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넘도록 -중 수집형 RPG의 캐릭터 판매를 둘러싼 BM과 게임 디자인 비교의 2부를 쓰고 있는 중입니다만, 최근 상당히 흥미로운 소재가 있어 먼저 짧게 소개드립니다.


일전에 소개해드렸던 영원한 7일의 도시에 새로 추가된 만신전이라는 컨텐츠입니다.


만신전은 위 그림에서 보듯 정사각형의 방들로 구성된 던전을 탐험하는 컨텐츠입니다. 보스가 위치한 방의 위치는 표시가 되지만, 해당 방으로 가는 경로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새로운 방을 계속 열어가면서 경로를 찾아야 하죠. 백문이 불여일견, 실제로 어떻게 동작하는지는 아래 영상을 봐주세요.



이 만신전의 던전은 도전할 때 마다 랜덤하게 재구성됩니다. 흔히 말하는 절차적으로 생성된 컨텐츠이죠. 흥미로운 점은 절차적으로 생성되는 컨텐츠임에도 정작 컨텐츠의 다양성은 크지 않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적이라는 점입니다. 랜덤하게 생성되는 던전이라고는 했지만 방들의 연결이 랜덤일 뿐, 플레이어가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방은 딱 4가지 종류 밖에 없습니다. 그나마도 보스 방과 중간 보스 방을 제외하고 나면 플레이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던전은 딱 두종류의 방으로만 구성되어있습니다..


첫번째는 다수의 잡몹이 여럿 스폰되어 플레이어를 포위해오는 패턴입니다. 이 몹들은 HP가 낮기 때문에 광역 궁극기 1~2방에 정리되지만, 공격력이 높고 포위해오는 속도가 매우 빠릅니다. 넋놓고 있다간 1~2초 내에 플레이어의 영웅이 녹아내리죠. 그 짧은 순간에 집중력을 발휘해 공격 당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많은 적을 광역기 범위 안으로 끌어들여 최적의 타이밍에 궁극기를 쓰는 것이 이 방을 클리어하는 핵심 플레이입니다.


두번째는 중형몹 2마리가 등장하는 맵입니다. 이 중형 몹들은 맷집이 강해서 궁극기 1~2방으론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순간의 폭발적인 딜 보다는 어그로를 끌고 CC기를 써면서 궁극기 쿨타임이 도는 동안을 버티는 것이 핵심 플레이가 됩니다. 공격과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에 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굉장히 아프게 때리기 때문에 맞지 않기 위해선 계속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방의 종류는 2가지 뿐이라지만, 두가지 방이 서로 굉장히 다른 구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새로운 방에 진입할 때 마다 긴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던전 내에서 가장 결정적인 변수는 중간보스 입니다. 맷집도 쎈데 공격이 굉장히 강하고 빠릅니다. 아까 플레이 영상만 보더라도 순식간에 플레이어 캐릭터 하나를 녹여버렸죠. 다양한 중간보스들이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강합니다. 영웅들이 보스로 등장하는 보스 방 보다 이 중간 보스 방이 더 어렵습니다. 


게임에 영향을 끼치는 또하나의 중요 변수는 캐릭터 교체 에너지입니다. 조작할 캐릭터를 교체하면 파티 전체의  HP가 일정량 회복되고, 새로 조작하게 될 캐릭터의 궁극기 쿨타임이 초기화 됩니다. 체력 회복이 힘들고[각주:1] 강한 적들을 궁극기로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남은 HP와 궁극기 쿨타임을 감안해 적절한 타이밍에 캐릭터를 교체하는 것이 만신전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교체할 때엔 에너지가 소비되고 이 에너지는 최대 3칸인데 각 방을 클리어할 때에만 1개 주어지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잘 활용해야 하죠.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각 방을 교체 1번으로, 풀HP 상태에서 클리어해서 다음 방도 풀HP + 교체 에너지 3칸으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보스는 굉장히 강력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선 HP와 교체 에너지가 어느정도 빈 상태로 클리어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불리한 상태로 보스전에 진입하고 싶지 않다면 나머지 일반방 짤짤이에 도전해야 합니다. 교체 없이 클리어 해서 교체 에너지를 채우거나, 데미지를 입지 않은 채로 교체해서 HP 회복을 노리는 것이죠.

이 단계에서 앞서 언급한 2가지 방 중 어느 방이 걸리는지가 큰 의미를 갖습니다. 잡몹이 나오는 방은 몹들의 HP가 낮기 때문에 2 캐릭터의 궁극기를 1번씩만 쓰는 것으로 피해 없이 클리어 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중형 몹들이 나오는 스테이지는 전투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짤짤이가 힘듭니다. 이전 단계에서도 비교적 클리어가 쉬운 잡몹 스테이지를 바라지만, 이 짤짤이 단계에선 더더욱 잡몹 스테이지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흔히들 컨텐츠를 절차적으로 생성하는 게임들은 그 랜덤한 조합에 의해 발생하는 다양성이 강조됩니다만, 만신전은 그러한 다양성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던전이 랜덤하게 구성된다고는 하지만 플레이는 방 단위로 단절되어있기 때문에 방들의 배치가 바뀌는 것은 게임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플레이하는 방들이 다양한 것도 아닙니다. 잡몹 방과 중몹 방 딱 두가지 뿐이죠. 텍스트로만 구성되었던 원조 로그라이크 게임들도 이렇게 단순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에 들어갈 때의 긴장감은 다른 게임들 못지 않습니다. 절차적 생성이 주는 결과물의 다양함이나 조합의 유니크함은 예측할 수 없는 도전을 만드는 수단일 뿐, 그 본질은 아니라는 점을 굉장히 잘 캐치해냈고 훌륭하게 활용해냈습니다. 굉장히 적은 리소스를 가지고 말이죠.


  1. 스테이지에선 체력 회복 포션이 거의 드랍되지 않고, 힐러가 있어도 AI가 담당하고 있을 땐 전투 중에만 힐링 스킬을 씁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8. 2. 23. 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