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전용 게임이고, 전 캡쳐할 장비도 없거니와 굳이 캡쳐하는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는 없습니다.)

디 오더는 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온 게임입니다. 1인칭(3인칭) 슈팅, 빅토리아 시대의 그 독특한 분위기, 대체역사, 스팀 펑크. 제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 녹아든 게임이었거든요. PS4를 구입한 이유도 절반 이상은 독점작인 디 오더를 플레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벗뜨. 게임이 출시되기 직전부터 볼륨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오더군요. $60짜리 AAA급 타이틀 치고는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것인데, 크게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콘솔 스펙이 올라갈수록 제작비가 기하급수로 올라가는데 비해 $60이라는 가격은 이전 세대의 것이라,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볼륨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한번 깨고 마는 것이 콘솔 게임인데, 재미만 있다면 뭐 좀 짧아도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그래서 최근엔 게임을 영화에 비유하지 말고 스테이크에 비유하자는 이야기도 있지요. 얼마전 분당에서 먹은 스테이크 300g이 약 4만원이었는데, 사실 4만원이면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습니다. 더 싼 스테이크도 있고 더 비싼 스테이크도 있지요. 혹자는 더 싼 스테이크에 만족하고 더 나은 스테이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 꺼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차라리 10만원 내고 훨씬 더 맛난 스테이크를 먹고자할 수도 있지요. 결국은 개인의 만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하튼, 그래서 볼륨에 대한 악평은 무시하고, 설을 맞아 한국에 간 김에 한카피 구입하긴 해서 클리어했습니다. 볼륨이 짧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다른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허접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인 게임플레이부터 봅시다. 배경이 어떻든, 그래픽이 어떻든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3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3인칭 시점에서 이동하고 총 쏘는 것 부터가 구립니다. 그래픽은 좋은데 명암 대비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게임 내내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그림자 속에 묻혀서 잘 안보여요. 길이든, 적이든 뭐든지 간에요. 게다가 레터박스가 화면 위아래를 잘라먹고 있지요. 레터박스 때문에 잘리거나 너무 어두워서 그림자에 묻혀서 발 아래쪽이 잘 안보입니다. 발이 물체에 걸려서 움직이질 못하는데 왜 움직이질 못하는지 플레이어가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3인칭 슈팅은 기본적으로 엄폐를 기본으로 하는데, 엄폐에 붙고 떨어지는 동작이 상당히 느릿하고 끈덕지며 뻣뻣합니다. 그래서 조작감이 상당히 짜증나지요. 게다가 어떤 물체는 타고 넘을 수 있고 어떤 물체는 그게 안되는데 어떤 물체가 되고 어떤 물체가 안되는지도 상당히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경험 자체가 매우 구려요.

전투씬은 그나마 낫습니다. 전투 없이 그냥 이동만 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씬이 전체 플레이타임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때는 움직임 속도 마저도 느립니다. 아주 느릿 느릿 양반 걸음으로 걷지요. 당연히 뜀박질은 불가능하구요. 특히 첫번째 원탁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빠져나올 땐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출구는 원탁 서쪽에 있고 플레이어는 원탁 남쪽에 있는데 서남쪽에 NPC들이 통로를 틀어막아서 그 느릿한 걸음으로 동쪽 - 북쪽을 거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야 했거든요. WTF!

AI와의 총격전도 참 더럽게 만들어뒀습니다. 엄폐를 기반으로 한 3인칭 슈팅의 황금률은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한다는 것인데, 몹들이 잦은 빈도로 엄폐물 뒤에 숨어서 팔 뻗어 총만 내놓고 냅다 갈겨대요. 정작 플레이어는 그 손이라도 조준해서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또 이 팔만 뻗고 쏘는게 플레이어의 조준 사격보다 더 정확합니다.

HALO 이후 게임패드를 사용하는 1/3인칭 슈팅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조준을 도와주는 기능이 들어가있지요. 이 게임도 예외는 아니구요. 그런데 디 오더에선 이 조준 도움 기능이 거의 동작하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이면 머리를 맞출 수 있었을 상황에서 여지없이 빗나가요. 그런데 손만 내놓고 쏘는 AI는 훨씬 정확하죠. 그래서 안맞고 쏜다는 긴장감 보다는 그냥 맞으면서 쏜다는 개념으로 게임이 돌아갑니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의 총격전은 뭔가 현대 게임 답지 않게 굉장히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스나이퍼들은 깜빡이는 빛으로 자기 위치를 노출하긴 하는데요, 그 빛 보고 쏘려고 몸 일으켜서 조준하는 순간 한방 맞습니다. 보통은 상대가 쏘기 전에 먼저 맞히는 쪽으로 진행되는데, 이 게임에서 스나이퍼 상대하려면 일단 한방 맞은 뒤에 다음 방 맞기 전에 쏴 죽여야 해요.

뭐 총을 많이 맞아도 쓰러져서 블랙워터 한모금 빨고 잠깐 있으면 풀로 회복이 되니까 그렇게 맞아가며 쏴 죽이는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철뚜껑 쓴 샷건 맨 만나기 전엔 말이죠. 샷건은 한방 맞으면 바로 위의 빈사 상태가 되는데 블랙워터 빨기 전에 바로 다음 방이 날아오거든요. 그럼 그냥 죽는 거죠 뭐. 게다가 저 철뚜껑 쓴 애는 약점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높은데다가 머리는 헬멧으로 보호되고 있거든요. 보더랜드2 처럼 헬멧을 날려서 머리를 노출시킨다거나 그런거 없습니다. 쟤는 그냥 쎕니다. 딱 두방에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샷건을 들고 있는데 헤드샷은 안통하고 30발짜리 탄창을 모두 쏟아부어야 죽을 정도로 맷집이 쎄요. 솔직히 마지막 보스보다 저 헬멧 쓴 샷건맨이 10만배쯤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전투씬들의 구성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 또한 지적해야겠죠. 일단 AI의 종류가 매우 적습니다. 외관상으로 봐도 반란군 병사, 통합인도회사 경비원, 그리고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조직 이렇게 세종류인데 헬멧 쓴 애와 안쓴 애 이정도가 다에요. 뭐 헬멧 안쓴 애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무기를 들고 나오긴 하는데 딱히 차이는 없습니다. 다들 그냥 엄폐물 뒤에 숨어서 쏘는게 다에요.

슈팅 게임의 AI라는게 전부 사람 마냥 아주 조직적이고 영리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쪽을 강조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몹들에게 다양한 행동 양식, 강점, 약점을 줘서 다양한 게임플레이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디 오더는 둘 다 아닙니다. 그냥 커버 가운데 두고 참호전을 벌이는데 딱히 적에게 개성은 없어요.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전투가 굉장히 불공평하니까요. 그런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벽에 붙어서 조준을 했더니 내 뒤통수가 화면을 가려서 오히려 총을 쏠 수 없었던 경험은 뭐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구요.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력포인트인 설정과 스토리도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요,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1886년이고 런던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래서 그 영국은 어떤 영국인가요? 혼종(half breed)랑 싸우는데, 얘네랑은 왜 싸우는 걸까요? 통합 인도 회사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왜 동인도회사가 아니라 통합 인도 회사일까요? 영국이 인도와 완전히 통합한 상태인가요? 주인공 동료 중엔 라파예트 라는 친구가 있단 말이죠. 맨날 무슈 마드무아젤 그러고 있는데 도대체 이 프랑스인은 왜 이 영국의 기사단에 와있는 걸까요? 혹시 다아시 경의 모험처럼 영국과 프랑스가 하나로 합쳐진 걸까요? 반란군이라는 조직은 도대체 누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가요? 아니 그 이전에, 기사단(The Order)란 무엇인가요? 이들은 누구의 지휘를 받는 건가요? 언제 설립되었죠?

게임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기사단이 있고, 혼종이 있고 싸워요. 통합 인도 회사라는게 그냥 있어요. 반란군은 반란군이구요. 유일한 예외는 목에 걸고 있다가 골로 가겠다 싶으면 빨아먹는 액체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도 중반부에 가야 그게 뭔지 나오죠.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게다가 스토리는 더 막장스러워요. 각 씬이 있긴 한데 이 씬들의 연결이 전혀 말이 안됩니다. 예를 들자면 말이죠.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주인공은 A라는 동네를 비밀리에 정찰하는 임무를 받아요. 그런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A라는 동네에 있는 B라는 장소로 이동하라는 미션이 되죠. B로 가는 동안 반란군의 매복을 만나요. 여기서부터는 그냥 쫓겨서 이리 저리 마구 이동해요. 그러다 보면 B 앞에 와있어요. 그런데 B는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단 말이죠. 아니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는 동네에 다녀오는 게 왜 비밀 임무가 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 경찰들은 뭐 땅에서 뿅 하고 솟아난 건가요? 그냥 저들이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 뒤가 더 웃기는 게, 경찰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출동은 했는데 진입하진 못했다고 하고 주인공은 거기서 늑대인간들을 발견해요. 그리고 공중 지원을 통해 늑대인간을 쫓아내는 공격을 먼저 하고 안으로 뛰어들기로 하죠. 이때 일행이 4명 중 주인공을 포함한 2명은 지하를 통해 B로 진입하기로 하고 2명은 밖을 담당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B 안에서 누구랑 싸우냐면, 늑대인간이에요. 아까 공중 공격한 건 어떻게 된 걸까요? 분명히 다른 늑대인간들은 다 도망쳤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인공은 여기에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아요.

한편 B 안에서 다시 2명이 서로 찢어지는데 다른 동료가 자기가 뭔가를 발견했다며, 주인공더러 직접 확인하라고 해요. 동료가 말한 그 방에 가보면 단서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옆에 있는 방 안에 있어요. 그런데 그 방의 문은 잠겨있어서 주인공이 자물쇠를 따야하죠. 그렇다면 주인공의 동료는 그 방 안을 먼저 뒤져본 뒤에 굳이 문을 잠근 건가요? 아님 그 방은 동료가 살펴보지 못한 방이었던 걸까요? 그리고 B 현관으로 나오면 밖을 담당하기로 2명 중 한명이 현관을 등지고 놀고 있어요. 다른 한명은 아예 저 멀리서 경찰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담소중이구요. 아니 안에서 총질하고 난리가 났는데 뛰어들진 못하더라도 뭔가 경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모든 스토리라인이 이따위 방식으로 흘러간단 말이죠. 이렇게 초지일관 앞뒤 안맞고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이에요. 꼴에 반전이랍시고 2개를 박아넣은 것이 있는데, 그조차도 너무 뻔해서  - 물론 복선이나 떡밥 따위 없습니다 - 정말로 이따위를 반전이라고 넣어뒀다는 사실 자체가 반전이었어요.

설정을 굳이 스토리에서 썰로 풀지 않고 사물들을 통해 전달하는 것도 요즘 추세죠. 툼레이더 리부트라거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보면 물건 주워서 살펴보면 백그라운드 스토리 흘러나오는 것 처럼요. 이 게임에도 그렇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물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신문이라거나 사진이라거나 모형이라거나 또 녹음기 테이프라거나. 그런데 얘들이 위에서 말한 역할을 전혀 해주질 않습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에요. 아무런 내용이 없어요. 좌우로 돌려보고 뒤집어보는 기능은 있는데 딱히 뒤집어서 뭔가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그런 장면도 단 한번도 없어요. 다른 사물들도 마찬가지구요. 이 방면에서 가장 쓸모있을 녹음기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 원래 예정에 없었는데 출시 얼마 안남기고 사장이 넣으래서 그냥 넣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레벨 디자인 또한 아주 개판이죠. 뭔가 목표는 주어지는데 그래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방향 지시 마커 같은 건 없어요. 게다가 앞서 말한 것 처럼 명암 대비가 강해서 잘 안보이는 구석도 많구요. 그래서 이 게임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전략은 걸려서 움직이지 못할 때 까지 전진하는 겁니다. 걸리면 좌우 둘러보고 안막힌 쪽으로 이동 -> 그러다가 걸리면 다시 좌우 둘러보기... 애초에 하프라이프 / 콜 오브 듀티 이후로 게임이 직선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 쉽게 쉽게 직관적으로 술술 진행하라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길찾기가 더럽고 불편하고 불쾌한 게임은 정말 근 10년동안 처음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듀크 뉴켐 포에버는 아직 안해봤어요)

그 외에 가만히 보면 잘나가는, 다른 게임에 있는 요소들이 대부분 빠짐없이 들어가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QTE 라거나 잠입 미션이라거나 말이죠. 그런데 사실 QTE도 빈도는 잦은데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 QTE라는 것 자체가 원래 뽀대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인데 말이죠 - 어렵지도 않고. 잠입은 이게 웃기는게, 뒤에서 적을 죽이려면 접근해서 QTE가 발동되어요. 타이밍 맞춰서 △을 누르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입니다. 적 바로 뒤에 붙어도 말이죠. 그런데 일반 배틀에선 거리만 붙이면 정면에서도 △ 눌러서 근접 공격으로 죽일 수 있거든요? 왜 정면에선 그냥 누르기만 하면 쓱싹 하고 베어죽일 수 있는데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붙었을 땐 꼭 굳이 타이밍을 맞춰야 할까요?

이런 불만들을 견디고 견뎌서 간신히 엔딩을 보고 나자 이 게임이 뭘 노린 건지는 알겠더군요. 슈팅 게임, 빅토리아 시대, 대체역사, 스팀펑크, 흡혈귀, 늑대인간, 아더왕, QTE 등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잘 버무려 아주 맛난 비빔밥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하나같이 완성도가 떨어져서 만들고 났더니 꿀꿀이죽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볼륨이 작은 건 차라리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어요.

뭐 그래도 그래픽은 좋습니다. 게임 플레이 화면이든 컷씬이든 간에 이정도면 3D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때깔이 좋으면 뭘합니까. 그래봤자 꿀꿀이죽인 걸요.

$60은 솔직히 터무니 없고, 한 $10 정도라면 돈이 아깝진 않을 것 같네요. 시간은 아까워두요.

아 이 게임 하고 나니까 라이즈가 하고 싶어지네요.

by 고금아 2015. 3. 1. 03:57

콜 오브 듀티 온라인은 예상대로 꽤 잘 만들었다.

기존 콜옵의 미션들을 PVE로 활용하고 있고, 기존에 이미 검증된 맵들 외에 중국 유저들을 위해 랜덤 스폰이 아닌 고정 베이스 기반의 팀 데스매치 맵도 추가했고, 스토리 기반이 아닌 서바이벌 베이스의 PVE도 있고 좀비 모드도 있다. 중국의 평균적인 사양을 감안해서 그래픽도 다운시켰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텐센트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 매 년 천만장 이상 팔아제끼고 있는 월클급 IP인데도 말이다. (러시아 안에서만 잘나가는데도 '너네가 게임을 알아?'라는 마인드로 퍼블리셔를 다 씹었던 모 게임과는 달리).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게임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크파에 익숙한 중국의 게이머들 취향에 맞춰 뜯어고치다보니 오히려 크파 하다 말고 이걸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그래픽이 조금 더 좋고 우클릭으로 줌 해야하는 것이 불편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특히 중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춰 고정 베이스 기반의 맵을 추가한 것이 치명타. 콜옵의 PVP 멀티는 랜덤 스폰 때문에 전투 국면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고정 베이스 기반 맵이 있으니 유저들은 굳이 새로운 랜덤 스폰을 하는 대신 그냥 고정 베이스 맵에 눌러 앉아버렸다.

게다가 그래픽이 좋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크파와 tgame (역전)에 비교해서지 객관적으로 지금 기준으로 딱히 좋지도 않다. 저사양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건 당연한 건데 고사양에서도 옵션이 잘려나가서 2~3년 전 게임으로 보인다. 애초에 FPS 시장의 보수성을 감안할 때 크파나 tgame 잡는 건 무리이고 A.V.A나 워페이스가 점유하고 있는 하이엔드 FPS 시장은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그마저도 어려워보인다. 새로운 게임플레이에 대한 욕구는 결국 하드코어 게이머의 것인데, 이들은 게임플레이 못지 않게 그래픽에 대한 욕구도 갖고 있다.

좋은 게임을 가지고, 시장에 맞췄을 뿐인데 오히려 매력이 다 깎여버린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맡아온 FPS 게임들은 하나같이 뭔가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좀 낯설고 어렵고 불친절한 녀석들이었다. 매력은 있지만 그 매력을 느끼기 전에 다들 도망가버리는 이 게임들을 나는 '청국장 같은 게임'이라고 부른다. 콜옵은 굉장히 캐주얼한 게임이지만, 보수적인 아시아 온라인 FPS 시장에선 청국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국장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버려서 되나...

상업예술로서 시장과 관객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 과정에서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내일로 칸타빌레와 유사한 면도 있다. 위험하니까 만화적인 연출은 날리고 (일본이 좀 더 만화적인 연출에 익숙하긴 하지만 꽃남을 생각해보면 한국 시장에서 만화적인 연출이 안먹힌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판과의 비교 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합리적인 결론일 수는 있다.). 그래도 캐릭터는 살려야겠으니 바보같은 인형 옷은 입히고. 제작비가 모자라니 PPL은 집어 넣고. 이미 검증된 요소인 제2남주와 삼각관계를 집어넣자. 이 모든 걸 종합하니 결국은 뭔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와버렸다.

반면 미생은 오히려 극화였던 원작에 없던 '만화적인' 연출을 군데군데 사용하면서 (눈에 비치는 하트 조명...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만화 원작'을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씬들은 대사 하나 하나 전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단, 원작에서 다소 평면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들은 좀 더 강화했다. 그래 나 청국장이다. 청국장이니까 당연히 냄새가 나지. 그런데 맛나단 말이다! 라고 외치는 것 같다.

기획자들은 필연적으로 하드코어 게이머인 경우가 많다. 시끄럽기만 하고 돈은 안되는, 정작 돈 낼 유저들의 취향은 모르거나 경멸하는. 그래서 주니어들에게 항상 주문하는게 덕내부터 빼고 오라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항상 이게 프로페셔널한 기획자로서 도출한 결론인지 게이머로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돌아보고 점검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자꾸 쳐내는데 익숙해진다.

콜옵 온라인을 보고, 내일로 칸타빌레를 보고, 미생을 보고 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과연 지금 청국장에서 냄새를 빼고 있는 것이 아닐까?


by 고금아 2014. 11. 30. 23:18


원래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 (이하 뉴오더)의 풀 리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고양이가 멀티탭을 건드리는 불의의 사고로 세이브 데이터가 망가져서 중후반까지 진행했던 모든 것들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차마 다시 플레이할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게임 디자인 적으로 눈여겨볼 2가지를 추려봅니다.


1. 공간 탐색을 재미를 다시 강조하다.

1993년의 FPS의 맵과 2010년의 맵을 비교한 유명한 짤방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맥락을 무시한 멍청한 짤방이죠. 울펜슈타인, 둠 시절의 FPS는 기본적으로 던전RPG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이 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어딘가에 숨겨진 공간이 있진 않을까. 이런 긴장감이 그 시절 FPS의 핵심적인 재미였죠. 하프라이프는 복잡한 비선형적인 맵 구성을 퍼즐로 대체하는 대신 이제까지 게임 플레이와는 분리되어왔던 스토리텔링을 게임 플레이 안으로 포섭시켰습니다. 그리고 콜 오브 듀티에 와서는 그나마 있던 퍼즐조차도 버리고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장대한 모험극을 1인칭으로 즐기게 되죠. 그리고 이 스타일이 현재의 FPS 게임에선 주류가 됩니다. 애초에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맵 디자인도 바뀌어온 것인데 이런 맥락을 제쳐놓고 막연하게 과거에 비해 맵 디자인이 바보같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특히 게임 디자이너라면요.

뉴오더는 하프라이프 이후로 사라진, 바로 그 공간 탐험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자체는 선형이고 시나리오에 따라 강제로 하수구, 감옥 등 다양한 공간에 배치됩니다만 이 공간들은 콜옵 처럼 완전히 자동 선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미지의 공간을 탐험해서 길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갈림길도 있고, 지름길도 있고, 지름길을 잘 찾으면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하는 보너스도 있지요.

다만 공간 탐험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위에 보이는 1993년 게임처럼 방대한 맵을 탐험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선형 구조를 지닌 작은 던전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3층 건물의 1층으로 진입해서 옥상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한번에 1층에서 옥상까지 가는 중앙 계단이 없고, 각 층에서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그럼 전체적인 진행은 1층 -> 2층 -> 3층 -> 옥상으로 빠져나가는 선형 구조가 됩니다. 하지만 각 층은 서로 다른 레이아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 층의 비선형적인 공간을 탐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비선형 맵이 이어져서 선형 구성을 이루죠 실제로는 작은 비선형 맵도 어느정도 방향성을 지니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왼쪽 오른쪽 이 문을 열까 말까 두근두근하는 맛은 있습니다.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자체는 과거의 저 거대한 비선형 맵보다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콜옵 식의 진행에 익숙한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시리즈의 전통인 숨겨진 공간, 보물수집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저렇게 ?로 표시해놓으면 밝혀내지 못할 비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보물도 존재하고 보물이 있는 곳은 알겠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퍼즐인 경우도 많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다른 곳에 있는 환풍구를 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2. 튜토리얼과 성장, 게임의 결합 - PERK

성장 개념이 있는 FPS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망작이었던 2009년 울펜슈타인에도 있었고 파크라이에도 있었죠. 그런데 이전까지의 성장은 주로 스토리 진행에 따라 자동으로 어떤 능력이 주어지거나, 게임 진행으로 얻은 자원으로 구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보스를 죽였으니 보스가 가진 능력을 하나 준다거나, 혹은 이제 20레벨이 되었으니 스킬 포인트 1점을 가져가고 이걸 원하는 곳에 박으라는 식이었죠.

뉴오더의 PERK는 도전과제와 비슷하게, 행위를 통해 능력을 얻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의 예시를 보자면 헤드샷을 40번 하고 나면 무기를 바꾸는 속도를 높여주는 '퀵드로우'라는 특성을 얻는다는 식이죠. 나이프로 몇명의 적을 암살하고 나면 나이프를 던져서 암살할 수 있게 되고, 수류탄으로 사람을 얼마 이상 죽이면 수류탄 보유량이 늘어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선행 퍼크를 배워야 다음 퍼크를 열 수 있는 등의 연쇄도 존재하지요.

이 PERK 구성은 일단 특정한 행위를 반복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도전과제와 유사하지만, 이게 게임 플레이에 보너스 혹은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선 언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들이 단순한 동작을 무식하게 반복시킨다기 보다는 '벽에 엄폐한 상태에서 총 쏘기', '지휘관을 죽이기' 등 이 게임의 특징적인 행위를 반복시킨다는 점에서는 그 행위에 대한 튜토리얼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퍼크를 열기 위해 필요한 반복 횟수가 비교적 적고, 그림과 설명이 크게 따라나온다는 점에서 특히 이 튜토리얼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by 고금아 2014. 6. 16. 01:53

아래 네버윈터의 전투-스킬과 함께 다루려고 했다가 부연이 길어서 따로 정리합니다.

그동안 D&D 시리즈는 비 마법적 공격을 단순히 '공격' 하나로 처리해왔습니다. 마법사나 사제 등 마법을 가진 클래스들은 상황 봐가면서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능력들 중 무엇을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만 전사나 도적 등은 그냥 '때려요' 밖엔 선언할 게 없었죠.

물 론 명중을 희생해서 데미지를 높이는 파워 어택이라거나, 적을 앞뒤로 포위하면 명중에 보너스를 받는 플랭킹(도적은 플랭킹 상황에서 기습을 적용받으며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등과 같이 고민할 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모든 선언은 그냥 '때려요'입니다. 그리고 파워어택이든 플랭킹이든 사실 가능하면 무조건 해야하는 거지, 이거 대신 저걸 쓴다거나 하는 식의 전략성은 없어요.

그리고 공격 판정도 굉장히 심플했습니다. 각 마법은 의지력, 반사신경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고 그래서 마법은 상대의 저항을 고려해서 골라야하지만 공격은 그냥 방어도(AC) 하나만으로 퉁쳐졌죠. 스켈레톤은 칼로 때리면 데미지가 덜 들어간다는 정도 외엔 딱히 차이가 없습니다.

WOD만 하더라도 공격에서 선택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육박전이 주가 되는 워울프의 예를 들자면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낮은 대신 데미지가 높은 '할퀴기'와 명중률이 높은 대신 데미지가 낮은 '물기', 성공하면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껴안기' 등 상당히 많은 공격 옵션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데미지의 양은 '공격의 기본 데미지 + 명중에서 온 보너스'이고 공격 횟수는 원하는 대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쪼갤수록 명중률은 떨어집니다.) 얼마나 쪼개서 때릴지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잘게 쪼개서 많이 성공하면 총 데미지양은 늘어나겠지만, 각 공격에 대해서 각각 데미지 흡수 판정이 있기 때문에 너무 잘게 쪼개면 총 데미지양은 높은데 데미지가 모두 흡수되어서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적게 줄 수 있습니다. 상대의 대미지 흡수력에 따라 어떤 메뉴버로 어떻게 쪼개서 얼마나 때려야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또 본행동에 이어서 돌아오는 추가 행동을 어떻게 써야할지도 고민해야죠. 본행동을 쪼개서 공격하고 추가행동으로 정해진 횟수 만큼 회피할 수도 있고, 반대로 본행동에선 공격하는 대신 확률은 계속 낮아지지만 횟수에 관계 없이 모든 공격을 회피 시도할 수 있는 전력회피를 선언하고 추가 행동으로 아프게 데미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전투에요. 물론 그 반대급부로 전투 페이스가 느리긴 합니다만.

D&D4는 그동안 마법 클래스들만 가졌던 '매뉴버'의 개념을 모든 클래스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파워'라는 형식으로 말이죠. 특히 기본 공격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대신 즉시기'At Will Power'라는 파워를 갖게 됩니다. 1레벨에서도 여러개가 제시되고 이들 중 2개를 배우게 되죠. 그래서 '기본 공격'에 해당하는 공격을 할 때에도 여러가지 옵션이 생깁니다. 데미지가 적은 대신 명중률이 높은 공격, 반대로 명중률이 높은데 데미지가 낮은 공격, 데미지는 약하지만 상대를 한칸 밀어내는 공격, 보통 데미지이지만 상대의 어그로를 끄는 공격 등 전사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거지요.

그리고 기존 마법 클래스들의 마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우기'Encounter Power'가 주어집니다. 넓은 범위에 공격을 가한다거나, 특별한 속성 공격을 하는 등 즉시기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하지만 한 전투에서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지요. 쉽게 말하자면 이제 근접 공격 클래스들도 '필살기'가 하나씩 생긴 겁니다.

마지막으로 조우기보다도 강력한 일일기'Daily Power'도 주어집니다. 조우기보다도 훨씬 강력한 기술이지만 게임 상 시간으로 하루에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걸립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보스전까지 아껴둬야 하는 궁극기이자 초필살기인 거죠.

이 렇게 기술들의 사용 횟수와 빈도에 대해 제한이 걸림에 따라 D&D 4에서는 기술을 카드 형식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시기를 사용할 때엔 해당하는 카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지만 조우기나 일일기는 사용하고 나면 마스터에게 돌려주고, 마스터는 전투가 끝나거나 날짜가 바뀔 때 다시 플레이어에게 돌려주는 형식이죠. 조우기나 일일기는 전투 혹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같은 기술을 다시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존의 '메모라이즈'(마법사는 그날 쓸 마법의 종류와 갯수를 따로 지정해야했습니다.)가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하게 정리되었스니다. 또한 카드에 어떤 속성이고 어떤 굴림을 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정리되어있어서 많은 스킬들을 보고 익히고 쓰기에도 편하구요. 단, 마법사는 다른 클래스보다 많은 일일기를 배우고 이 중 어느것을 쓸 지 전날 결정하도록 바뀌었습니다. 메모라이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셈이죠.

이런 파워 개념 외에도 내부 시스템이 굉장히 워게임스럽게 바뀌었습니다. D&D 3.5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사각형 격자 맵을 사용하고 지형, 시선(Line Of Sight)나 통제지역(Zone Of Control. 적 유닛과 인접한 타일에 들어가면 멈춰야 한다) 등과 같이 위치에 따른 전략 요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탱커들 같은 경우는 상대를 밀고 당기는 등의 액션도 있고 어그로를 끄는 파워도 있습니다. (어그로를 끈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을 공격하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또 플레이하고 싶은데... 기회가 잘 안생기네요. ㅎㅎ

by 고금아 2014. 6. 13. 16:54

 과거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MMORPG라는 것을 한번 연구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담당했던 부분은 전투 시스템에 대한 대략적인 컨셉을 잡는 것이었는데 이때 중점을 뒀던 부분이 바로 스킬에 대한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죠. 1부터 =까지 한줄에 12개, 그것도 모자라서 2줄 3줄의 스킬바에 스킬을 쌓아두고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부담이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디아블로3, 길드워2,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 등의 게임을 참고해서 여러개의 스킬을 배울 수 있되 이들 중 일부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스킬덱이었습니다. 입맛에 맞게 전략적으로 스킬 덱을 구성하고 실제 전투는 기본 공격 중심으로 단순하게 가져가다가 스킬은 쓸 수 있으면 그때 그때 쓴다는 심플한 컨셉이었죠. 해당 프로젝트가 접히면서 이와 관련된 생각이나 연구는 딱히 진행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비슷한 컨셉의 게임이 나와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로 유명한 크립틱에서 제작한 네버윈터 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HUD를 한번 보시죠. 제일 먼저 가운데에 눈에 띄는 노란 보석은 액션 포인트 게이지입니다. 적을 공격하고 죽일 때 마다 차오르지만 비전투 상황이라고 해서 깎이지는 않습니다. 그 위에있는 ^자는 사실 2칸으로 구성된 스태미너 게이지로, 굴러서 동적 회피를 할 때 마다 한칸씩 빠집니다. 그리고 이 보석 좌우에 있는 1,2번 슬롯은 각각 2개의 궁극기(Daily Power) 입니다. Q,E,R에 할당되어있는 세개의 빨간 슬롯은 3개의 특수기(Encounter Power)이고 마우스 좌/우 클릭에 할당된 두개의 녹색 슬롯은 즉시기(At-Will Power) 입니다.

즉시기는 딜레이 없이 마음껏 사용 가능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At-Will Power 이고 기본 공격에 해당합니다. 특수기는 쿨타임이 있어 어떤 특수기를 한번 사용하고 나면 10~20초 정도의 기다려야 합니다. 궁극기는 스킬 자체에 쿨타임은 없습니다만 액션 포인트가 만충된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하고 나면 다시 채워야죠. 이 기본 구성은 길드워2의 전사 캐릭터 스킬 시스템과 거의 동일합니다. 아드레날린 게이지가 3단계가 아니라 한칸이고, 마우스로 직접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죠.

하지만 사실 이 구성은 유명한 TRPG 시스템인 Dungeons And Dragons(이하 D&D)의 최신작, D&D4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D&D4에서 즉시기는 매 턴 한번씩 제한 없이 쓸 수 있고, 특수기는 한번의 전투에서 단 한번만 쓸 수 있고 궁극기는 하루에 단 한번 쓸 수 있는 기술이죠. 이 턴제 TRPG 시스템에 최적화되어있는 구성을 실시간 액션 MMORPG에서 어떻게 표현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아주 매끄럽게 옮겨놓았습니다. 브라보.

그리고 눈여겨보셔야 할 점은 특수기를 쓸 때 쿨타임을 제외하면 어떤 자원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MP를 소모하고 누구는 분노를 축적했다가 방출하고 누구는 딜 구슬을 모았다가 쓰고 이런 식의 2차 자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할 부분은 HP와 쿨타임이 전부입니다.

Tab키에 할당된 파란 버튼은 클래스별로 다른 역할을 해줍니다. 제 캐릭터는 도적인데 Tab키로 은신 모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서 약간 좌하단에 위치한 보라색 그래프가 바로 스텔스 미터로 이게 끝까지 차있어야 은신에 들어갈 수 있고 은신에 들어가면 줄어드는 형식입니다. 도적의 모든 특수기들은 은신 상태에선 추가 효과가 발생합니다. 마법사는 특수기 1개를 골라서 Tab 버튼에 할당할 수 있는데 Tab에 할당되면 스펠 전문화라고 해서 그 마법은 추가 데미지나 부가 효과가 같은 보너스를 받는 식입니다.

그리고 Tab과 Q 사이에 작은 노란 버튼 2개가 보이는데 이는 클래스 특성 스킬을 할당하는 자리입니다. 플레이어는 여러개의 클래스 특성 스킬들 중 2개를 골라 저기에 배치할 수 있죠. 당연히 배치한 스킬만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즉시기 2개, 특수기 3개, 궁극기 2개 + Tab 까지. 총 8개의 파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당연히 배울 수 있는 파워는 훨씬 많습니다. 이들 중 당장 쓸 것을 8개 채우는 거죠. 즉시기도 여러가지가 있어 골라서 잡으면 됩니다. 1레벨에서 받는 즉시기는 앞으로 전진하면서 적을 베는 근접 공격과 멀리 떨어진 적에게 단검을 날리는 (LOL 코르키의 미사일처럼 3초당 1개씩 생기는데 총 8개까지 축적됩니다.) 원거리 공격 이렇게 두가지였습니다. 뒤에 한 자리에서 연속해서 상당히 여러번 베면서 큰 데미지를 주는 근접공격이 생겼는데 발동까지 시간이 걸리고 일단 베기 시작하면 공격을 끊기가 까다로워서 처음 받았던 근접 공격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원거리 공격은 발동이 조금 느린 대신 한번 공격하면 DOT 데미지를 주는 파워가 생겨서 갈아치웠죠. 자기 플레이 패턴이나 다른 스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파워 덱을 구성하는 재미도 찰집니다. 단, 파워를 갈아치면 10초간은 그 파워를 못씁니다.

그리고 나서 위쪽의 파워 트리를 보시면 실제로는 이게 트리가 아니라는 점에 눈길이 가실 겁니다. 파워 간에 딱히 선/후 관계가 없어 파워 트리에 특정 포인트를 쓰기만 했으면 그냥 익힐 수 있습니다. '특정 레벨'이 아니라 '특정 포인트 투자'라는 부분이 또한 포인트인데요, 첫줄에 있는 스킬들 위에 20포인트부터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20레벨이 아니라 30레벨 아니 100레벨에 도달해도 파워에 20점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파워는 얻을 수 없습니다. '레벨'이 아니라 '이제까지 투자한 포인트'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포인트를 아껴두었다가 후반 레벨에 나온 좋은 스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각 스킬은 3단계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3단계 업그레이드도 20점을 투자한 이후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30점 이후의 파워들은 파라곤이라고 해서 30레벨에서 결정하는 세부 직업에 따라 결정됩니다. 도적의 경우 은신-기습을 주로 하는 Master Infiltrator와 장거리 공격에 중점을 두는 Whisperknife로 쪼개집니다. 그리고 뭘 고르는지에 따라 30포인트 이후의 스킬셋이 달라지요.


캐릭터 특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캐릭터 특성은 클래스 특성과 달리 퀵슬롯에 등록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데, 각 열에 몇점 이상을 투자해야만 다음 열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열리는 구성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특성들은 30레벨 전까지는 잠겨있다가 무슨 세부직업을 고르느냐에 따라 다시 달라지죠.


스태미너를 소모해서 동적 회피를 할 수 있고, 2차 자원 없이 쿨타임만으로 스킬들을 통제하는 것은 길드워2와 동일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이 게임은 블레이드 앤 소울과 같은 형식의 논타게팅 액션 전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우스룩에 WASD로 이동하고 그래서 파워와 관련된 단축키들은 1,2(궁극기) / Q,E,R (특수기) / Tab에 기본적으로 배치되어있지요. 3번은 아티팩트 슬롯이고 누르기 힘든 4,5,6번은 포션 빠는 슬롯, 7은 탈것을 불러내는 데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전투에 들어가면 힘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쉽게 파워를 쓰고 포션을 빨 수 있습니다.

블소의 경우는 대전게임의 연속기라는 개념에 좀 더 집중해서 어떤 공격을 명중시켰느냐에 따라 스킬들이 계속 바뀌고 그 가운데 써야 할 스킬들을 또 재빨리 눌러야하는 부담이 있습니다만 네버윈터는 그런 것 없습니다. 스킬은 쓸 수 있고 쓰고 싶을 때 쓰면 되는 것일 뿐이죠. 대신 기본 공격의 모션이나 타격감이 괜찮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 MMORPG는 타격감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네버윈터의 타격감은 상당히 시원시원하면서도 플레이하면 피곤할 정도는 아닌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획자로써 길드워2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전투 템포가 다소 느리고 6번 이후의 스킬을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점은 불만이었습니다만, 네버윈터는 이를 상당히 시원시원하게 잘 풀어냈습니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전투라는 점에서는 이제껏 나온 MMORPG 중에선 가장 뛰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블소 처럼 피곤하지도 않구요.

다만 이렇게 전투-스킬 시스템을 잘 만들어두고도 정작 나머지 부분에서는 각 레벨 대에 맞는 존이 있고 거기 가면 또 메인퀘와 잡퀘들이 우루루 공급되는 모습이 아주 일반적인 MMORPG의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WOW에서 성공했지만 한번 지나간 공간을 두번 방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맵이 말 그대로 '소모'되고 레벨에 따라 유저들이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는 문제가 있었죠. 사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길드워2가 밝혀냈다고 봐야겠습니다만.

컷씬 따위 없고 심지어 인게임 연출도 없이 단순히 대화창으로만 돌아가는 메인 퀘스트의 진행이나, 같은 공간에서 계속 뺑뺑이를 돌리는 모습을 보면 스타워즈 구공화국이나 블소처럼 아주 많은 자본이 투입된 게임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딱히 필드 이벤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필드 상에서 유저의 협력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여기 있다는 정도 외에 딱히 MMORPG로서의 MMO함이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필드를 걷어내고 인던 중심으로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뭐 이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룰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여하튼 스팀에서도 서비스 중이니 한번쯤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메타 크리틱 점수는 낮은데 꽤 재미있어요. 다만 이게 스팀 계정가지고 게임 계정을 연동하는게 아니라 공홈에서 별도 계정을 만들어야하는데 한국은 IP 제한이 걸려있을 겁니다. Zenmate가지고는 안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7일 혹은 30일 무료 체험 있는 상용 VPN으로는 등록이 될 겁니다. 일단 계정만 만들면 플레이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by 고금아 2014. 6. 13. 04:55


0. 동기식 멀티플레이의 금기

예전 피쳐폰 시절도 그렇지만, 아이폰이 도입된 초기엔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 대한 개념은 안드로로 날려보내고 익숙한 게임을 단순하게 스마트폰으로 이식한 게임이 많았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은 가상 패드를 쓰고 로딩은 길고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기존 게임의 모사품들이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바일 게임이란 언제 어떻게 하다가 언제 어떻게 관둘지 모른다는 특성을 이해하면서 한손으로 조작이 가능하고 언제든 멈출 수 있거나 플레이 단위가 아주 짧아야 한다는 등의 일반적 원칙들이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실시간 멀티플레이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죠. PC에서 실시간 멀티플레이 게임이 잘 되니까 모바일에서도 실시간 멀티 플레이 게임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배터리는 엄청나게 먹지요, 모바일 네트워크는 불안정하지요, 플레이는 언제 중단될 지 모르죠. 확밀아, 퍼즐 앤 드래곤 등 성공한 게임들은 모두 비동기식 멀티 플레이를 채택하고 있스니다. 만일 2014년 지금 누군가가 모바일로 실시간 동기식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면 대못박힌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후려쳐도 업계 보호 차원에서 정당방위로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했습니다. 드래곤 포커(이하 도라포)라는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시죠.


1. PVE 포커 RPG



게임 플레이는 간단합니다. 5명의 플레이어가(사람이 부족할 경우 CPU가 대신 채웁니다.) 파티를 짜서 던전에 들어가고, 매 스테이지마다 1~3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납니다. 매 턴마다 플레이어가 먼저 공격을 하고 몬스터가 반격을 합니다. 플레이어들은 매 턴 마다 4장의 카드를 받고 그 중 1장씩의 카드를 냅니다.(다음 턴이 되면 리셋해서 다시 4장의 카드를 받습니다.) 원페어부터 파이브카드에 이르기까지, 일단 역이 메이드 되면 메이드 된 카드들이 몬스터들을 공격합니다.

포커 룰 대로라면 역을 메이드해서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될 수 있겠습니다만, 도라포의 포커 룰은 원래의 포커룰보다 훨씬 느슨합니다. 위 오른쪽 스크린샷을 보시면 2-3-4-5-5의 5장인데도 스트레이트가 메이드 된 것을 볼 수 있지요. 도라포는 5장이 아닌 4장만으로도 스트레이트가 만들어지며 중간에 페어가 한장 끼어있을 경우 5장 모두 스트레이트로 칩니다. 4장이 아닌 3장만 연속되어도 '미니 스트레이트'라고 해서 역으로 쳐주기도 하지요.(단, 원페어보다 아래로 칩니다.) 플러쉬 역시 스다하크(스페이스,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의 4종으로 구성된 기본 포커와 달리 적-청-녹 3개의 속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메이드하기 쉽습니다. 대신 플러쉬는 투페어보다도 아래로 설정되어있지요. (그리고 익히 짐작하시겠지만 3속성은 수>화>목>수 의 가위바위보 밸런스입니다.)

다섯명이 한장씩 차례대로 내기 때문에 실제로는 20장의 카드 중 5장으로 역을 만드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역은 잘 나오는데, 이걸 만들어가는 과정이 쏠쏠합니다. 한명 한명씩 카드가 쌓여가면서 어떤 역들이 가능한지 점점 구체화되고, 최종적으로 큰 역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긴장감은 사실상 세븐카드 포커에서 한장씩 카드를 받아볼 때와 같은 감정입니다. 다만 완전 랜덤인 세븐카드 포커와 달리 여기선 각자가 특정한 역을 그리면서 카드를 낸다는 점이 차이겠지요.


2. 어째서 동기식 멀티플레이인가?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각자 무슨 카드를 지금 손에 들고 있는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사실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엔 본인도 자신의 손패를 알 수 없죠. 그래서 사실 굉장히 정교한 전략이나 협력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무슨 역을 만들지는 2~3구에 이미 정해지고, 그 뒤는 정말로 그 카드들이 손에 들어오느냐의 문제 뿐이죠. 위 스크린샷을 보면 1,2구째에 목 속성으로 7,8이 만들어졌습니다. 스트레이트 또는 플러쉬 비전인데 3구째 플레이어가 6이나 9가 없었는지 일단 Q로 플러쉬 비전을 붙여둡니다. 어차피 4장만으로 스트레이트가 가능하고 플러시가 원페어보다 약하기 때문에 수 속성의 9를 갖다 붙여서 스트레이트 비전을 밉니다. 그리고 5구째에 불7을 붙이면서 원페어로 망했죠.

사실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에 머리 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손에 들어오지 않은 카드는 내지 못하니까 결국 7을 내서 원페어로 망하더라도 딱히 그사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 협력이라는 건 사실 정교한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단순하게 5명의 운을 합쳐서 같이 굴리고 모두 함께 보상받죠. 이것도 엄연히 협력이고, 멀티플레이 협력에서 요구되는 보상과 의외성이 모두 충족됩니다.

 

 

물론 그 댓가는 참혹합니다. 동기식 멀티플레이 게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버와 통신해야 하며 통신망에 이상이 생기면 위와 같은 화면이 뜹니다. 3G 인터넷 환경이 좋은 한국은 모르겠지만, 안터지는 곳도 많고 터져도 속도가 1K씩 나오는 이곳 중국에선 정말 자주 보는 화면이죠.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복귀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접속이 끊긴 채로 내 차례가 지나면 AI가 자동으로 패를 내버립니다. 그나마 저렇게 돌아오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간신히 접속 이어서 들어와보니 이미 다 죽어있으면 참 억울하고 짜증이 납니다. 게임 내적 요인이 아닌 외적 요인으로 플레이어에게 게임 내적으로 손해를 입히면 안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만, 이 게임에선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과일은 달콤합니다. 반대로 이 게임이 비동기식 멀티플레이를 채택했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확밀아처럼 레이드를 뛸 수도 있을테고, 퍼드 처럼 남에게서 카드를 한장 빌려올 수도 있겠죠. 어느 쪽으로 가든 간에 유저는 오롯이 자신의 운으로 게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커라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원페어 이상을 만들기 어려운 게임이죠. 협력에 의한 즐거움 이전에 기본 게임플레이에서부터 역 만들기가 어려워 짜증날 가능성이 큽니다. 


3. 또다른 랜덤 요소들

 

 

콜렉팅 카드 게임으로 당연하게 스킬과 합체기라는 또다른 요소들이 게임에 개입합니다. 각 카드는 최대 1개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데, 카드가 메이드 된 역에 포함되어 공격할 때 랜덤하게 발동됩니다. 체력을 회복시켜준다거나, 특정한 속성을 공격을 가한다거나, 적 전체에게 공격하는 등 다양한 효과가 있지요. 반면 합체기는 랜덤이 아니라 메이드 된 카드들 중 같은 카드가 2장 있거나 서로 연관된 카드들이 있을 경우 반드시 발동됩니다. 같은 카드 2장은 익히 예상할 수 있지만 연관된 카드라는 건 딱히 게임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나오죠. 그럼 이런 표정이 되는 겁니다.


4. 게임의 중심요소로서의 의외성(도박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 게임의 핵심 가치는 다섯명의 운을 합쳐서 도박이 지닌 의외성 중 긍정적인 부분만을 돌려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외성이 플레이어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항상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합니다. 운이 좋으면 더더욱 유리한 결과가 나오겠지요. 물론 4구까지 스티플 비전이었는데 5구째에 카드가 말려서 원페어도 못만드는 지지리도 궁상맞고 눈물나는 상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굉장히 희박한 일입니다.

 

 

위 스크린샷을 한번 보시죠.  왼쪽 하단을 보면 BET 이라는 버튼이 있고 여기를 클릭하면 게임머니를 걸 수 있습니다. 보통 표시된 액수의 10배까지 걸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돌려받는 액수가 다릅니다. 대결 형식이 아니라 패의 질만을 보는 포커 게임들은 보통 2페어는 만들어야 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쓰리카드 이상이면 조금씩 늘어나고, 1카드 이하는 건 돈을 돌려받지 못하죠. 하지만 이 게임에선 원페어만 나와도 건 돈을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스트레이트가 만들어지면 5배, 파이브카드면 아마 8배 까지도 돌려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차피 저렇게 걸고 돌려받는 액수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카드 한장 강화하는데 몇만 골드씩 소모되는데 1000골드 걸어서 8천골드 돌려받아봤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죠. 사실 게임 내 경제 측면에서 저 베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유저에 대한 일종의 작은 보너스죠. 

일찍이 의외성은 놀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의외성을 중심으로 꾸며진 게임은 많았죠. 하지만 드래곤 포커는 의외성을 게임의 핵심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중심을 아주 유저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유저에겐 좋습니다. 더 좋을 수 있고 덜 좋을 수 있지만 어쨌든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상징적으로 손해보는 케이스를 남겨두긴 했지만 사실상 발생하지 않죠. 이 원칙은 다른 게임에도 충분히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5. 게임 내에서의 전략 요소

 

이렇게만 써놓으면 게임이 거의 완전히 의외성으로만 굴러갈 것 같습니다만, 이게 또 완전히 랜덤이라면 플레이하는 의미가 덜하겠죠. 플레이어는 받은 손패를 내는 것 외에 SP 스킬이라는 형태로 게임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SP는 쉽게 말하자면 '기 게이지'로 역이 만들어질 때 마다 쌓이는 점수입니다. 당연히 좋은 역이 만들어질수록 많이 쌓이고 최대 100%까지 쌓이죠. 플레이어는 이 SP를 소모해서 다양한 효과를 끌어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카드화 확률 증가입니다. 이 게임은 퍼즈도라와 마찬가지로 적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 마다 일정 확률로 그 몬스터를 자기 것으로 가져올 수 있는데 확률 증가 카드를 쓰면 이 확률을 높일 수 있지요. 손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손패중 일부를 랜덤하게 버리고 다시 몇장을 가져올 수도 있고 몬스터의 스킬 발동 확률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 SP 스킬들은 모두 다양한 카드 형태로 등장합니다. 카드화 확률 증가의 경우 랜덤하게 1장만 올려주는 카드가 있는가 하면 2장 올려주는 카드도 있고 3장 모두 올려주는 카드가 있습니다. 손패 바꾸기도 1장부터 3장까지 다양하지요. 당연히 좋은 카드일수록 SP 비용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SP 스킬을 가지고있다고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들 중 일부를 선택해서 장착해 게임에 들어갑니다. 어떤 SP 스킬을 장착할 것인지부터 어떤 스킬을 언제 쓸 것인지까지 유저의 전략과 개입을 필요로 하지요.


6. 동기식 플레이와 친구의 활용

또한 동기식 게임이다보니 친구관계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른 게임들과는 다릅니다. 퍼드의 경우 친구의 리더카드를 빌려올 수 있고, 그래서 좋은 리더카드를 지닌 친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반대로 자신도 좋은 리더카드를 유지할 필요가 있죠. 도라포는 친구의 파티에 빈자리가 있으면 그 던전에 난입할 수 있는 '같이하기' 기능이 존재합니다.

기존에 게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CPU 보다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당연히 유리합니다. 지능도 AI보다는 사람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CPU 보다는 좋은 카드들을 갖고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난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난입은 중요한 메리트가 있습니다. 스태미너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게임은 퍼드처럼 던전에 들어가면 스태미너를 소모하는데, 회복 속도에 비해 소모량이 상당합니다. 5분에 1점씩 차는데 1레벨 던전도 최대 9점을 소모하죠. '최대' 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각 던전에서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 마다 스태미너가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1레벨 던전의 경우 3점짜리 스테이지가 3개 있는 것이죠.

만일 제가 최대 60점을 소모하는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데 당장 가진 스태미너가 45점 밖에 없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15X5로 75분을 기다리거나 유료템인 젬을 먹어서 스태미너를 채워야겠죠. 하지만 만일 다른 친구가 이미 그 던전에 들어가있고 2스테이지에 있다면 저는 첫 스테이지의 참가비인 20점을 낼 필요가 없으므로 난입이 가능합니다. 그럼 난입해야죠.

중간에 난입하게 되면 당연히 지난 스테이지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스테이지에 대한 보상에는 아무런 페널티가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던전에 꼭 가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일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친구의 던전에 난입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본인도 계속 던전을 돌고 덱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7. 덱의 관리와 확장

 

 

이제까지 동기식 멀티플레이 PVE 포커 게임으로써의 면모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엔 카드 컬렉팅 게임으로써의 도라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덱 구성부터 시작해보죠. 플레이어의 덱은 1장의 A카드와 12장의 일반 카드로 구성됩니다. 일반카드는 다시 火 속성 카드 4장, 水 속성 카드 4장, 木 속성 카드 4장으로 구성되죠. 원한다고 火속성만 12개 꽂고 그럴 수 없습니다. A 카드는 항상 A입니다. 나머지 카드는 던전에 들어갈 때 마다 랜덤하게 번호가 매겨집니다. 지난번에 들어갔을 땐 저기 보이는 이프리나가 2였는데 이번엔 7일 수도 있고 다음번엔 Q일 수도 있지요. 당연히 각 카드는 강화 진화 가능하구요.

당연히 레벨이 올라갈수록 한계 코스트는 올라가겠지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숫자는 13개로 제한되어있습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코스트를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기엔 13장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쪼렙이라도 (아니 쪼렙일수록) 가차에서 뽑은 좋은 카드를 덱에 떡 하고 박아서 게임에서 쓰는 재미가 중요한데 자칫하다간 좋은 카드 뽑으신 건 축하드릴 일이지만 그거 쓰려면 나머지 카드를 모두 허접한 걸로 박거나 열렙해서 코스트 한계를 높인 뒤에 쓰라는 괴악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요. 이렇게 가차 뽑는 보람이 없어선 곤란합니다. 마블 퍼즐퀘스트가 그런 케이스였죠.[각주:1]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꼬붕(子分)이라는 시스템이 붙어있습니다. 왼쪽 스크린샷에 보면 보라색 버튼이 있지요. 도라포에선 13장의 카드 아래에 꼬붕이라는 서포터 카드를 붙일 수 있습니다. 오른쪽 스크린샷 보시면 A카드인 '소악마 나나' 아래에 '배고픈 팬더'를 꼬붕으로 붙인 상태죠. 꼬붕은 자신이 붙어있는 메인 카드의 스펙에 보너스를 주고, 꼬붕의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팬더의 꼬붕 스킬은 메인 캐릭터의 할퀴기 스킬을 올려주는 군요. 40레벨이 되면 A카드의 꼬붕 슬롯이 열리고, 이후 레벨이 오르면 다른 카드들의 꼬붕 슬롯도 열립니다. 처음엔 하나만 열렸다가 2개 3개 4개로 점점 늘어나는 구조죠.

이 꼬붕 슬롯은 앞서 말한 것 처럼, 덱 크기의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좋은 카드의 코스트를 무진장 높이지 않으면서 코스트 증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또한 메인과 꼬붕 카드의 조화, 꼬붕 카드로서의 특성과 장점 등 다양한 요소가 가미되면서 덱 구성의 게임플레이를 강화하지요.


8. 카드의 강화와 진화

 

 

 

강화/진화 시스템은 (다른 부분들이 다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퍼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강화는 카드를 갈아먹여서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리는데 같은 카드를 먹이면 카드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진화의 경우, 필요한 카드가 정형화 되어있습니다. 경험치나 스킬을 올려주는 전용 몬스터의 경우는 같은 몬스터, 그 외는 오른쪽 스샷에 나온 것 처럼 진화용 카드들을 먹이면 됩니다. 

 

 

강화든 진화든 기본적으로 다른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는데, 보상은 좀 남다릅니다. 진화를 통해 새 카드를 도감에 추가할 때 마다 용석을 지급해주거든요. 지금 보신건 레어 급을 레어+급으로 추가했더니 용석 1개를 준 것인데, 좀 더 희귀한 카드를 만들면 좀 더 주기도 했습니다. 용석은 퍼드의 알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나 톡 까먹으면 스태미너를 풀로 회복시켜주고, 던전에서 죽었을 때 부활할 수 있고, 유료 가차를 깔 때 쓰입니다. (용석 4개당 가차 한번). 그러니 당장 덱에 넣지 않을 카드라고 하더라도 성장해서 진화시키고 다시 용석으로 가져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9. 반복 플레이를 요구하는 극비 미션


 

 

던전 리스트를 보면 Clear 여부 외에 트레져(보물) 획득 여부가 따로 구분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각 던전은 하나씩의 보물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가 던전을 클리어하면 기본적으로 일정한 보상을 받는데 거기에 더해서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단 한번만 얻을 수 있지요. 그래서 클리어는 했지만 아직 보물은 얻지 못한 던전이 존재하고, 보물까지 얻고 나야 비로소 그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 스샷의 두번째 던전은 클리어를 못했는데도 보물은 얻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그 던전 보스전 도중에 네트워크 장애(=_=)로 튕기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각 에어리어(같은 난이도 - 별 갯수 - 를 지닌 던전의 집합)을 모두 클리어 하면 다음 던전이 열리면서 보상으로 덱 코스트 한계를 올려줍니다. 그렇다면 보물을 모두 얻으면 무슨 보상이 있을까요? 그 비밀은 아까 왼쪽 스샷의 왼쪽 코너에 있는 "극비 미션"이라는 메뉴에 있습니다. 극비 미션에 가보면 특정한 보물을 모으면 그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스샷은 별 10개짜리 노말 던전에서 나오는 보물 셋을 모으면 용석을 무려 10개나 주는군요. 각각 어느 던전에서 나오는 보물인지 지정되어있습니다.

용석을 째째하게 한두개도 아니고 5개 10개씩 마구마구 뿌려주니 유저 입장에선 여기에 메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물이 나올 때 까지 계속 던전을 돌아야하니 컨텐츠 소모도 늦춰주고, 돈주고 사야하는 아이템을 준다고 하니 유저가 좀 더 오래 자주 많이 게임을 하게 되지요. 이게 정말 사악한게 자고로 돈보다 빼앗기 힘든게 시간인이고 이 시간을 자발적으로 갖다바치도록 유도할 뿐더러 이렇게 얻은 용석을 써버릇하면 나중엔 용석을 사서 쓰게 됩니다. 그리고 비과금 유저도 충분히 이 보물찾기로도 게임을 꾸려갈 수 있구요. 저같은 경우, 지금까지 무과금으로 저렇게 무료 용석으로 가차 까면서 무리없이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현질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요. (절차가 복잡해서 돈을 못쓰고 있습니다.)


10. 동기식 PVP


 

 


 PVE가 동기식이었던 만큼, PVP 역시 동기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PVP를 플레이하기 위해선 콜로세움 티켓이라는 별도의 아이템을 사용해야 하는데 (4장 소모하는군요) 참가비는 29 스태미너 포인트. 스샷 찍을 당시 37레벨인데 보통 던전 하나 도는데 36 정도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스태미너 코스트는 저렴합니다. 레벨과 그간의 성적에 따라 리그가 나눠져있고 매 주마다 특정 스킬들에 보너스를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VP에서 선전하려면 다양한 카드들이 필요하겠죠. 참가를 누르면 5:5로 매칭이 됩니다.


 

 

PVP 역시 다섯명이 차례대로 각자 1장씩의 카드를 내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양팀이 동시에 카드를 내죠. 그리고 매 턴 더 높은 역을 만든 팀 부터 공격합니다. 위 스샷에선 제가 속한 팀이 풀하우스고 상대 팀이 원페어니 제 팀이 먼저 공격합니다. 공격 차례가 되면 상대방의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합니다. (물론 타겟은 랜덤이죠) 플레이어의 HP가 0이 되면 다음 턴 시작 전에 HP가 풀로 회복되지만, 그 턴에는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카드가 역에 포함되어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 일단 선공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최종적으로는 5턴동안 상대에게 준 데미지의 합계가 많은 팀이 승리합니다. 그리고 왼쪽 하단을 보시면 자기가 획득한 BP(상대에게 데미지를 줘서 얻은 점수)를 놓고 다시 베팅할 수 있지요?


 

 


PVP 게임을 끝내고 나면 드래곤 메달을 받습니다. 승리 수당으로 2개, BP 수당으로 2개 받았네요. 데미지를 잘 주고 BP 베팅에도 성공하면 좀 더 돌려받겠죠. 이 드래곤 메달은 다른 아이템으로 교환받을 수 있습니다. 한정상품인 레어 캐릭터로 바꿀 수 있고, 강화/진화용 특수 몬스터 카드와도 바꿀 수 있습니다. SP 카드를 살 수도 있고 무료가차를 뽑는 포인트인 PP로도 바꿀 수가 있군요. PVE가 랜덤 보상에 기반해서 돌아간다면 PVP는 확정보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아마도 다들 오른쪽의 소악마 리노를 노리겠지요.


11. 醫는 精하면 禁忌를 초월한다

흔히들 어렸을 때 읽은 책 한권이 평생을 좌우한다고들 하지요? 보통은 무슨 무슨 책을 읽고 아이가 감명받아 갑자기 삶의 목표를 찾고 기력이 샘솟아 기적을 이루는 무슨 간증같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만, 저같은 경우 초등학교때 故이은성 작가님의 '소설 동의보감'이 바로 인생을 결정지은 책이었습니다. 이순재 옹 주연의 '집념', 서인석옹 주연의 'TV 동의보감', 전광렬 주연(보다는 예진아씨가 유명한) '허준' 최근엔 김주혁 주연의 '구암 허준'으로 무려 네번이나 드라마로 방영된 작품이지요.

제 가 이 책을 읽고 생명의 소중함과 그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숭고한 삶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 의대에 가서 가문의 영광이 되었겠습니다만, 제가 감명을 받은 것은 오히려 유의태와 그 친구들의 태도였습니다. 침술의 일인자 유의태, 탕약의 천재 김민세, 부술의 달인 안광익. 셋 다 아주 안하무인이지요. 하지만 허준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베알은 꼴리지만 실력이 저 오만을 커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보고 초등학생이던 저는 '아 실력이 있으면 오만해도 되는구나'라고 받아들인 겁니다. 뭐 어쩌겠어요 이미 이번 생은 틀려먹은 걸.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극 중 허준은 내의원 시험을 치러 한양에 가다가 진천 버드네라는 곳에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게 됩니다. 이때 되뇌이는 말이 있지요. "醫는 精하면 禁忌를 초월한다" 뜸에 쓸 수 없는 쑥으로 뜸을 뜨면서, 침을 놓으면 안되는 시간에 침을 놓으면서 수없이 되뇌이는 말입니다. 어차피 의라는 것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인데, 제한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런 금기는 어떻게든 된다는 말이죠. 오만해도 결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고 그래도 이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건 저 문장도 같이 외웠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드래곤 포커야 말로 의는 정하면 금기를 초월한다는 말이 참 어울리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친구에게 소개받을 때만 하더라도 턴제 동기식 멀티플레이라는 말에 어느 병신이 그딴 걸 만들었냐고 비웃었지만, 실제 게임은 그 동기식 멀티플레이에서만 가능한 재미를 훌륭하게 전달해주고 있었죠. 무서운 속도로 배터리를 소모하고, 네트워크가 불안하면 망가지지만, 그래도 계속 붙잡고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게임입니다. 메인 게임 플레이 외에 카드 수집과 성장, 덱 구성 등의 메타게임도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있구요.

가차폰이 도박이냐 아니냐는 말이 오가는 와중에 가차폰에 더해서 아예 도박을 소재로 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고 한번쯤 해보셨으면 합니다.


  1. 같은 카드를 갈아먹여서 레벨 한도를 높이는 것은 확밀아와 동등하지만 기본 레벨이 정말 짜고(15레벨) 카드를 계속 갈아먹일수록 레벨 한도 증가량이 큰 구조입니다. 돈을 때려박아서 3성 아이언맨을 하나 뽑아도 15레벨에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도 없어서 3성 아이언맨을 몇장 더 얻기 전까진 아무 쓸모가 없지요. 기본 레벨을 넉넉하게 주고 추가 레벨을 짜게 주는 확밀아와는 반대로 가차에서 좋은 카드가 나와도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4. 5. 18. 20:44



0. 걱정 반 기대 반의 옵시디언 작

사우스파크 진실의 작대기(이하 작대기)의 제작사인 옵시디언은 참으로 재미난 회사입니다. 확장팩까지 포함할 때, 전신인 블랙아일부터 따지면 14개, 옵시디언으로는 총 7개의 게임을 출시했지만 그 중 단 한작품 - 알파 프로토콜 - 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른 게임의 속편이거나, 다른 게임의 엔진을 빌려다 만든 게임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속편들이 대부분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블랙아일 시절의 폴아웃2,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아이스윈드데일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옵시디언이 만든 구공화국의 기사단2, 네버윈터나이트 2, 폴아웃 뉴 베가스 등 쇼킹했던 전작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성공한 작품입니다. 혁신적인 RPG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RPG를 만드는데엔 일가견이 있는 제작사임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능력이 남의 게임 받아다가 만들 때에만 발휘된다는 것이겠지요. 3대 JB 스파이(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존 바우어)를 게임으로 옮긴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알파 프로토콜'은 옵시디언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독자 IP 였습니다만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던전시즈 3' 역시 전작의 엔진을 이어받지 않고 Onyx 엔진으로 제작했습니다만 쫄딱 말아먹었죠.

21세기 RPG의 명가라면 베데스다와 바이오웨어를 꼽습니다만, 사실 옵시디언도 그에 꿇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와서 뜯어고치고 추가하는 것이 아닌, 독자 개발로 재미를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저 둘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애매합니다. 그래서 진실의 작대기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작품이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재미는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쓰는 속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 프로토콜처럼 괴작이 나올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요.

그리고 결과는..... 사우스 파크 게임이 나왔습니다.


1. 사우스파크 게임

사실 옵시디언이 그동안 만들었던 게임들은 매우 훌륭한 속편들이었습니다. 뭔가 전작을 뛰어넘는 수준의 오리지널리티도 없고, 전작보다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은 적도 없습니다. 게임 그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옵시디언이 만든 속편들은 사실 굉장히 탄탄하긴 해도 전작에 비해 그렇게까지 뛰어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속편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뭘 원할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캐치하고 표현해줬죠., 예를 들어 구공화국의 기사단 2는 상당한 분량을 1편의 후일담에 할애해 1편이 만들어놓은, 영화로부터 3천년전의 새로운 세계와 1편의 모험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다이 능력을 빵빵하게 채워넣어 제다이가 되고팠던 유저들의 욕망을 해소하지요. 구공화국 1편의 1/3은 제다이가 아닌 클래스로 진행되고, 따라서 시스템적으로 고레벨 제다이에 대한 표현이 부족했거든요. 네버윈터나이츠 2는 파티 사이즈를 늘리고 에픽한 영웅담을 강화해 정통 D&D 3.5를 즐기고 싶다는 포인트를 자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대기는 원작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옵시디언의 장점이 매우 잘 활용한 게임입니다. 아이템부터 스킬, 스토리 진행, 연출 모든 면에서 이 게임은 완벽하게 사우스파크를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방귀에 불을 붙이는 화장실 개그부터 매트릭스 같이 유명한 매체의 패러디, 정치인에 대한 풍자, 외계인과 같은 음모론,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다소 위험해보이는 개그자까지, 전체적인 게임 자체가 '사우스 파크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RPG게임'이 아니라 그냥 '사우스 파크 게임' 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다고 해서 사우스파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사우스파크 시리즈의 팬이 아닙니다. 오래전 나왔던 극장판을 본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작대기는 사우스파크의 개그 코드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 때문에, 굳이 TV판이나 극장판에서의 사전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사우스파크를 본 적이 있다면 '아 그래 이런 개그였지'라고 생각하고, 본 적이 없다면 '아 이게 사우스파크의 개그구나'라고 납득하면 됩니다. 그냥 게임만 해도 이 골때리는 개그 센스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2. 턴제 RPG 전투

그럼 이제 '사우스파크 게임'이 아닌 RPG 게임으로써의 작대기를 이야기해봅시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 처럼 전투가 턴제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왼쪽엔 플레이어의 파티가, 오른쪽엔 적들이 나타나고 양쪽이 번갈아가면서 액션을 취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턴제 구성은 이런 구성은 현재 대세가 된 실시간 전투와 달리 보다 전략을 요구하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사우스파크는 이 전략성이 굉장히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우선 적들은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3X2의 행열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 행에서 가장 앞쪽에 있는 적만 근접공격이 가능합니다. 공격에 따라선 한 행에 있는 적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고, 한 열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지요. 화상, 구역질, 열받음 등 다양한 상태 이상이 존재하고, 이 상태 이상에 따라 추가데미지나 추가효과를 주는 경우도 다양합니다. 또한 데미지를 차감하는 '아머'와 공격 자체를 무효화하는 '실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머가 강한 적에게는 한번에 큰 데미지를 주는 '강공격'을, 실드가 많은 적에게는 여러번 공격해 실드를 깎아먹을 수 있는 '약공격'을 사용하고, 또한 적들이 근접 혹은 원거리 공격에 대한 카운터 자세를 취하는 등 굉장히 고민할 거리가 많은, 전략적인 전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실시간 전투가 대세가 된 것은 이렇게 전략적이다보니 전투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 난이도가 올라가고, 전투 자체에서 오는 긴박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죠. 사우스파크는 전략적인 깊이는 있으면서도 이를 캐주얼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턴제 게임에서 아이템의 사용은 공격과 마찬가지로 턴을 소모합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사용해서 회복을 시켜야 할지 공격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죠. 하지만 작대기에선 아이템을 사용한 뒤에도 여전히 공격할 수 있습니다. 들과 달리 아이템을 사용해도 여전히 그 턴에 공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들은 공용 아이템 창고와 캐릭터 아이템 인벤토리를 분리해서, 캐릭터가 당장 갖고 있는 아이템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그런 제한도 없습니다. 또 어떤 게임들은 회복이나 버프 아이템들을 본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작대기는 이 제한도 풀려있습니다. A라는 캐릭터가 아이템을 사용해서 B를 회복시키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죠. 한 캐릭터가 한 턴에 아이템은 단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제약들을 모두 풀어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포션을 빨아가며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해보이지만 사실 이걸로도 턴제 전투가 굉장히 캐주얼해집니다.

또한 사용자의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의 모든 행위에 대해 유저의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단 근접이든 장거리든 기본 공격부터 공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격 모션 도중 반쩍 하는 이펙트가 나올 때 버튼을 누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타이밍이 좋으면 당연히 데미지가 늘어나고 무기나 인챈트에 따라선 부가 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수능력들은 보다 다양한 액션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위 스크린샷에서 보듯 지미의 기술인 '자장가'를 사용할 때엔 DDR 처럼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작은 리듬액션 게임이 나옵니다. 돌맹이를 던지는 '다윗의 돌팔매'를 사용하기 위해선 스틱을 빙글빙글 돌려야 하고 에릭의 기술인 '저주'를 사용하기 위해선 열심히 버튼을 연타해야 합니다.

이런 타이밍 액션은 공격시 뿐만 아니라 방어시에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상대가 공격을 할 때 캐릭터 아래에 위와 같이 방패 문양이 나타나는데 이때 버튼을 누르면 가드에 성공하고, 그러면 보다 적은 데미지를 입습니다. 데미지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데미지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계속 가드에 성공하지 않으면 전투가 꽤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귀찮거나 어려울 때 불러낼 수 있는 '소환'이 있지요. 서브퀘스트를 통해 동네 주민을 돕다 보면 주민들이 보답으로 '소환' 아이템을 주기도 합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해당 캐릭터가 소환되어 그냥 전투를 끝내버립니다. 1회용이라 다시 사용할 수 없고, 보스전에선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상당히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각 소환수(?)의 등장씬과 공격씬을 보는 재미도 매우 쏠쏠하지요.


3. 충실한 RPG 컨텐츠

전투 외에 육성 / 수집과 같은 RPG 게임의 보편적인 요소도 상당히 충실하게 잘 갖춰져 있습니다.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오르고, 레벨이 오르면 HP나 PP(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의 한도가 오르는 외에 스킬 업그레이드 점수를 얻습니다. 스킬 자체는 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생기며 플레이어는 어느 스킬을 강화할지를 고르면 됩니다. 스킬을 강화한다고 해서 단순히 데미지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킬에 다양한 속성이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 나온 '다윗의 돌팔매'는 2레벨에선 데미지가 올라가지만 3레벨부턴 맞은 대상의 공격력을 낮추고 도발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4레벨에선 랜덤한 적에게 돌맹이가 튀어 2명까지 공격할 수 있게 되는 식이죠.

스킬 외에 특성(Perk)라고 하는 능력도 20종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이 특성들은 스킬들 처럼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면 그대로 효과가 발휘되는 패시브 스킬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최대 HP를 늘려준다거나 어떤 포션을 먹어도 공격력 상승 효과가 덤으로 따라온다거나 HP가 낮을 때 방어력이 올라가는 등 굉장히 유용한 효과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특성은 스킬과 달리 레벨과는 무관하게 친구의 '수'에 따라 획득됩니다. 친구를 다섯명 사귀면 특성 하나, 그 다음엔 10명, 20명 이런 식으로 획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수를 늘리기 위해선 정해진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는 외에 마을을 탐험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어떤 캐릭터들은 사이드퀘스트를 주고, 이를 완수해야만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아이템들은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 기본적인 성능 외에 방어력을 무시한다거나, 여러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특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각 아이템에 (다른 게임이었다면 보석이나 룬이라고 불렸을) 악세사리를 달아 특수능력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장착한 아이템은 게임 내 캐릭터에게 바로 적용됩니다. 머리엔 속옷 '헬멧'을, 몸에는 발퀴리 아머를, 손에는 게 손을 끼고 캐나다 할버드를 든 모습 그대로 게임 내를 활보합니다.

캐릭터의 성장, 스킬, 특성, 아이템, 사이드퀘스트 등 작대기는 전체적으로 RPG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컨텐츠들을 풍부하게 잘 갖추고 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게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건실한 게임을 잘 만드는 것이 옵시디언의 특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4. 풍부한 퍼즐 / 어드벤쳐 요소

또한 게임 내에 깔려있는 풍부한 퍼즐 요소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투 중이 아닐 때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조작할 수 있는데, 이들은 각기 작은 퍼즐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퍼즐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위 스크린샷은 외계인들이 배치한 워프 기계를 활용해 지나갈 수 없는 길을 지나가는 간단한 퍼즐입니다.

그 외에 공중에 메달려있는 물체를 떨어트려 적을 맞춘다거나, 적이 밟고 서있는 물웅덩이에 전류를 흘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해 전투 없이 적을 물리치는 퍼즐이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적을 쓰러트려도 동일한 경험치를 받을 수 있지요. 이런 퍼즐요소 역시 건실한 RPG를 잘 만드는 옵시디언의 특기가 잘 살아난 부분입니다.


5. 하지만 아쉬운 점들

이렇게까지만 써놓으면 완벽한 게임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전체적인 밸런스 분배는 상당히 아쉽습니다. 저레벨 구간에선 기본 능력이 부실해서 각종 능력과 아이템과 스킬을 쥐어짜내야하는데 경험치는 정말 쥐꼬리만큼 지급됩니다. 그래서 초반엔 레벨을 올리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어느정도 성장하고 아이템을 갖춘 후부터는 전투가 쉬워집니다. 저레벨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지요. 그리고 획득하는 경험치도 갑자기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보통 저레벨 구간에서 빨리 성장하고 고레벨에서 느리게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성장곡선인데, 작대기는 반대로 저레벨 구간에서 느리고 힘들게 성장하는 반면 고레벨 구간에선 매우 쉽고 빠르게 성장하는 괴상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전투는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면 아무런 의미를 잃게 됩니다. 비전투 상황에서 먼저 장거리로 스턴 걸어놓고 전투에 들어간 뒤 캐릭터와 카트만이 각각 전체공격 스킬을 한번씩만 쓰면 대부분의 전투가 그대로 끝나버리거든요. 게임이 쉬워지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의미가 사라집니다. 약공격으로 실드를 해제하는 것도, 강공격으로 아머를 뚫는 것도, 근접 공격이나 장거리 공격에 대한 반격기도, 무기의 특수 능력도 모두 한 턴에 2번의 스킬로 게임이 종료되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린 것이죠. 보스전에선 카트만을 아예 선택할 수 없도록 빼놓는 것을 보면 옵시디언 역시 후반부에서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미 수차례 연기한 바 있고, 옵시디언도 지금 상황이 좋지는 않은지라 그냥 출시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컨텐츠의 볼륨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가 공략을 거의 보지 않고 혼자 멘땅에 헤딩해가면서 엔딩을 볼 때 까지 약 17시간이 걸렸습니다. 공략을 보고 최단루트로 따라간다면 10시간 내외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컨텐츠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고갈된다는 점입니다. 최대 15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데 게임을 3/4 정도 진행한 시점에서 이미 15레벨을 달성해버렸거든요. 그 이후부턴 딱히 게임을 즐긴다기 보다는 최고속도로 남은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역점을 두게 됩니다. $59.99짜리 AAA 게임 치고는 다소 부족한 볼륨입니다.


6. Game of the Year 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Gag of the Year는 확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작대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사우스파크라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RPG로서도 굉장히 충실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이 없다면 정말 GOTY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위와 같은 단점이 있음에도 특유의 사우스파크스러운 감성이 게임을 끝까지 끌고 나갑니다. 100점 만점이 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만 다소 부족한 볼륨에서 5점, 밸런스 조절에서 10점을 삭감해서 전체적으로 85점을 주고 싶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끼긴 애매하지만 충분히 수작이라고 평가할만한 게임이죠. 사우스파크를 평소에 챙겨보던 팬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물론 사우스파크의 유머 코드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by 고금아 2014. 3. 9. 01:36

이전에 이미 FPS에서 탈것이 등장하는 대규모 점령전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GDF :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136

블로그 : http://tophet.tistory.com/86

말미의 요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탈것들이 등장하기 위해선 게임의 무대는 넓고 개방되어있어야 한다.
    • 넓고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전투 밀도는 낮아지고 유저는 전투 보다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 특히 스나이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스나이핑에 의한 죽음은 유저에겐 짜증나는 경험이 된다.
  •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가 문제가 된다.
    • 탈것은 보병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가진다.
    • 탈것을 탈것으로 견제하게 하면 게임의 승패가 소수의 탈것 에이스의 플레이에 좌우된다.
    • 하지만 보병이 탈것을 견제할 수단을 갖지 못하면 보병으로써의 플레이는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해진다.
  • 특히 탈것의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다.
    • 탈것을 타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에이스가 타면 유리하다는 팀 욕구가 충돌할 수 있다.
      • 설령 누가 잘 탄다고 해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 F2P 모델을 염두에 둘 경우, 전체 유료화에도 장애가 된다..
      • 탈것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아이템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 탈것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탈것 자체에 대한 유료화 스킴도 고안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한 사례로는 홈프론트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 거점을 3개로 제한함으로써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게임 밀도 관리.
  • 죽지 않고 킬을 계속 쌓을 경우 상대방에게 해당 플레이어의 위치를 노출시킴으로써 장거리 스나이퍼를 견제.
  • 게임 중 얻는 포인트를 소모해서, 리스폰할 때 탈것을 탄 채로 게임에 투입시켜 소유권 분쟁을 사전에 방지.

그런데 3월 출시를 앞두고 지금 베타 테스트 중인 타이탄 폴이 또다른 방법으로 이 탈것이 등장하는 점령전의 문제를 풀어냈기에 이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1. 타이탄과 보병이 공존하는 레벨 디자인

기본적으로 탈것을 위한 레벨과 보병을 위한 레벨은 서로 상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탈것은 당연히 보병들보다 크기가 크고 이동 속도가 빠릅니다. 따라서 넓고 개방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특히 전투기 등과 같이 빠른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은 필연적으로 공간이 넓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개방된 공간에서의 보병전은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적이 작은 점으로 표현되고, 장거리에서 은폐/엄폐한 상태에서 작은 점에 대고 딱콩 딱콩 총알을 쏘아대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술이 되지요. SMG나 샷건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장거리에서의 저격이 가장 유리한 전략이 됩니다. 적을 찾아 드넓은 맵을 이동하다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저격병의 총알을 맞고 죽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지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이는 거대한 이족보행이 등장하는 이상, 기본적으로는 크고 개방된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실내공간을 다수 배치해 보병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자아도취 코더들은 보병의 마지막 방어수단인 건물들을 부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병을 탈것들의 사냥감으로 전락시켰습니다만, 타이탄 폴에서 보병들은 건물을 방패 삼아 타이탄의 공격을 피하고, 때로는 이 건물들로부터 타이탄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점령전에서 점령해야 할 거점들은 대부분 타이탄을 탄 채가 아닌, 보병으로만 점령할 수 있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쪽 팀의 타이탄 전력이 압도적이라고 할지라도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보병들이 실내전에서 활약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타이탄에서 내려서 거점을 점령하는 등의 플레이도 필요해지지요. 하지만 이 거점이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는 외부에 노출되어있는 개방 공간입니다. 아무리 실내전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야외의 타이탄 전력에 밀리게 되면 중요한 건물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지죠.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에서 탈것과 보병의 밸런스는 상당히 애매한 지점입니다. 탈것이 보병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면 보병은 탈것의 먹이로 전락해서 보병 플레이의 재미가 떨어지고, 탈것이 약해지면 탈것의 의미가 희석되는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타이탄폴은 탈것의 공간과 보병의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합니다. 실외는 타이탄들끼리 전체 전장의 주도권을 놓고 전투를 벌이게 하고 실내에선 보병들끼리 승부를 보는 이중구성 덕분에 어느 쪽을 플레이해도 무력하게 학살당하기 보다는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2. 보병과 타이탄의 밸런스

일반적으로 탱크나 타이탄과 같이 장갑이 두꺼운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에선 이런 장갑을 뚫고 공격할 수 있는 클래스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대인전투력을 희생당하지요. 이런 구성은 이론적으로는 제법 괜찮습니다. 완전한 대인전투력을 갖는 대신 탈것엔 속수 무책으로 당할 것인가, 혹은 대인전투력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탈것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라도 할 것인가는 흥미로운 선택이지요. 하지만 유저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실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대인 전투력에 몰빵해서 탈것에게 죽든, 로켓을 든 댓가로 보병에 죽든 어쨌든 죽는 것은 동일하지요. 그리고 설령 로켓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게 탈것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정도이지 탈것을 한방에 압도할 수 있을만큼 강력하지도 않구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아예 기본 구성에 포함시켜버립니다. 주무기, 보조무기(권총) 외에 대타이탄 무기 1종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지요. 기본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병으로 타이탄을 만난다고 해도 엄폐해서 반격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타이탄의 실드와 장갑이 두껍기 때문에 한방에 큰 타격을 입힐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한꺼번에 공격할 경우엔 타이탄의 공격 만큼이나 의미있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보병이 조금 더 모험을 즐긴다면, 상대 타이탄에 올라타는 로데오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점프해서 메달리든,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든 일단 로데오에 들어가면 보병은 타이탄의 코어를 직접 공격할 수 있지요. 이 로데오 어택은 실드를 무시하면서 장갑에도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사실 타이탄의 공격보다도 더 위협적입니다. 특히 타이탄으로써는 올라탄 보병을 공격할 방법도 없지요. (전기 구름을 생성시켜 데미지를 줄 수도 있는데, 이 장비를 설치하면 전방에서의 공격을 막아내는 추가 실드를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위험합니다. 보병은 타이탄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타이탄의 주먹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적 타이탄이나 적 보병에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확실히 잡는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써는 시도해볼만한 도박이죠. 병과 개편 전의 배틀필드 온라인에서도 약점을 노려도 최소 2~3방을 맞춰야하는 대전차병 보다는 위험하긴 해도 C4를 붙여 한방에 탱크를 날리는 특수병이 더 인기있곤 했지요.

일반적으로 보병이 탈것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숨지 않으면 바로 죽고, (숨어도 벽을 날리기도 하지요) 숨어도 마땅히 반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병이 타이탄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유쾌합니다. 일단 적 타이탄의 위치는 미니맵 상에 공유되기 때문에 피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숨을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반격을 가할 수도 있고, 역으로 그 타이탄을 일격에 제압하는 도박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도 타이탄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3. 보병은 이동조차 재미있다.

위와 같이 보병과 탈것 간의 밸런스를 맞춘다고 해도 여전히 레벨의 문제는 남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간이 넓어지게 되면 병력은 분산되기 마련이고 보병은 전투보다는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열심히 뛰다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총에 맞아 죽는 마라톤 게임인 배틀필드가 되겠죠. 그리고 복잡한 실내 공간은 보병을 탈것으로부터 보호해줄 순 있지만 반대로 보병들이 길을 찾아 이동하는데 장애가 되곤 합니다. 특히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은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숙지하기 상당히 힘든데, 이는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의 멀티플레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타이탄폴은 보병들의 이동력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스프린트시 보병의 이동속도는 타 게임에 비해 상당히 빠릅니다. 그래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2층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점프가 높은데 점프 중에 2단 점프로 또한번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높이가 모자라면 모서리를 잡고 기어오를 수도 있지요. 덕분에 플레이어는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밀리터리 FPS에서 높은 곳에 있는 적을 뒷치기로 제압하려면 입구를 찾아 헤메야 하지만 타이탄폴에선 그냥 뛰어오르면 되지요. 그래서 건물은 복잡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상당히 재미난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벽타기 등의 파쿠르를 집어넣어서 이동 자체의 재미를 높였습니다. 지루한 마라톤에서 신나는 탐험이 되는 거지요. 처음엔 이렇게 점프하고 파쿨르 하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마우스 키보드를 사용하는 PC라면 몰라도 게임패드로 조작하는 콘솔에선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파쿠르를 하는 외부 공간은 타이탄들의 것이고, 실내는 좁기 때문에 파쿠르로 이동할 수가 없거든요. 상당히 절묘한 밸런스지요.


4. 봇을 통해 전투 밀도를 관리.

한편,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투 밀도 문제는 미니언이라고 불리는 봇을 투입함으로써 해결합니다. 설령 플레이어들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구석구석 배치되고 스폰되는 미니언들을 잡으면서 이동 중에도 짧게 짧게 전투를 할 수 있지요. 덕분에 넓은 공간에 12명의 플레이어만 있어도 게임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준 능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들도 미니언을 잡아서 팀에 기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5. 타이탄의 대중화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장에 타이탄을 배치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배틀필드는 '퀘드 데미지'나 '슈퍼 아머'등과 같이 하이퍼 FPS에서 맵 상에 등장하는 보너스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맵 상에 탈것들은 그냥 존재하고, 아무나 이 탈것들을 잡아 타면 되는 방식이었죠. 이 구조는 탈것들이 거점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한번 거점을 잃으면 탈것의 보유량에서도 밀리고, 이 탈것들로 인해 다시 거점을 잃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또한 탈것을 타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승리하고자 하는 팀의 욕구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전투는 안하고 헬기가 스폰되는 장소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거나 내가 더 잘타니 나에게 양보하라고 말다툼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요.

반면 홈프론트는 게임 중 얻은 포인트를 소모해 사용하는 아이템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탈것의 스폰이 거점과는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거점 상황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지 않고, 자신의 포인트를 소모해서 직접 탄 채로 스폰하기 때문에 소유권 문제도 없습니다. 탈것 타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문제도 없지요. 하지만 잘 하지 못해도 포인트가 쌓인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포인트를 얻고 탈것을 더 자주 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피할 수는 없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각 팀이 사용할 수 있는 탈것의 갯수가 종류별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포인트가 있는데도 원하는 탈것을 탈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배틀필드 보다는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밸런스와 플레이어들의 욕구를 해결해냈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타이탄폴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4분에 한번씩 타이탄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미니언을 죽이거나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면 이 쿨타임이 조금씩 단축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플레이어는 타이탄을 좀 더 빨리 자주 탈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아무리 못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도 4분에 한번씩은 타이탄을 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타이탄은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사망 후 타이탄을 탄 채로 스폰할 수도 있지만, 필드 상에 소환(사실은 공중투하)해도 그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남의 타이탄의 어깨에 올라탈 수는 있어도 타이탄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이탄의 주인 뿐입니다. 설령 필드에 타이탄을 소환해놓고 그걸 타기 전에 죽으면 타이탄은 소환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스폰할 때 타고 나올 수 있고 스폰 후에 소환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탈것이 등장하는 FPS라고 해도 탈것이 그렇게까지 많이 투입되지는 않습니다. 배틀필드 온라인은 탈것을 많이 배치하면 플레이어들이 탈것을 더 많이 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는 탈것에 무력하게 당하는 불쾌한 경험만이 양산되었죠. 그렇다고 누구나 탈 수 있을 만큼 탈것을 늘리면 이젠 보병 플레이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당히 난감한 문제죠. 하지만 타이탄폴은 이미 타이탄과 보병의 밸런스를 맞춰놓았기 때문에 필드상에 타이탄이 많이 뿌려지더라도 보병의 플레이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타이탄들이 많이 깔려있기 때문에 야외에선 타이탄들의 대규모 교전이 발생하지요.

잘하는 사람에게 보너스를 주지만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만큼은 아니고, 잘하지 못해도 타이탄을 타는 경험을 제공해주며, 타이탄이 많이 깔려도 보병에게 절망적인 경험을 주지 않고, 타이탄 끼리의 교전을 유도해 보병전과는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6. 탈것이 등장하는 FPS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든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자들이 독립한 회사인 만큼, 사실 타이탄폴의 재미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족 보행 병기인 타이탄이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FPS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긴 합니다만, 막상 게임으로 만들고 보면 레벨 부터 시작해서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 등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 많거든요. 물론 플래닛사이드2처럼 탈것을 보병과 같은 게임자원 중 하나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는 캐주얼한 유저들에겐 상당히 어려울 수 있지요. 그렇다고 스웨덴산 똥덩어리처럼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도 홈프론트에서 조금 발전된 형태 정도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맵이 커져서 이동이 지루해진다면 이동을 재미있게 만들고, 소수의 에이스들만 탈것들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냥 모두에게 타이탄을 뿌립니다. 보병이 탈것을 만났을 때의 절망이 문제라면 희망을 주고 보병의 플레이가 의미없는 것이 문제라면 보병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작은 변화들이지만 큰틀에서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게임플레이의 깊이와 캐주얼함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는 겁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다른 FPS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시 플레이는 직관적이고 유쾌합니다. 과연 현대 혹은 근미래를 무대로 한 게임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타이탄폴은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 디자인에 있어 하나의 거대한 획을 긋는데 성공했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18. 02:20

'인앱 구매가 어떻게 게임 산업을 망치는가' 에 대한 반론을 게제했습니다만, 원문을 번역 공유하셨던 윤지만님이 이에 대한 재반론을 기고하셨기에 저 역시 재반론합니다.


또한 고품격 게임 기획 포럼인 GDF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여러 의견을 주셨으니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스팔트 7에서 게임의 모든 요소를 언락하는데는 3,500달러가 필요하지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3,500달러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것을 프리미엄으로 제공할지 결정하는 개발사들이 점차 아스팔트7, 혹은 던전 키퍼와 같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특정 개발사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 산업 전반이 그러한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비해 지금이 그러하듯, 앞으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의 기준이 올라가 버리게 된다. 지금은 던전 키퍼 과금 정책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던전 키퍼의 과금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것은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저하시키고, 산업 전체에 해가 된다. 이런 얘기도 있다.

첫째, 언락 컨텐츠를 심어놓고 과금을 유도하는 모델과 던전 키퍼처럼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약하는 모델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둘째, 개발사들이 모델을 가혹하게 가져가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지요. 재미가 있다면 돈을 쓰면서 하는 것이고, 재미가 없다면 공짜로도 안하는 것이 게임이지요. 던전키퍼는 그 멍청한 과금모델 덕분에 탑 페이지 버프를 받고서도 매출 순위 164위입니다. 과연 이 모양을 보고도 다른 회사들이 계속 저런 모델을 유지하고, 모든 게임이 그런 모델을 유지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짜증을 내면서도 그에 적응하게 될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티켓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당장 감옥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고 영화관엔 무료입장, 영화가 시작하고 5분 후 1차 과금, 클라이막스에서 2차 과금, 엔딩을 보려면 3차 과금을 하자. 영화 전부를 다 보려면 3,500달러가 들지만, 영화를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건 관람객의 몫이니 괜찮다.[1]

'공짜'라고 해놓고 인 앱 결제를 유도하는 것은 '사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뚜껑을 까보지도 못하고 지불부터 유도하는 기존의 리테일 구조에 비해 플레이어에게 더 유리한 구조일 수 있다는 논조로 '리테일이야말로 사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토막으로 다뤄지는 군요. 일차적으로는 제 필력이 부족한 탓이겠습니다만, 전체 맥락에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자는 데모나 트레일러, 리뷰가 있다는 반박을 하시는데 리뷰는 타인에 의한 간접 경험이고 트레일러와 데모는 실제 컨텐츠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광고이지만 이미 공급자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경험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영화 한편에 3천 5백불짜리 F2P 모델에 대해선 제가 꾸준히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저런 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공급자의 자유이지만, 실제 지불하고 보는 것 또한 관람객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즉, 시장이 판단할 문제라는 거지요.  

거듭 강조합니다만 게임을 포함한 문화컨텐츠는 자유경쟁시장에서의 기호상품입니다. 어떤 악독한 수익모델을 채용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던전키퍼 모바일 처럼요.


요지는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는 게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앱 구매 덕분에 게임 산업이 커졌다고 말하는 것은 Thomas Baekdal 글의 포인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다. Thomas Baekdal은 인앱 구매가 게임성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래도 수익이 늘어났다고 반박하는건 제대로 된 반박이 아니다[2].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는 게임이 많든 적든, 어쨌든 소비자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돈을 쓸 겁니다. 시장은 그에 따라 움직이겠죠. 그러니 특정 게임이 괜찮은 컨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수익 모델 때문에 망가진 것을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F2P가 전체 게임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시장이 응징한다'라고만 쓰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그랬나봅니다.

그리고 "수익"(사실 전 정확하게는 "시장"을 언급했습니다)으로 반박하는 이유는, F2P가 게임의 재미를 해친다는 주장은 실제로 그래서 게임의 재미가 얼마나 해쳐졌는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재미있는 게임에 대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할 때, 시장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재미를 느꼈다는 것을 방증할 수 있겠죠. 시간 뿐만 아니라 돈까지 펑펑펑 쓸만큼 말입니다.


-추신-

기왕 반론을 하실 거였으면 제게 트위터 멘션이든 댓글이든 남겨주셨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원문에서 트랙백, 코멘트 모두 막혀있는 관계로 트위터로 멘션 드리겠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4. 14:58

고품격 게임 기획 포럼인 GDF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여러 의견을 주셨으니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트위터에서 '인앱 구매가 어떻게 게임 산업을 망치는가'라는 번역문을 발견했습니다. 저자는 '무료 다운로드 + 인앱 구매'라는 구조는 사실상 게임이 아닌 사기이며, 개발자들은 이 끔찍한 모델을 거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바일 게임을 이제 더 이상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는 포인트까지 와버렸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당신이 재미를 쫓는다는 얘기와 같다. 게임을 한다는건 자리에 앉아 게임이 당신을 짜증나게 하길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결국엔 신용카드로 게임 진행 속도를 올려버리는걸 뜻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처럼 1990년대, 게임의 영광스러운 나날들을 기억하는 나이든 괴짜들에게 그건 봐주길 힘들 정도다.

그건 사기다. 그것도 삶에 남은거라곤 이기적인 탐욕밖에 없는 정신병자가 치는 사기다. 그들은 사기꾼으로 감옥에 들어가야하고, 앱 스토어에서 Editor’s Choice로 각광받아선 안된다.

이건 무도한 일이다.

당신과 나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 이건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이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내가 글을 시작할때 말했다시피, 나는 이 글을 긍정적인 말과 건설적인 해결책으로 끝내고 싶다. 하지만 여기에 해결책은 없다. 이걸 멈추는 방법 말고는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당신,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에게 나는 단순히 이렇게 요구하고 싶다. 가까운 욕실에 가서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봐라. 거울에 비친 모습이 좋은가? 그 모습이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기억되길 원하는 모습인가? Bullfrog처럼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는 진짜 게임을 만들었기에 모든이들이 사랑한 게임 개발자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가?

물론 원문에서 예시로 든 던전키퍼 모바일의 유료화 모델은 끔찍합니다. 한 블럭을 파내기 위해 4시간 24시간이라뇨. 아마도 F2P 게임 역사상 최악의 병크 중 하나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병크 하나만을 놓고 인앱구매 모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건 마치 음주 운전 사고를 보고 대한민국에서 술과 자동차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것과 같은 레벨이지요.

저자는 무려 짧은 만화까지 그렸습니다. 뉴욕까지 가야하는 한 아가씨가 있는데, 택시 기사가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아가씨가 타자 택시 기사는 5분 뒤에 차를 세우고 24시간 동안 기다릴 거라고 하지요. 만일 지금 출발하고 싶다면 돈을 내라고 합니다. 아가씨는 짜증을 내고 차에서 내립니다. 이 만화를 통해 저자는 인앱 결제가 이런 사기와 같다고 비판합니다만, 사실 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그려놓고도 놓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리면 된다는 거지요.

실제로 사용자가 결제를 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단 한푼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약간의 네트워크 비용과 시간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이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할지, 그리고 그를 위해 지불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던전키퍼와 같이 과금 모델이 전체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나쁘다고 하더라도, 지불을 해서라도 즐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지불하고 계속 진행하는 겁니다. 혹은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금 모델이 지나치게 가혹한데 그 재미가 비용을 정당화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그냥 게임을 관두면 그만이죠. 아니면 돈을 내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거나요.

업데이트: 나는 진짜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 짧은 웹툰을 만들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게 아니다. 문제는 게임 개발자들이 우리가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약속한게 거짓말이라는데 있다. 기다리는 것은 게임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는 '기다림'에 기반한 유료화 모델을 거짓말이고 사기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기다림'이야말로 현재까지는 가장 공정한 모델입니다. 돈을 내고 스테이지를 스킵하거나, 킹왕짱 아이템을 갖거나, 점수가 더블 트리플이 되어서 순위표 꼭대기에 올릴 수 있는 아이템들에 비해 게임플레이나 밸런스에 끼치는 악영향이 없거나 현저히 떨어지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 이상으로 플레이하고자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과금합니다. 기본 플레이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돈을 낼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성립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에서 기본 플레이를 제한합니다.

기본 게임이 재미있어야 함은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기본 플레이를 어느정도로 제공하고 어떤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전적으로 개발사가 결정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지불하면서 플레이할지, 지불하지 않고 플레이할지, 그냥 플레이하지 않을지는 플레이어의 몫이죠. 수요-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유저 풀과 매출액이 결정됩니다.

던전키퍼처럼 터무니없이 기본 플레이를 강제한다면 수요층이 줄어들고 매출액도 함께 줄 것입니다. 또는 LOL처럼 기본 플레이를 너무 후하게 제공해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떨어진다면 매출 효율이 떨어질테죠. 던전키퍼 모바일은 병크가 맞지만 이는 시장에서 알아서 응징해줍니다. 실제로 던전키퍼 모바일은 2014년 2월 4일 오전 6시 북미 앱스토어 기준으로 매출액 164위에 올라와있네요. IP + 탑 페이지 노출을 생각하면 참 안쓰러운 성적이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여전히 (인앱 구매 쓰레기 없이) 진짜 게임을 만드는 몇 안되는 개발자 중 하나라면,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다.

Oceanhorn, Minecraft, XCOM, 그리고 여타 다른 게임들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빛이 난다. 그리고 당신이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에,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

저자는 위와 같이 인앱 구매가 없는 리테일 게임[각주:1]의 개발자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저는 인앱 구매보다는 리테일 게임이야말로 진정한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F2P 모델은 최소한 유저가 플레이를 어느정도 해본 뒤에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돈을 낼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따져본 뒤에 결제하죠. 하지만 리테일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해보지도 않은 게임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해야합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죠. 막상 구매했는데 듀크 뉴켐 포에버처럼 재미가 아주 똥망이라거나, 전설의 빅 릭스 처럼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버그투성이라도 환불은 없습니다. 아직 한푼도 쓰지 않은 상태가 사기라면 이렇게 이미 $60을 지불한 뒤의 좌절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할까요? 저자는 90년대를 '영광스러운 나날'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사실 그 영광스러운 나날에도 똥같은 게임은 숱하게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돈 내고 이 똥들을 산 뒤에 좌절했습니다. 다만 기억에서 잊혀졌을 뿐이죠.

어찌보면 모든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리테일 게임의 세계에서 게임은 뷔페입니다. 이미 비용을 선불로 지불했으니 당연히 모든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어야죠. 무료 게임은 무료 뷔페 입장권이고 따라서 당연히 돈은 지불하지 않았지만 모든 컨텐츠는 무료로 무제한으로 즐길 것을 기대합니다. 이 관점에선 원문에서 인용한, 모든 자동차를 언락하기 위해선 $3,500을 지불해야한다는 사례는 당연히 분노해야할 사안이죠. 뷔페 입장만 무료일 뿐, 안의 메뉴들은 추가 요금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F2P의 세계에서 게임은 서비스입니다. 한마디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공원인거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 자유이용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선 돈을 내야죠. 아무도 $3,500을 내고 모든 자동차를 언락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일 뿐이죠. 물론 그렇다고 정말 돈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면 사람들은 이 공원을 찾지 않을테고 결국 파산할 겁니다. 그러니 퍼레이드도 하고 화단도 가꾸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 앱 결제가 게임 산업을 망친다는 것은 부분유료화 모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해입니다. 실제로 부분유료화 모델은 아시아의 게임 시장과 전세계적인 모바일 게임 시장을 이전보다 수백배 수천배로 키워줬지요.

  1.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일단 임의로 리테일 게임이라고 칭합니다. 한번 구매 후 추가 과금 없이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4. 2. 4.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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