점이다. 유저는 매 주 랜덤하게 결성되는 비공정단에 가입하게 되며, 각 비공정단은 매일 랜덤하게 다른 비공정단 하나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한다. 레이드 보스는 자신이 속한 비공정단과 그 라이벌 비공정단에 공유되며 어느 팀이 보스에게 더 많은 데미지를 가했는지를 놓고 간접적인 대결을 펼친다. 그리고 한주간의 성과에 따라 비공정단 단위로 보상이 이루어지고 한주가 지나면 새로운 비공정단에 배속된다.

DW가 모바일 CCG에서 협력 플레이의 가능성을 열었다면 FFAB는 본격적으로 직접적인 PVP 경쟁을 배제하고 레이드와 협력으로도 모바일 CCG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을 보였다. 하지만 BP 회복 텀이 길기 때문에 기존의 모바일 CCG처럼 플레이 타임의 단절이 심하다는 기본적인 약점을 안고 있다.

위 두가지 게임이 레이드를 기본 시스템으로 흡수하려 시도했다면 음양록은 반대로 바하무트의 기본 시스템에 레이드를 접목하려고 시도했다. 레이드 보스는 발견되지만 공유되지 않고 혼자서 잡아야 하며, 별도의 코스트를 두는 대신 레이드시에도 공격덱 코스트와 방어덱 코스트를 차감하도록 설정해 두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유저가 사용할 코스트나 덱의 구성에 전혀 관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레이드가 발생하면 게임은 유저가 현재 갖고 있는 공격 코스트의 절반 한도 내에서 덱을 강제로 자동구성한다. 그리고 공격을 하게 되면 해당하는 덱의 코스트 만큼 공격 코스트를 삭감하고, 방어 코스트는 절반 정도를 감한다. 방어덱은 항상 현재 가지고 있는 방어덱의 코스트를 상한으로 자동으로 구성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양록에서 레이드와 PVP는 상호 배타적인 구조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음양록의 레이드에서 카드가 사용되는 방식에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양록의 레이드 덱은 리더 카드 1장과 최대 9장의 일반 카드로 구성된다. 사용된 카드의 HP 총계가 플레이어 캐릭터의 HP에 작용하며, 공격은 리더카드 + 3장 단위로 번갈아가면서 진행된다. 리더카드를 A, 나머지 카드를 1~9라고 가정하면 첫 턴엔 A와 1~3 이렇게 네장이 공격하고, 다음 턴엔 A와 4~6, 그 다음 턴엔 A와 7~9 이런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카드가 줄 단위로 전투에 참여하게 되며 이로 인해 덱에 포함되는 순서가 중요해지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비록 이 게임에선 유저가 덱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 살펴본 3가지 게임을 정리해보자. 우선 DW는 기존의 PVP 중심의 모바일 CCG에서 벗어나 협력형 게임의 가능성을 타진했고 FFAB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PVP를 배제하고 레이드 만으로 게임을 구성했다. 이들 게임은 보다 캐주얼한 컨텐츠로 성장을 더 자주 체감시킨다는 성과를 이루었고 코스트 체제를 간소화 하는 성과를 이루었지만 동시에 덱 구성과 PVP에서의 게임성이 약화되었으며 최소 15분 최대 30분이라는 텀을 둠으로써 모바일 CCG 특유의 시간 단절을 극복하지 못하였다. 음양록은 레이드와 PVP간에 긴장관계를 만들어 보다 전략성을 더할 수 있는 여지와 덱에서 카드의 순서라는 새로운 변수에 대한 가능성을 열었지만 기존 바하무트의 코스트 위에서 복잡하고 어설프게 돌아가는 레이드를 구현했다.


4. 확밀아 레이드의 핵심 - 코스트와 덱 구성

결국 모바일 CCG에서 레이드가 갖는 문제는 코스트와 덱 구성으로 압축된다. 시스템을 캐주얼하게 유지하기 위해 덱의 강도 코스트와 참가 기회 코스트를 분리하게 되면 덱 구성에서의 전략과 여기에서 오는 게임플레이가 약화되고 PVP에서 방어자가 지나치게 유리하게 되며, 강도와 기회를 합치게 될 경우 코스트 시스템이 지나치게 복잡해질 우려가 있다.

확밀아는 코스트를 2개로 줄이는 대신 덱을 하나로 줄입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했다. 사용자는 성장으로 얻은 능력치를 탐험을 하는데 사용되는 AP와 PVP/레이드에 쓰이는 BC에 나눠서 분배한다. 그리고 PVP / 레이드에서는 사용한 덱의 코스트만큼 BC를 감하게 함으로써 사용자가 스스로 코스트 사용량을 컨트롤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저비용의 덱으로 여러 요정을 때리고 다니는 것이 유리한 전략이 되지만 동일한 덱이 PVP 방어에도 사용되므로 PVP에서 불리해진다는 트레이드 오프가 발생한다. 이를 역으로 이용하면 모두들 저비용 덱으로 숟갈질을 하는 각성 피버 기간에 PVP 랭킹을 올려 보상을 노릴 수도 있고, 인자 배틀에도 활용할 수 있다.

덱의 코스트와 구성을 유저가 설정할 수 있다는 것에 3장으로 구성된 줄 단위로 공격이 실행된다는 점, 스킬이 좌측에서부터 우측 순서로 발동 판정을 받는다는 점, 동시에 코스트가 적을 때엔 좌측에서 우측 순서로 덱에 포함된다는 점, 카드 조합에 따라 콤보 효과가 발생한다는 점 등에서 덱 구성에 전략적인 선택지가 상당히 넓어진다. 즉 덱 구성의 전략성이라는 측면에서 확밀아는 다른 어떤 게임보다 깊이있는 게임플레이를 제공한다. 기본 코스트 구조는 단순하게 유지하면서도 말이다.


5. 레이드와 숟가락을 중심으로 한 경제 구조

또한 주로 강화 재료용 카드를 레이드 보상으로 제공하는 DW와 달리 확밀아는 쓸만한 카드를 레이드 보상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굳이 원치 않는 카드가 나올 위험을 감수하고 비싼 카드를 뜯지 않더라도 레이드를 열심히 뛰면 4~5성에 해당하는 카드를 입수할 수 있다. 카드의 성장에 같은 카드가 여러장 필요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유저 입장에서 확밀아의 레이드는 다른 게임들에 비해 월등한 가치를 지니고 계속해서 플레이를 유발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 우리는 숟가락이라고 불리는 저 코스트의 카드에 대해 유의할 필요가 있다. 숟가락은 유저가 적은 비용으로 꾸준히 레이드에 참가하고 보상받게 함으로써 포션 매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분 유료화 게임에서 돈보다 우선해야 할 것은 시간이다. 많은 시간을 점유한다면 매출은 기본적으로 따라온다. (아무도 간간히 플레이하는 게임에 돈을 지불하지는 않는다.) 숟가락이 존재하기 때문에 유저는 코스트가 바닥이 난 상태에서도 꾸준히 게임에 참여할 수 있고 푸쉬 알림에도 반응할 수 있다. 레이드 보스가 친구 간에만 공유되며 전투 기록을 볼 수 있고 친구 관계는 정리될 수 있기 때문에 숟가락 질에는 한계가 존재하며 가챠 가격에 비해 포션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무과금을 고집할수록 오히려 지갑이 쉽게 열린다.

그렇다고 가챠에 대한 구매 동기가 적은 것도 아니다. 6성 카드는 가챠로만 얻을 수 있고, 이렇게 얻은 6성 카드도 한계돌파를 하지 않으면 무과금 5성 카드보다 효용이 낮다는 점, 그리고 신규 출시되는 가챠의 최상급 카드에는 기간 한정으로 레이드에서 보너스를 부여함으로써 가챠에 돈을 퍼부을 여력과 의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동기를 제공한다.


6. 각성 요정 - 과금 유저와 비과금 유저의 공생관계 성립

확밀아의 레이드에서 또한가지 눈여겨 볼 부분은 과금 유저와 비과금 유저의 공생관계이다. DW에서도 레이드가 성공하면 데미지에 관계 없이 참가한 사람은 보상을 받을 수 있고, 높은 보상을 주는 레어 레이드 보스가 있었지만 이는 순전히 운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유저는 여기에 어떠한 개입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확밀아는 적은 보상을 주는 일반 요정을 잡았을 때 랜덤하게 높은 보상을 주는 각성 요정이 나타나도록 디자인 되었다. 포션을 들이키며 요정을 잡는 과금 유저라고 하더라도 주변에서 친구들이 각성 요정을 띄워주지 않으면 각성 요정을 때릴 수 없다. 또한 본인이 직접 일반 요정을 불러낸 뒤 죽이고 각성 요정을 불러내려면 일반 요정을 불러내는 과정에서 AP를 소모하고, 일반 요정을 잡는 과정에서 다시 BP를 소모하며 소모한 자원에 비해서 훨씬 적은 시도를 가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금 유저와 비과금 유저의 공생관계가 성립한다. 비과금 유저는 비교적 저렴한[각주:5] AP를 소모해서 일반 요정을 불러내고 숟가락을 얹는다. 비과금유저보다 더 좋은 카드를 갖고 있는 과금 유저는 필요한 만큼의 BP를 소모해서 일반 요정을 죽여 각성 요정을 불러냄으로써 2장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남이 발견한 각성 요정의 경우에도 과금유저가 막타를 노리고 딜을 치기 때문에 참가한 모두가 1장의 보상을 받는 한편 과금 유저는 2장의 보상을 챙겨갈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부분유료화 게임이라는 것은 소수의 과금 유저가 다수의 비과금유저를 떠받치는 구조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부분의 게임에서 비과금 유저는 그 댓가로 과금 유저에게 깔려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확밀아는 실질적으로 과금 유저와 비과금유저가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면서 기분좋게 공생하는 관계를 형성한다.


7. 합요일과 한계돌파의 성장

사실 바하무트와 DW에서 가장 하드한 컨텐츠는 성장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 성장은 강화와 진화로 구분되는데, 강화는 다른 카드를 재료로 삼아 대상 카드에 경험치를 먹여 카드의 레벨을 올리는 것을 말하고 진화는 동일한 카드를 재료로 삼아 대상 카드를 보다 상위의 카드로 교환하는 것을 의미한다. (강화 재료는 아무 카드나 상관이 없다.) 보통 진화는 4단계로 이루어지는데, 진화를 통해 승급된 카드는 1레벨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며 이때 대상과 재료 카드의 능력치를 일부 이어받는다. 바로 여기서 전략이 발생한다.

가장 강력한 카드를 만드는 방법은 동일한 카드 8장을 각 단계별로 최고 레벨까지 강화한 뒤 진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다. 한편 한번도 강화하지 않은 1레벨의 동일한 카드 4장을 차례대로 합성할 경우 가장 빠르게 최종진화형의 카드를 얻을 수 있지만 이는 최고 카드보다 성능이 10% 정도 손해를 본다. 그 절충안으로 어느 단계 까지는 강화 없이 진화시켰다가 그 이후는 최고 레벨로 강화한 뒤 진화시키는 방법도 있다.

이런 구조는 전략성은 강하지만 이를 수행하는 과정이 매우 길고 느리며, 또한 잘못된 선택에 대한 부담감이 크다는 단점이 있다. 같은 카드 4장을 손에 넣는 것도 힘든데, 열심히 키우고 났더니 사실은 그 방법이 손해를 보는 것이었다면 유저의 상실감이 크다.

FFAB에서는 같은 카드 2장을 합치면 카드가 자동으로 강화됨과 동시에 성장 한계가 늘어나는 한계돌파 시스템으로 이 부담을 덜어냈다. 이제 유저는 더이상 낭패에 대한 두려움이나 성장 전략에 대한 고민 없이 고레벨 카드를 여러장 얻으면 그냥 기분 좋게 한계 돌파를 시키면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게임 플레이가 일부 약화된 것은 문제가 된다. 또한 강화와 한계돌파 메뉴가 분리되어있어 실수로 한계돌파가 아닌 단순 강화라는 낭패가 발생하기도 했다.

확밀아에서는 강화와 한계 돌파를 통합하면서 '금요일에는 강화 경험치가 2배'라는 설정으로 '역돌파'를 추가했다. 강화비는 재료로 쓴 카드의 레벨이 비례하지만 45레벨 이상 부터는 강화비가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다. 그래서 금요일에 1레벨 카드를 대상으로 놓고 45레벨 이상으로 키워놓은 다른 카드를 재료로 합성하면 자동으로 한계가 돌파되면서 원래의 45레벨보다 높은 레벨로 강화되는 것이다.[각주:6] 쉽고 직관적이면서도 전략이 존재하는, 굉장히 이상적인 게임 디자인이다. 특히 일주일 중 하루를 역돌파의 날로 지정함으로써 유저는 일주일 동안 카드를 얻었다가 금요일에 강화한다는 행위를 자신의 생활 패턴에 추가하게 된다. 거듭 강조하지만 시간이 곧 돈이다.


8. 게임 디자인의 진수 - 정로환 당의정

군에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지 앞섬을 지퍼가 아니라 단추로 닫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지퍼가 만들어진 지는 200년이 안되었을 테고 그 전엔 단추를 썼겠지만, 지퍼가 너무나 편리한 탓에 이게 얼마나 대단한 발명인지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확밀아의 게임 디자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모바일 CCG 전반에 대한 심도 깊은 관찰과 연구로 워낙 매끄럽게 디자인되어 그것이 마치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러다보니 게임의 성공 요인을 설명하는데 정작 게임은 뒤로 빠져있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제반 사항들을 모두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다른 사회 문화적인 요인도 작용했다. 하지만 게임디자인이 과소평가받고 있는 것 같아서 그동안 생각해온 내용들을 한번 정리해보았다.

많은 동료 기획자들이 확밀아가 왜 재미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하곤 한다. 아예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계속 하긴 하는데 왜 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사람도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바로 이 것이 확밀아 게임 디자인의 완성도가 높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뭔가 어디가 구체적으로 재미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계속 플레이하게 되는 마약같은 게임이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바로 그 게임이며 단순해 보여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파면 팔수록 끊임없이 파고 들어갈 게임플레이가 샘솟는 정로환 당의정이야 말로 기획자들이 꿈꾸는 궁극의 기획이 아니었던가.

  1. TCG가 아닌 CCG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후술 [본문으로]
  2. 레이드가 등장하기 이전까지의 이야기다. [본문으로]
  3. 말 그대로 본인이 발견했다는 것일 뿐, 실제로 이 게임이 최초로 레이드를 구현한 것인지는 모른다. 제보 바람 [본문으로]
  4. 여기서 BP는 Battle Point가 아니라 Brigade Point. 비공정단이 출격하는데 드는 포인트라는 뜻. [본문으로]
  5. BP는 1분당 1점, AP는 3분당 1점이므로 시간 대비 비용은 BP가 더 저렴하다. 하지만 AP는 사용량을 철저하게 본인이 컨트롤할 수 있고 최소단위인 2점을 소모하는 던전도 있기 때문에 BP보다는 흔하다. [본문으로]
  6. 일밀아 유저들의 제보에 의하면 이건 순전히 얻어걸린 것이라고 한다. 비경탐험에서 얻는 카드가 45레벨 이상이 되면 강화비가 줄어드는 문제 떄문에 45레벨 이상부터는 강화비가 고정되게 되었고, 합요일을 만들었더니 역돌파 경험치가 뻥튀기 되었다고. 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니겠나...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2. 5.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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