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걱정 반 기대 반의 옵시디언 작

사우스파크 진실의 작대기(이하 작대기)의 제작사인 옵시디언은 참으로 재미난 회사입니다. 확장팩까지 포함할 때, 전신인 블랙아일부터 따지면 14개, 옵시디언으로는 총 7개의 게임을 출시했지만 그 중 단 한작품 - 알파 프로토콜 - 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른 게임의 속편이거나, 다른 게임의 엔진을 빌려다 만든 게임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속편들이 대부분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블랙아일 시절의 폴아웃2,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아이스윈드데일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옵시디언이 만든 구공화국의 기사단2, 네버윈터나이트 2, 폴아웃 뉴 베가스 등 쇼킹했던 전작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성공한 작품입니다. 혁신적인 RPG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RPG를 만드는데엔 일가견이 있는 제작사임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능력이 남의 게임 받아다가 만들 때에만 발휘된다는 것이겠지요. 3대 JB 스파이(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존 바우어)를 게임으로 옮긴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알파 프로토콜'은 옵시디언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독자 IP 였습니다만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던전시즈 3' 역시 전작의 엔진을 이어받지 않고 Onyx 엔진으로 제작했습니다만 쫄딱 말아먹었죠.

21세기 RPG의 명가라면 베데스다와 바이오웨어를 꼽습니다만, 사실 옵시디언도 그에 꿇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와서 뜯어고치고 추가하는 것이 아닌, 독자 개발로 재미를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저 둘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애매합니다. 그래서 진실의 작대기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작품이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재미는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쓰는 속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 프로토콜처럼 괴작이 나올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요.

그리고 결과는..... 사우스 파크 게임이 나왔습니다.


1. 사우스파크 게임

사실 옵시디언이 그동안 만들었던 게임들은 매우 훌륭한 속편들이었습니다. 뭔가 전작을 뛰어넘는 수준의 오리지널리티도 없고, 전작보다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은 적도 없습니다. 게임 그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옵시디언이 만든 속편들은 사실 굉장히 탄탄하긴 해도 전작에 비해 그렇게까지 뛰어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속편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뭘 원할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캐치하고 표현해줬죠., 예를 들어 구공화국의 기사단 2는 상당한 분량을 1편의 후일담에 할애해 1편이 만들어놓은, 영화로부터 3천년전의 새로운 세계와 1편의 모험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다이 능력을 빵빵하게 채워넣어 제다이가 되고팠던 유저들의 욕망을 해소하지요. 구공화국 1편의 1/3은 제다이가 아닌 클래스로 진행되고, 따라서 시스템적으로 고레벨 제다이에 대한 표현이 부족했거든요. 네버윈터나이츠 2는 파티 사이즈를 늘리고 에픽한 영웅담을 강화해 정통 D&D 3.5를 즐기고 싶다는 포인트를 자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대기는 원작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옵시디언의 장점이 매우 잘 활용한 게임입니다. 아이템부터 스킬, 스토리 진행, 연출 모든 면에서 이 게임은 완벽하게 사우스파크를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방귀에 불을 붙이는 화장실 개그부터 매트릭스 같이 유명한 매체의 패러디, 정치인에 대한 풍자, 외계인과 같은 음모론,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다소 위험해보이는 개그자까지, 전체적인 게임 자체가 '사우스 파크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RPG게임'이 아니라 그냥 '사우스 파크 게임' 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다고 해서 사우스파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사우스파크 시리즈의 팬이 아닙니다. 오래전 나왔던 극장판을 본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작대기는 사우스파크의 개그 코드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 때문에, 굳이 TV판이나 극장판에서의 사전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사우스파크를 본 적이 있다면 '아 그래 이런 개그였지'라고 생각하고, 본 적이 없다면 '아 이게 사우스파크의 개그구나'라고 납득하면 됩니다. 그냥 게임만 해도 이 골때리는 개그 센스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2. 턴제 RPG 전투

그럼 이제 '사우스파크 게임'이 아닌 RPG 게임으로써의 작대기를 이야기해봅시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 처럼 전투가 턴제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왼쪽엔 플레이어의 파티가, 오른쪽엔 적들이 나타나고 양쪽이 번갈아가면서 액션을 취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턴제 구성은 이런 구성은 현재 대세가 된 실시간 전투와 달리 보다 전략을 요구하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사우스파크는 이 전략성이 굉장히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우선 적들은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3X2의 행열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 행에서 가장 앞쪽에 있는 적만 근접공격이 가능합니다. 공격에 따라선 한 행에 있는 적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고, 한 열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지요. 화상, 구역질, 열받음 등 다양한 상태 이상이 존재하고, 이 상태 이상에 따라 추가데미지나 추가효과를 주는 경우도 다양합니다. 또한 데미지를 차감하는 '아머'와 공격 자체를 무효화하는 '실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머가 강한 적에게는 한번에 큰 데미지를 주는 '강공격'을, 실드가 많은 적에게는 여러번 공격해 실드를 깎아먹을 수 있는 '약공격'을 사용하고, 또한 적들이 근접 혹은 원거리 공격에 대한 카운터 자세를 취하는 등 굉장히 고민할 거리가 많은, 전략적인 전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실시간 전투가 대세가 된 것은 이렇게 전략적이다보니 전투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 난이도가 올라가고, 전투 자체에서 오는 긴박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죠. 사우스파크는 전략적인 깊이는 있으면서도 이를 캐주얼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턴제 게임에서 아이템의 사용은 공격과 마찬가지로 턴을 소모합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사용해서 회복을 시켜야 할지 공격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죠. 하지만 작대기에선 아이템을 사용한 뒤에도 여전히 공격할 수 있습니다. 들과 달리 아이템을 사용해도 여전히 그 턴에 공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들은 공용 아이템 창고와 캐릭터 아이템 인벤토리를 분리해서, 캐릭터가 당장 갖고 있는 아이템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그런 제한도 없습니다. 또 어떤 게임들은 회복이나 버프 아이템들을 본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작대기는 이 제한도 풀려있습니다. A라는 캐릭터가 아이템을 사용해서 B를 회복시키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죠. 한 캐릭터가 한 턴에 아이템은 단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제약들을 모두 풀어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포션을 빨아가며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해보이지만 사실 이걸로도 턴제 전투가 굉장히 캐주얼해집니다.

또한 사용자의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의 모든 행위에 대해 유저의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단 근접이든 장거리든 기본 공격부터 공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격 모션 도중 반쩍 하는 이펙트가 나올 때 버튼을 누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타이밍이 좋으면 당연히 데미지가 늘어나고 무기나 인챈트에 따라선 부가 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수능력들은 보다 다양한 액션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위 스크린샷에서 보듯 지미의 기술인 '자장가'를 사용할 때엔 DDR 처럼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작은 리듬액션 게임이 나옵니다. 돌맹이를 던지는 '다윗의 돌팔매'를 사용하기 위해선 스틱을 빙글빙글 돌려야 하고 에릭의 기술인 '저주'를 사용하기 위해선 열심히 버튼을 연타해야 합니다.

이런 타이밍 액션은 공격시 뿐만 아니라 방어시에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상대가 공격을 할 때 캐릭터 아래에 위와 같이 방패 문양이 나타나는데 이때 버튼을 누르면 가드에 성공하고, 그러면 보다 적은 데미지를 입습니다. 데미지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데미지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계속 가드에 성공하지 않으면 전투가 꽤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귀찮거나 어려울 때 불러낼 수 있는 '소환'이 있지요. 서브퀘스트를 통해 동네 주민을 돕다 보면 주민들이 보답으로 '소환' 아이템을 주기도 합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해당 캐릭터가 소환되어 그냥 전투를 끝내버립니다. 1회용이라 다시 사용할 수 없고, 보스전에선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상당히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각 소환수(?)의 등장씬과 공격씬을 보는 재미도 매우 쏠쏠하지요.


3. 충실한 RPG 컨텐츠

전투 외에 육성 / 수집과 같은 RPG 게임의 보편적인 요소도 상당히 충실하게 잘 갖춰져 있습니다.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오르고, 레벨이 오르면 HP나 PP(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의 한도가 오르는 외에 스킬 업그레이드 점수를 얻습니다. 스킬 자체는 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생기며 플레이어는 어느 스킬을 강화할지를 고르면 됩니다. 스킬을 강화한다고 해서 단순히 데미지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킬에 다양한 속성이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 나온 '다윗의 돌팔매'는 2레벨에선 데미지가 올라가지만 3레벨부턴 맞은 대상의 공격력을 낮추고 도발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4레벨에선 랜덤한 적에게 돌맹이가 튀어 2명까지 공격할 수 있게 되는 식이죠.

스킬 외에 특성(Perk)라고 하는 능력도 20종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이 특성들은 스킬들 처럼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면 그대로 효과가 발휘되는 패시브 스킬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최대 HP를 늘려준다거나 어떤 포션을 먹어도 공격력 상승 효과가 덤으로 따라온다거나 HP가 낮을 때 방어력이 올라가는 등 굉장히 유용한 효과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특성은 스킬과 달리 레벨과는 무관하게 친구의 '수'에 따라 획득됩니다. 친구를 다섯명 사귀면 특성 하나, 그 다음엔 10명, 20명 이런 식으로 획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수를 늘리기 위해선 정해진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는 외에 마을을 탐험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어떤 캐릭터들은 사이드퀘스트를 주고, 이를 완수해야만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아이템들은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 기본적인 성능 외에 방어력을 무시한다거나, 여러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특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각 아이템에 (다른 게임이었다면 보석이나 룬이라고 불렸을) 악세사리를 달아 특수능력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장착한 아이템은 게임 내 캐릭터에게 바로 적용됩니다. 머리엔 속옷 '헬멧'을, 몸에는 발퀴리 아머를, 손에는 게 손을 끼고 캐나다 할버드를 든 모습 그대로 게임 내를 활보합니다.

캐릭터의 성장, 스킬, 특성, 아이템, 사이드퀘스트 등 작대기는 전체적으로 RPG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컨텐츠들을 풍부하게 잘 갖추고 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게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건실한 게임을 잘 만드는 것이 옵시디언의 특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4. 풍부한 퍼즐 / 어드벤쳐 요소

또한 게임 내에 깔려있는 풍부한 퍼즐 요소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투 중이 아닐 때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조작할 수 있는데, 이들은 각기 작은 퍼즐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퍼즐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위 스크린샷은 외계인들이 배치한 워프 기계를 활용해 지나갈 수 없는 길을 지나가는 간단한 퍼즐입니다.

그 외에 공중에 메달려있는 물체를 떨어트려 적을 맞춘다거나, 적이 밟고 서있는 물웅덩이에 전류를 흘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해 전투 없이 적을 물리치는 퍼즐이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적을 쓰러트려도 동일한 경험치를 받을 수 있지요. 이런 퍼즐요소 역시 건실한 RPG를 잘 만드는 옵시디언의 특기가 잘 살아난 부분입니다.


5. 하지만 아쉬운 점들

이렇게까지만 써놓으면 완벽한 게임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전체적인 밸런스 분배는 상당히 아쉽습니다. 저레벨 구간에선 기본 능력이 부실해서 각종 능력과 아이템과 스킬을 쥐어짜내야하는데 경험치는 정말 쥐꼬리만큼 지급됩니다. 그래서 초반엔 레벨을 올리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어느정도 성장하고 아이템을 갖춘 후부터는 전투가 쉬워집니다. 저레벨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지요. 그리고 획득하는 경험치도 갑자기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보통 저레벨 구간에서 빨리 성장하고 고레벨에서 느리게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성장곡선인데, 작대기는 반대로 저레벨 구간에서 느리고 힘들게 성장하는 반면 고레벨 구간에선 매우 쉽고 빠르게 성장하는 괴상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전투는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면 아무런 의미를 잃게 됩니다. 비전투 상황에서 먼저 장거리로 스턴 걸어놓고 전투에 들어간 뒤 캐릭터와 카트만이 각각 전체공격 스킬을 한번씩만 쓰면 대부분의 전투가 그대로 끝나버리거든요. 게임이 쉬워지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의미가 사라집니다. 약공격으로 실드를 해제하는 것도, 강공격으로 아머를 뚫는 것도, 근접 공격이나 장거리 공격에 대한 반격기도, 무기의 특수 능력도 모두 한 턴에 2번의 스킬로 게임이 종료되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린 것이죠. 보스전에선 카트만을 아예 선택할 수 없도록 빼놓는 것을 보면 옵시디언 역시 후반부에서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미 수차례 연기한 바 있고, 옵시디언도 지금 상황이 좋지는 않은지라 그냥 출시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컨텐츠의 볼륨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가 공략을 거의 보지 않고 혼자 멘땅에 헤딩해가면서 엔딩을 볼 때 까지 약 17시간이 걸렸습니다. 공략을 보고 최단루트로 따라간다면 10시간 내외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컨텐츠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고갈된다는 점입니다. 최대 15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데 게임을 3/4 정도 진행한 시점에서 이미 15레벨을 달성해버렸거든요. 그 이후부턴 딱히 게임을 즐긴다기 보다는 최고속도로 남은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역점을 두게 됩니다. $59.99짜리 AAA 게임 치고는 다소 부족한 볼륨입니다.


6. Game of the Year 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Gag of the Year는 확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작대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사우스파크라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RPG로서도 굉장히 충실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이 없다면 정말 GOTY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위와 같은 단점이 있음에도 특유의 사우스파크스러운 감성이 게임을 끝까지 끌고 나갑니다. 100점 만점이 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만 다소 부족한 볼륨에서 5점, 밸런스 조절에서 10점을 삭감해서 전체적으로 85점을 주고 싶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끼긴 애매하지만 충분히 수작이라고 평가할만한 게임이죠. 사우스파크를 평소에 챙겨보던 팬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물론 사우스파크의 유머 코드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by 고금아 2014. 3. 9. 01:36

이전에 이미 FPS에서 탈것이 등장하는 대규모 점령전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GDF :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136

블로그 : http://tophet.tistory.com/86

말미의 요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탈것들이 등장하기 위해선 게임의 무대는 넓고 개방되어있어야 한다.
    • 넓고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전투 밀도는 낮아지고 유저는 전투 보다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 특히 스나이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스나이핑에 의한 죽음은 유저에겐 짜증나는 경험이 된다.
  •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가 문제가 된다.
    • 탈것은 보병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가진다.
    • 탈것을 탈것으로 견제하게 하면 게임의 승패가 소수의 탈것 에이스의 플레이에 좌우된다.
    • 하지만 보병이 탈것을 견제할 수단을 갖지 못하면 보병으로써의 플레이는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해진다.
  • 특히 탈것의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다.
    • 탈것을 타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에이스가 타면 유리하다는 팀 욕구가 충돌할 수 있다.
      • 설령 누가 잘 탄다고 해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 F2P 모델을 염두에 둘 경우, 전체 유료화에도 장애가 된다..
      • 탈것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아이템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 탈것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탈것 자체에 대한 유료화 스킴도 고안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한 사례로는 홈프론트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 거점을 3개로 제한함으로써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게임 밀도 관리.
  • 죽지 않고 킬을 계속 쌓을 경우 상대방에게 해당 플레이어의 위치를 노출시킴으로써 장거리 스나이퍼를 견제.
  • 게임 중 얻는 포인트를 소모해서, 리스폰할 때 탈것을 탄 채로 게임에 투입시켜 소유권 분쟁을 사전에 방지.

그런데 3월 출시를 앞두고 지금 베타 테스트 중인 타이탄 폴이 또다른 방법으로 이 탈것이 등장하는 점령전의 문제를 풀어냈기에 이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1. 타이탄과 보병이 공존하는 레벨 디자인

기본적으로 탈것을 위한 레벨과 보병을 위한 레벨은 서로 상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탈것은 당연히 보병들보다 크기가 크고 이동 속도가 빠릅니다. 따라서 넓고 개방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특히 전투기 등과 같이 빠른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은 필연적으로 공간이 넓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개방된 공간에서의 보병전은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적이 작은 점으로 표현되고, 장거리에서 은폐/엄폐한 상태에서 작은 점에 대고 딱콩 딱콩 총알을 쏘아대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술이 되지요. SMG나 샷건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장거리에서의 저격이 가장 유리한 전략이 됩니다. 적을 찾아 드넓은 맵을 이동하다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저격병의 총알을 맞고 죽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지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이는 거대한 이족보행이 등장하는 이상, 기본적으로는 크고 개방된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실내공간을 다수 배치해 보병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자아도취 코더들은 보병의 마지막 방어수단인 건물들을 부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병을 탈것들의 사냥감으로 전락시켰습니다만, 타이탄 폴에서 보병들은 건물을 방패 삼아 타이탄의 공격을 피하고, 때로는 이 건물들로부터 타이탄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점령전에서 점령해야 할 거점들은 대부분 타이탄을 탄 채가 아닌, 보병으로만 점령할 수 있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쪽 팀의 타이탄 전력이 압도적이라고 할지라도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보병들이 실내전에서 활약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타이탄에서 내려서 거점을 점령하는 등의 플레이도 필요해지지요. 하지만 이 거점이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는 외부에 노출되어있는 개방 공간입니다. 아무리 실내전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야외의 타이탄 전력에 밀리게 되면 중요한 건물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지죠.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에서 탈것과 보병의 밸런스는 상당히 애매한 지점입니다. 탈것이 보병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면 보병은 탈것의 먹이로 전락해서 보병 플레이의 재미가 떨어지고, 탈것이 약해지면 탈것의 의미가 희석되는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타이탄폴은 탈것의 공간과 보병의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합니다. 실외는 타이탄들끼리 전체 전장의 주도권을 놓고 전투를 벌이게 하고 실내에선 보병들끼리 승부를 보는 이중구성 덕분에 어느 쪽을 플레이해도 무력하게 학살당하기 보다는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2. 보병과 타이탄의 밸런스

일반적으로 탱크나 타이탄과 같이 장갑이 두꺼운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에선 이런 장갑을 뚫고 공격할 수 있는 클래스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대인전투력을 희생당하지요. 이런 구성은 이론적으로는 제법 괜찮습니다. 완전한 대인전투력을 갖는 대신 탈것엔 속수 무책으로 당할 것인가, 혹은 대인전투력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탈것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라도 할 것인가는 흥미로운 선택이지요. 하지만 유저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실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대인 전투력에 몰빵해서 탈것에게 죽든, 로켓을 든 댓가로 보병에 죽든 어쨌든 죽는 것은 동일하지요. 그리고 설령 로켓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게 탈것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정도이지 탈것을 한방에 압도할 수 있을만큼 강력하지도 않구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아예 기본 구성에 포함시켜버립니다. 주무기, 보조무기(권총) 외에 대타이탄 무기 1종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지요. 기본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병으로 타이탄을 만난다고 해도 엄폐해서 반격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타이탄의 실드와 장갑이 두껍기 때문에 한방에 큰 타격을 입힐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한꺼번에 공격할 경우엔 타이탄의 공격 만큼이나 의미있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보병이 조금 더 모험을 즐긴다면, 상대 타이탄에 올라타는 로데오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점프해서 메달리든,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든 일단 로데오에 들어가면 보병은 타이탄의 코어를 직접 공격할 수 있지요. 이 로데오 어택은 실드를 무시하면서 장갑에도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사실 타이탄의 공격보다도 더 위협적입니다. 특히 타이탄으로써는 올라탄 보병을 공격할 방법도 없지요. (전기 구름을 생성시켜 데미지를 줄 수도 있는데, 이 장비를 설치하면 전방에서의 공격을 막아내는 추가 실드를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위험합니다. 보병은 타이탄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타이탄의 주먹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적 타이탄이나 적 보병에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확실히 잡는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써는 시도해볼만한 도박이죠. 병과 개편 전의 배틀필드 온라인에서도 약점을 노려도 최소 2~3방을 맞춰야하는 대전차병 보다는 위험하긴 해도 C4를 붙여 한방에 탱크를 날리는 특수병이 더 인기있곤 했지요.

일반적으로 보병이 탈것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숨지 않으면 바로 죽고, (숨어도 벽을 날리기도 하지요) 숨어도 마땅히 반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병이 타이탄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유쾌합니다. 일단 적 타이탄의 위치는 미니맵 상에 공유되기 때문에 피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숨을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반격을 가할 수도 있고, 역으로 그 타이탄을 일격에 제압하는 도박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도 타이탄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3. 보병은 이동조차 재미있다.

위와 같이 보병과 탈것 간의 밸런스를 맞춘다고 해도 여전히 레벨의 문제는 남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간이 넓어지게 되면 병력은 분산되기 마련이고 보병은 전투보다는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열심히 뛰다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총에 맞아 죽는 마라톤 게임인 배틀필드가 되겠죠. 그리고 복잡한 실내 공간은 보병을 탈것으로부터 보호해줄 순 있지만 반대로 보병들이 길을 찾아 이동하는데 장애가 되곤 합니다. 특히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은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숙지하기 상당히 힘든데, 이는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의 멀티플레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타이탄폴은 보병들의 이동력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스프린트시 보병의 이동속도는 타 게임에 비해 상당히 빠릅니다. 그래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2층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점프가 높은데 점프 중에 2단 점프로 또한번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높이가 모자라면 모서리를 잡고 기어오를 수도 있지요. 덕분에 플레이어는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밀리터리 FPS에서 높은 곳에 있는 적을 뒷치기로 제압하려면 입구를 찾아 헤메야 하지만 타이탄폴에선 그냥 뛰어오르면 되지요. 그래서 건물은 복잡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상당히 재미난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벽타기 등의 파쿠르를 집어넣어서 이동 자체의 재미를 높였습니다. 지루한 마라톤에서 신나는 탐험이 되는 거지요. 처음엔 이렇게 점프하고 파쿨르 하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마우스 키보드를 사용하는 PC라면 몰라도 게임패드로 조작하는 콘솔에선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파쿠르를 하는 외부 공간은 타이탄들의 것이고, 실내는 좁기 때문에 파쿠르로 이동할 수가 없거든요. 상당히 절묘한 밸런스지요.


4. 봇을 통해 전투 밀도를 관리.

한편,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투 밀도 문제는 미니언이라고 불리는 봇을 투입함으로써 해결합니다. 설령 플레이어들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구석구석 배치되고 스폰되는 미니언들을 잡으면서 이동 중에도 짧게 짧게 전투를 할 수 있지요. 덕분에 넓은 공간에 12명의 플레이어만 있어도 게임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준 능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들도 미니언을 잡아서 팀에 기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5. 타이탄의 대중화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장에 타이탄을 배치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배틀필드는 '퀘드 데미지'나 '슈퍼 아머'등과 같이 하이퍼 FPS에서 맵 상에 등장하는 보너스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맵 상에 탈것들은 그냥 존재하고, 아무나 이 탈것들을 잡아 타면 되는 방식이었죠. 이 구조는 탈것들이 거점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한번 거점을 잃으면 탈것의 보유량에서도 밀리고, 이 탈것들로 인해 다시 거점을 잃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또한 탈것을 타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승리하고자 하는 팀의 욕구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전투는 안하고 헬기가 스폰되는 장소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거나 내가 더 잘타니 나에게 양보하라고 말다툼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요.

반면 홈프론트는 게임 중 얻은 포인트를 소모해 사용하는 아이템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탈것의 스폰이 거점과는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거점 상황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지 않고, 자신의 포인트를 소모해서 직접 탄 채로 스폰하기 때문에 소유권 문제도 없습니다. 탈것 타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문제도 없지요. 하지만 잘 하지 못해도 포인트가 쌓인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포인트를 얻고 탈것을 더 자주 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피할 수는 없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각 팀이 사용할 수 있는 탈것의 갯수가 종류별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포인트가 있는데도 원하는 탈것을 탈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배틀필드 보다는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밸런스와 플레이어들의 욕구를 해결해냈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타이탄폴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4분에 한번씩 타이탄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미니언을 죽이거나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면 이 쿨타임이 조금씩 단축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플레이어는 타이탄을 좀 더 빨리 자주 탈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아무리 못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도 4분에 한번씩은 타이탄을 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타이탄은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사망 후 타이탄을 탄 채로 스폰할 수도 있지만, 필드 상에 소환(사실은 공중투하)해도 그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남의 타이탄의 어깨에 올라탈 수는 있어도 타이탄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이탄의 주인 뿐입니다. 설령 필드에 타이탄을 소환해놓고 그걸 타기 전에 죽으면 타이탄은 소환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스폰할 때 타고 나올 수 있고 스폰 후에 소환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탈것이 등장하는 FPS라고 해도 탈것이 그렇게까지 많이 투입되지는 않습니다. 배틀필드 온라인은 탈것을 많이 배치하면 플레이어들이 탈것을 더 많이 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는 탈것에 무력하게 당하는 불쾌한 경험만이 양산되었죠. 그렇다고 누구나 탈 수 있을 만큼 탈것을 늘리면 이젠 보병 플레이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당히 난감한 문제죠. 하지만 타이탄폴은 이미 타이탄과 보병의 밸런스를 맞춰놓았기 때문에 필드상에 타이탄이 많이 뿌려지더라도 보병의 플레이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타이탄들이 많이 깔려있기 때문에 야외에선 타이탄들의 대규모 교전이 발생하지요.

잘하는 사람에게 보너스를 주지만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만큼은 아니고, 잘하지 못해도 타이탄을 타는 경험을 제공해주며, 타이탄이 많이 깔려도 보병에게 절망적인 경험을 주지 않고, 타이탄 끼리의 교전을 유도해 보병전과는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6. 탈것이 등장하는 FPS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든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자들이 독립한 회사인 만큼, 사실 타이탄폴의 재미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족 보행 병기인 타이탄이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FPS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긴 합니다만, 막상 게임으로 만들고 보면 레벨 부터 시작해서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 등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 많거든요. 물론 플래닛사이드2처럼 탈것을 보병과 같은 게임자원 중 하나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는 캐주얼한 유저들에겐 상당히 어려울 수 있지요. 그렇다고 스웨덴산 똥덩어리처럼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도 홈프론트에서 조금 발전된 형태 정도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맵이 커져서 이동이 지루해진다면 이동을 재미있게 만들고, 소수의 에이스들만 탈것들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냥 모두에게 타이탄을 뿌립니다. 보병이 탈것을 만났을 때의 절망이 문제라면 희망을 주고 보병의 플레이가 의미없는 것이 문제라면 보병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작은 변화들이지만 큰틀에서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게임플레이의 깊이와 캐주얼함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는 겁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다른 FPS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시 플레이는 직관적이고 유쾌합니다. 과연 현대 혹은 근미래를 무대로 한 게임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타이탄폴은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 디자인에 있어 하나의 거대한 획을 긋는데 성공했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18. 02:20

'인앱 구매가 어떻게 게임 산업을 망치는가' 에 대한 반론을 게제했습니다만, 원문을 번역 공유하셨던 윤지만님이 이에 대한 재반론을 기고하셨기에 저 역시 재반론합니다.


또한 고품격 게임 기획 포럼인 GDF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여러 의견을 주셨으니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스팔트 7에서 게임의 모든 요소를 언락하는데는 3,500달러가 필요하지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3,500달러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것을 프리미엄으로 제공할지 결정하는 개발사들이 점차 아스팔트7, 혹은 던전 키퍼와 같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특정 개발사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 산업 전반이 그러한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비해 지금이 그러하듯, 앞으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의 기준이 올라가 버리게 된다. 지금은 던전 키퍼 과금 정책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던전 키퍼의 과금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것은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저하시키고, 산업 전체에 해가 된다. 이런 얘기도 있다.

첫째, 언락 컨텐츠를 심어놓고 과금을 유도하는 모델과 던전 키퍼처럼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약하는 모델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둘째, 개발사들이 모델을 가혹하게 가져가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지요. 재미가 있다면 돈을 쓰면서 하는 것이고, 재미가 없다면 공짜로도 안하는 것이 게임이지요. 던전키퍼는 그 멍청한 과금모델 덕분에 탑 페이지 버프를 받고서도 매출 순위 164위입니다. 과연 이 모양을 보고도 다른 회사들이 계속 저런 모델을 유지하고, 모든 게임이 그런 모델을 유지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짜증을 내면서도 그에 적응하게 될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티켓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당장 감옥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고 영화관엔 무료입장, 영화가 시작하고 5분 후 1차 과금, 클라이막스에서 2차 과금, 엔딩을 보려면 3차 과금을 하자. 영화 전부를 다 보려면 3,500달러가 들지만, 영화를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건 관람객의 몫이니 괜찮다.[1]

'공짜'라고 해놓고 인 앱 결제를 유도하는 것은 '사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뚜껑을 까보지도 못하고 지불부터 유도하는 기존의 리테일 구조에 비해 플레이어에게 더 유리한 구조일 수 있다는 논조로 '리테일이야말로 사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토막으로 다뤄지는 군요. 일차적으로는 제 필력이 부족한 탓이겠습니다만, 전체 맥락에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자는 데모나 트레일러, 리뷰가 있다는 반박을 하시는데 리뷰는 타인에 의한 간접 경험이고 트레일러와 데모는 실제 컨텐츠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광고이지만 이미 공급자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경험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영화 한편에 3천 5백불짜리 F2P 모델에 대해선 제가 꾸준히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저런 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공급자의 자유이지만, 실제 지불하고 보는 것 또한 관람객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즉, 시장이 판단할 문제라는 거지요.  

거듭 강조합니다만 게임을 포함한 문화컨텐츠는 자유경쟁시장에서의 기호상품입니다. 어떤 악독한 수익모델을 채용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던전키퍼 모바일 처럼요.


요지는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는 게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앱 구매 덕분에 게임 산업이 커졌다고 말하는 것은 Thomas Baekdal 글의 포인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다. Thomas Baekdal은 인앱 구매가 게임성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래도 수익이 늘어났다고 반박하는건 제대로 된 반박이 아니다[2].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는 게임이 많든 적든, 어쨌든 소비자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돈을 쓸 겁니다. 시장은 그에 따라 움직이겠죠. 그러니 특정 게임이 괜찮은 컨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수익 모델 때문에 망가진 것을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F2P가 전체 게임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시장이 응징한다'라고만 쓰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그랬나봅니다.

그리고 "수익"(사실 전 정확하게는 "시장"을 언급했습니다)으로 반박하는 이유는, F2P가 게임의 재미를 해친다는 주장은 실제로 그래서 게임의 재미가 얼마나 해쳐졌는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재미있는 게임에 대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할 때, 시장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재미를 느꼈다는 것을 방증할 수 있겠죠. 시간 뿐만 아니라 돈까지 펑펑펑 쓸만큼 말입니다.


-추신-

기왕 반론을 하실 거였으면 제게 트위터 멘션이든 댓글이든 남겨주셨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원문에서 트랙백, 코멘트 모두 막혀있는 관계로 트위터로 멘션 드리겠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4. 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