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부분 유료화 무엇을 팔아야 하나'의 글타래 중 가차폰과 사행성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죠.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5&t=83#p330

관련해서 몇가지를 정리해볼까 합니다.

먼 저 가차폰이라는 용어의 정의부터 하고 시작하도록 하죠. 우리가 보통 랜덤 아이템, 랜덤 박스, 가차폰, 캡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르는 이 아이템들은 다른 유로 아이템들과 달리 구매자가 얻게 될 아이템을 정확히 알 수 없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선 가차폰이라고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SD 건담 캡슐 파이터(이하 건담캡파)의 캡슐, 퍼즈도라의 레어에그, 확산성 밀리언 아서의 뽑기, AVA의 캡슐상점 등이 이에 해당할 겁니다.

일반적으로 가차폰은 사행성 아이템으로 인지되고 있습니다만, 대한민국의 게임 심의 제도는 사행성을 극도로 배제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의 심의제도 부터가 제2의 '바다이야기'를 막는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고 사행성 요소가 존재한다는 이유로 싱글플레이어 RPG 게임인 '니노쿠니'가 18금으로 분류되기도 했지요.

관련기사 : PS3 기대작 ‘니노쿠니’ 왜 18세 게임 됐나?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11014144201

니 노쿠니를 사놓기만 하고 아직 플레이해보진 않았기 때문에 이 게임의 사행성이 어느정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유저들은 터무니 없다고는 합니다만. 하지만 가차폰이 들어있는 모든 게임이 18금인 것은 아닙니다. 당장 컨셉부터 가차폰을 밀고 있는 건담캡파부터 전체이용가죠.

이전에 가차폰 아이템 도입과 관련해서 사업부 측과 회의를 했는데,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랜덤 요소만 존재한다고 해서 무조건 사행성이라고 볼 수 없다.
    개봉시 아무것도 얻을 수 없거나, 기대이익이 지출보다 적을 경우 사행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물론 현금 또는 현금과 유사한 통화를 지급하는 것은 사행성)
    가차 폰을 개봉해서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다른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기대이익이 지불액보다 크다. 따라서 가차폰은 복주머니로 봐야 한다.

이전에 아사쿠사게임즈 사업개발부 김상하 부장님도 가챠 아이템에 대해 복주머니로 설명한 적이 있습니다.

“카드배틀의 과금은 가챠에서 시작된다”
http://www.thisisgame.com/board/view.php?category=102&id=1441056

조 금 더 이해하기 쉽게 확밀아의 사례를 들겠습니다. 확밀아의 경우 게임 플레이로 얻을 수 있는 카드는 1성 ~ 5성입니다. 하지만 카드 뽑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카드는 3성 ~ 6성입니다. 6성 카드는 뽑기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데다 매달 새로 추가되는 6성 카드는 그 달에 한해 원래 스펙보다 몇배나 높은 성능을 보이기 때문에 보통 6성을 노리고 뽑기 쿠폰을 구매합니다. 그래서 6성이 나오면 대성공, 5성만 나와도 성공이라 인식하죠.

유저들이 실제로 원한 것은 5성이나 6성이었기 때문에 유저들에게 3성이나 4성은 '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도박이 아니라 복주머니라는 설명입니다. 뭐 사실 카드 배틀 가차든 건담캡파나 아바의 캡슐이든, 기본적으로 해당 가차에서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을 앞에 내걸어놓고 그게 아니라도 꽝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것 같긴 합니다만, 어쨌든 가차 아이템의 기본 구조는 저렇습니다.

그렇다면 사용자는 가차 아이템을 왜 구매하는가? 복주머니 이론에선 지출하는 금액보다 실제로 얻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만, 사실은 일부 컨텐츠가 가차의 보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일 겁니다. 확밀아의 6성처럼요. 혹은 가차를 통하지 않고는 도저히 얻을 수 없을 정도의 돈이나 시간을 요구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요.

플레이어가 이런 가차 아이템을 구매하기 위해선 먼저 어떤 아이템을 얻고 싶다는 욕망과, 그 아이템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가차가 합리적이라는 판단, 이 두가지 요소가 필요합니다. 뭐 사실은 앞서 언급한 것 처럼 가차의 최대 보상은 가차 외의 수단으로는 이론상으로든 실질적으로는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욕망이 먼저 작용하겠지만요.

그런데 반대로 욕망이 아닌 합리적인 판단을 기반으로 가차를 판매하는 사례가 있어 소개할까 합니다. 요즘 제가 버닝하고 있는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이하 마아블로)입니다.

우 선 이 게임에서 유료로 판매하고 있는 상품은 기본적으로 히어로 캐릭터($6~$20), 캐릭터용 코스튬($12 언저리), 경험치 부스터($1), 레어 아이템 확률 부스터($1), 스킬 초기화 아이템($3), 카드(가차폰)($1)이 있습니다. 위 여섯가지 아이템은 모두 게임 플레이를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주력 상품이라 할 수 있는 캐릭터와 코스튬도 굉장히 낮은 확률이지만 루팅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죠. 또한 코스튬의 경우, 캐쉬아이템으로도 제공되지 않아 루팅을 해야 하는 종류의 아이템도 있습니다.

가 차 카드의 내용물은 가차 보상으로만 제공되는 코스튬, 펫($12), 캐릭터 치장 아티펙트 (랜덤하게 루팅할 수 있으며 코스튬에 합성해서 화염, 오오라 같은 효과를 만듭니다. 스탯을 올려주진 않습니다.), 스킬 초기화 아이템, 귀속 해제 아이템(게임 내 크래프팅으로 제작 가능), 경험치 부스터(판매용과 동일), 레어 아이템 확률 부스터(판매용과 동일), 경험치 슈퍼 부스터, 레어 아이템 슈퍼 부스터가 있습니다. '꽝'에 해당하는 것들이 마지막의 부스터 4종일 겁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슈퍼 부스터인데, 이 부스터들은 30분동안 경험치나 레어 아이템 획득 확률을 100% 올려줍니다. 2개를 중첩하면 1시간동안 100%의 버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판매용 부스터들은 1시간동안 50%가 기본이지만 2개를 먹는다고 2시간동안 50%를 받거나 1시간동안 100%를 받지 않습니다. 2개를 마시면 75%, 3개는 88%, 4개는 95%, 5개에 100%가 됩니다. 즉 1시간 동안 100%를 받기 위해선 $5를 소비해야 하고, 30분동안 100%를 받는데 드는 비용은 $2.5라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카드 보상에서 '꽝'은 1시간동안 50%의 버프를 주는 포션일텐데 당장 이 포션 가격과 카드 가격이 동일합니다. 그리고 이 꽝과 비슷한 확률로 등장하는 보상이 $2.5의 가치를 지닌 슈퍼 부스터 들이죠. 정확한 확률 테이블은 없습니다만 대충 이 둘을 합친 비중이 70%는 되는 것 같습니다. 다른 가차 아이템의 경우 어차피 내가 갖고 싶은 보상은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조차도, 부스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차폰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이 됩니다. 특히 이 슈퍼 부스트는 포션과 달리 카드를 개봉하는 즉시 적용받으므로 30분 이상 플레이 할 생각이 있을 때 카드를 사서 개봉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전략이 됩니다. 포션이나 슈퍼 부스트 외의 아이템이 나온다면? 그건 더 좋은 것이죠.

어 디선가 쇼핑 관련 심리학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사람은 쇼핑을 일종의 게임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라도 할지라도 '싸게 샀다', 즉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세일이나 '1+1'에 반응한다는 것이었죠. 이전에 확밀아 성공 비결을 이야기 할 때(http://tophet.tistory.com/61) 에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죠. 홍차를 빠는 것이 더 저렴하고 합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과금에 대한 저항을 누그러뜨리는데 일조했다구요. 이런 합리성을 자극하는 것은 한정판매 매진임박 등의 자극은 충동 그 자체를 자극하는 것과는 다른 메카니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업계의 최첨단을 달리는 홈쇼핑은 둘 다 동시에 사용합니다만.

그리고 사실 1시간 이상을 플레이할 생각을 한다면 안전하게 포션을 뽑는 것도 합리적인 선택이 되지요. 가차폰 카드는 원하는 슈퍼 부스트를 얻지 못할 확률이 존재하니까요. 캐릭터와 코스튬 역시 확률을 생각하면 그냥 구매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즉 모든 구매가 합리적인 구매로 포장될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반면 돈을 쓰지 않고 몸으로 떼우는 건 다소 불합리해보입니다. 특히 한 때 휴식 경험치가 계속해서 적용되는 버그가 있었는데, 이때 부스트 효과를 체감해본 뒤로는 더욱 그렇게 느껴집니다. (헐크로 정상 플레이 했을 때 23레벨에서 닥터 둠을 잡고 시나리오를 클리어했습니다만, 버그 당시엔 데드풀로 60% 가량 진행했을 때 이미 23레벨이었습니다.)

클 베 할 때만 하더라도 캐릭터도 코스튬도 드롭이 되는 것을 보고 또 북미의 로맨티스트들이 순진한 부분 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줄 알았습니다. LOL 처럼요. 하지만 뚜껑을 까고 보니 이건 정말 그동안 부분 유료화의 최첨단을 자부했던 국내 게임계 보다 더 정교하게 접근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월탱과 마찬가지루요. 해외 MMORPG로는 드물게 처음부터 부분유료화를 기준으로 디자인 된 게임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과연 디아블로2 스텝들이 무섭긴 무섭네요..


by 고금아 2013. 6. 10.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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