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워즈 : 구공화국(이하 구공온[각주:1])의 괴상한 Free-To-Play(이하 F2P) 모델을 보면, 얘들이 F2P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는 '부분 유료화'와 F2P의 단어가 지닌 미묘한 차이에서 기인한 것 같기도 하다.

부분 유료화라는 단어를 그대로 해석하면 기본적으로 무료이되, 일부가 유료로 제공된다는 뜻이 된다. 기본적으로 무료라는 말은 곧 게임의 기본적인 핵심 기능은 무료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유료로 제공되는 기능들은 보다 나은 서비스를 경험하기 위한, 플러스 알파의 성격을 띄게 된다.

해외에선 이에 상응하는 모델을 Free-To-Play라고 일컫는데, 단어상으로도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 즉, 유상 서비스가 기본이고 이 중 일부가 무상으로 제공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월정액제를 기본으로 유지하되 (엄청난 제약이 있지만) 무상으로 플레이 할 수도 있고, 개별 서비스를 판매하는 구공온의 케이스도 Free-To-Play 이긴 하다.

일반적으로 부분유료화는 F2P로, 또한 F2P는 부분유료화로 번역될텐데 사실 구공온의 F2P는 부분유료화라기 보다는 부분'무료화'에 가까울 것이다. 사실 많은 수의 해외 개발사들은 부분유료화로 번역될 수 있는 F2P 형태로 서비스 하고 있다. 즉, 부분무료화 정책은 그냥 EA와 바이오웨어의 삽질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소프트웨어와 과금에 대한 문화적 차이에서 기반한다고 볼 수도 있다.

EA와 바이오웨어의 본고장인 북미의 경우 패키지 게임 시절부터 기본적으로 돈을 내야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물론 프리웨어는 제외). 그리고 일부 게임들이 기능이 제한된 버전을 무료로 배포하고 돈을 내고 이 기능 제한을 푸는 쉐어웨어로 제공되기도 했다. (사실 둠도 쉐어웨어였다. 그 이전의 울펜슈타인3D나 커맨더 킨도 마찬가지였고.) 그리고 월정액제 게임이라도 무료로 다운받고 계정을 생성할 수 있는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 특히 북미에선 - 패키지를 구매해야만 계정을 만들고 클라이언트를 설치할 수 있다. 구공온의 경우도 60달러[각주:2]짜리 패키지에 1개월 쿠폰이 들어있었으며 이후 매 월 15달러짜리 쿠폰으로 구독을 연장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실 클라이언트 설치하고 무료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특전이 되고, F2P를 유지하면서도 프리미엄 서비스에 대한 부분 과금이 아닌, 온전한 게임에 대한 월정액 과금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도 수립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국내에선 게임은 공짜로 하는 것이었고, 게임을 구매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특이한 행태였다. 그리고 일찍부터 부분유료화를 채택한 게임들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무상 플레이에 대한 요구치가 해외보다 훨씬 높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여튼 이번 구공온의 부분유료화 병크는 패키지 게임 유통사인 EA가 온라인 비즈니스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 발생한 재앙이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적 차이 측면에서 바라볼 구석도 있는게 아닌가 싶다. 사실 MMORPG를 패키지 + 쿠폰으로 판매하는 모델 조차도 EA가 세운것이 아닌가. 그러니 그들에게 '서비스를 판다'는 개념은 매우 생소할 것이다.


-덧-

여담이지만 2008년 겨울에 EA 본사쪽의 고위 게임 디자이너와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부분유료화에 대해 매우 관심이 많았는데, '세상에 이런일이!'의 스탠스였다. "너네 나라에선 진짜로 게임을 공짜로 다운 받고 접속해서 플레이 할 수 있다는게 사실임? 언빌리버블!! 그럼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는데? 아바타 아이템을 판다고? 그게 말이 됨? 당장 손에 잡히는 박스가 있고 디스크가 있는 패키지 게임엔 한푼도 안쓰면서 만져볼 수도 없는 아바타의 옷을 사는데 돈을 쓴다고?"


  1. 사실 원제인 Star Wars : The Old Republic 어디에도 '온라인'이라는 단어는 없지만 왠지 국내에선 구공온이라고 불린다.. [본문으로]
  2. 모던 워페어 등 트리플A급 게임과 같은 가격이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1. 4. 21:36

원래 관련해서 블로그를 쓰는 중이었으나 Gamasutra에 좋은 글이 올라와 GG치고 요약 번역본 공유합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 클릭)

The Burning of Star Wars: The Old Republic


1. 구공온의 F2P 스킴 - 월 $56을 내고 공짜로 할래? 월 $15 내고 정액사용자가 될래?
1-1. 무료 이용자들에겐 별의 별 시시콜콜한 제약이 다 걸려있음.
1-2. 심지어 UI 툴바 갯수 까지도 제약이 걸림.
1-3. 이 제한을 모두 푸는 데엔 월 $55.84가 소모됨. 이렇게 써도 캐릭터는 2개 뿐.

2. 결국 이 정책의 핵심은 월정액 사용자를 많이 받겠다는 것임.
2-1. F2P를 그냥 공짜로 풀면 많이 할거고, 그럼 이 게임의 재미에 홀딱 반할 것이고, 결국 월정액 결제를 할 거라는 순진한 계획.
2-2. 애초에 이 게임의 문제는 스토리 보고 나면 돈 내고 더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2-3. 뭔가를 더하지는 않고 그냥 제약만 걸어두면 돈을 낼거라고 생각하나?

3. 무료 이용자에게 안먹히는 이유
3-1. 할 거라곤 성장구간 밖에 없는데 이 마저도 돈을 안내면 고통스러움.
3-2. 돈을 안내면 퀘스트 보상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음.
3-3. 돈을 안내면 퀘스트 만으로는 레벨링이 안되어서 레벨 노가다를 해야 함.
3-4. 보통 이러면 안하고 만다.

4. 기존의 정액 이용자들까지도 엿먹임.
4-1. SWTOR의 구독자가 감소하는 이유는 빈약한 엔드게임 마저도 유저가 없어서 못하고 있다는 것.
4-2. 그런데 무료 이용자들은 돈을 안내면 좋은 장비를 낄 수도 없고, 돈을 안내면 엔드 게임도 즐길 수 없음.
4-3. 기존 정액 이용자들에게는 아무런 이득도 없음.
4-4. 돈내고 했던 게임, 남들이 공짜로 한다는 데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은 덤.

5. 과거 결제 경험자 협박까지 함.
5-1. 과거 정액 결제를 했던 사람들한텐 부분 유료화 안내 메일이 옴.
5-2. 사실상의 협박임. 다시 정액 결제를 하면 카르텔 코인(제한을 푸는 캐쉬)을 주지만 안하면 캐릭터 지워버리겠음!

6. F2P의 기본이 안되어있다.
6-1. F2P의 핵심은 무료 이용자들 때문에 유료 이용자들이 더 플레이하고 더 지불하게 하는 것.
6-2. 정액 구독자들에겐 계속 구독할 수 있는 이유를 제공해야 함.
6-3. 유료 이용자와 무료 이용자가 같이 섞였을 때 지불의 이유가 발생하지만 구공온은 완전히 반대로 감.

7. 너무 촉박하긴 했다.
7-1. 애초에 정액제 모델로 만든 게임을 F2P로 하는게 쉬운게 아님. 디자인하고 구현할 시간이 촉박하긴 했다.
7-2. 그래도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일들도 충분히 있었다. (갬블박스 같은 것.)

8. 결론 - 망했어요.

by 고금아 2013. 1. 4. 17:08



0. 10년만의 리부트

2010년 이후 게임계의 이슈라고 한다면 역시 리부트 열풍일 것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처럼 잘 팔리고 있는 작품들의 속편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거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미 10여년 전에 끝난 시리즈들이 새로이 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엔 Deus Ex Human Revolution이나 XCOM : Enemy Unknown 처럼 원작의 액기스만 추출한 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도 있지만 Syndicate 처럼 소재를 제외하면 원작과의 연관고리를 찾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각주:1] 이번에 리뷰할 Spec Ops The Line(이하 더 라인)은 후자에 해당한다.

1998년 Spec Ops : Rangers Lead the Way로 시작된 스펙옵스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2인 1조로 구성된 특수부대의 활약을 다룬 TPS 게임이었다. (당시엔 TPS라는 개념 조차 희박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레인보우6나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실내에서의 CQB를 다룬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소수 인원으로 적진 깊숙히 침투해 정찰 활동 등을 하는 레인져 성격의 특수전이 소재였는데, 국내에선 위 스크린샷 처럼 엉성하거나 거꾸로 인쇄된 한국어(북한도 게임의 무대에 포함된다.)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할 Spec Ops The Line은 10년만에 나온 후속작으로 완전히 새로운 개발진에 주인공이 특수부대이고 소수의 NPC를 데리고 다닌다는 점 외에는 원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다. 죽은 IP로 어떻게든 수익을 내보려는 IP 홀더와 그냥 신규 IP로 출시하는 것 보다는 죽은 IP라도 달고 내보내서 위험부담을 덜고 싶은 개발/유통사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로 보이는데, 사실 그냥 신규 IP로 출시했어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전부터 소개하려고 벼르고 있던 게임이다. 때마침 때마침 스팀에서 세일중이기도 하고, 한글 패치도 나온 터라 날 잡고 이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번 한글 패치는 국내 유통사인 H2의 허가를 얻은 것으로, 추후에도 이렇게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한글화 패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1. 어서와, 두바이는 처음이지?

최악의 모래폭풍이 두바이를 덮쳤다. UAE 정치가들과 유력가들이 비밀리에 이 도시를 탈출한 가운데 아프간 작전을 마치고 귀환하던 33대대는 이 도시의 구호 작전에 자원했지만 도시를 포기하고 귀환하라는 명령에 불복, 부대 전체가 탈영해버렸다. 시속 80마일의 광풍 속에서 필사적으로 시민들을 탈출시키려 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33대대와의 통신이 끊어지고 UAE는 두바이를 무인지대로 선포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미합중국 육군 존 콘래드 대령이다. 두바이에서의 소개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사망자가 너무 많다."는 내용의 무선이 반복적으로 감지되자 미 합중국은 마틴 워커 대위가 이끄는 3명의 델타포스 대원들을 파견한다.


2. 기본에 충실한 게임

밀리터리 TPS 게임으로서 더 라인은 굉장히 기본에 충실한 구성을 보인다. 엄폐와 조준 사격을 중심으로 전투를 진행하고 가까운 거리에선 근접 공격이 가능하다. SCAR-H, HK 417, M249 SAW, UMP45 등 현대의 다양한 총기가 등장하지만 총기를  커스터마이징 등의 옵션은 없다. 저격총을 사용하는 루고와 M249 SAW를 사용하는 아담스, 2명의 부하들에게 타겟을 지정해줄 수 있지만 직접 이 둘을 조종할 수는 없으며 딱히 이 둘에게 목표를 지정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전투한다. 

그리고 모던워페어 이후로 밀리터리 게임이라면 한번씩은 등장하는 헬기 기관총 조작이나 공중 폭격 등도 들어가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특별히 스테이지가 오픈월드로 구성되어있어 탐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에 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자로 정해진 스테이지를 따라서 전투를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딱히 퍼즐 요소도 없다. 좋게 말하면 기본에 충실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전투 만으로 더 라인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사실 이 게임의 핵심은 게임 플레이가 아닌 스토리에 있기 때문이다.


3. 아직도 자신이 영웅이라 생각하나?

주인공인 마틴 워커 대위는 과거 아프간에서 작전할 때 콘래드 덕분에 생명을 건진 인연이 있다. 이때 대령을 직접 만났던 워커는 그가 굉장히 좋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단지 고마워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대령과 그 휘하의 33대대를 구출하려 한다. 하지만 대령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두바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령과 33대대는 반대자들을 잔혹히 살해하며 두바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린탄까지 거침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워커의 작전은 콘래드와 33대대의 구출에서 축출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워커의 작전이 진행될수록 의도와 달리 오히려 더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해치게 되고, 워커는 점점 임무에 집착한다. 이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워커를 지켜보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4. 스토리의, 스토리에 의한, 스토리를 위한 게임

사실 인게임에서의 스토리텔링 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 라인은 특별할 것이 없다. 유저의 선택에 의해 의미 있는 분기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입력을 필요로하지 않는 영상도 빈번하게 재생된다. 당장 위에 있는 그림만 보더라도 최근 게임들은 저기서 입력을 받아서 타이밍을 사용한 미니 게임 들어갈 것 같지만 그냥 영상이다. 그것도 이미 렌더링 된 영상. 하지만 더 라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스토리를 게임에 반영한다.

예를 들자면 위와 같은 로딩 화면. 처음엔 적의 공격을 피하려면 웅크리라는 등의 팁이 출력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우측처럼 사용자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로딩화면 조차도 스토리텔링의 도구가 된다.

또한 워커의 얼굴 상태를 통해서 극의 긴장과 워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공중폭격 씬을 자세히 보면 스크린에 워커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이런 깨알같은 디테일의 백미는 바로 타이틀 화면. 너덜너덜한 성조기가 거꾸로 메달려있는 첫 화면부터 범상치 않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구성까지 바뀌어간다. 타이틀 화면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임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이런 디테일이 있지만, 또한 독특하게도 아주 암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 이 게임의 핵심이 스토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게임이 스토리의 게임인 진정한 이유는 게임의 본질은 의미있는 의사결정에 있고, 이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일단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보상이나 처벌이 주어진다는 게임 디자인의 기본 규칙을 일부 깨트렸기 때문이다. 바로 스토리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칼럼란에 번역해 두었다.


5. 광기의 심장

대령이 오지 깊숙한 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특수부대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오지 속으로 파고 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지옥의 묵시록'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다. 본지가 하도 오래되어 자세한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지배하고있던 광기에 대해서는 기억이 난다. 영화의 원작인 Heart of Darkness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각주:2] 더 라인은 이 광기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 만이 아니라 광기의 한가운데에 플레이어를 던져놓는다. 이 오싹한 체험은 이제까지 약 20년간 게임을 해오면서 이 게임만큼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게임을 본 적이 없다. 과연 게임을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더 라인을 시켜보라. 그리고 스토리가 게임의 본질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더 라인을 시켜보라..


-덧-

본 게임은 현재 스팀 겨울 세일 항목으로 50% 세일된 가격 $14.99에 판매되고 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50300/


-덧2-

굉장히 혐오스러운 장면이 포함되어있어 노약자 임산부 및 미성년자에게는 권하지 않음...






  1. 원작 Syndicate는 쿼터뷰 시점에서 4명의 캐릭터를 움직이는 실시간 전술 게임에 가까운 형식이었지만, 새로 제작된 Syndicate는 FPS 게임으로 리부트 되었다. 사이버 펑크 세계를 다루고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2. 작중 대령의 이름도 Heart of Darkness의 작가 Joseph Conrad에서 따온 듯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2. 12. 23. 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