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전년도에 비해 10% 가량 축소되었다. 그리고 Wii와 달리 WiiU의 판매량도 신통찮아보인다.

구미의 업계인들은 현세대 게임기에 대한 피로 현상을 원인으로 꼽으며 차세대기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의 성장에 대해선 별개의 시장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이 업계는 게이머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게이머가 게임을 만들고, 게이머가 게임을 구매한다. 하지만 이런 게이머의 패러다임으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질량과 시간의 절대성에 기반한 뉴튼 물리학으로는 광속의 세계를 다룰 수 없다. 우리는 게이머가 아닌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콘솔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분명 콘솔은 사양이 통일되어있고 사용이 쉽다는 측면에서 PC에 비해 게임 플랫폼으로써 우위를 점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TV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CRT를 사용하던 이전 세대에선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으니까. 작으니까 집안 여러곳에 TV를 둘 수 있었다. 방 안에 둘 수도 있었고. 하지만 현세대는 HDTV를 요구하며, 이는 보다 큰 공간을 요구하며 TV의 가격을 차치하더라도 이 HDTV가 위치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그래서 HD 환경에서 콘솔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가족 공용재인 TV의 배타적 소유권을 획득해야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Wii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점은 HDTV의 보급시기와 일치한다. 비록 Wii 자체는 HD 스펙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집에 새로 들여놓은 40인치 이상의 HDTV 앞에서 온가족이 즐기는 게임이 Wii의 컨셉이 아니었던가. Wii는 캐주얼 게임의 혁명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과 게임의 타협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은 기본적으로 혼자 즐기는 놀이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멀티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PC방에서 단체로 게임을 즐기기도 하지만. 화면 분할 멀티플레이 보다는 각자가 고유의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를 가지는 것이 사실 더 재미있다. 게임은 이런 개인적인 놀이인데, 플레이하기 위해선 가족 공동체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 물론 게임 플랫폼으로써 성능으로 보나 조작 체계로 보나 스마트폰 / 타블렛은 현세대 콘솔에 상대가 안된다. 하지만 이들은 콘솔과 달리 유저가 매우 쉽고 간편하게 독점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히려 PS VITA나 3DS 같은 휴대용 게임기가 더 팔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게이머의 시선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NDS를 견인했던 캐주얼 게임들은 이미 스마트폰에 잠식당했다. 스마트폰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추가 지출도 필요 없고, 게임 자체에 대한 지출은 더 쉬우며, 이런 게임들은 전용 입력기를 필요로하지도 않는다. 기기 스펙도 좋아졌으니 모던 워페어 급의 AAA급 타이틀을 PS VITA 용으로 내놓는다면?  집에서도 밖에서도 트리플 A급 타이틀을 플레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이머들은 살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상으로는 절대로 손익 분기를 맞출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을 소비하긴 하지만, 게임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게이머들에게 게임은 취미이고 탐구의 대상이다. 그래서 게임을 비교하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고 이 게임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 낫다느니 못하다느니 이건 비운의 걸작이라느니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더 나은 게임이 더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세대 콘솔이 나오면 시장이 다시 트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모두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게임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시간을 떼우고 노는 여러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지불한 금액(+시간)이 아깝지만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 어떤 게임을 다른 게임과 비교할 기준도, 의사도 없다. 단지 본인 기준으로 재미있냐 없냐만을 따질 뿐이다. 게이머들은 A~D,F 이 5단계로 게임을 평가하지만 대중들은 Pass / Fail 2단계로 평가할 뿐이다. 게이머들이 게임1은 75점이니 C, 게임2는 90점이니 A 이런식으로 바라볼 때 대중들은 과락 기준인 70점을 넘었으므로 둘 다 합격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게이머들에게 모바일 게임은 콘솔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시간 - 심지어는 플레이 하는 중에도 -을 채워주는 보완재일 순 있어도, 대체재는 되지 못한다. 헤일로를 플레이하면서 로딩이 뜰 때 마다 짬짬이 확밀아를 할 순 있어도 확밀아 하느라 헤일로를 안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모바일 게임은 콘솔 게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양자가 충분히 재미있다면 접근성이 좋은 쪽이 유리하다. (이 접근성엔 시공간적인 접근성 뿐만 아니라 금액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미 사람들은 WiiU를 구입하지 않고 있다. (가마수트라에 따르면 1월 판매량은 10만대인데 이 중 40%가 반품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Wii는 캐주얼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팔렸지만, 이 구매자들은 대부분이 非게이머들로 새 콘솔을 살 생각이 없는 계층인 것이다. XBOX360이나 PS3가 보다 게이머 지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쪽 차세대 콘솔은 상황이 그보단 더 낫겠지만, 게이머 농도가 낮은 계층이 현세대 콘솔에 안주해버릴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더 팔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세대기가 열어줄 미래는 장미빛이라기 보다는 잿빛이라고 본다.

물론 국내는 콘솔 시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온라인 게임이 대세지만 기본 구조는 유사하다. 컴퓨터는 방 안에 있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유부남은 유부남대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여전히 안방마님의 윤허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접근성이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일정 계층에게는 스마트폰 게임이 온라인 게임의 대체제가 될 수 있다.

또 게이머와 대중의 괴리는 사실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간단하게 온라인 FPS 게임 시장을 바라보자. 게이머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 AVA는 분명 서든어택보다 훌륭한 게임이다. 하지만 점유율이나 매출은 오히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AVA가 훌륭한 게임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들에게 서든어택 또한 충분히 훌륭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소수의 하이엔드 게이머들은 AVA로 옮겨갈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굳이 멀쩡히 플레이하던 서든어택을 버리고 AVA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시장은 개척되는 것이 아니라 선점되는 것이다.

이 선점효과는 국내 온라인 시장과 북미 콘솔 시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북미 콘솔 시장은 한마디로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1회 구매를 기준으로 하는 콘솔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영화와 비슷하다. 베를린이 재미있으면 베를린을 보고, 7번방의 선물이 재미있으면 7번방의 선물을 보면 된다. 둘 다 재미있으면 둘 다 보면 된다. 어차피 플레이시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경쟁이 서로 배타적이진 않다. (물론 돈이 없으면 하나만 보겠지만, 이런 사례는 사실 드물다.) 반면 온라인 게임 시장은 드라마와 같다. 야왕을 보면 마의를 못보고 마의를 보면 야왕을 못본다. 물론 우리는 둘 다 보고 싶으면 하나를 본방으로 보고 남은 하나는 재방이나 동영상으로 보겠지만, 이렇게 다시볼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고를 수 없다. 그렇다면 선발주자가 아주 재미가 없거나(사실 그렇다면 이미 안보겠지만) 후발주자가 아주 월등하지 않은 이상 굳이 후발주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물론 후발주자인 서든어택이 스페셜포스를 추월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출시일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서든 어택은 난이도나 난입으로 보나 스포보다 더 캐주얼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둘러싼 잡음이 있기도 했고. 이런 여러가지 점을 종합해볼 때 유저들이 스포를 버리고 서든으로 이주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히려 스포가 유의미한 장르내 2위를 유지했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선점효과를 방증한다. (같은 관점에서 최근의 AOS 붐은 매우 비관적이다. LOL은 이미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후발주자들은 차별화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더 하드코어한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

여하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게이머들의 시대는 끝났으니 이제 다함께 카카오톡 게임이나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유저들의 변화에 대해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간의 대체 - 보완 관계는 플랫폼 자체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수용층이 결정하는 것이다. 콘솔 게임도, 온라인 게임도 모두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할만큼 캐주얼한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문제는 스마트폰 대신 콘솔(해외) / 온라인(국내) 게임을 할 이유를 제공할 수 있냐는 것. 그리고 이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면 단위 유저당 오히려 구매력은 콘솔(해외)/온라인(국내)쪽이 우위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경우는 기존 게임 놔두고 새 게임을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非MMORPG 온라인 게임들은 대부분 판 단위의 게임에 집중했을 뿐, 거시적 관점에서 유저를 이끌어가는 구조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하사 이상을 달아야 어느정도 쓸만한 총을 살 수 있다는 정도는 존재했지만 보다 거시적인 비전 - 왜 이 게임을 계속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주진 못했다.

이런 부분에선 최근 러시아 게임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탱크끼리의 포격전이 아닌 그 테크트리였다. 수많은 탱크라는 컨텐츠들이 부품 단위의 작은 성장으로 쪼개져있고, 이들은 다시 새로운 탱크라는 큰 보상과 연결되어있다. 유저는 끊임없이 테크 트리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한판에 대한 플레이 동기를 제공한다. 잦은 보상과 플레이 동기 제공은 캐주얼 게임 혁명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파이널 테스트를 진행한 워페이스 역시 매우 비직관적이지만 어쨌든 총기 언락을 통해 유사한 성장 구도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런 영역은 앞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할 부분이다.

콘솔은.. 뭐 답이 없다. 사실 콘솔로 게임할 사람들은 이미 현세대기로 재미있게 하고 있고, 차세대기 가봤자 개발비만 늘고, 플랫폼은 오히려 덜 보급될거고... 게임 가격을 높이거나 DLC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으니 최종적으로는 멀티플레이를 더 강화하거나 그런데 사실 이것도 기존에 다 했던 건데 .. 차라리 킥 스타터로 투자 받아서 스팀으로 인디 게임 파는게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스팀은 구매의사와 구매력 모두 훌륭한 플랫폼이고 인디 게임에 대한 수요도 존재하니까. 어쨌든 트리플A급 싱글플레이어 게임은 채산성의 문제로 쇠락할 것으로 전망된다.(사실 따지고보면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이 소멸한 이유도 불법복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앱스토어에서 인앱 결제 게임과 별개로 스탠드 얼론 게임들이 나름 자생하는 것 처럼, 분명 싱글플레이어 게임의 수요는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스팀 유저들은 충분히 게임을 찾아서 구매할만한 의사와 능력이 있으므로 이 수요에 맞춰서 개발해야 할 것이다.


-덧-

이미 축구 관련으로 장문을 번역하면서 기력을 소진한 이후에 쓴 글이라 두서가 없다...



by 고금아 2013. 3. 5.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