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전용 게임이고, 전 캡쳐할 장비도 없거니와 굳이 캡쳐하는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는 없습니다.)

디 오더는 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온 게임입니다. 1인칭(3인칭) 슈팅, 빅토리아 시대의 그 독특한 분위기, 대체역사, 스팀 펑크. 제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 녹아든 게임이었거든요. PS4를 구입한 이유도 절반 이상은 독점작인 디 오더를 플레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벗뜨. 게임이 출시되기 직전부터 볼륨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오더군요. $60짜리 AAA급 타이틀 치고는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것인데, 크게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콘솔 스펙이 올라갈수록 제작비가 기하급수로 올라가는데 비해 $60이라는 가격은 이전 세대의 것이라,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볼륨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한번 깨고 마는 것이 콘솔 게임인데, 재미만 있다면 뭐 좀 짧아도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그래서 최근엔 게임을 영화에 비유하지 말고 스테이크에 비유하자는 이야기도 있지요. 얼마전 분당에서 먹은 스테이크 300g이 약 4만원이었는데, 사실 4만원이면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습니다. 더 싼 스테이크도 있고 더 비싼 스테이크도 있지요. 혹자는 더 싼 스테이크에 만족하고 더 나은 스테이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 꺼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차라리 10만원 내고 훨씬 더 맛난 스테이크를 먹고자할 수도 있지요. 결국은 개인의 만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하튼, 그래서 볼륨에 대한 악평은 무시하고, 설을 맞아 한국에 간 김에 한카피 구입하긴 해서 클리어했습니다. 볼륨이 짧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다른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허접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인 게임플레이부터 봅시다. 배경이 어떻든, 그래픽이 어떻든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3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3인칭 시점에서 이동하고 총 쏘는 것 부터가 구립니다. 그래픽은 좋은데 명암 대비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게임 내내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그림자 속에 묻혀서 잘 안보여요. 길이든, 적이든 뭐든지 간에요. 게다가 레터박스가 화면 위아래를 잘라먹고 있지요. 레터박스 때문에 잘리거나 너무 어두워서 그림자에 묻혀서 발 아래쪽이 잘 안보입니다. 발이 물체에 걸려서 움직이질 못하는데 왜 움직이질 못하는지 플레이어가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3인칭 슈팅은 기본적으로 엄폐를 기본으로 하는데, 엄폐에 붙고 떨어지는 동작이 상당히 느릿하고 끈덕지며 뻣뻣합니다. 그래서 조작감이 상당히 짜증나지요. 게다가 어떤 물체는 타고 넘을 수 있고 어떤 물체는 그게 안되는데 어떤 물체가 되고 어떤 물체가 안되는지도 상당히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경험 자체가 매우 구려요.

전투씬은 그나마 낫습니다. 전투 없이 그냥 이동만 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씬이 전체 플레이타임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때는 움직임 속도 마저도 느립니다. 아주 느릿 느릿 양반 걸음으로 걷지요. 당연히 뜀박질은 불가능하구요. 특히 첫번째 원탁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빠져나올 땐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출구는 원탁 서쪽에 있고 플레이어는 원탁 남쪽에 있는데 서남쪽에 NPC들이 통로를 틀어막아서 그 느릿한 걸음으로 동쪽 - 북쪽을 거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야 했거든요. WTF!

AI와의 총격전도 참 더럽게 만들어뒀습니다. 엄폐를 기반으로 한 3인칭 슈팅의 황금률은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한다는 것인데, 몹들이 잦은 빈도로 엄폐물 뒤에 숨어서 팔 뻗어 총만 내놓고 냅다 갈겨대요. 정작 플레이어는 그 손이라도 조준해서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또 이 팔만 뻗고 쏘는게 플레이어의 조준 사격보다 더 정확합니다.

HALO 이후 게임패드를 사용하는 1/3인칭 슈팅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조준을 도와주는 기능이 들어가있지요. 이 게임도 예외는 아니구요. 그런데 디 오더에선 이 조준 도움 기능이 거의 동작하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이면 머리를 맞출 수 있었을 상황에서 여지없이 빗나가요. 그런데 손만 내놓고 쏘는 AI는 훨씬 정확하죠. 그래서 안맞고 쏜다는 긴장감 보다는 그냥 맞으면서 쏜다는 개념으로 게임이 돌아갑니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의 총격전은 뭔가 현대 게임 답지 않게 굉장히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스나이퍼들은 깜빡이는 빛으로 자기 위치를 노출하긴 하는데요, 그 빛 보고 쏘려고 몸 일으켜서 조준하는 순간 한방 맞습니다. 보통은 상대가 쏘기 전에 먼저 맞히는 쪽으로 진행되는데, 이 게임에서 스나이퍼 상대하려면 일단 한방 맞은 뒤에 다음 방 맞기 전에 쏴 죽여야 해요.

뭐 총을 많이 맞아도 쓰러져서 블랙워터 한모금 빨고 잠깐 있으면 풀로 회복이 되니까 그렇게 맞아가며 쏴 죽이는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철뚜껑 쓴 샷건 맨 만나기 전엔 말이죠. 샷건은 한방 맞으면 바로 위의 빈사 상태가 되는데 블랙워터 빨기 전에 바로 다음 방이 날아오거든요. 그럼 그냥 죽는 거죠 뭐. 게다가 저 철뚜껑 쓴 애는 약점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높은데다가 머리는 헬멧으로 보호되고 있거든요. 보더랜드2 처럼 헬멧을 날려서 머리를 노출시킨다거나 그런거 없습니다. 쟤는 그냥 쎕니다. 딱 두방에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샷건을 들고 있는데 헤드샷은 안통하고 30발짜리 탄창을 모두 쏟아부어야 죽을 정도로 맷집이 쎄요. 솔직히 마지막 보스보다 저 헬멧 쓴 샷건맨이 10만배쯤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전투씬들의 구성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 또한 지적해야겠죠. 일단 AI의 종류가 매우 적습니다. 외관상으로 봐도 반란군 병사, 통합인도회사 경비원, 그리고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조직 이렇게 세종류인데 헬멧 쓴 애와 안쓴 애 이정도가 다에요. 뭐 헬멧 안쓴 애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무기를 들고 나오긴 하는데 딱히 차이는 없습니다. 다들 그냥 엄폐물 뒤에 숨어서 쏘는게 다에요.

슈팅 게임의 AI라는게 전부 사람 마냥 아주 조직적이고 영리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쪽을 강조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몹들에게 다양한 행동 양식, 강점, 약점을 줘서 다양한 게임플레이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디 오더는 둘 다 아닙니다. 그냥 커버 가운데 두고 참호전을 벌이는데 딱히 적에게 개성은 없어요.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전투가 굉장히 불공평하니까요. 그런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벽에 붙어서 조준을 했더니 내 뒤통수가 화면을 가려서 오히려 총을 쏠 수 없었던 경험은 뭐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구요.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력포인트인 설정과 스토리도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요,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1886년이고 런던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래서 그 영국은 어떤 영국인가요? 혼종(half breed)랑 싸우는데, 얘네랑은 왜 싸우는 걸까요? 통합 인도 회사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왜 동인도회사가 아니라 통합 인도 회사일까요? 영국이 인도와 완전히 통합한 상태인가요? 주인공 동료 중엔 라파예트 라는 친구가 있단 말이죠. 맨날 무슈 마드무아젤 그러고 있는데 도대체 이 프랑스인은 왜 이 영국의 기사단에 와있는 걸까요? 혹시 다아시 경의 모험처럼 영국과 프랑스가 하나로 합쳐진 걸까요? 반란군이라는 조직은 도대체 누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가요? 아니 그 이전에, 기사단(The Order)란 무엇인가요? 이들은 누구의 지휘를 받는 건가요? 언제 설립되었죠?

게임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기사단이 있고, 혼종이 있고 싸워요. 통합 인도 회사라는게 그냥 있어요. 반란군은 반란군이구요. 유일한 예외는 목에 걸고 있다가 골로 가겠다 싶으면 빨아먹는 액체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도 중반부에 가야 그게 뭔지 나오죠.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게다가 스토리는 더 막장스러워요. 각 씬이 있긴 한데 이 씬들의 연결이 전혀 말이 안됩니다. 예를 들자면 말이죠.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주인공은 A라는 동네를 비밀리에 정찰하는 임무를 받아요. 그런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A라는 동네에 있는 B라는 장소로 이동하라는 미션이 되죠. B로 가는 동안 반란군의 매복을 만나요. 여기서부터는 그냥 쫓겨서 이리 저리 마구 이동해요. 그러다 보면 B 앞에 와있어요. 그런데 B는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단 말이죠. 아니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는 동네에 다녀오는 게 왜 비밀 임무가 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 경찰들은 뭐 땅에서 뿅 하고 솟아난 건가요? 그냥 저들이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 뒤가 더 웃기는 게, 경찰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출동은 했는데 진입하진 못했다고 하고 주인공은 거기서 늑대인간들을 발견해요. 그리고 공중 지원을 통해 늑대인간을 쫓아내는 공격을 먼저 하고 안으로 뛰어들기로 하죠. 이때 일행이 4명 중 주인공을 포함한 2명은 지하를 통해 B로 진입하기로 하고 2명은 밖을 담당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B 안에서 누구랑 싸우냐면, 늑대인간이에요. 아까 공중 공격한 건 어떻게 된 걸까요? 분명히 다른 늑대인간들은 다 도망쳤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인공은 여기에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아요.

한편 B 안에서 다시 2명이 서로 찢어지는데 다른 동료가 자기가 뭔가를 발견했다며, 주인공더러 직접 확인하라고 해요. 동료가 말한 그 방에 가보면 단서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옆에 있는 방 안에 있어요. 그런데 그 방의 문은 잠겨있어서 주인공이 자물쇠를 따야하죠. 그렇다면 주인공의 동료는 그 방 안을 먼저 뒤져본 뒤에 굳이 문을 잠근 건가요? 아님 그 방은 동료가 살펴보지 못한 방이었던 걸까요? 그리고 B 현관으로 나오면 밖을 담당하기로 2명 중 한명이 현관을 등지고 놀고 있어요. 다른 한명은 아예 저 멀리서 경찰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담소중이구요. 아니 안에서 총질하고 난리가 났는데 뛰어들진 못하더라도 뭔가 경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모든 스토리라인이 이따위 방식으로 흘러간단 말이죠. 이렇게 초지일관 앞뒤 안맞고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이에요. 꼴에 반전이랍시고 2개를 박아넣은 것이 있는데, 그조차도 너무 뻔해서  - 물론 복선이나 떡밥 따위 없습니다 - 정말로 이따위를 반전이라고 넣어뒀다는 사실 자체가 반전이었어요.

설정을 굳이 스토리에서 썰로 풀지 않고 사물들을 통해 전달하는 것도 요즘 추세죠. 툼레이더 리부트라거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보면 물건 주워서 살펴보면 백그라운드 스토리 흘러나오는 것 처럼요. 이 게임에도 그렇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물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신문이라거나 사진이라거나 모형이라거나 또 녹음기 테이프라거나. 그런데 얘들이 위에서 말한 역할을 전혀 해주질 않습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에요. 아무런 내용이 없어요. 좌우로 돌려보고 뒤집어보는 기능은 있는데 딱히 뒤집어서 뭔가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그런 장면도 단 한번도 없어요. 다른 사물들도 마찬가지구요. 이 방면에서 가장 쓸모있을 녹음기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 원래 예정에 없었는데 출시 얼마 안남기고 사장이 넣으래서 그냥 넣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레벨 디자인 또한 아주 개판이죠. 뭔가 목표는 주어지는데 그래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방향 지시 마커 같은 건 없어요. 게다가 앞서 말한 것 처럼 명암 대비가 강해서 잘 안보이는 구석도 많구요. 그래서 이 게임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전략은 걸려서 움직이지 못할 때 까지 전진하는 겁니다. 걸리면 좌우 둘러보고 안막힌 쪽으로 이동 -> 그러다가 걸리면 다시 좌우 둘러보기... 애초에 하프라이프 / 콜 오브 듀티 이후로 게임이 직선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 쉽게 쉽게 직관적으로 술술 진행하라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길찾기가 더럽고 불편하고 불쾌한 게임은 정말 근 10년동안 처음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듀크 뉴켐 포에버는 아직 안해봤어요)

그 외에 가만히 보면 잘나가는, 다른 게임에 있는 요소들이 대부분 빠짐없이 들어가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QTE 라거나 잠입 미션이라거나 말이죠. 그런데 사실 QTE도 빈도는 잦은데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 QTE라는 것 자체가 원래 뽀대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인데 말이죠 - 어렵지도 않고. 잠입은 이게 웃기는게, 뒤에서 적을 죽이려면 접근해서 QTE가 발동되어요. 타이밍 맞춰서 △을 누르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입니다. 적 바로 뒤에 붙어도 말이죠. 그런데 일반 배틀에선 거리만 붙이면 정면에서도 △ 눌러서 근접 공격으로 죽일 수 있거든요? 왜 정면에선 그냥 누르기만 하면 쓱싹 하고 베어죽일 수 있는데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붙었을 땐 꼭 굳이 타이밍을 맞춰야 할까요?

이런 불만들을 견디고 견뎌서 간신히 엔딩을 보고 나자 이 게임이 뭘 노린 건지는 알겠더군요. 슈팅 게임, 빅토리아 시대, 대체역사, 스팀펑크, 흡혈귀, 늑대인간, 아더왕, QTE 등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잘 버무려 아주 맛난 비빔밥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하나같이 완성도가 떨어져서 만들고 났더니 꿀꿀이죽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볼륨이 작은 건 차라리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어요.

뭐 그래도 그래픽은 좋습니다. 게임 플레이 화면이든 컷씬이든 간에 이정도면 3D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때깔이 좋으면 뭘합니까. 그래봤자 꿀꿀이죽인 걸요.

$60은 솔직히 터무니 없고, 한 $10 정도라면 돈이 아깝진 않을 것 같네요. 시간은 아까워두요.

아 이 게임 하고 나니까 라이즈가 하고 싶어지네요.

by 고금아 2015. 3. 1. 03:57

콜 오브 듀티 온라인은 예상대로 꽤 잘 만들었다.

기존 콜옵의 미션들을 PVE로 활용하고 있고, 기존에 이미 검증된 맵들 외에 중국 유저들을 위해 랜덤 스폰이 아닌 고정 베이스 기반의 팀 데스매치 맵도 추가했고, 스토리 기반이 아닌 서바이벌 베이스의 PVE도 있고 좀비 모드도 있다. 중국의 평균적인 사양을 감안해서 그래픽도 다운시켰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텐센트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 매 년 천만장 이상 팔아제끼고 있는 월클급 IP인데도 말이다. (러시아 안에서만 잘나가는데도 '너네가 게임을 알아?'라는 마인드로 퍼블리셔를 다 씹었던 모 게임과는 달리).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게임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크파에 익숙한 중국의 게이머들 취향에 맞춰 뜯어고치다보니 오히려 크파 하다 말고 이걸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그래픽이 조금 더 좋고 우클릭으로 줌 해야하는 것이 불편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특히 중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춰 고정 베이스 기반의 맵을 추가한 것이 치명타. 콜옵의 PVP 멀티는 랜덤 스폰 때문에 전투 국면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고정 베이스 기반 맵이 있으니 유저들은 굳이 새로운 랜덤 스폰을 하는 대신 그냥 고정 베이스 맵에 눌러 앉아버렸다.

게다가 그래픽이 좋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크파와 tgame (역전)에 비교해서지 객관적으로 지금 기준으로 딱히 좋지도 않다. 저사양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건 당연한 건데 고사양에서도 옵션이 잘려나가서 2~3년 전 게임으로 보인다. 애초에 FPS 시장의 보수성을 감안할 때 크파나 tgame 잡는 건 무리이고 A.V.A나 워페이스가 점유하고 있는 하이엔드 FPS 시장은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그마저도 어려워보인다. 새로운 게임플레이에 대한 욕구는 결국 하드코어 게이머의 것인데, 이들은 게임플레이 못지 않게 그래픽에 대한 욕구도 갖고 있다.

좋은 게임을 가지고, 시장에 맞췄을 뿐인데 오히려 매력이 다 깎여버린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맡아온 FPS 게임들은 하나같이 뭔가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좀 낯설고 어렵고 불친절한 녀석들이었다. 매력은 있지만 그 매력을 느끼기 전에 다들 도망가버리는 이 게임들을 나는 '청국장 같은 게임'이라고 부른다. 콜옵은 굉장히 캐주얼한 게임이지만, 보수적인 아시아 온라인 FPS 시장에선 청국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국장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버려서 되나...

상업예술로서 시장과 관객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 과정에서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내일로 칸타빌레와 유사한 면도 있다. 위험하니까 만화적인 연출은 날리고 (일본이 좀 더 만화적인 연출에 익숙하긴 하지만 꽃남을 생각해보면 한국 시장에서 만화적인 연출이 안먹힌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판과의 비교 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합리적인 결론일 수는 있다.). 그래도 캐릭터는 살려야겠으니 바보같은 인형 옷은 입히고. 제작비가 모자라니 PPL은 집어 넣고. 이미 검증된 요소인 제2남주와 삼각관계를 집어넣자. 이 모든 걸 종합하니 결국은 뭔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와버렸다.

반면 미생은 오히려 극화였던 원작에 없던 '만화적인' 연출을 군데군데 사용하면서 (눈에 비치는 하트 조명...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만화 원작'을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씬들은 대사 하나 하나 전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단, 원작에서 다소 평면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들은 좀 더 강화했다. 그래 나 청국장이다. 청국장이니까 당연히 냄새가 나지. 그런데 맛나단 말이다! 라고 외치는 것 같다.

기획자들은 필연적으로 하드코어 게이머인 경우가 많다. 시끄럽기만 하고 돈은 안되는, 정작 돈 낼 유저들의 취향은 모르거나 경멸하는. 그래서 주니어들에게 항상 주문하는게 덕내부터 빼고 오라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항상 이게 프로페셔널한 기획자로서 도출한 결론인지 게이머로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돌아보고 점검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자꾸 쳐내는데 익숙해진다.

콜옵 온라인을 보고, 내일로 칸타빌레를 보고, 미생을 보고 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과연 지금 청국장에서 냄새를 빼고 있는 것이 아닐까?


by 고금아 2014. 11. 30. 23:18


원래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 (이하 뉴오더)의 풀 리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고양이가 멀티탭을 건드리는 불의의 사고로 세이브 데이터가 망가져서 중후반까지 진행했던 모든 것들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차마 다시 플레이할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게임 디자인 적으로 눈여겨볼 2가지를 추려봅니다.


1. 공간 탐색을 재미를 다시 강조하다.

1993년의 FPS의 맵과 2010년의 맵을 비교한 유명한 짤방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맥락을 무시한 멍청한 짤방이죠. 울펜슈타인, 둠 시절의 FPS는 기본적으로 던전RPG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이 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어딘가에 숨겨진 공간이 있진 않을까. 이런 긴장감이 그 시절 FPS의 핵심적인 재미였죠. 하프라이프는 복잡한 비선형적인 맵 구성을 퍼즐로 대체하는 대신 이제까지 게임 플레이와는 분리되어왔던 스토리텔링을 게임 플레이 안으로 포섭시켰습니다. 그리고 콜 오브 듀티에 와서는 그나마 있던 퍼즐조차도 버리고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장대한 모험극을 1인칭으로 즐기게 되죠. 그리고 이 스타일이 현재의 FPS 게임에선 주류가 됩니다. 애초에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맵 디자인도 바뀌어온 것인데 이런 맥락을 제쳐놓고 막연하게 과거에 비해 맵 디자인이 바보같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특히 게임 디자이너라면요.

뉴오더는 하프라이프 이후로 사라진, 바로 그 공간 탐험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자체는 선형이고 시나리오에 따라 강제로 하수구, 감옥 등 다양한 공간에 배치됩니다만 이 공간들은 콜옵 처럼 완전히 자동 선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미지의 공간을 탐험해서 길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갈림길도 있고, 지름길도 있고, 지름길을 잘 찾으면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하는 보너스도 있지요.

다만 공간 탐험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위에 보이는 1993년 게임처럼 방대한 맵을 탐험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선형 구조를 지닌 작은 던전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3층 건물의 1층으로 진입해서 옥상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한번에 1층에서 옥상까지 가는 중앙 계단이 없고, 각 층에서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그럼 전체적인 진행은 1층 -> 2층 -> 3층 -> 옥상으로 빠져나가는 선형 구조가 됩니다. 하지만 각 층은 서로 다른 레이아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 층의 비선형적인 공간을 탐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비선형 맵이 이어져서 선형 구성을 이루죠 실제로는 작은 비선형 맵도 어느정도 방향성을 지니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왼쪽 오른쪽 이 문을 열까 말까 두근두근하는 맛은 있습니다.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자체는 과거의 저 거대한 비선형 맵보다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콜옵 식의 진행에 익숙한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시리즈의 전통인 숨겨진 공간, 보물수집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저렇게 ?로 표시해놓으면 밝혀내지 못할 비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보물도 존재하고 보물이 있는 곳은 알겠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퍼즐인 경우도 많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다른 곳에 있는 환풍구를 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2. 튜토리얼과 성장, 게임의 결합 - PERK

성장 개념이 있는 FPS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망작이었던 2009년 울펜슈타인에도 있었고 파크라이에도 있었죠. 그런데 이전까지의 성장은 주로 스토리 진행에 따라 자동으로 어떤 능력이 주어지거나, 게임 진행으로 얻은 자원으로 구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보스를 죽였으니 보스가 가진 능력을 하나 준다거나, 혹은 이제 20레벨이 되었으니 스킬 포인트 1점을 가져가고 이걸 원하는 곳에 박으라는 식이었죠.

뉴오더의 PERK는 도전과제와 비슷하게, 행위를 통해 능력을 얻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의 예시를 보자면 헤드샷을 40번 하고 나면 무기를 바꾸는 속도를 높여주는 '퀵드로우'라는 특성을 얻는다는 식이죠. 나이프로 몇명의 적을 암살하고 나면 나이프를 던져서 암살할 수 있게 되고, 수류탄으로 사람을 얼마 이상 죽이면 수류탄 보유량이 늘어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선행 퍼크를 배워야 다음 퍼크를 열 수 있는 등의 연쇄도 존재하지요.

이 PERK 구성은 일단 특정한 행위를 반복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도전과제와 유사하지만, 이게 게임 플레이에 보너스 혹은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선 언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들이 단순한 동작을 무식하게 반복시킨다기 보다는 '벽에 엄폐한 상태에서 총 쏘기', '지휘관을 죽이기' 등 이 게임의 특징적인 행위를 반복시킨다는 점에서는 그 행위에 대한 튜토리얼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퍼크를 열기 위해 필요한 반복 횟수가 비교적 적고, 그림과 설명이 크게 따라나온다는 점에서 특히 이 튜토리얼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by 고금아 2014. 6. 16. 01: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