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3. 음양사

도탑전기류 게임은 중국 시장에서 하나의 성공적인 템플릿이 되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수집형 RPG와는 전혀 다른 방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캐릭터가 추가되며 이 캐릭터들을 수집하는 재미 보다는 캐릭터들을 위로 위로 계속해서 성장시켜나가는 재미에 촛점을 맞추고 있지요. 하지만 이런 수직 성장은 운영이 길어질수록 신규 유저의 정착을 방해합니다. 출시 초기에 대량의 마케팅으로 부어넣은 유저를 계속 잃어나가는 형국이 되는 것이죠. 또한 캐릭터 수직 성장이 깊어질수록 신 캐릭터의 효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캐릭터를 추가하지 않는 구성이 유리합니다. 한마디로 텐센트가 괜찮은 IP를 사와야 동작하는 모델이라는 거죠. 실제로 오리지널 도탑전기를 제외하면 텐센트가 IP 붙여 만든 도탑전기류 게임들만이 생존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퍼블리셔가 텐센트가 아니고, 모든 게임이 IP 게임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도탑전기류 게임의 단점은 완벽하게 일본식 수집 게임의 장점에 대응합니다. 텐센트가 아니고, IP 기반 게임을 만들 게 아니라면 일본의 수집 게임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수집형 게임을 만드는 것도 필요합니다.

이러한 탈 도탑전기의 신호탄을 가장 크고 화려하게 쏘아올린 것은 음양사 라고 볼 수 있겟습니다. 출시 당시엔 고품질의 일본 색채가 진한 아트웍으로 큰 유명세를 탔습니다만 사실 그보다는 기존의 도탑 전기와 완전히 다른 메타 게임 구조에 더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음양사는 얕게 잠깐 플레이 한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실제와 다른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댓글로 지적해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3-1. 캐릭터의 획득을 가챠 중심으로 제한

음양사는 도탑전기류 게임들과 달리 캐릭터에 SR, R 등의 희귀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희귀도가 높을 수록 성능이 확연히 좋은 대신 획득이 어렵고, 희귀도의 성장은 불가능합니다. 특성에 따라 희귀도가 낮아도 유용한 캐릭터가 일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희귀도가 성능의 절대 지표입니다.

그리고 플레이를 통한 캐릭터 및 조각 획득이 굉장히 제한됩니다. 백귀야행이나 던전 탐색의 도전 모드 등 캐릭터의 조각을 얻는 방법이 없지는 않습니다만, 일반 행동력이 아닌 도전권을 소모하는 식으로 조각 /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는 컨텐츠에의 접근이 도탑전기류보다 훨씬 강하게 제한됩니다. 또한 이렇게 플레이로 조각을 얻을 수 있는 캐릭터의 종류가 제한되거나, 랜덤성이 강하게 부여되어 희귀도가 낮은 캐릭터는 어느정도 획득할 수 있지만 도탑전기류 처럼 안정적으로 원하는 캐릭터의 조각을 획득할 수는 없습니다.

등급이 강하게 구분되고 캐릭터의 수급을 가챠로 한정한 점, 가차 10개에 캐릭터 1개를 보장하는 도탑전기류 게임과 달리 가챠에선 캐릭터만 나오는 점은 오히려 일본식 가챠 게임에 가깝습니다. 물론 아예 무료 젬을 모아 가챠를 돌리거나, 이벤트에서 공급되는 소수의 캐릭터를 제외하면 무과금으로 캐릭터를 획득할 방법이 아예 없는 일본식 가챠 게임보다는 무과금자에게 조금 더 우호적일 수 있습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가챠의 가치를 높이고, 가챠 판매를 중시하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사실 그 뒤의 성장 구조를 보면 절대로 일본식 가챠 게임보다 우호적이라고 보기도 힘들긴 합니다.


3-2. 꽝에 의미를 부여해 손해를 보지 않도록 보장하는 진화

음양사의 캐릭터들은 희귀도 외에 곡옥의 갯수로 표시되는 등급(이하 편의상 성급으로 표시하겠습니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급은 희귀도와 별개로 1성부터 6성까지 존재하며 성급이 높을 수록 동일 캐릭 동일 레벨이라도  능력치가 높고, 최대레벨도 더 높습니다. 캐릭터는 희귀도에 무관하게 2~4성인 상태로 획득하는데 3,4성의 확률은 낮고 대부분 2성으로 획득하게 되지만 현재 성급과 같은 성급의 캐릭터를 현재의 성급 만큼 소모하는 진화를 통해 성급을 성장시킬수 있습니다. 3성 캐릭터를 4성으로 만들기 위해선 다른 3성 캐릭터 3개가 필요한 거죠. (같은 캐릭터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 성급 성장이 음양사를 도탑전기나 일본식 가챠 게임과 구분짓는 주요 요소 중 하나입니다.

5성 캐릭터를 최고 등급인 6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선 재료로만 5성이 5개 필요합니다. 5성 1개는 4성 5개를 재료로 진화시켜야 하므로, 4성 25개가 소모되지요. 이 과정을 게임 중 가장 쉽게 획득할 수 있는 2성 캐릭터로 환산하면 300개가 필요합니다. 무지막지한 양이죠. 가챠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꽝들이 바로 여기서 진화 재료로서의 의미를 부여받습니다. 또한 희귀도가 낮다고 하더라도 성급이 높다면 (낮은 확률이지만 4성까지 획득 가능) 그 자체로 3성 4개, 2성 12개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높은 가치를 부여받지요.

1부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캐릭터의 희귀도를 구분짓는 방식이라는 관점에서 일본 가챠 게임과 도탑전기류 게임은 완전히 대척점에 있으며 서로 장단점이 교차됩니다. 일본 가챠 게임은 희귀하고 강한 WISH 캐릭터를 강조함으로써 욕망을 부추기고, 이 WISH 캐릭터를 얻었을 때의 기쁨이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다량 발생하는 실패의 아픔을 상쇄합니다. 반면 도탑전기류는 모든 캐릭터를 동급으로 배치함으로써 WISH 캐릭터에 대한 자극은 적지만 뭘 얻든 전체 덱이 성장하게 함으로써 실패라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습니다.

음양사의 곡옥 등급과 진화는 양자의 장점만을 아주 절묘하게 합쳐놓은 그림입니다. 희귀도가 나눠져있기 때문에 WISH에 대한 욕망은 부추기지만, 진화에서 다량의 꽝들을 흡수시킴으로써 여전히 가챠 상품이 최소한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식 가챠 게임에서도 꽝으로 나온 부산물들을 레벨업 재료로 갈아먹이는 최소한의 쓸모가 있긴 합니다만, 레벨업 재료는 플레이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그렇게 높지는 않습니다. 그냥 무쓸모하진 않다는 수준이죠. 골드로 매각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하지만 음양사의 진화 재료는 대량으로 필요하지만 플레이를 통해선 획득하기 힘들기 때문에 훨씬 높은 가치를 지닙니다.


한편 가챠에서 중복 당첨된 캐릭터를 쌓아올리는 한계돌파 혹은 초월 시스템도 눈여겨 볼 만 합니다. 통상 한계돌파는 최종 완성까지의 당첨수를 높이기 때문에 수익성에 도움이 되지만, 그 효과가 크면 클수록 낮은 확률에 도전해야하는 사용자의 스트레스를 높입니다. 그래서 효과(필수성)과 난이도 사이에 균형이 필요하죠. 음양사의 캐릭터들은 3~4개의 스킬을 갖고 있는데 같은 캐릭터를 재료로 사용하면 랜덤하게 1종의 스킬 레벨이 올라갑니다. 스킬 레벨에 따라 캐릭터 성능이 크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하면 반드시 밟아야 하는 필수 성장 요소입니다.

이렇게 한돌의 비중이 커지면 - 게다가 랜덤성까지 가미되면 - 고과금자들로부터 더 많은 지출을 끌어낼 수 있지만 동시에 사용자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모든 캐릭터의 한돌에 사용할 수 있는 와일드카드인 검은 달마가 끼어듭니다. 핵과금러 폐과금러라면 가챠를 통해 SSR을 몇개씩 뽑아서 한돌할 수 있지만 그만큼을 투자할 수 없는 사람은 간간히 얻을 수 있는 검은 달마를 통해 그만큼의 돈을 투입하지 않고도 SSR 한계돌파를 맛볼 수 있게 해줍니다. 확률을 낮게 유지하면서도 어느정도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는 장치를 배치한 것이죠. 이는 마찬가지로 한계돌파의 깊이가 깊은 벽람항로에서 모든 캐릭터의 한계돌파에 사용할 수 있는 부린을 사용해 한계돌파의 어려움을 다소 낮춰주는 것과 동일한 이치입니다.


3-3. 플레이를 강조하는 성장-보상체계

음양사는 캐릭터를 거의 가챠로만 판매한다는 점에선 일본 가챠게임과 유사해보이지만, 깊은 성장 단계와 그에 기반한 보상의 질적 / 양적 향상을 중심으로 장기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점에선 단기 컨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일본 가챠 게임 보다는 기존의 도탑전기류 게임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 전투 참가 경험치의 비중이 높고, 아이템 파밍을 강조한다는 점에선 외려 한국식 수집형 게임과 더 가깝다고도 볼 수 있지요.

중국이든 일본이든 최근 게임들은 전투에 참여한 캐릭터에겐 경험치를 지급하지 않거나 비중을 줄이고 원하는 캐릭터에 경험치를 넘겨줄 수 있는 재료를 지급하는 추세입니다. 새로 얻은 저레벨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 덱에 밀어넣고 더 약한 전력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하는 스트레스를 없애고 신캐 획득과 육성의 재미만 취하는 디자인이죠. 하지만 음양사는 이런 최근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습니다. 전투에 참여한 캐릭터에게만 경험치를 지급하고, 경험치 전용 캐릭터 같이 이전할 수 있는 자원은 거의 지급하지 않습니다. (강화 전용 재료가 존재하지만 이벤트 등에서 굉장히 드물게 제한적으로 공급됩니다.) 그리고 소탕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 얻은 캐릭터를 육성하기 위해선 반드시 덱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다행히 직접 참여는 하지 않지만 경험치는 60% 받아갈 수 있는 슬롯이 2개 있어서 새 캐릭터의 획득이 약한 덱으로 약한 던전을 도는 경험으로 바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이렇게 최근의 추세를 거스르는, 소탕도 거부하면서 다소 빡빡한 경험치 지급 구조를 채택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납득이 힘들긴 합니다만,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효과를 몇가지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는 플레이 시간의 물리적 점유입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경우 통상적으로 행동력은 전부 소탕으로 태우고, 나머지 컨텐츠를 플레이하는데 하루 약 1시간 가량 소진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편하긴 하지만 그만큼 남은 시간과 돈을 다른 게임에 투자하기도 쉽습니다. 최종 허들을 간신히 넘어 오픈 전까지 기대가 높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수 사용자의 2번째 3번째 게임으로 운영하기 보다는 시간을 점유해 전체적인 사용자 풀의 규모는 줄더라도 해당 사용자들에겐 1번째 게임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전략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MMORPG가 강세였던 넷이즈의 경험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지요. 뭐 결과적으로는 1위 게임이 시간까지 잡아먹는 초대박이 났습니다만.

두번째는 가챠에 대한 가치 강화입니다. 아까 설명드린 진화에는 한가지 제약이 붙습니다. 진화의 재료는 레벨에 무관하지만 진화의 대상은 반드시 해당 성급에서의 최대 레벨에 도달해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한 캐릭터를 최대 레벨에 도달시키기 위해선 앞서 언급한 것 처럼 해당 캐릭터로 전투에 참여하거나, 최소한 60%의 경험치를 챙겨가는 관람석에 앉혀야 합니다. 재료로 사용되는 5성 4성 또한 각기 만렙을 찍은 상태에서 진화작을 해야 하지요.

다량의 남는 꽝을 진화로 흡수할 수 있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많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전투 외에 다른 캐릭터를 갈아 먹이는 것으로도 경험치를 얻고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효율은 나쁘지만요. 음양사는 이 지점에서 가챠를 수집의 특권 뿐만 아니라 시간 단축 서비스로도 활용합니다. 가챠를 많이 돌려서 캐릭터가 남아도는 고과금 사용자라면 전투에 끼워서 경험치를 먹이는 대신 캐릭터를 갈아먹이는 것으로 바로 진화를 마치고 최신 최강의 캐릭터를 바로 갖고 놀 수 있는 것이죠. 반면 캐릭터가 부족한 무과금 / 소과금이나 갈아먹일 정도로 캐릭터가 남아돌지는 않는 중과금은 효율이 좋은 던전에서 경험치를 수급하는 소위 쫄작을 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3-4. 어혼 - 입문은 쉬고 완성은 어려운 장비 파밍

전투를 통해 경험치 외에 캐릭터에 장착할 수 있는 장비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또한 기존 도탑전기류 게임 보다는 한국 게임과 유사하지만 역시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수집형 게임의 장비는 기존의 PC 혹은 콘솔 RPG 문법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캐릭터 마다 무기 / 방어구 / 장신구 슬롯이 있고 무기는 공격력을 주로 올려주며 방어구는 방어력을 올려주는 식이죠. 또한 칼은 물리 속성의 공격력을, 지팡이는 마법 속성의 공격력을 올려준다는 등의 기존의 관습을 통해 아이템의 기본적인 기능을 플레이어에게 전달합니다. 음양사의 어혼 역시 캐릭터에게 장착 / 해제할 수 있고 장착시 캐릭터의 능력치를 더해준다는 측면에서 이런 장비에 속합니다만, 기존의 아이템 형태를 중심으로 한 문법이 아닌, 블레이드 & 소울의 보패와 같은 관념적인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을 보시면 이해가 쉬울 겁니다.

장비와 어혼의 차이는 아이콘의 형태가 아닌, 장비가 게임 내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체계의 차이입니다. 무기 / 방어구는 자유로운 조합을 전제로 개별 아이템이 독립적으로 완결되어있습니다. 일부 아이템들은 스탯 보너스를 동반한 세트 구성을 가지긴 하지만 모든 아이템이 세트에 속해있는 것은 아니며, 세트 효과 또한 전체 보너스의 일부에 불과합니다. 다른 스펙이 동일하다면 세트 효과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세트 구성을 선호하겠지만, 효율에 따라선 일부러 세트를 포기하는 상황도 가능하지요.

하지만 블소의 보패나 음양사의 어혼은 태생적으로 어떠한 세트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당장 아이콘만 봐도 세트를 상징하는 공통된 그림을 사용해 어떤 세트인지, 같은 세트인지 아닌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그리고 기능적으로도 어혼이 가진 기능의 대부분이 세트 효과에 몰려있습니다. 2피스 효과는 공격력 +18, 치명타 +20%와 같이 단순한 스탯 보너스를 더해주지만 4세트 효과는 차원을 달리합니다. HP가 30% 이하인 유닛에게 50%의 추가 피해, 상태 이상에 걸린 아군의 속도 30 증가 등과 같이 전투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를 더해줍니다. 이렇게 강력하고 개성있는 세트 효과가 횡적으로 넓게 분포되어있기 때문에 어혼은 기본적으로 캐릭터가 갖고 있는 특성을 유지한 채 성능을 강화하는 정도를 넘어서 캐릭터를 다루고 운용하는 방법 자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전략의 폭을 크게 넓힐 수 있지요. 이런 세트 효과의 강력함에 비하면 개별 어혼의 기본 스탯은 비중이 매우 떨어집니다. 우선 세트를 맞춘 이후에 같은 세트의 고등급 / 고레벨 장비로 교체하면서 스펙을 향상시키게 되지요.

보통은 전략의 폭이 넓으면 좋은 게임이라고는 합니다만, 사실 저는 그게 모든 게임이 보편적으로 가져야 할 덕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코어 게이머들은 이런 폭넓은 전략을 재미로 받아들이겠지만, 캐주얼한 사용자들은 재미 보다는 게임의 난이도로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 의미의 게임이라기 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가까운 부분유료화 게임에선 전략의 폭을 좁히고 목표와 보상을 더 선명하게 강조하는 것이 더 유리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도탑전기류 라거나 쿵푸팬더3 등 이전의 중국식 게임들은 아이템을 아예 갈아끼우지 못하게 하거나, 일렬로 우열을 나눠놓고서는 상위 템으로만 교체 가능하게 하는 등 선택지를 줄임으로써 빨간점만 따라가는 것으로 어려움 없이 성장의 즐거움만 누릴 수 있도록 했지요. 그에 비해 캐릭터에 어울리는 어혼을 찾고, 조합하고 배치해야 하는 음양사는 분명히 난이도가 높습니다. 대신 음양사의 어혼은 다른 게임들보다 훨씬 더 장기 운영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운영 측면에서 어혼이 갖는 가장 큰 의의는 저렴한 개발 비용으로 게임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집형 게임을 운영하면서 게임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새 캐릭터를 추가하는 것이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성장 구조가 깊을 수록 신캐로의 전환이 힘들기도 힘들지만, 기본적으로 캐릭터를 계속해서 찍어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비쌉니다. 사람 손이 많이 가요. 확밀아 같은 카드 게임이야 그림 한두장이 전부였지만, 최근의 스마트폰이 요구하는 퀄리티를 맞추려면 컨셉, 원화, 모델링, 애니메이션 등 각 단계별로 막대한 인력이 투입됩니다. 일부를 아웃소싱할 수도 있지만 기획적으로 '캐릭터'를 구상하고 구체화하고 가다듬는 것도 꽤나 비용이 드는 일이죠.

하지만 2D 아이콘 1개와 옵션으로 구성된 어혼은 캐릭터보다 제작 비용이 압도적으로 저렴합니다. 3D 모델을 만들고 리깅하고 애니메이션 입힐 필요도 없고 별개의 연출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음성을 녹음할 필요도 없지요. 과거 확밀아 시대의 카드 게임처럼 컨텐츠 개발 비용이 매우 낮지요. 하지만 음양사의 어혼은 능력치를 담고 있는 컨테이너를 넘어서 캐릭터의 성격이나 용법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세트효과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어혼 즉, 새로운 세트효과를 추가함으로써 게임상에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하는 것과 유사한 수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지요. 그리고 이 변화는 캐릭터 X 세트효과의 조합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곱연산으로 나타납니다. 어혼 1개를 추가하면 기존에 있던 캐릭터 수 만큼의 새로운 조합이 탄생하고, 캐릭터 1개를 추가하면 다시 어혼 갯수 만큼의 조합이 추가됩니다. 개발하고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성비가 아주 탁월합니다.

어혼이 수집되고 소비되는 과정 또한 눈여겨 볼 만 합니다. 기본적으로 아이템 파밍이라는 것이 랜덤성에 의존하는 것이긴 합니다만, 음양사의 어혼 파밍은 이 랜덤성을 극소수의 성공과 대다수의 실패의 이분법으로 나눈 대신 어혼의 종류, 슬롯, 등급, 기본 능력치 등 다양한 층위에 뿌려놓습니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특정한 어혼 얻기 부터 시작해 세트를 완성할 수 있도록 해당 어혼의 특정 슬롯 얻기, 더 높은 등급의 어혼들로 세트를 채우기, 원하는 능력치를 가진 어혼으로 채우기 등의 순서로 파밍을 완성해나가며 목표를 좁혀나갑니다. 거시적으로 봤을 때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만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한국식의 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그 과정의 질은 다릅니다. 오랜 시간을 들여 한 부위씩 맞춰나가는 저빈도 고효과의 성장이 아니라 일단 낮은 등급으로 한 세트를 완성했다가 점차 등급을 높여나가고 능력치를 맞추는 등 입문 단계에서 어렵지 않은 작은 성취를 이룬 뒤에 계속해서 목표를 높여나가면서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형식입니다. 입문은 쉽지만 마스터는 어렵게, 그 과정에서 계속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동기를 부여받을 수 있는 캐주얼한 디자인이죠.

새로운 어혼을 추가했을 때의 컨텐츠 수명이 길다는 것 또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대체로 상위권 사용자들이 컨텐츠 고갈을 호소하고 그런 유저들을 위해 신규 컨텐츠를 추가하는데, 기존의 자원을 활용하여 새 장비를 생산한다거나, 장비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구조의 게임에선 오히려 그런 사용자들이 축적된 잉여 자원으로 컨텐츠를 빨리 소진시켜버릴 위험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어혼은 그런 자원의 직접적인 재활용은 피하고 있습니다. 획득한 잉여 어혼을 다른 어혼의 경험치 재료로는 사용할 수 있지만 없던 어혼을 만들어내거나 어혼의 등급을 올리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상위권 사용자도 새로운 어혼을 얻기 위해선 새롭게 파밍을 해야 하는 것이죠. 상위권 사용자들의 기득권은 고난이도 던전에서 더 높은 등급의 어혼이 나오는 것으로 보장됩니다. 


3-5. 동아시아의 디자인을 망라해 중국식 수집형 RPG를 재정의하다

정리하자면, 음양사는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중국에서 흥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도탑전기와는 공통점을 찾기 힘든, 전혀 다른 구조를 가진 게임입니다. 오히려 중국 밖에서 인기 있는 수집형 게임들의 요소를 중국식으로 재해석하고 재창조해낸 게임에 가깝죠. 성장과 그로 인한 보상 상향을 미끼로 장기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중국의 감성을 기반으로 가챠를 통해 지속적으로 캐릭터를 판매하는 일본의 판매 방식을 차용하면서도 게임 내 아이템 드랍을 통해 성장을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한국의 메타 게임 구조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런 이종교배는 각각의 장점만을 합친 궁극체를 배출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게임은 각 요소가 서로 밀접하게 맞물려있는 하나의 유기체이기 때문에 대상이 정말 작고 독립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경우 요소 하나만 옮겨서는 효과를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원래의 구조와 충돌하면서 역효과가 나기 쉽죠. 본질적으로 저렙 지역들이 무인지대로 방치될 수 밖에 없는 WOW의 기본 구조 위에 필드 컨텐츠를 얹었다가 망했던 리프트의 사례 처럼요.

음양사는 길드워2 처럼 기존의 성공한 게임에 차별 요소로서 새로운 디자인을 더하기보다는 원하는 컨셉을 세우고 그에 맞춰 게임의 구조를 재정의한 쪽에 가깝습니다. "플레이에 대한 성장을 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신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판매하는, 장기 운영이 가능한 게임" 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각각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방법으로 외부의 디자인들을 참고한 것이죠. 특히 외부의 디자인을 단순히 이식한 것이 아니라 각 디자인이 갖는 의미와 동작원리를 파악한 뒤에 이를 중국의 토양에 맞게 새로 재구성하고 업그레이드한 부분이 많습니다. 한국 수집형 RPG의 장비 처럼 플레이에 대한 보상으로서의 성장을 다른 캐릭터에게 자유롭게 이전할 수 있는 형태로 구현하면서도 양의 축적이 아닌 랜덤에 기반한 파밍에 비중을 둔 어혼 처럼 말이죠. 이 바닥에서 정말 찾기 힘든, 레퍼런스의 제대로 된 벤치마킹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3-6. 한/중/일의 문화 차이

이렇게만 써놓으면 중국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에서도 대히트를 쳐야 할 것만 같은데 실은 중국 외에서의 성과는 중국 내에서의 흥행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긴 합니다. 가장 눈에 띄는 일본풍의 그래픽이 한국에선 비호감이었다거나, 진짜 일본인이 보기엔 중국인이 보는 쿵푸 팬더 처럼 어색할 수 있었다는 등의 컨텐츠의 문제도 있겠습니다만, 시스템 측면에서 보자면 저 대통합 작업이 결국은 중국이라는 시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 중국 밖에서 크게 성공하지 못한 핵심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예를 들어 다수의 꽝들을 소모해 진화로 이어지는 과정은 중국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땐 꽝에 가치를 부여하는 세련된 디자인일 수 있지만, 애초에 꽝은 쓸모 없음을 전제로 당첨되었을 때의 효용을 강조하는 일본 시장에서는 오히려 당첨의 즐거움을 깎아먹는 요소일 수 있습니다. 힘들게 혹은 운 좋게 SSR을 얻었는데 이를 전력으로 쓰기 위해선 가챠로 300장의 꽝을 먹어야 한다면 이는 당첨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빚으로 느껴질 수 있는 것이죠. 스킬 성장의 형식을 띈 한계돌파 또한 SSR 확률이 1%로 낮은데도 2한돌 이상을 요구할 뿐더러, 심지어 특정 스킬 레벨이 올라야만 큰 효과가 나는데 어떤 스킬이 오를지는 랜덤이라 한돌의 천장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굉장히 가혹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도탑전기로 단련된 중국적 관점에선 끝없는 한계돌파가 당연하고, 심지어 아무 캐릭터에나 쓸 수 있는 와일드카드인 달마를 공급하는 점이 후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만.

한국의 수집형RPG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저로서는 음양사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지 못한 이유를 찾기가 곤란하긴 합니다만 몇가지 의심가는 구석이 있습니다. 일단 캐릭터 획득이 거의 가챠로 고정되어있고, 저레어 캐릭터로 고레어 캐릭터를 획득할 수 없다는 점에서 게임이 불공정하다고 여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실질적인 효용이 없다시피한 도탑전기류의 VIP 시스템조차도 극렬히 비토당하는 시장이니까요. 양보다 랜덤에서 오는 질의 차이에 집중하는 어혼 파밍 또한 노가다에 강한 전투민족인 한국 유저들의 감성에는 맞지 않을 수 있겠죠. 한국 수집형 게임들과 음양사에 대해 연구하신 분이 계신다면 첨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4. 창람경계 (아홉번째 하늘)

일본식의 가챠 판매를 중시한 중국산 수집형 게임의 다른 사례로는 창람경계(苍蓝境界)를 들 수 있습니다. 그랑블루 판타지를 연상케 하는, 미려한 일본풍의 그래픽이 인상적인 게임으로 한국에선 아홉번째 하늘이라는 이름으로 서비스 중이죠. 글을 쓰기 시작할 무렵엔 아직 사전예약중이었는데 그 사이 출시되어버렸습니다. 중섭에서 플레이했고, 한국 서비스 개시할 즈음엔 플레이를 중단했기 때문에 디테일에서 약간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가챠 확률이나 금액, 가챠 마일리지 등은 중국 서버 기준입니다. (한국 서버는 가챠 확률이 절반, 가챠 마일리지 샵에서의 마일리지 가격은 2배 정도로 중국 서버보다 더 박합니다.)


4-1. 보다 일본식에 가까운 캐릭터와 메타 구성

창람경계 역시 음양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중국 게임들과 달리 희귀도를 엄격하게 구분짓고 있습니다. 희귀도는 일본 게임들처럼 별의 갯수로 표현되는데, 5성은 5성이고 4성은 4성입니다. 4성이 5성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다만 음양사가 일본 디자인에서 힌트를 얻어 중국식으로 디자인 된 게임이라면, 창람경계는 일본의 가챠 게임을 기본으로 중국의 감성을 녹여낸 게임에 가깝습니다. 당장 위의 스크린샷에 나온 캐릭터 정보만 보더라도 희귀도 외에 원소 아이콘으로 표시되는 속성 메타, +3 등의 숫자로 표현되는 한계돌파, 직업 구분 등 전통적인 일본의 수집형 가챠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장치들을 활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속성 메타와 직업 메타는 이 게임을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 좌상단에 표현된 것 처럼 화-수-풍의 가위바위보와 빛-어둠의 상극 구조로 구성된 속성 메타는 게임의 모든 컨텐츠에 적용되어있습니다. 모험 스테이지, 파밍 스테이지, 레이드 등 게임의 모든 스테이지엔 5가지 속성 중 한가지가 지정되어있으며, 플레이어는 해당 속성에 강세를 보이거나 최소한 열세는 아닌 속성으로 덱을 짜서 도전하게 됩니다. 하나의 덱은 4개의 캐릭터로 구성되므로, 속성별로 유리한 속성 덱을 짜려면 20여개의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성급에 의한 구분, 속성 메타와 직업 메타 등으로 다수의 캐릭터가 필요하지만 캐릭터는 가챠를 통해서만 공급 됩니다. 수집 구조가 다소 가혹하긴 합니다만, 최고 등급인 5성의 확률이 3%이며 가차를 구매할 수 있는 유상 재화인 젬을 게임 초반에 상당히 많이 퍼주고 젬 외에 계약소환 이라고 해서 일종의 무료 가챠권이 게임 중 보상으로 종종 공급되기 때문에 무과금이어서 초반에 캐릭터가 없어 덱을 꾸리지 못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무과금으로 속성별 5성덱을 꾸리긴 힘들지만요.


속성 메타 직업 메타가 존재해서 많은 캐릭터가 필요하긴 하지만 성급이 떨어지는 캐릭터들의 활용성은 떨어질 수 밖에 없는데, 하루 30번 사용할 수 있는 '성계'라는 컨텐츠가 이를 보완합니다. 소녀전선의 군수지원 처럼 최대 3명의 캐릭터로 조를 짜서 임무를 맡기면 일정 시간이 지난 뒤에 속성별 원소의 정수나 경험치 재료, 기타 희귀 재료를 획득할 수 있는 컨텐츠인데 성계를 진행중인 캐릭터는 다른 성계에 보낼 수 없을 뿐 일반 던전이나 레이드 등에선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군수지원보다 더 캐주얼하며 고급 재료가 드랍되는 컨텐츠의 클리어 진도와 관계 없이 성계 활용만으로 고급 자원이 나오는 성계가 열리기 때문에 활용성이 높습니다. 각 캐릭터는 특정 성계에서 보너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투에서 사용하지 못할 저등급 캐릭터라고 해도 성계에서 쓸모가 생깁니다. 또한 한번에 여러 성계 임무를 동시에 돌릴 수 있기 때문에 등급이 낮더라도 캐릭터가 많으면 한번에 여러 성계를 돌리는 식으로 덜 귀찮아질 수 있습니다.


4-2. 캐릭터의 레벨 성장

창람경계는 특이하게도 스토리가 진행되는 메인 스테이지와 실제로 성장하기 위해 돌아야 하는 파밍 스테이지가 분리되어있습니다. 스토리 스테이지는 위에서 보시는 것 처럼 초회 클리어 시에 약간의 젬을 제공하지만 그 외 보상이 빈약합니다. 반복 플레이시 경험치 재료나 속성별 진화재료를 주긴 하지만 소비하는 체력(행동력) 대비 굉장히 적은 양입니다. 메인 스테이지는 1) 스토리 진행 / 2) 성장의 체감 / 3) 무료 젬의 공급 만을 담당하며 실질적으로 플레이어는 파밍 스테이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파밍 스테이지는 기본적으로 제일 위의 경험치 재료 파밍 스테이지와 그 아래의 속성별 진화재료 파밍 스테이지로 나뉩니다. 각 스테이지엔 추천 레벨과 속성이 부여되어있습니다. 레벨이 높을 수록 더 강한 적을 상대하고 승리했을 때 더 좋은 경험치 재료나 속성 원소가 드랍되죠. 속성별 원소 파밍 스테이지들은 당연히 해당 속성이 부여되어있고  스테이지로 구성되어있고 경험치 파밍 스테이지는 속성이 번갈아가며 배치되어 있습니다. 파밍 스테이지는 메인 스토리 스테이지보다 훨씬 많은 행동력을 소비하는데, 150점을 다 소진하는데엔 약 10분이면 충분합니다.


창람경계는 기본적으로 전투 참여에 대해선 경험치를 지급하지 않고, 게임 중 보상으로 얻는 경험치 재료를 소모해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리는 구성입니다. 하지만 경험치 조달보다도 위 스크린샷에 나온 것 같은 속성별 원소를 얻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각 캐릭터들은 성급에 관계 없이 기본적으로 25레벨이 한계로 잡혀있고, 원소를 사용하는 캐릭터 해방을 통해 이 한계 레벨을 여러 단계에 걸쳐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경험치 재료는 등급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고 원소는 레벨 개방이 진행될수록 더 상위의 원소를 요구하지만 하위 등급의 원소를 합쳐서 상위 등급의 원소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상위 등급의 원소를 얻기 위해선 캐릭터를 키워서 상위 난이도의 원소 던전을 클리어해야 합니다.


4-3. 장비의 수집과 성장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성장은 속성 원소의 수급에 크게 좌우됩니다. 원소 던전을 클리어해 원소를 얻고, 얻은 원소로 한계 레벨을 개방하고, 레벨을 올린 뒤에 다시 상위의 원소 던전에 도전하는 형식을 반복하게 되지요. 하지만 속성의 상관관계가 이 흐름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화 속성 원소 던전은 화 속성이기 때문에 상위 화 원소 던전에 도전하기 위해선 수 속성 캐릭터를 키워야 하고, 수 속성 캐릭터를 키우기 위해선 목 속성 캐릭터가 필요한데 목 속성을 키우기 위해선 화 속성이 필요한 무한 루프에 빠지기 쉽죠. 그래서 존재하는 또하나의 성장축이 바로 장비입니다.

창람경계의 캐릭터는 최대 4개의 장비를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장비는 활이나 부적 등의 형태를 띄고 있긴 하지만, 이 형태는 그냥 그림일 뿐 아이템의 유형에 따른 슬롯 제한은 없습니다. 장비 또한 성급과 레벨이 있어 성급과 레벨이 높을수록 성능이 좋습니다. 성급은 획득시에 결정되며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성급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레벨은 장비 경험치 재료를 소모해 올릴 수 있으며 동일한 장비를 소모하는 돌파를 통해 한계 레벨을 높여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정해진 수치 보너스 외에 스킬도 부여되어있습니다만, 이 스킬은 장비의 속성과 캐릭터의 속성이 일치해야만 발동되며 다른 장비를 스킬 경험치 재료로 사용하여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있습니다. 즉, 장비는 기본적으로 다른 장비들을 소모하며 성장하는 구조입니다.


장비를 습득하는 방법은 크게 제작과 레이드로 구분됩니다. 레이드는 고난이도 던전에서만 5성 장비가 드랍되는 반면, 제작은 랜덤하게 최대 5성까지의 장비가 드랍됩니다. 제작에 사용되는 원소는 가장 등급이 낮은 원소들이며, 특별히 상위 원소를 사용해 높은 성급의 장비를 얻는 장치는 없습니다. 따라서 덱의 성장 단계에 따라 레이드와 제작의 비중이 바뀝니다. 게임 초반엔 제작을 통해 얻은 장비로 원소 던전의 진도를 돌파하고 충분히 성장하고 나면 5성 장비가 드랍되는 레이드에 도전하게 되는 것이죠.


가챠를 통해 뽑은 5성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하면 100레벨까지의 육성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습니다. 특히 덱이 성장할수록 경험치 재료든 원소든 고급 재료가 다량으로 드랍되기 때문에 일단 어느정도 궤도에 오르면 굉장히 수월해집니다. 캐릭터 육성을 마친 사용자들은 새 캐릭터가 나오길 기다리면서 장비 파밍을 엔드 컨텐츠로 즐기게 됩니다. 

이 장비 파밍 역시 앞서 언급한 음양사의 어혼처럼 랜덤성에 의한 질적 파밍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어떤 속성의 장비를 얻을지는 제작 레시피나 레이드에서 선택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낮은 성급을 아무리 많이 얻어도 높은 성급으로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일단 5성 장비를 획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5성 장비 중에서도 물공템 마공템 등 장비를 입히고 싶은 캐릭터에 어울리는 장비를 얻어야 하죠. 하나만 뽑아선 한계 레벨이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높은 레벨로 키우기 위해선 같은 장비가 또 여러벌 필요합니다. 아주 고급 사용자라면 스킬에 랜덤하게 부여되는 2개의 부가 효과도 파밍의 대상이 됩니다. 어혼과 같은 세트 효과는 없지만, 어혼 처럼 원하는 물건이 나올 때 까지 계속 파밍을 진행해나가는 구조입니다.

음양사의 어혼이나 창람경계의 장비나 기본적으로 추구하는 방향은 동일합니다. 기본적으로 플레이에 대한 보상 중 일부를 캐릭터에 귀속되지 않고 다른 캐릭터로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형태로 제공하는 것이죠. 하지만 장비 성급의 수직적 성장을 차단함으로써 저등급 장비를 양으로 채우기 보다는 얻기 어려운 희귀한 장비를 획득하는데 집중시킵니다. 장비가 부족할 땐 저등급 장비도 착용하지만 어느정도 장비가 모이고 나면 저등급 재료는 고등급 재료를 육성하는데 사용하는 재료로 사용되지요. 사실 이러한 구조는 일본식 가챠 게임의 캐릭터 가챠와도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4-4. 일본식의 이벤트 운영

이벤트에 대한 운용도 도탑전기류 게임 보다는 일본식 게임에 가깝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이벤트는 크게 과금을 촉진하는 과금 이벤트와 컨텐츠 플레이 및 리텐션을 강조하는 플레이 이벤트로 나뉠 수 있습니다. 과금 이벤트는 위쪽 스크린샷 처럼 특정 기간동안의 누적 충전한 금액(현금)이나 사용한 젬의 양을 기준으로 기준으로 미션을 걸어 보상을 지급합니다. 플레이 이벤트 역시 주로 기간 한정 미션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좌하단의 스크린샷의 경우 원정스테이지 클리어 횟수에 따라 단계적으로 보상을 주고 있습니다. 우하단의 스크린샷은 이벤트 기간동안 모험 스테이지에서 하단의 4가지 아이템이 추가로 드랍되게 하고, 이 아이템을 모아서 골드나 진화재료, 캐릭터 조각으로 바꿀 수 있게 하는 형식입니다. 춘절이나 국경절 같은 대목 시즌엔 전용 컨텐츠를 투입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이벤트용 컨텐츠를 추가하기 보다는 있는 컨텐츠를 미션을 통해 활용하는 형식이죠.


반면 창람경계는 일본의 가챠 게임과 유사하게 전용 컨텐츠와 신규 캐릭터를 중심으로 한 이벤트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벤트 기간 동안 이벤트 맵이 새로 생기고, 이벤트 스토리가 진행됩니다. 이벤트 스테이지의 드랍도 좋고, 이벤트에서 나오는 토큰으로 보상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이벤트가 진행중일 때엔 파밍 스테이지를 돌기 보다는 이벤트 스테이지를 도는 것이 유리합니다.


특히 이러한 이벤트의 핵심보상으로 4성 캐릭터가 걸려있다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이미 5성 덱을 꾸리고 있는 사용자들에게도 저 4성을 수집해야한다는 목표가 부여되고, 무과금 사용자에겐 최고는 아니지만 쓸만한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경로가 됩니다. 일본식 가챠 게임과 동일한 동작 원리죠. 다만 캐릭터 1개와 맵, 스토리 등 이벤트에서 소비되는 컨텐츠가 크고 아름답기 때문인지 1부에서 예로 들었던 시노마스처럼 끊임없이 공급되지는 않고 월 1회 이하의 빈도로 갱신됩니다.


4-5. 가챠 중심의 판매 전략과 마일리지를 통한 가치 보전

BM 역시 기본적으론 역시 행동력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정량으로 파는 대신 가챠에 집중하는 일본식 게임의 틀을 따르고 있습니다. 도탑전기와는 달리 가챠에선 무조건 캐릭터가 나오며 10연 가챠 혹은 10회 구매에 대한 명시적인 보정은 없는 대신[각주:1] 10연 가챠는 1연 가챠 10개 대비 10%를 할인해주죠. 하단 왼쪽에서 두번째에 보이는, 1일 1회에 한해 매우 소량의 유상 젬으로 단가챠를 구입할 수 있게 해주는데 이 또한 일본의 가챠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옵션입니다. 그리고 일반 가챠 외에 한정 캐릭터가 들어가있다거나 확률에 변동이 있는 스페셜 가챠를 따로 판매하고 있는데, 이러한 스페셜 가챠에는 가격이나 비용 등이 구매 횟수에 따라 변동하는 스텝업 가챠 등이 반영되기도 합니다. 이 또한 일본식 모델이죠. 장비 가챠가 별도로 있어 효율은 낮지만 사용자가 원한다면 가챠로도 장비를 입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게임에서 보기 드문 요소가 한가지 있는데, 가챠 구매시 사용한 젬 만큼 돌려받는 창옥입니다. 일종의 가챠 마일리지인 이 창옥을 사용하는 상점이 별도로 존재해 5성 장비, 골드, 한계돌파(초월)재료, 스킬 랜덤 변환에 사용되는 황금망치 등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가챠의 최소 가치를 보장하고자 하는 중국적 감성이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창옥 상점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최소한의 가치는 보장된다는 것이죠.


4-6. 하지만 가챠 가치 보전 실패

하지만 실제로 가챠 구매시의 만족도가 높냐면 절대로 아닙니다. 일단 저 창옥상점을 제외하면 가챠에서 나온 꽝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전무합니다. 보통 캐릭터를 가챠로 판매하는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쌓일 수 밖에 없는 저등급의 중복 캐릭터들을 키우고자 하는 캐릭터의 성장 재료로 소모시키는 활용처가 존재합니다. 레벨업 재료로 갈아먹인다거나, 소녀전선의 코어 처럼 공용 한계돌파 재료로 전환하는 식이죠. 하지만 창람경계는 이러한 재활용이 불가능합니다. 획득한 캐릭터를 영구히 남아서 처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중복 캐릭터가 당첨될 경우 무조건 자동으로 한계돌파를 시켜버립니다. 3성을 한돌해봤자 어차피 게임의 핵심인 5성에는 못미칠 뿐더러, 5성이라고 해도 1한돌 2한돌 쌓을 때 오는 체감 효용이 크지 않습니다. 원하는 신규 5성이 아닌 다른 모든 결과물은 사실상 꽝입니다.

캐릭터를 활용할 수 없는 대신 창옥을 주긴 하지만 창옥 상점 또한 사실 따지고 보면 그다지 효용이 높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이 한정되는데 그다지 매력적이라고 볼만한 상품이 많지 않습니다. 골드야 썩어 넘치고, 5성장비라고 해도 속성별로 18개씩 준비되어있는 5성 장비 중에서 가장 성능이 떨어지는 2종만을 제공합니다. 캐릭터에 추가 스킬 포인트를 찍을 수 있게 해주는 천혜의 열매, 어느 캐릭터든 한계돌파에 사용할 수 있는 각성의 열매, 장비 스킬의 랜덤 항목을 재추첨 시켜주는 황금망치 정도가 그나마 의미가 있습니다. 그나마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건 스킬 포인트건 한계돌파건 랜덤 리셋이건 간에 어느정도 양을 쌓았을 경우엔 그 효용이 나오지만 구매 제한 걸린 횟수 대로 2개 1개 5개 정도로는 써봤자 큰 효용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어쨌든 청옥상점 밖에선 구하기 힘드니 완전히 무의미하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거죠. 0.1은 0보단 크잖습니까..

문제는 이 구매 횟수 제한이 일단위가 아니라 월단위라는 거지요. 천혜의 열매, 각성의 열매, 황금 망치를 살 수 있는 만큼 다 사도 한달에 청옥 1.4만개에 못씁니다. 아무 5성 한번 볼 때 마다 청옥이 1만개씩[각주:2] 쌓이고, 특정 캐릭터 (주로 신규 한정) 노리고 들어가는 저격 가챠에선 수만개씩 쌓이는 것을 감안하면 정말 극히 일부죠. 가챠를 산 보상으로 주는 창옥이 뭔가 푸짐하게 보이긴 하는데, 실제로는 아무 영양가가 없습니다. 마치 예전에 콘솔 게임 사면 십수장씩 딸려오던 웹하드 업체들의 10만원권 쿠폰 처럼 말이죠.


특히 위 스크린샷 처럼 가챠 조금 돌렸더니 3성들이 죄다 강제 풀한돌 되어버려 30창옥으로 돌려받기 시작하면 정말 이 게임이 나를 약올리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나마 이건 중국서버 사정이구요, 한국 서버의 경우 가챠 확률은 더 낮고, 금액 대비 지급되는 창옥은 더 적은데, 창옥 상점에서 상품들의 가격은 더 높습니다...


4-6. 어딘가 빈약한 성장 템포

사실 이런 식의 애매한 보상감은 창람경계라는 게임 전체에 걸쳐있는 굉장히 암울한 특성이기도 합니다. 레벨이든 초월이든 장비 성장이든 간에 각종 성장 컨텐츠들이 여러 단계로 쪼개져있긴 한데 정작 플레이 컨텐츠에서는 난이도 격차가 크기 때문에 자잘한 단계의 성장이 크게 체감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이런 거죠. 캐릭터 레벨은 처음엔 25가 한계였다가 이후 40, 60, 80, 100으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원소 던전의 권장 레벨은 20, 40, 55, 70 입니다. 경험치 재료는 충분한데 레벨 한계 개방을 위한 원소가 부족해서, 단숨에 새 한계 레벨로 치고 올라갈 땐 효용이 느껴지지만 뚫고 난 뒤에 경험치를 먹이면서 레벨을 올려가는 단계에선 그 효용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그 단계에서 효용을 체감할 수 있는 컨텐츠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런데 성장한도를 뚫는 과정은 또 지리합니다. 만땅으로 채워둔 행동력을 원소 던전에 털어붓는데는 5~6판, 물리적으로는 10분 밖에 걸리지 않는데 그렇게 자연회복분을 다 털어넣는다고 충분한 양의 원소가 들어오는 것도 아닙니다. 특히 상위로 갈수록 더 높은 등급의 원소가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정체감을 강하게 느끼죠. 여기에 플레이타임도 짧으니 게임 플레이가 굉장히 허무하게 느껴집니다. 물론 소탕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도탑전기류 게임도 실질 플레이타임은 짧지만 대신 성장 단계를 촘촘하게 쪼개고, 그에 대응하는 스펙의 컨텐츠를 빼곡하게 배치해서 이만큼 왔고 이만큼 성장했다는 등의 피드백을 꼬박꼬박 주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성장이 정체되었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장비 성장 역시 템포가 지리한 편에 속합니다. 레이드를 통해 장비를 파밍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그게 그렇게 쾌적한 환경은 아닙니다. 창람경계의 레이드는 오버히트의 레이드와 같이, 본인이 먼저 보스를 때려서 방을 개설하거나, 남이 개설해둔 방에 들어가서 보스를 때리는 형식입니다. 원하는 사람들과만 공유할 수 있는 비밀방을 만들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열려있는 구조이고 한 스테이지에 최대 20명까지 들어갈 수 있습니다. 방을 개설할 땐 행동력을 소비하지만, 남이 개설한 방에 참전하는 데엔 아주 소량의 골드만을 소비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여러 레이드를 순회하면서 막 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한 플레이어는 동시에 1개의 레이드 스테이지만 공략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스를 잡아서 클리어되든, 시간 제한에 걸려 실패 처리되든 기존의 스테이지가 끝나지 않으면 새로운 스테이지에 도전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1~3위에게만 유의미한 보상이 지급되기 때문에 보스 총 데미지의 20% 이상씩을 깍아내릴 능력이 안된다면 다 잡혀가는 보스에 숟가락 얹고 적은 보상에 만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혼자 20% 30% 씩 깍아낼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후발 주자들이 달라붙어주지 않으면 보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죠. 최상위 플레이어들에게도 드랍률이 썩 좋지는 않지만 계속 해야만 하는 '이걸 언제 다 하나' 싶은 컨텐츠이고, 그 아래 플레이어들에겐 '이걸 어떻게 하나' 싶은 아주 애매한 컨텐츠입니다. 물론 혼자 돌을 씹어먹으면서 죽은 파티 되살려서 혼자서 돌파할 수도 있습니다만, 이게 레이드에서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플레이는 아니잖습니까?



4-7. 안하느니만 못했던 '최소한의 중국화'

음양사가 일본식 가챠 게임의 요소를 중국의 기준에서 재해석한 게임이라면, 창람경계는 일본식 가챠 게임에 필요 최소한의 중국적 요소를 선별적으로 추가한 게임에 가깝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최소한의 중국적 요소라고 한다면 1) 장기 플레이를 통해 체감할 수 있는 깊은 성장 단계 / 2) 가챠에서 원하는 캐릭터를 뽑지 못했을 때 보장되는 최소한의 가치에 해당하겠죠. 하지만 음양사가 1년 내내 차트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출시 1년이 지난 지금도 20위권 내를 유지하고 있는 반면 창람경계는 발매 초기 잠깐 40위권을 유지하다가 금방 광속으로 순위권을 이탈해버렸습니다.

이 둘의 차이는 역시 '재해석에 기반한 파괴적 창조'과 '원본을 유지한 최소한의 수정'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창람경계는 검증된 일본식 가챠 게임의 구성을 기반으로 검증된 중국적 요소를 접합시켰지만 그 접합이 굉장히 얄팍합니다. 깊은 성장 단계는 그 성장을 체감할 수 있는 컨텐츠의 깊이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일본 가챠 게임들이 컨텐츠들을 듬성 듬성 배치할 수 있는 것은 성장의 깊이가 얕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도탑전기류 게임들의 컨텐츠 난이도가 촘촘하게 빼곡히 배치된 것은 그만큼 성장의 깊이가 깊기 때문인 것이죠. 하지만 창람경계는 성장의 깊이는 깊으면서도 이를 체감할만큼의 컨텐츠를 배치하지 못했습니다.

가챠 구성과 꽝에 대한 보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계 돌파는 깊은데 1~2단계로는 티도 안나고, 그렇다고 최대 10단계까지 파고 들어가자면 확률이 낮아서 엄두가 안납니다. 창옥 상점이 있어 가챠의 최소 가치가 보장된다고는 하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살 물건이 없습니다. 가챠 팔아 돈은 벌고 싶은데 컨텐츠 만드는데 투자하기는 싫고, 뽑아서 손해는 안본다는 느낌은 주고 싶은데 또 막상 파는 입장에서는 손해보고 싶지는 않은, 굉장히 얄팍한 계산이 너무나 눈에 뚜렷하게 보이고 있지요. 이렇게 얄팍하게 배치된 컨텐츠들이 유기적인 시너지를 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아까 음양사를 길드워2 같은 게임이라고 했는데, 창람경계는 그보다 1년 먼저 출시했다가 순식간에 쪼그라든 Rift를 연상시킵니다. 기본 시스템은 검증된 베스트 셀러인 WOW를 그대로 차용하고, 여기에 플러스 알파 요소로 필드 컨텐츠를 더해서 Post-WOW 자리를 노리겠다는 나름 훌륭한 전략을 세웠으나, 지역을 '소모'하면서 지나간다는 WOW의 기본 한계에 부딪혀 필드 컨텐츠가 죽어버렸던 비운의 게임이죠. 나무를 심으려면 땅을 파야 하는 겁니다. 그냥 줄기를 잘라다가 땅에 꽂는다고 뿌리가 돋아나진 않는 법이죠.



5. 영원한 7일의 도시

한편 본 블로그에서 여러차례 소개한 바 있는 영원한 7일의 도시(이하 영7) 또한 수집형 게임으로써 기존의 도탑전기에서 벗어난 BM과 메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게임 자체에 대한 디테일은 이전의 포스트를 참조하시고, 중요한 부분만 몇가지 살펴보겠습니다.


5-1. 3중으로 구성된 캐릭터 메타와 그를 활용하는 컨텐츠들

수집형 게임으로써 '수집'을 강조하는 방법엔 2가지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음양사는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메타 보다는 캐릭터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을 전제로 한 최강 덱 조합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창람경계는 일본 게임들 처럼 가시적인 속성 메타를 중심으로한 캐릭터 풀의 확장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영7은 속성 메타를 강조하는 일본 게임에 가깝습니다.


영원한 7일은 굳건함(刚) > 기교(巧) > 영민함(灵) > 굳건함(刚)으로 이어지는 3색의 가위바위보 속성 메타를 기본으로 클래스 조합에 의한 메타, 공격 속성 조합에 의한 메타 등 3중의 메타 체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컨텐츠에 3종 중 1종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부여되고, 3개 캐릭터로 파티를 꾸리기에 3속성 X 3직업군 = 9종의 주력 캐릭터를 확보할 것을 요구합니다.

출시 이후엔 특정 직업군으로 플레이 할 때 더 유리하다거나, 많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으면 더 유리하다는 식으로 캐릭터 풀의 확장에 더 많은 비중을 주는 컨텐츠가 추가되어왔습니다. 관련한 내용은 별도의 포스트로 이미 발생하였으니 해당 포스트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영원한 7일의 도시 - 캐릭터 수집을 강조하는 수평성장 컨텐츠들


5-2. 가챠 중심의 캐릭터 획득과 성급 성장

앞서 소개한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영7 역시 주력 상품인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경로를 가챠로 한정하고 있습니다.일부 캐릭터는 스토리 진행에 따라, 혹은 고스펙을 요구하는 컨텐츠의 보상으로 획득할 수 있지만 그 종류와 수량은 굉장히 한정적입니다. 캐릭터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루트는 가챠이며, 게임에서 지급하는 주된 보상 또한 가챠권 혹은 제한적으로 가챠권을 구입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 화폐들입니다.

각 캐릭터는 처음 획득될때의 등급(이하 태생등급)이 C < B < A < S 의 4단계 중 1개로 정해져있습니다. 라이유이는 태생 S급, 카지는 태생 C급 이런 식이죠. 등급을 통해 캐릭터의 우열을 명시적으로 표현하고, 희귀하지만 등급이 높은 캐릭터를 뽑도록 유도하는 것은 캐릭터를 주력 상품으로 삼아 가챠로 판매하는 수집형 RPG의 일반적인 문법이며, 가챠를 시간단축 서비스로 판매하는 도탑전기가 앞서 언급한 음양사 / 창람경계와 구분되는 지점입니다.




하지만 처음 타고날 때의 등급이 달라도 모든 캐릭터들이 최고 등급인 S급과 그 너머의 신기 30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고 일단 같은 등급에선 캐릭터가 대등한 성능을 지닌다는 부분에선 도탑전기류 게임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물론 나루토나 콘트라 리턴, 에반게리온 파효 등 캐릭터에 태생 등급을 구분하는 도탑전기류 게임도 있었습니다만, 등급 성장에 들어가는 자원 구조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성급 성장은 개별 캐릭터 전용 조각을 사용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조각은 보너스 개념으로 굉장히 드물게 공급되죠. 그래서 나중에 추가된 신캐를 획득한다고 해도, 성급 성장에 필요한 해당 신캐의 조각을 다량으로 수급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신캐를 키워서 전력으로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해당 신캐 조각이 나오는 스테이지는 없거나, 있다고 해도 굉장히 고스펙에 배치되어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설령 스테이지에서의 조각 파밍이 가능해도 하루에 최대 3개 정도 밖에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조각을 모아 성급을 올리는데 터무니없이 많은 시간이 요구되죠. 조각을 모으기 위해 가챠를 돌릴 수도 있지만, 가챠의 특성상 원하는 신캐의 조각만 얻을 수는 없기 때문에 신캐 조각을 얻는 동안 이미 성급이 높은 기존 캐릭터의 조각을 더 많이 얻기 때문에 계속해서 신캐는 기존 캐보다 뒤쳐지게 됩니다.


반면 영원한 7일의 도시의 성급 성장은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만능 조각인 영혼 파편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오히려 특정 캐릭터의 육성에만[각주:3] 사용할 수 있는 특정 캐릭터 영혼 파편이 보너스 개념으로 이벤트나 업적을 통해 제한적으로 공급되지요. 영혼파편은 게임의 일간 컨텐츠를 플레이를 통해서도 일정량 얻을 수 있지만 가챠에서 이미 갖고 있는 캐릭터가 중복 당첨되었을 때 대량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중복된 캐릭터의 등급이 높을 수록 많이 떨어집니다.) 성급 성장이 무한히 이어지는 도탑전기류 게임과 달리 성장급 성장 상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잉여의 영혼 조각이 축적되고, 이를 신캐의 성급 성장 재료로 사용해 신캐를 얻기만 하면 바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저격 가챠에서 대량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중복 당첨에서 만능조각인 영혼파편을 지급한다는 부분 또한 눈여겨 봐야 합니다. 가챠에서 다량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꽝'을 수직 성장의 귀중한 재료로 사용해 가챠의 최소 가치를 높인다는 방향성은 음양사와 유사한 구석이 있습니다만, 영7쪽이 보다 세련되고 캐주얼합니다. 음양사는 성급 성장에 많은 시간을 요구합니다. 성급 성장의 대상이 되는 고등급의 신캐도, 재료로 사용할 꽝도 파티에 넣어서 게임을 플레이해야만 레벨이 오르고, 레벨이 올라야 성급을 성장시킬 수 있지요. 영7은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어있습니다. 신캐의 레벨은 플레이어의 계정 레벨에 맞춰지기 때문에 굳이 데리고 플레이할 필요도 없고, 영혼 파편 역시 수량만 맞으면 계속해서 밀어넣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평소에 축적한 자원을 밀어넣어 순식간에 전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성장시키는 문법은 오히려 도탑전기나 음양사보다는 하얀 고양이 프로젝트와 같은 일본 게임들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5-3. 성급 성장을 통해 적은 수의 캐릭터를 최대한 활용

태생 등급은 다르지만 등급을 성장시킬 수 있고 등급이 같으면 성능이 대등해지는, 일본식 가챠와 도탑전기가 묘하게 섞인 이러한 구조는 기본적으로 캐릭터의 수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7은 음양사보다도 메타 구조가 강조된 게임입니다. 이런 다층 메타를 통해 수평 성장을 강조하는 수집형 게임들은 필연적으로 그 메타를 받쳐줄 수 있는 많은 양의 캐릭터를 필요로 하지요. 3속성에 6개 직업이니 최고 등급에 18종의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직업을 근접 / 원거리 / 보조 이렇게 3개의 직업군으로 압축해도 최소 9종의 캐릭터가 필요하지요. 이는 최고 등급을 구성하기 위한 최소한이며, 그 아래 등급을 채우기 위해선 그보다 2~3배씩은 더 많은 캐릭터가 필요합니다.

문제는 영7이 주력 상품인 캐릭터의 생산 단가가 꽤 비싼 게임이라는 점입니다. 일단 당장 일본에서도 보기 힘든 고품질의 3D 그래픽이 많은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합니다. 이정도 퀄리티면 외주로는 기대할 수 없거나, 자체 제작과 비교해도 만만치 않을 비용을 지불해야 하지요. 액션 RPG라는 장르 또한 비용을 높입니다. 음양사나 창람경계와 같이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직접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턴제 게임들은 기본 시스템을 만들어놓고 파라미터 조합과 이펙트를 바꿔가며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캐릭터의 다양성을 표현하기 수월합니다. 하지만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야 하는 액션RPG에서 캐릭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선 캐릭터를 기획하고 구현하는데 많은 자원이 소모됩니다. 일반적인 2D 일본 게임 처럼 SSR 미만은 버려질 것을 염두에 두고 값 싸게 찍어낼 수가 없는 환경이죠.

이렇게 캐릭터 제작 단가가 비싼 3D 게임에서 캐릭터의 물량을 확보하기 위한 방법은 그동안 여러가지로 연구된 바 있습니다. 품질이 떨어지는 양산형 캐릭터들을 가챠에 포함시키는 게임도 있었고, 붕괴 3rd처럼 하나의 Asset을 기반으로 약간의 변종을 만든 뒤 속성을 달리 배치해 별도의 캐릭터로 취급하는 게임도 있었습니다. 혹은 우타 마크로스처럼 3D 캐릭터와 가챠로 구입하는 게임 토큰을 별개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었죠. 하지만 위와 같은 경우들은 뽑아봤더니 몬스터가 나오더라, 이미 갖고 있는 것과 거의 똑같이 생긴 물건을 다른 물건이라고 팔더라, 뽑는 건 숫자가 적힌 그림이더라 이런 식으로 가챠로 캐릭터를 뽑는다는 재미가 일부 퇴색될 수 있습니다. (물론 아이돌 마스터 신데렐라 걸즈 처럼 캐릭터의 매력과 상품성이 확실하다면 카드 그림만 바꿔도 잘 팔립니다만 이는 굉장희 희귀한 케이스라고 봐야겠죠.)

영7은 성급 성장을 열어둠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합니다. 태생 등급이 낮은 캐릭터도 성급 성장을 통해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와 대등한 성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적은 수의 캐릭터로도 다층적인 메타 구조를 소화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의 가치를 낮추진 않습니다. 일단 성급 성장에서 많은 자원이 소비되기 때문에 높은 등급에서 시작하는 것이 자원을 많이 절약해줄 뿐더러, 수치적으로는 대등하더라도 막상 캐릭터를 사용해보면 스킬 구성 등의 차이 때문에 역시 태생 등급이 높은 캐릭터가 더 강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중복 당첨되었을 때에 더 많은 자원을 지급해주기도 하구요. 따라서 성급 성장이 모두에게 열려있는 것과는 별개로 높은 등급의 캐릭터는 높은 가치를 지니고, 낮은 확률을 배당받을 명분을 확보합니다.


5-4. 레벨 공통화로 캐릭터 활용성 증대

성급 성장은 돈의 힘으로 금방 극복할 수 있습니다만, 이것이 돈만 내면 무조건 캐릭터를 최고로 성장시킬 수 있다거나, 돈을 내지 않으면 아예 성장시킬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가챠 게임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시간을 들여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결국 지속적인 플레이를 유도할 수 없고, 플레이가 유도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로 과금 또한 제한됩니다.

캐릭터의 성장이라고 하면 보통 캐릭터의 성장과 장비에 의한 성장 2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전자는 다음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과 그 효과가 정해져있는 확정적 성장 컨텐츠인 반면 후자는 랜덤하게 취득하는 성장 컨텐츠입니다. 또한 전자는 캐릭터에 귀속되어 타 캐릭터에 이전시킬 수 없지만 후자는 원하는 캐릭터에 넘겨줄 수 있는 성장 컨텐츠라는 차이도 있지요.


캐릭터 성장의 가장 대표적인 장치는 캐릭터 레벨에 의한 성장이 될 것입니다. 최근의 게임들은 세션에서 얻는 경험치로 캐릭터를 직접 성장시키기 보다는 경험치를 넘겨줄 수 있는 자원 형태로 지급하여 새로 얻은 저레벨 캐릭터로 굳이 플레이하지 않아도 되는 추세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래서 플레이를 강요하는 음양사가 다소 이질적이라고 비판했죠), 영7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캐릭터의 레벨 성장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캐릭터에 레벨도 있고, 레벨이 오르면 능력치가 오르긴 하지만 이 레벨을 올리는 과정이 없이 그냥 플레이어 계정의 레벨에 맞춰버립니다. 마치 KOTOR나 매스 이펙트 같은 게임에서 직접 사용하지 않은 동료 캐릭터들도 플레이어 캐릭터와 함께 레벨이 오르는 것 처럼 말이죠.

플레이에 참가시킨 캐릭터에게만 경험치를 주든, 경험치를 자원 형태로 공급해서 원하는 캐릭터에 투자하게 하든 본질적으로 캐릭터 별로 경험치와 레벨을 따로 관리한다는 것은 결국 한정된 자원을 분배하는 성장 컨텐츠이며 그 결과 자원을 많이 투입한 캐릭터와 적게 투입한 캐릭터 간에 전력차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부분의 게임들은 이 전력차를 당연한 게임의 규칙으로 정의합니다만, 영7은 수집한 신캐의 활용성을 굉장히 중시하는 게임입니다. 신캐를 열심히 잘 팔기 위해선 돈 들여 얻은 신캐의 강력함을 금방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캐릭터 레벨을 플레이어 계정 레벨과 동기화시킨 것은 오래 플레이한 것에 대한 누적 보너스로서의 성장을 부여하면서도 신캐의 활용성을 높이는 괜찮은 방안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행동력을 추가로 구매해 경험치를 몰아주는 것이 불가능한 게임 구조도 영향을 줬겠지요.


5-5. 컨텐츠 고갈을 극도로 억제한 장비 성장

모든 캐릭터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었던 레벨 성장과는 달리 장비 컨텐츠는 다른 게임들 처럼 1개의 장비를 1개의 캐릭터가 장착하는 형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경험치 - 레벨은 캐릭터에 귀속되어 다시 회수할 수 없지만 장비는 기존 캐릭터에게서 벗겨서 신캐에 끼워줄 수 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이 장비를 통한 성장이 실질적으로 플레이를 통한 성장의 핵심축이 됩니다. 하지만 장비의 획득 경로와 성장 방식에 있어선 다른 게임들과 다소 다른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장비에 무기, 방어구, 장신구 이런 구분이 없다는 겁니다. 유형 구분이 없기 때문에 당연히 슬롯에 대한 구분도 없죠. 그냥 아이템마다 코스트가 정해져있고, 캐릭터 마다 정해진 코스트 범위 내에서 장착할 수 있습니다. 장비를 실체가 있는 Equipment가 아닌, 가상의 능력치 컨테이너로 간주하고 있는 점은 같은 제작사의 음양사와 유사합니다. 하지만 음양사가 장비 파밍의 '완성'을 전제로, 캐릭터의 수직 성장과 장비의 수직 성장이 서로 선순환을 이루게 한 것과는 반대로 영7의 장비 컨텐츠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지속되며 고갈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장하면 더 높은 난이도의 컨텐츠에 도전하고, 더 높은 난이도의 컨텐츠에선 더 나은 보상이 지급되고, 다시 그 보상으로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는 지속적인 플레이를 유도하는 검증된 모델이긴 합니다만, 장기 운영이라는 측면에선 컨텐츠의 소비가 계속 가속화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더 높이 성장한 유저가 더 좋은 장비를 더 많이 획득하기 때문에 컨텐츠를 더 빨리 소진시키는 것이죠. 동일한 자원을 투입했을 때 상위권 고인물보다 하위권이 더 큰 효용을 누릴 수 있어야 최상위층의 자원을 효과적으로 소모시키면서도 하위권을 계속해서 중상위권으로 올려 정착시킬 수 있는데, 이런 가속 구조는 반대로 최상위권의 기득권을 강화시키고 신규 유저나 복귀 유저의 정착에 방해가 될 수 있습니다.

영7은 수직 성장과 장비 파밍을 분리함으로써 이 컨텐츠 고갈 문제를 회피하려 합니다. 장비가 드랍되는 컨텐츠들은 대부분 수직 성장에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어떤 컨텐츠를 플레이하더라도 장비 파밍의 질은 일정하게 유지되고, 획득한 장비를 소진시키는 합성 과정을 통해서만 높은 등급의 장비를 얻을 수 있어요. 그래서 오래 플레이한 사용자는 더 많은 장비를 축적하고, 이를 통해 더 높은 등급의 장비를 장착함으로써 더 나은 능력치를 부여받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더 쉽게 획득할 수 있는 기득권으로 연결되지는 않습니다. 또한 합성은 재료로 사용된 4개의 장비 중 1개를 승급시키는 구조이기 때문에 새로운 장비가 추가되어도 기존의 사용자와 신규 사용자가 이를 소진하는데 동일한 시간을 보내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이런 승급 구조는 장비 컨텐츠의 소비 속도에 대한 가속을 인정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원하는 아이템을 모두 얻어서 가장 높은 등급까지 끌어올리는 파밍의 끝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이에 영7은 합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등급인 금색에 다른 금색 장비를 재료로 소진하여 기본 능력치(세련) 혹은 추가 능력치(돌파)를 랜덤하게 리셋시키는 컨텐츠를 배치함으로써 장비 성장의 끝을 지워버립니다. 어떤 결과를 얻더라도 그보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반면, 아무리 많이 시도하더라도 기존의 결과가 누적되진 않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끝없이 재료를 소모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많은 자원을 투입하면 결과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볼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랜덤이기 때문에 해당 단계에 막 진입한 뉴비에게도 기회는 열려있고, 정해진 범위 내에서의 랜덤이기 때문에 유저간 전력차도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장비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의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영원한 7일의 도시 - 실질적인 다양성에 기반한, 지속가능한 장비 성장 체계



5-6.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를 부여하기 힘든 플레이 컨텐츠 구조

앞서 살펴본 것 처럼 성급 성장, 장비 성장, 레벨 성장 등 각각의 성장축의 디자인 자체도 굉장히 특이합니다만, 사실 영7의 성장 구조에서 가장 특이한 부분은 그러한 성장과 게임 컨텐츠와의 관계입니다. 지속적인 플레이와 과금을 유도하기 위해 성장과 컨텐츠를 연결짓는 다른 대부분의 게임들과 달리, 영7은 대부분의 컨텐츠에서 성장을 분리시켰거든요.

당장 메인이 되는 스토리 모드의 전투 스테이지의 몹들도 게임을 계속 진행해나가다보면 조금씩 강해지긴 하지만 다음 단계로 진행하기 위해선 더 성장하라는 식의 장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냥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면 자연히 오르는 레벨 기반으로 적당히 난이도가 올라가고 있어요. 장비를 파밍하는 코옵PVE인 시공난류나 레이드도 플레이어 스펙에 맞춰서 파티를 맺어주고 스테이지 난이도도 그에 맞춰 설정됩니다. XX 장비를 얻기 위해선 AA 레이드를 깨야 하는데 AA 레이드를 깨기 위해선 YY 장비 셋을 맞춘 6성 캐릭터 몇개가 필요하다 뭐 이런 게 없어요. 플레이어는 그냥 언제나 적당히 깰 수 있는 스테이지로 보내집니다. 랜덤한 도전 과제가 나오는 딜 측정 컨텐츠인 흑문 시련은 0에서 시작해 점점 난이도가 높아지는 컨텐츠로 스펙을 올리면 더 멀리까지 가서 더 많은 점수를 얻을 수 있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점수에 따라 보상이 올라가긴 하지만 그 변별력이 굉장히 미미하지요. 수직 성장 컨텐츠는 있는데, 수직 성장을 요구하거나 활용하는 플레이 컨텐츠는 없는 묘한 게임입니다.[각주:4]



유일하게 수직 성장을 요구하는 컨텐츠로는 '기억 전당'이 있습니다. 1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 '기억' 들이 순차적으로 배치되어있어서 기억의 흐름에 따라서 또한 한 기억 내에서도 스테이지의 흐름에 따라 요구 스펙이 점점 증가하는 구성입니다. 위 스크린샷을 예로 들자면 좌상단의 '플로라의 기억'을 깨야 하단의 '웬지의 기억'이 열리고, 우측의 '베라의 기억'은 플로라를 깬 상태에서 '베라'의 스토리를 클리어해야 열립니다. 이 순서에 따라 베라 > 웬지 > 플로라 순으로 요구 스펙이 높아지고 각각의 기억 내에서도 1스테이지부터 10스테이지까지 요구 스펙이 점차 증가합니다.

각 기억의 10개 스테이지를 모두 클리어하고 나면 해당 캐릭터나 해당 캐릭터의 스킨을 얻는데, 이 캐릭터와 스킨은 가챠로도 얻을 수 없고 오직 기억 전당의 클리어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개발사는 일반 플레이는 캐주얼하게 즐기면서 이 기억전당의 유니크한 보상을 통해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를 부여받고, 수직 성장을 체감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문제는 기억 전당이 수직 성장의 보람을 느끼는 컨텐츠라기 보다는 오히려 수직 성장의 정체감만 느끼는 컨텐츠로 동작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기억전당 초반부는 요구 스펙이 조금씩 늘어나며, 이는 초반의 레벨업과 성급 성장으로 쉽게 돌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요구 스펙의 격차가 커지는 반면 성장은 둔화됩니다. 성급 성장은 가챠로 금방 고갈되어버리고 레벨업과 장비 성장으로 스펙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둘 다 일간 플레이 횟수와 획득량이 제한되어있고 성장에 의해 보상이 늘어나지 않는 구성이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성장 정체에 빠지는 반면 사용자 입장에선 이를 해결할 방법이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수직 성장 속도가 둔화되는 것 자체는 수직 성장이 있는 게임에선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지만, 컨텐츠의 반복 가능성과 보상 구조에서 영7의 기억 전당은 구조적인 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다른 게임들은 이미 클리어했거나 클리어할 수 있는 컨텐츠에선 계속해서 보상을 주고 있습니다. 단지 다음 스테이지를 깨서 더 나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못할 뿐이죠. 하지만 영7의 기억전당이 주는 보상은 클리어 할 때 한번만 주어집니다. 보상을 한번 받고 나면 그 스테이지는 더 이상 플레이할 수도 없고 보상을 받을 수도 없어요. 성장의 결과에 대한 보람은 휘발되어버리고 계속해서 깨지 못해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부정적인 경험만 남게 되는 거지요.

수집형 게임으로써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캐릭터를 갖고 노는 재미에 집중한다는 방향 자체는 일본의 가챠 게임을 어느 정도 벤치마킹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본 게임들도 플레이의 누적이 게임 내에서의 나은 보상으로 연결되는 고리는 기본적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고 난이도에서 나오는 보상이면 신캐를 금방 키울 수 있고, SSR을 적당히 가지면 최고 난이도까지 올라가는 과정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으며, 최고 난이도의 컨텐츠를 추가하는 빈도가 낮기 때문에 성장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을 뿐이지 성장에 대한 댓가는 착실하게 돌려주고 있습니다. 영7처럼 극단적으로 성장과 보상의 루프를 날리진 않았어요.


5-5. 성장과 무관한 이벤트 구성

성장은 있으나 성장을 부추기지 않는 이 묘한 감성은 이벤트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중국의 도탑전기류 게임과 일본의 가챠 게임은 이벤트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상이합니다. 앞서 몇번 말씀드렸지만 간단히 요약하자면 중국 게임의 이벤트는 기존 컨텐츠를 활용하는 추가 미션 형식입니다. 일본 게임의 이벤트는 기간 한정으로 제공되는 번외 추가 컨텐츠이며, 특히 이벤트의 빠른 클리어를 통해 성장의 보람을 전달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소녀전선이나 벽람항로와 같은 중국산 칸코레류 게임의 경우엔 성장이 도움을 주는 추가 번외 컨텐츠라는 점에선 일본 게임과 유사합니다만 값싸게 만들어 빨리 소비시키는 단기 컨텐츠가 아니라 몇달에 한번 대규모 사이즈로 투입되어 개발사도 유저도 가진 자원을 왕창 태워버리는 초대형 스케일이라는 점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지요.


영원한 7일의 도시도 출시 1개월 정도 경과한 이후부턴 계속해서 최소 1개의 이벤트를 진행중입니다만, 이벤트의 성격에선 앞서 언급한 중/일/칸코레류와는 조금씩 중첩되지만 어느 하나에도 해당하지 않는 특이한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각각의 이벤트에 고유한 이야기가 걸려있고 이벤트에서만 얻을 수 있는 고유한 보상을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이벤트에 대한 고유한 컨텐츠가 존재한다는 점은 일본식에 가깝습니다. 위 영상은 슈타인즈 게이트 콜라보 이벤트인데요, 콜라보 전용 컨텐츠가 있고, 이 컨텐츠를 플레이 해 얻는 보상을 쌓아올려서 최종적으로는 한정 캐릭터인 긴타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다른 2종의 콜라보 캐릭터는 가챠에서만 나오지만 긴타로는 이벤트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이벤트에서 수직 성장의 효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은 중/일/칸코레류 등 어느 쪽과도 구분되는 특성을 보입니다. 전투가 중간 중간 끼어있긴 하지만 전투 자체가 메인 컨텐츠는 아닙니다. 자연회복되는 이벤트 행동력을 소비하는 액션을 통해 이야기를 보고 보상을 받는 것이 핵심입니다.  전투는 그 과정에 양념처럼 들어가있을 뿐, 전투 난이도가 이벤트의 진행을 가로막는다거나 고난도 전투에 도전해 더 나은 보상을 받아 이벤트를 빨리 졸업할 수 있게 하는 장치들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슈타게 콜라보 이벤트가 난이도/보상을 나눴으나 그 변별력은 미미했습니다.) 이벤트 조기 완료의 열쇠는 플레이어의 성실성입니다. 이벤트 행동력을 돈으로 살 수 없고, 6~8시간 분량 이상으로는 쌓이지 않기 때문에 상한을 초과되어 날리는 분량 없이 계속해서 행동력을 써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런 이벤트 구성들은 기본 상설 컨텐츠가 비교적 느리게 추가되며 빨리 소진되는 와중에 계속해서 접속해서 플레이하며 놀 거리를 던져주며 그 보상으로 아직 성장이 더딘 무과금, 저과금, 뉴비들을 끌어올리고는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로는 성장에 대한 보람을 체감하지는 못하게 한다는 점에선 일본 게임과 큰 차이가 있지요.


5-7. 게임이라기 보단 전자 피규어 전시장과 같은 구성

개발사 입장에선 이 게임을 수집형 액션 RPG가 아닌 연애 어드벤쳐 게임으로 봐달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만, 그 관점에서 봐도 게임을 계속 플레이하는 것에 대한 동기 부여가 약합니다. 매 달 1개의 스토리라인과 3개의 엔딩(퍼펙트 엔딩, 해피 엔딩, 실패 엔딩)이 추가되는 페이스인데 그래봤자 2~3일이면 공략이 나오고 금방 고갈되어버립니다. 이론상으로는 게임 시간 1일치 분량의 행동력을 얻는데 물리적 시간으로 1일이 걸려 2개 엔딩을 보는데 보름이 소비되어야 하지만 이벤트 등으로 행동력이 추가 공급 되기 때문에 그보다 훨씬 빨리 스토리가 고갈되는 것이죠.

사실 스토리 컨텐츠가 고갈되는 것 보다 더 큰 문제는 게임을 왜 계속 플레이해야 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캐릭터 레벨이든 장비든 게임을 플레이 하면 그 결과로 캐릭터가 성장하는 장치는 존재하는데, 이 장치가 게임 플레이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진행해나가면 경험치가 쌓이고 레벨이 올라가고 장비가 쌓여서 조금 강해진다는 느낌은 있지만 어차피 성장이 스토리 진행을 가로막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플레이 했건 하지 않았건 새로운 스토리를 보는 데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파밍 컨텐츠인 시공난류 역시 자동적으로 나와 유사한 전투력을 가진 파티와 함께 오토로 컨텐츠가 술술 깨지죠. 랜덤한 도전과제가 나오는 딜 측정 컨텐츠인 흑문 시련에선 성장이 느껴지긴 하는데 보상의 변별력이 약하기 때문에 스펙을 높여서 고득점을 올리고 랭킹에 올라갈 필요성은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7은 게임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전자 피규어 전시장과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매 달 새로 나오는 캐릭터가 이뻐서 갖고 싶고, 30~50만원 정도 들여서 뽑으면 며칠 갖고 노는 재미는 있지만 그 '갖고 놈' 이상의 즐거움을 주지 못하는 것이죠. 지속적인 성장을 핵심 동력으로 삼는 중국 게임은 물론이고, 수집에 의미를 두는 일본 게임과 비교해도 수집 이상의 재미를 주지 못합니다. 발매 초반 30위권에 머무르다 미쿠 콜라보로 10위권 안쪽까지 찍었음에도 이후 100위권 밖으로 밀려나 신캐 나올 때만 40위권 정도에 하루 이틀 머무르고 있는 지금 성적이 이런 컨텐츠 구성이 갖고 있는 한계를 방증한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5-8. 수직 성장 컨텐츠의 강화

그런 문제를 인식한 것인지, 2월 이후의 업데이트에선 수직 성장을 강조하는 컨텐츠가 많이 보강되었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능력해방' 입니다. 위 스크린샷 처럼 각 캐릭터마다 생명력, 공격력(물공캐는 물공, 마공캐는 마공), 방어력(물방마방 공통) 세가지 항목에 대해 레벨이 존재합니다. 각 항목에 대응하는 재료를 소모해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리면 그에 따라 캐릭터 능력치도 더해집니다. 그리고 세 항목 모두 현재의 단계에서의 만렙을 찍으면 다른 희귀 자원을 소비해 다음 해방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이 능력해방에 쓰이는 자원은 요일 던전을 통해 수급하도록 구성했습니다. 3가지 능력치는 각기 3개의 속성에 대응하고 매일 그 중 한 종류의 속성 던전이 오픈됩니다. 10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 높은 난이도에 도전할수록 더 많은 양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만 속성별 3캐릭씩만 있으면 되고 난이도 상한이 높지 않기 때문에 부담을 느낄 정도로 하드코어한 컨텐츠는 아닙니다. 특히 이 요일 던전은 랜덤하게 절차적으로 생성되도록 하여 반복에 의한 피로를 덜 느끼도록 구성되어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템 파밍에 있어서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일단 여러 캐릭터가 같은 장비를 동시에 장착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이전엔 일반적인 다른 게임들 처럼 1개 장비를 1개 캐릭터에만 장착할 수 있었기 때문에 장비 파밍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돈을 마구 쏟아부어 가챠에서 장비를 왕창 뽑아내지 않는 한, 소수의 주력 캐릭터에만 좋은 장비를 채울 수 있었죠. 하지만 이젠 여러 캐릭터가 같은 장비를 장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종류별로 1개씩만 최고 등급으로 키워내는 것으로 장비 파밍의 양이 줄었습니다.


대신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가 강화되었습니다. 캐릭터 전용 장비 자체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주로 신캐 출시에 맞물려서 해당 캐릭터의 특성을 강화할 수 있는 특수 효과가 붙은 전용 장비를 가챠 구입에 따라오는 마일리지 포인트나 이벤트 보상 등으로 지급했죠. 이 전용 장비를 모든 캐릭터에 확대 적용하면서, 전용 장비 성장 시스템을 추가하였습니다. 장비 자체의 레벨 외에 전용 장비 싱크로 레벨에 따라 특수 효과가 더 증가하거나 추가되는 형식입니다. 예를 들어 위 스크린샷에 나온 긴타로의 전용 장비의 경우 기존엔 공격시 일정 확률로 위성 레이저 공격을 발생시키는 효과만 붙어있었었습니다만 개편 이후엔 해당 효과를 싱크로 1레벨에 부여하고 싱크로 2레벨이 되면 기존 효과에 더해서 교체 에너지를 사용해 이 캐릭터로 전환될 때 4초간 소유한 신기사의 데미지를 20% 올려주는 효과가 추가됩니다. 싱크로는 9단계까지 있으며 성장시킬 수록 더더욱 강해집니다. 싱크로 레벨을 올리기 위한 경험치는 캐릭 전용 장비 조각을 소비해서 획득할 수 있는데 다른 캐릭 전용 장비의 조각을 소모해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지만 동일 캐릭터 장비의 조각이나 만능 장비 조각을 사용하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퍼즐 앤 드래곤에서 같은 속성의 몬스터를 재료로 쓰면 더 많은 경험치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 전용 장비와 짝을 맞추는 컨텐츠로는 고난도 레이드인 시공안개가 추가되었습니다. 3명의 플레이어가 각자 3명의 신기사를 데리고 들어가는 컨텐츠로 랜덤한 장소에서 열리는 문을 닫는 최훼흑문(위 영상), 3방향에서 들어오는 적을 막아내는 은정시공, 상자를 호위하는 수심정광 3가지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3가지 스테이지 X 3가지 속성으로 총 9개 조합 중 1개가 매 주 로테이션 되면서 제공됩니다. 3개 스테이지 모두 중간 과정에서 스폰되는 적의 종류와 위치 등에 요소에 랜덤한 변수가 많이 섞여있어 동일 스테이지를 반복하더라도 플레이 경험에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3개 스테이지 모두 최종 보스는 동일하지만 보스 패턴이 아주 강력하기 때문에 여전히 도전적이며, 각 스테이지의 맵 형상에 의해 공략법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만신전과 마찬가지로 여러번 반복하더라도 반복 피로를 느끼기 힘든 구성이죠.


시공안개는 보통 - 어려움 - 악몽 - 지옥의 4가지 난이도로 나뉘며 난이도에 따라 특정 캐릭 전용 장비 혹은 만능 장비 조각를 구입하는데 필요한 시공 포인트를 차등 지급합니다. 지옥 난이도에선 판당 2500점 가량이 지급되어, 일주일 한도인 10판 클리어하면 전용 아이템을 1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난이도 편차가 큰 만큼 보상 편차도 커서 악몽 난이도는 판 당 1500점 가량을 지급합니다. 성장과 보상의 루프를 이전보다 확실하게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한편 이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는 게임의 수익성 증대에도 기여하고 있습니다. 일단 특정 캐릭 전용 장비 가챠가 추가되었습니다. 장비가 꽝으로써 섞여나오던 일반 가챠와 달리 특정 캐릭터 전용 장비 혹은 그 조각이 드랍되기 때문에 시공 안개에서의 시공 포인트 수급이 갑갑한 사용자들을 욕구를 충족시킵니다. 그리고 캐릭터 전용 장비의 등급 성장 또한 매출 견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 전용 장비는 보라색이며  합성 재료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캐릭터 전용 장비의 패시브 효과는 특수 효과로 취급되기 때문에 코스트 대비 능력치가 일정 수량 낮게 책정되어있는 데다 기본 등급도 보라색인 상태에선 일반 금색 장비보다 전투력이 떨어집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선 캐릭터 전용 장비도 금색으로 승급시켜야 하는데 캐릭터 전용 장비는 '합성'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진화'를 사용해야 합니다. 이 진화는 희귀 아이템을 갈아서 획득할 수 있는 희귀재료 혹은 가챠를 7개 구입할 때 마다 얻는 마일리지 포인트를 소진합니다. 희귀 아이템을 빠르고 쉽게 얻는 법은 가챠이고, 마일리지 포인트를 입수하는 방법도 가챠입니다. 매 달 30~50만원으로 신캐 뽑고 나면 살 게 없는 게임에서 새로운 '지를 거리'가 추가된 것이죠.


한편 수직 성장 컨텐츠를 강화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수직 성장 컨텐츠인 기억 전당에도 약간의 개선이 있었습니다. 스테이지를 클리어하지 못한 채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일정량 수치를 올려주는 버프가 붙도록 한 것이죠. 이는 유저 개인이 느끼는 정체감을 일정 부분 덜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억 전당에서만 얻을 수 있는 신캐 / 스킨을 즐길 수 있는 유저의 폭을 넓혀줌으로써 비싸게 제작한 신캐 / 스킨의 활용성을 높입니다. 여기에 물리적인 시간을 장벽으로 세움으로써 핵과금 고인물의 기득권도 설득력있게 보호해주면서 말이죠.


5-9. 수집형 게임에 대한 실험은 현재진행형

영원한 7일의 도시는 여러모로 굉장히 특이한, 실험적인 게임입니다만 이 실험은 결국 생산 단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고퀄리티 3D 게임을 어떻게 하면 장기간에 걸쳐 적은 비용으로 운영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안정적인 장기 운영이라는 측면에선 시간이 지날수록 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유저 성장의 양극화가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수직 성장 중심의 게임이 아닌, 수평 성장 중심의 수집 게임이라는 방향이 도출됩니다. 컨텐츠 생산 비용 문제는 캐릭터의 성급 성장을 뚫어서 활용성을 높이고 플레이 컨텐츠는 절차적으로 생성시키거나 절차적으로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해결하지요. 수직 성장의 스트레스가 낮기 때문에 컨텐츠에 대한 기대 또한 낮다는 것도 컨텐츠를 재활용할 수 있는 자산이 되었지요.

첫 달 이후 200위권 밖에서 돌다 신캐가 가챠에 포함될 때에만 이틀정도 50위권 안에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시도가 시장에서 성공한 것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이나 MMORPG의 흥행을 보면 중국 시장은 수평 성장 보다는 수직 성장의 즐거움에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 같네요. 물론 수집형 게임인 FGO는 중국에서도 신 가챠 투입시 2위까지 오르곤 합니다만 그건 깡패 IP를 끼고 있으니까 예외로 쳐야겠죠.

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단 6개월 사이에 게임이 수직 성장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180도 바뀌었거든요. 오픈 스펙과 비교하면 거의 리부트라고 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변화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는 겁니다. 컨텐츠와 자원이 추가되고 게임을 운영하는 메타가 바뀌었지만 그 과정에서 플레이어가 가진 자산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따라오지 못하면 뒤쳐진다거나, 모아뒀던 것들이 무가치하게 되는 일 없이 게임을 더 재미있게 만드는 컨텐츠들이 늘어났고 이를 따라가는 것 만으로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향이 바뀌었어요.

사실 신캐 가챠가 유일한 소득원인 상황에서 돈만 생각한다면 훨씬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습니다. 캐릭터를 더 많이 파는 것입니다. 오픈 이후 1개월에 한번 3개 정도의 캐릭터가 추가되고 이 중 2개가 가챠에 배당됩니다. (1개는 기억 전당 보상으로 풀립니다.) 문제는 가챠에서 이 신캐 2종을 획득하는데 드는 30~50만원 정도 되는데 이 이상 돈을 쓸 곳이 없다는 것이죠. 더 많은 캐릭터를 더 자주 가챠에 추가하면 매출은 오릅니다. 기억 전당에 얹을 캐릭터를 가챠에만 넣어도 신캐 올클리어 비용이 올라갑니다. 혹은 2~3마리를 한꺼번에 넣을 것이 아니라 2주 단위로 흩어 넣어도 매출을 올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저항이야 있겠지만 복잡한 속성-직업 메타가 있기 때문에 파워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서도 상품 가치를 일정 시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넷이즈는 이런 쉬운 길이 아닌 정공법을 택했습니다. 캐릭터를 뽑아서 갖고 논다는 핵심 컨셉은 버리지 않고 유지하면서 그 위에 수직성장을 자연스럽게 얹어놓고 있어요. 혹은 수직 성장이 원래 컨셉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 전용 장비만 하더라도 돈만 생각한다면 능력치를 강하게 설정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오히려 능력치는 낮춰 잡고 다양한 패시브 효과로 원래 캐릭터가 가진 특성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사실 돈만 놓고 본다면 넷이즈 같은 거대 기업이 2차원 게임이라는 니치 마켓에 뛰어든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듭니다. 심지어 믿을만한 IP도 없이 말이죠.(텐센트는 전격문고와 계약해 전격문고: 영경교조 电击文库:零境交错를 준비중이고 넷이즈는 이미 어떤 마법의 금서목록(魔法禁书目录)을 출시하였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7일의 도시를 사업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실험 프로젝트라고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기존 도탑전기류는 물론 음양사와도 다른,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새로운 수집형 게임의 디자인을 라이브 상에서 테스트하고 수정해볼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죠. 어차피 돈은 몽환서유와 음양사가 넘치도록 벌어주고 있으니까요.

영7은 제가 개인적으로 매우 사랑하는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도 재미있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디자인 적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이를 수정해나가는 과정을 살펴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행복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한국 서비스가 개시되는 만큼 다른 분들도 한번 이 실험의 관찰에 동참해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6. 정리

이상으로 도탑전기를 베이스로 하지 않은 중국의 수집형 RPG 게임 3종의 구조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 게임들은 캐릭터의 수집 경로를 가챠로 한정하면서 등급을 강하게 구분짓고, 캐릭터의 수직 성장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둬서 지속적으로 퉁비하는 새 캐릭터를 판매하며, 플레이를 통한 수직 성장으로 장기적인 플레이를 유도한다는 공통된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를 실행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각기 차이를 두고 있습니다.

창람경계의 경우는 일본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속성 메타와 중국 게임이 중시하는 가챠 가치 보장과 깊은 수직 성장을 더해놓은 게임입니다. 하지만 양쪽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융합되기 보다는 단순하게 접합되었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꽝을 다른 카드 육성에 사용하지 못하고 해당 카드의 한계 돌파만으로 제한함으로써 오히려 꽝의 가치가 떨어지고 캐릭터 육성만 힘들어졌습니다. 대신 지급하는 마일리지는 사실상 아무런 가치가 없구요. 수직 성장은 그 중요성에 비해 체계가 굉장히 빈약합니다. 수직 성장의 깊이에 비해 성장 축의 종류도 적고 그 단계도 너무 듬성 듬성 나눠져있습니다. 강캐 뽑은 걸로 한방에 쭉 하고 밀고 나가는 재미도 없고, 캐릭터를 차근차근 키워나가는 재미도 없습니다.

음양사는 꽝을 갈아서 당첨캐에 밀어넣는다는 일본식의 BM에 꾸준한 플레이와 그로 인한 성장을 중시하는 중국의 개념을 합쳐놓았습니다. 그 템포가 경쾌하지 못하다는 인상은 있지만, 중국에선 납득할만한 템포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장에 관해선 가챠를 통한 캐릭터의 수집 외에 플레이를 통한 장비 수집의 재미를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특기할만합니다. 사실 장비 수집을 통해 성장한다는 개념 자체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더 강하고 강한만큼 얻기 힘든 장비를 획득해나가는 수직 성장이 아닌, 개성 넘치는 장비들을 캐릭터와 조합함으로써 다양한 가능성을 확보해나가는 수평 성장으로 풀어낸다는 점이 신선합니다. 또한 이 과정을 어혼 세트 맞추기 -> 등급 높이기 -> 옵션 맞추기 등으로 세분화해서 꾸준히 일정 단계의 성취를 느끼고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도록 끌어간다는 점이 굉장히 탁월합니다.

영원한 7일의 도시는 쌓인 꽝을 주요 캐릭터 육성 재료로 활용한다는 방향은 일본식에 가깝지만 이를 도탑전기와 유사하지만 더 캐주얼한 방향으로 풀어냈습니다. 캐릭터를 더 자주 많이 배출할 수 있다면 훨씬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성장 체계에 있어서는 캐릭터의 수집에 의한 수평 성장을 극단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수직 성장이 존재하지만 이를 강요하지는 않고 다양한 캐릭터를 수집하고 조합하면서 갖고 노는 재미를 강조한 게임이었죠.  하지만 수집 게임 치고는 핵심 상품인 캐릭터가 너무 늦게 그리고 적게 공급되어 수익성이 나쁩니다. 그리고 수직 성장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는 만큼 수직 성장에 대한 동기 부여도 약했죠. 최근은 개성적인 캐릭터 수집의 재미라는 컨셉을 유지하면서도 수직 성장을 강조하고는 있습니다만 그게 어느정도의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음양사를 제외하고는 아직 중국에서 성공적인 수집형 RPG가 나오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고 음양사를 카피해서 성공한 게임도 나타나지 않았고 음양사를 성공시킨 넷이즈 조차도 음양사를 베이스로 신작을 만드는 게 아니라 영7을 통해 새로운 디자인을 시험하고 있습니다. 수집의 재미와 중국이 좋아하는 수직 성장의 재미를 서로 교차시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가 봅니다.






  1. 10연 가챠에서 4성이 하나도 없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부적으로는 보정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본문으로]
  2. 5성 확률이 3%이니 아무 5성 하나 띄우는데엔 33.3가챠가 필요합니다. 1가챠 당 청옥 300개이니 5성 하나 당 청옥 1만개 정도가 쌓입니다. [본문으로]
  3. 도탑전기류와 달리 특정 캐릭터 전용 조각을 모아봤자 해당 캐릭터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획득한 이후에 성급 성장 재료로만 사용됩니다. [본문으로]
  4. 최근 흑문시련은 난이도를 높여가면서 도전할 수 있는 주간 컨텐츠로 변경되었습니다만, 글을 작성한 시점은 그보다 이전입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8. 6. 27. 14:09

원래는 이렇게 거창한 제목으로 큰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며칠전 소개한 영원한 7일의 도시와  '창람경계(苍蓝境界)' 가 기존의 중국식 도탑전기 게임과 다른 가챠 BM을 가지고 있기에 그 차이점을 한번 짚고 싶었을 뿐이죠. 하지만 그 차이점을 설명하자면 기존의 도탑 전기 모델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했고 그 차이점의 근원이 되는 일본식 가챠 게임의 모델을 설명해야 하더군요. 그러다보니 일-중 수집형 RPG의 캐릭터 판매 BM 및 게임 디자인 전반에 대한 총론의 형식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2부도 추가되었습니다.


1. 일본식 가챠 게임 모델

아무래도 이 수집형 게임의 캐릭터 판매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선 먼저 가장 기본이 되는 일본식 가챠 게임 모델을 훑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최근 출시되어 제가 요즘 플레이 중인 섬란 카구라 시노비 마스터즈 (이하 시노마스)를 주로 예시로 다루겠습니다만, 디테일엔 차이가 있을 지언정 큰 틀에선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일본식 구조를 설명하는데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됩니다. 일본식 가챠 게임 모델은 제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직접 플레이하고 분석한 것 외에 일본 서비스 진행하면서 배운 것들, 주변에서 주워 들은 내용이 포함되어있습니다.


1-1. 과금자 중심의 가챠

수집형 게임을 수집하고 즐기는 형태의 게임이라고 정의할 때, 이 장르에서 일본식 모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캐릭터의 수집이 가챠로 한정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스토리 진행이나 이벤트를 통해 제한적으로 캐릭터가 공급되긴 하지만 이는 1회성이고, 캐릭터를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루트는 가챠 뿐입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보시는 대로 플레이 보상으로 얻어지는 것은 골드나 육성에 필요한 재료일 뿐, 게임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캐릭터는 드랍되지 않습니다. 플레이 보상으로 지급되는 것은 플레이 토큰으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원하는 캐릭터의 경험치를 높이는데 사용할 수 있는 경험치 전용 캐릭터와 기타 컨텐츠에 사용할 수 있는 자원입니다. 캐릭터는 가챠를 통해서만 획득할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가챠로 판매되는 캐릭터들의 희귀도에 대한 구분이 엄격하다는 것 또한 특징입니다. 일단 위 그림에서 보시는 것 처럼 기본 스펙차이도 클 뿐더러, 등급이 낮은 캐릭터는 성장 한도도 낮습니다. 등급을 높이는 방법은 아예 없거나 1단계 정도로 제한됩니다. 등급은 곧 성능이고, 이 등급에 의한 우열은 절대로 바뀔 수 없습니다.

가챠 외에 플레이를 통해서도 1~2성의 낮은 성급의 캐릭터를 얻을 수 있고, 이 캐릭터들을 합성해서 희귀 캐릭터를 얻을 수 있으며 이들을 다시 진화 등으로 쌓아올리는 한국 게임에 익숙한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등급에 따라 성능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캐릭터의 획득을 유상 컨텐츠로 한정한 구조가 상당히 가혹하고 불공정해보일 수 있습니다. 또한 플레이를 통해 얻은 자원으로 육성한다고 해도 가챠에서 발생하는 원치않은 결과물들을 레벨업 재료로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육성의 재미가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런 공정성이나 육성의 재미에 대한 시비는 사실 무의미합니다. 일본식 가챠 게임 모델은 애초에 그런 '공정함' 혹은 '육성'에서 오는 재미를 포기하는 대신 수집의 결과를 갖고 노는 재미에 초점을 맟주고 있거든요.


1-2. 보상과 육성을 단순화

세나로 대표되는 한국식 수집형 RPG나 퍼즐 앤 드래곤(이하 퍼드)과 같이 기본적으로 무상 플레이로 획득과 육성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임에서 게임에서 캐릭터를 상품으로 판매한다는 것은 실제로는 시간단축 서비스를 판매한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이 시간단축 서비스는 그만큼 무상 플레이에 의한 획득 / 육성이 충분히 물리적으로 길어야만 구매자에겐 상품으로서의 매력을, 비구매자에겐 구매자가 누리는 혜택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게임은 기본적으로 수직 성장을 전제로 한 길고 깊은 성장 구조와 이에 대한 도전 욕구를 자극하고, 성취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있는 컨텐츠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반면 일본식 가챠 게임에서 육성은 게임의 핵심이 되는 목표라기 보다는 플레이를 담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보상에 가깝습니다. 플레이를 통해 육성에 필요한 자원을 얻는 과정이 있고, 이 자원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캐릭터의 레벨을 올리고 능력치를 올리는 구조는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도 스테이지로 갈수록 요구 스펙이 높아지고 보상이 좋아지는 구조도 있지요. 하지만 반드시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동작하지는 않습니다. 깰 수 없는 스테이지를 굳이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달까요.


위는 시노마스의 초급 6장 7화와 중급 6장 7화의 보상 안내입니다. 3개 난이도가 각기 7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된 6화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즉, 초급의 최종 스테이지와 중급의 최종 스테이지인 셈인데, 보상 항목이 동일합니다. 물론 상위 난이도로 갈수록 좋은 보상을 좀 더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만 하위 난이도라서 받을 수 없는 보상은 없습니다.[각주:1] 그리고 보상이 늘어나는 만큼 행동력 소비도 높아지기 때문에 낮은 난이도를 돌게 되면 약간 더 귀찮아지긴 하지만 시간대비 효율에서 아주 크게 손해를 보지도 않습니다. 한판에 소모되는 행동력이 30분 이상의 자연회복분이기 때문에 빠르면 12시간 노가다가 18시간으로 늘어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냥 2시간에 한번씩 들어왔을 때 2분짜리 2판하고 마느냐 1판 더하느냐 정도의 차이에요. 깰 수 없는 스테이지를 깰 수 없기 때문에 얻지 못하는 것은 첫 클리어시 보상으로 주어지는 약간의 공짜 젬 이거 하나 뿐입니다.


보상 구조만큼이나 성장 구조 또한 짧고 단순합니다. 가챠로 얻은 꽝이나, 플레이를 통해 얻는 강화 전용 재료를 소모하지만 24시간 내내 돌려도 부족할만큼 막대한 양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예 손 놓고 있었다면 모를까 적당히 플레이했으면 SSR 얻었을 때 바로 만렙을 찍을 수 있는 정도입니다. 이전에 좋은 카드가 있었으면 잉여 자원이 더 많을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새 카드를 얻었으니 이전보단 자원을 좀 더 빠르게 모을 수 있겠죠. 특히 시노마스의 경우는 플레이 자체로는 캐릭터에게 경험치가 주어지지 않고 카드를 먹여야만 경험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새로 얻은 쪼렙 캐릭터를 굳이 덱에 구겨넣고 평소 돌던 것 보다 쉬운 (보상이 적은) 난이도에 도전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장기 플레이에 대한 인센티브로 저빈도 고효과의 성장 컨텐츠를 두기도 합니다. 시노마스의 경우 최대 레벨을 달성하고 나면 각성 재료를 사용해 등급을 한칸 올릴 수 있는데요, 위에서 보시는 것 처럼 SSR이 UR이 되는 것 만으로 주요 수치가 거의 40% 가량 상승합니다. 레벨 한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각성 이후 만렙을 찍으면 능력치 차이는 더 커집니다. 각성에 필요한 각성 재료는 주로 전용 스테이지에서 드랍되긴 합니다만 이게 요일별로 제한은 있어도 행동력 외에 플레이 횟수 제한은 없기 때문에 오래 플레이해서 충분히 쌓아뒀다면 바로 패스할 수 있지만 없다고 해도 물량 채우는 게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습니다.


1-3. 비상설 컨텐츠인 이벤트를 강조

플레이한다고 좋은 캐릭터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캐릭터를 얻는다고 못 얻을 보상을 얻거나 육성이 엄청나게 짧아지는 것도 아니며, 육성에 필요한 자원이 항상 부족해서 계속 파밍하고 있을 이유도 없는데 왜 좋은 캐릭터를 얻기 위해 돈을 쓰고 게임을 꾸준히 플레이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해답은 일본 가챠 게임에서 중시하는 이벤트 컨텐츠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게임 내에 기본적으로 쌓여있는 긴 성장 구조를 따라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기간 한정으로 운영되는 이벤트 컨텐츠를 완수하는 것으로 목표를 부여하고, 이에 대한 보상을 지급하는 것이죠.

위 스크린샷은 시노마스 오픈과 동시에 진행된 '두근! 풀에서 닌자 특훈'(이하 풀 특훈) 이라는 이벤트로 일본식 게임 이벤트의 가장 전형적인 구성을 보여줍니다. 12월 25일 17시까지 진행되는 이벤트로 5개의 스페셜 스테이지가 제공되며, 보상으로 수영복 T셔츠 의상과 기지를 풀사이드로 꾸밀 수 있는 자원이 지급되지요.

이벤트를 이끄는 핵심 동력은 이벤트 보상의 고유함입니다. 기존의 상설 컨텐츠에서도 얻을 수 없고, 돈으로도 살 수 없는 보상이 이벤트에서 지급되기 때문에 무과금 사용자건 폐과금 사용자건 이벤트에 참여하게 됩니다. 위의 풀 특훈에서 지급하는 보상은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 단순 꾸미기 아이템입니다만, 게임에 따라서 / 이벤트의 강도에 따라서 SSR급 캐릭터나 장비와 같이 게임 상 도움이 되는 보상을 걸기도 합니다. 단순 기념품이든 게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중요 게임 토큰이든 간에 특정 이벤트에서만 제공된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난이도 차이에 대한 보상의 변별력이 낮은 것은 이 이벤트 보상에도 적용됩니다. 메인 컨텐츠에서 스펙이 부족해 깰 수 없어서 받을 수 없는 보상이 없었던 것 처럼, 이벤트의 보상 또한 난이도 - 스펙을 통해 획득을 제한하는 방식으로는 설정되지 않습니다. 이벤트의 고유 보상을 획득할 기회는 모두에게 열려있는 대신, 이 보상을 획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의 차이로 스펙 - 바꿔 말하자면 플레이어가 지불한 돈과 시간 - 에 대한 변별력을 만듭니다. 위의 풀 특훈의 경우, 1스테이지를 깨든 5스테이지를 깨든 획득할 수 있는 보상의 종류는 동일하지만 5스테이지를 깨는 쪽이 보상 량이 좀 더 많아서 더 적게 플레이하고도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이벤트에서의 변별력은 이벤트 스테이지 클리어를 통해 획득하는 포인트의 누적량으로 이벤트 한정 카드를 포함한 보상을 받아가는 우타 마크로스의 이벤트가 조금 더 잘 나타내줍니다. 우타 마크로스의 이벤트는 누적 포인트 보상과 랭킹 포인트 보상으로 2개의 보상 테이블을 갖고 있는데 누적 포인트 보상의 경우 누구라도 자연 회복분을 잘 사용하면 충분히 이벤트 한정 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지만 이 이벤트 한정 카드를 7성으로 풀초월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은 랭킹 보상에 배치함으로써 캐주얼한 성향의 저과금 사용자와 고과금의 하드코어한 사용자들 양쪽 모두에 목표를 부여합니다.


1-4. 이벤트를 중심으로 한 컨텐츠 소모

이런 이벤트 자체는 낯설지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 명절, 서비스 X개월 / X년 등 특정 시즌에 종종 진행하곤 하니까요. 하지만 일본 가챠 게임은 이 이벤트들을 1년 365일 항상 돌리고 있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위 스크린샷을 보면 '두근! 풀에서 닌자 특훈'과 '노멘의 전투 머신' 2개의 이벤트가 돌고 있지요. 이벤트 한정 보상 뿐만 아니라 기본 보상도 상설 컨텐츠보다 푸짐하기 때문에, 상설 스테이지의 초회 클리어 보상 무료 젬을 회수하고 나면 플레이어들은 이벤트 컨텐츠 플레이에 집중합니다. 열려있는 이벤트를 순서대로 클리어하고 있으면 예전 이벤트가 종료되고 새 이벤트가 추가되죠.

수직 성장 중심의 게임에서 컨텐츠는 플레이어의 성장 단계에 맞춰 배치되고, 플레이어의 성장 정도에 종속되어 소비됩니다. 아직 깰 수 없는 구간의 컨텐츠는 플레이할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성장이 둔화되는 구간에 진입하게 되면 컨텐츠 소비도 둔화되고, 허들을 넘기 전까진 같은 컨텐츠를 반복할 수 밖에 없죠. 배치된 컨텐츠의 절대 양과는 관계 없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쉽습니다. 새 컨텐츠를 배치한다고 해도 많은 양의 돈과 시간을 투입해 기존의 컨텐츠를 소진한 최상위 구간의 사용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할당되어 하위 유저에겐 전달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하위 구간에 신규 컨텐츠를 배치하게 되면 해당 컨텐츠는 순식간에 소비되어버리고, 특히 최상위 사용자들이 겪고 있는 컨텐츠 고갈이 해결되지 못합니다.

단기 이벤트 중심의 컨텐츠 운영은 이 문제를 회피할 수 있는 묘책이 됩니다. 최상위 사용자를 위한 상설 컨텐츠를 업데이트하기 보다는 모든 성장 단계를 커버하는 비상설 컨텐츠를 자주 공급함으로써 전체 사용자가 지속적으로 새 컨텐츠를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끝없이 성장하는 장기 목표 대신 일주일 정도의 짧은 단기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스트레스 없이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게 하되, 이 컨텐츠를 빠른 주기로 계속 공급함으로써 꾸준히 질리지 않고 새 컨텐츠를 즐길 수 있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게임의 상설 컨텐츠는 성장 단계를 확인하는 시험대 정도의 역할이고, 짧은 주기로 끊임없이 제공되는 이벤트가 게임의 핵심 컨텐츠가 되는 것이죠.

긴 성장 구간의 끝에 추가되는 컨텐츠들은 그동안의 성장에 대한 보상이라는 성격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컨텐츠의 고유성에 대한 기대가 큽니다. 3달만에 최상위 던전이 추가되었는데 알맹이가 기존 던전의 짜집기라면 굉장히 실망스럽겠죠. 하지만 비상설 이벤트 컨텐츠에선 이러한 기대가 다소 낮습니다. 물론 모든 구성요소가 새롭다면 만족감이 크겠지만, 적당히 레벨이나 몹 등을 재활용해도 새 컨텐츠로서의 고유성을 어느정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간은 억지스러운 고유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독립 컨텐츠로서의 최소한의 포장이 필요합니다. 내부가 완전히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기존의 모험모드가 아닌, 이벤트 화면에 배치함으로써 독립된 컨텐츠로 강조하는 것입니다. 리듬 액션 게임인 우타 마크로스의 경우, 이벤트 전용 곡을 따로 만드는 대신 기존에 있던 곡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이벤트를 구성하는데도 기존 곡의 스테이지에 이벤트를 거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이벤트 화면을 만들고 그 아래에 스테이지들을 배치합니다.


독자적인 이야기 또한 이벤트 컨텐츠에 고유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짧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추가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신규 이벤트를 새로운 보상 가판대가 아닌 신규 컨텐츠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죠. 우타 마크로스의 경우 위와 같은 대화씬이 따로 존재하지 않은 대신, '초시공 SNS' 라고 해서 캐릭터들의 단톡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컨텐츠가 있는데 이벤트 진행에 따라 이 단톡방을 업데이트 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1-5. 수집에 의한 수평 성장의 재미를 강조

성장 구조가 깊고 성장에 다량의 자원과 시간을 소비하는 게임은 게임 내 다양한 캐릭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유저는 투자할만한 가치를 지닌 소수의 캐릭터에게만 자원을 투자하게 됩니다. 또 게임 내에 새 캐릭터가 추가되어도 이 신캐가 기존 메타를 뒤흔들만큼 충분한 성능 향상을 보장해주지 못한다면 기존 캐릭터에 투자했던 자원을 매몰 비용으로 간주하고 새 캐릭터를 획득 / 육성할 당위를 느끼지 못하지요.

신캐의 추가로 라인업이 조금씩 바뀌긴 하지만 항상 '얻어야 할' 캐릭터는 정해져있고, 그 외 캐릭터는 모두 사실상 무가치하게 됩니다. 이 구조에서 신캐의 획득은 놀거리를 '수집'한다기 보다는 사실 더 성장할 수 있는 여지를 확률로 획득하는 RPG 게임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과격하게 이야기하자면 껍데기는 캐릭터지만 본질적으로는 리니지에서 부위별 최강 아이템을 얻고 강화 띄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죠. 시간이 흐르고 신캐가 추가되고 정답덱의 구성이 바뀌면서 기존의 최강템들이 하나씩 가치를 잃고 기존의 정답덱을 갖고 있던 사람도 신캐를 얻어야 할 필요는 있겠지만요.

File:CellImperfectVsPiccoloKami.png

문제는 게임의 성장 구간이 길 수록 신캐의 효용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신캐를 힘들게 얻어봤자 이미 기존 캐릭터들을 많이 키워놓은 상태라면, 신캐를 그만큼 키워야만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생깁니다. 이미 6성 풀초월 각성 캐릭터로 구성된 캐릭터들을 사용하고 있다면 새 캐릭터도 6성 풀초월 각성까지 키워야만 게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거죠. 말하자면 힘들게 돈 들여 뽑은 게 매미 상태의 셀이라 계속해서 사람을 흡수하고 희귀 자원인 17호 18호까지 다 먹여야만 이미 갖고 있는 초사이어인 손오공보다 더 쓸만해지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까지 키우고 나면 신캐 마인 부우가 나오겠죠. 마인부우도 한참 키워야 하긴 합니다만.


일본식 가챠 모델은 성장의 깊이를 낮추면서 소수의 '정답캐'가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모으도록 유도합니다. 가진 캐릭터의 다양성에서 오는 '횡적 성장'을 추구하죠. 그래서 일본 가챠 게임에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속성별로 서로 물고 물리는 속성 메타입니다. 불-물-나무-불 가위바위보에 빛<->어둠의 상극의 5속성이나 가위바위보를 4단계로 늘린 6속성이 아주 일반적입니다. 수직 성장을 강조하는 게임들은 속성 없이 탱-딜-힐 역할 분배를 기반으로 하는 직업 메타를 강조하곤 하는데요, 이러한 직업 메타와 속성 메타는 게임 내에서 동작하는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직업 메타는 기본적으로 각 직업별로 좋은 카드를 얻어 좋은 '조합'을 갖추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대부분의 게임이 다양한 능력을 지닌 개성적인 캐릭터의 조합에 의한 다양한 전략을 추구한다고 합니다만 계속해서 자원을 소모해나가는 수직 성장 구조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획득하고 육성하고 운용하면서 테스트 하기는 힘듭니다. 그래서 실제로는 선구자들이 캐릭터들을 점증한 이후 소수의 캐릭터를 엄선해 '이 직업군 중 최강', '얻어야 할 머스트 해브, 잇 캐릭터'의 지위를 부여합니다. 최강 조합이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직업 메타는 신상 판매를 위한 파워 인플레이션에서 따라오는 상품의 가치 소멸을 늦추는 역할을 합니다. 한달에 한번 신캐를 낸다고 할 때, 이번달의 신캐가 지난달의 신캐를 대체할 수 있는 상위 호환이라면 비싼 돈을 들여 얻은 지난달의 신캐는 1달만에 쓰레기가 되지만, 직업군을 달리하면서 신캐들을 추가하게 되면 같은 직업의 신캐가 나올 때 까지 각 직업군 별 최강자로서의 효용이 유지되는 거지요.

속성 메타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캐릭터를 '많이' 모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나무 속성 스테이지에선 나무에 강한 불 속성 캐릭터로 덱을 채우는 것이 유리합니다. 덱 전체를 불속성 SSR 최강캐들로 꾸리면 좋겠지만, 그건 너무 어려울 뿐더러 굳이 그렇게 할 이유도 없습니다. 불속성 SSR이 부족하다면 보너스는 없지만 페널티는 없는 나무 속성 SSR로 채워도 되고, 나무 속성 SSR도 없다면 불 속성 SR로 채워도 됩니다. 수집 상황에 따라 목표가 SSR로 덱 꾸리기 -> 속성별로 SSR 덱 채우기 -> 속성별로 SSR 최강 덱 꾸리기 순으로 목표가 상향되면서 목표로 하지 않았지만 내 손에 떨어진 캐릭터들이 점진적으로 플레이어에게 이득을 제공하면서 가치를 부여받습니다. 다양한 캐릭터의 획득이 풀어야 할 숙제 혹은 누적되는 실패라기 보다는 점점 더 나아지는 성장감으로 연결되는 것이죠. 물론 최상위 유저라면 속성별 최강 SSR을 만들고 싶겠지만, 게임 구조 자체가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기조입니다.

직업 메타 역시 컨텐츠에 따른 다양성을 추구할 수도 있습니다. 잡몹이 많이 나오는 모험모드에선 다수 캐릭터에 적당한 딜을 뿌리는 딜러가 필요하고 왕보스 하나 잡는 레이드에선 한명의 적에게 폭딜을 넣는 딜러가 필요하다는 식이죠. 하지만 직업간 균형이 우선이기 때문에 폭딜러 많다고 레이드를 잘 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험용 딜러 A,  레이드용 딜러 B 이런 식으로 정해져있는 정답캐의 양이 늘어날 뿐이지 캐릭터가 많아진다고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더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닌 거죠.


컨텐츠에서 '다양성'을 활용하기에도 직업 메타 보다는 속성 메타가 더 유리한 점이 많습니다. 속성 메타는 그냥 스테이지 정보 화면에 '이 스테이지는 불 속성임' 이라고 써놓는 것으로 물 속성이 유리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려줄 수 있습니다. 상관관계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하지만 키라라 판타지아처럼 속성 정보가 표시될 때 이 상관도를 항상 옆에 배치하면 간단하게 해결되는 문제이고 '레이드는 큰 몹 하나 잡는 거니 단일 타겟 폭딜러가 유리한데 내가 가진 폭딜러 중 가장 쎈 애는 얘니까 얘를 쓰자'는 것 보다는 훨씬 쉽죠. 시노마스 같은 경우는 아예 스테이지별로 '양 속성에 보너스' '음 속성에 보너스' 이런 식으로 페널티 없이 스테이지 별로 보너스 받는 속성 하나만 설정하는 식으로 캐주얼하게 풀기도 합니다. 또, 속성 메타는 스테이지 별로 필요한 속성을 바꾸는 것으로 손쉽게 모든 속성을 골고루 활용할 수 있지만 직업 메타는 강조하고자하는 조합의 갯수 만큼의 성격이 다른 컨텐츠를 배치해야한다는 것도 제작하는 입장에서 불리합니다. 뭐 굳이 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한 컨텐츠 안에서 폭딜러가 중요한 스테이지, CC형 탱커가 필요한 스테이지 등등 다양한 특성의 스테이지를 추가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드는 것도 일이고 그걸 전달하는 것도 일입니다.

이렇게 쓰면 마치 일본에선 속성메타만 중요하고 직업 메타는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직업 메타도 쓰입니다. 위의 키라라 판타지아 처럼 속성 메타와 직업 메타를 함께 쓰는 경우도 있고, 직업 메타가 명시적으로 표기되어있지 않더라도 캐릭터 특성을 살리기 위해 방어력이 높은 캐릭터, 힐러 능력을 갖춘 캐릭터 등을 설치합니다. 다만 속성 메타는 거의 필수로 깔고 들어가고 직업 메타는 그만큼 강조되지는 않는다는 정도입니다.


1-6. 비즈니스 측면에서의 장점

이런 수평 성장 중심의 구조는 수직 성장 중심의 게임에 비해 게임을 개발하고 운영하는데 있어 꽤 뚜렷한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캐릭터를 많이 수집하게 하면서도 이 수집을 가챠로 한정하기 때문에 가챠라는 상품에 대한 확실한 구매 동기를 부여합니다. 특히 게임을 계속 운영해도 가챠라는 상품의 가치가 계속 보존된다는 점이 굉장히 큰 장점입니다. 수직 성장 게임에서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를 수집할 수 있게 할 경우, 게임을 진행하고 성장함에 따라 보상이 더 나아져서 점점 더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를 획득하기 쉬워지고 행동력의 효용이 점점 증가하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운영하면서 신규 상품을 팔기 위해선 신규 캐릭터는 플레이에선 얻을 수 없고 가챠에서만 얻을 수 있다는 식으로 기존의 방침을 깨거나, 얻는 건 마음대로지만 키우는 데 드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해서 자원을 추가로 구매하는 식의 BM이 뒤따라오게 됩니다. 하지만 수집은 가챠에서만 된다고 미리 선을 그어두면 꾸준히 신상품을 가챠에 추가함으로써 가챠의 상품성을 유지할 수가 있지요. 물론 사용자가 이를 받아들여야만 성립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돈을 내고 가챠를 구입하는 입장에선 무과금으로도 획득할 수 있지만 깊게 성장시켜야하는 구조 보다는 가챠로만 구입할 수 있는 대신 육성이 짧은 구조의 만족도가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신규 캐릭터를 뽑기만 하면 키우느라 고생할 필요 없이 거의 바로 전력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한 플레이 경험 변화를 바로 체감할 수 있으니까요. 키워야 하는 매미 셀 보다는 완전체 셀이 획득시에 만족감이 더 크지 않겠습니까?

무엇보다 이 구조가 갖는 가장 핵심적인 장점은 신규 유저가 정착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성장 -> 더 상위 컨텐츠 -> 더 나은 보상 -> 성장의 사이클을 기반으로 하는 수직 성장 기반의 게임에선 같은양의 자원을 쓴다고 해도 기존 사용자가 신규 / 복귀 사용자보다 더 나은 보상을 누리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신규 / 복귀 사용자는 막대한 돈을 쓰지 않는 한 기존 사용자를 따라잡기 힘들거나, 따라잡을 수 없는 경우도 생기기 쉽습니다. 그래서 게임 서비스가 길어질수록 신상품의 상품성은 계속 떨어지고 신규 컨텐츠를 투입해도 최상위 일부만 즐길 수 있어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매너리즘에 빠지고, 그 결과 유저가 빠져나가긴 쉬워도 신규 / 복귀 유저가 정착되지 않아 사용자를 꾸준히 잃어나갑니다.

반면 일본식 가챠 게임은 장기 운영에 굉장히 유리한 구조입니다. 인게임 보상이 캐릭터 수집으로 이어지지 않는, 수집 중심의 수평 성장 구조 하에서 기존 유저의 기득권이 큰 의미를 갖지 않습니다. 또 게임이 길고 긴 장기 성장이 아닌, 1주일 단위 이벤트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캐릭터가 구리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못해 이벤트 하나를 놓친다고 하더라도 그 피해는 해당 이벤트를 놓친 것에 국한됩니다. 이후의 이벤트는 모두 함께 다시 시작하는 거니까요. 또 오래 플레이해서 좋은 캐릭터를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이벤트를 조금 더 쉽게 깰 수 있지만, 새로 유입되거나 복귀한 사용자도 가챠를 뽑는 것으로 이 갭을 비교적 쉽게 줄일 수 있습니다. 신규 / 복귀 유저가 정착하기 쉽지요. 그리고 성장 구간이 짧고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를 획득할 수 없기 때문에 서비스 기간이 아무리 길어지더라도 가챠를 통한 캐릭터 판매가 지닌 상품성이 유지됩니다.

이런 차이점은 특히 타 IP와 콜라보를 진행할 때 굉장히 크게 나타납니다. 수직형 게임에서 콜라보는 사실상 기존 유저에 대한 추가 상품 판촉 정도로 국한됩니다. IP를 좋아하지만 해당 게임을 아직 해보지 못한 사용자가 들어와서 유저 풀이 늘어자길 기대하지만 게임 구조상 그런 뉴비가 정착하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수평형 게임에선 콜라보를 통해 유입된 유저가 잔류할 확률이 더 높고, 그 결과 콜라보가 신규 유저를 모집하고 유저 풀을 늘리는 기회가 될 수 있지요. 괜히 일본 게임들이 콜라보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1-7. 게임과 가챠를 떠받치는 것은 캐릭터의 매력

결국 일본 가챠 게임은 장기적으로 가챠를 팔겠다는 목적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챠 확률은 어떻게 구성되어있을까요? 위한 시노마스의 확률표인데요, 통상 SSR 1.5%에 픽업 SSR 1.5%로 합계 확률이 3%밖에 안되는데 이는 요즘 기준으로는 조금 박한 편이고 5% 정도가 보통이라고 봅니다. 여하튼, 시노마스에선 핍업 SSR만 해도 6종이라 1.5% 확률을 각기 6등분하여 개당 당첨 확률 0.25%, 획득을 위한 기대 시행이 400번입니다. 일반 SSR은 20종이라 개당 0.075%, 기대 시행 1333번. 무시무시하죠. 가챠에서 좋은 캐릭터 안떠도 게임 할만하다고는 하지만, 결국 일본 가챠 게임을 떠받치는 것도 '혹시' 하는 마음으로 가챠를 뽑는 무과금러 소과금러가 아니라 '나올 때 까지' 혹은 '언젠간 나온다'는 마음으로  뽑는 고과금러 핵과금러라는 점은 동일합니다.

물론 리니지M은 전설 무기 0.0031%로 위의 사례보다 낮은 확률로 장사를 잘 하고는 있습니다만, 가챠를 구매하는 원동력이 다르죠. 리니지M은 저 확률을 뚫고 전설을 얻기만 하면 엄청난 어드벤티지를 얻게 됩니다. 리니지M은 조금 극단적이지만 다른 게임들 역시 희귀한 캐릭터나 보상을 얻으면 그걸로 못깨던 곳을 깨게 되고 PVP 경쟁에서 앞서나가거나 뒤쳐지지 않는 등 강력한 외적 동기를 제공합니다. 반면 일본 가챠 게임에서 SSR의 게임적 효용은 크지 않습니다. 그냥 자기 만족이죠. '사실 쓸모 없는 것도 알고 있고, 얻기 힘들며 얻는데 많은 돈이 드는 것도 알고 있지만 나는 갖고 싶다. 이유는 없다. 갖고 싶으니까 갖고 싶다'는 강한 내적 충동이 필요합니다.


사실 이런 멘탈리티에 의한 상품 판매는 아이돌 굳즈 장사와 유사합니다. 예전에 동생이 연예기획사에서 일을 했는데 정확한 숫자는 잘 기억이 안납니다만, 한자루 100원에 떼온 볼펜에 아이돌 스티커 붙이면 1만원 2만원 붙여도 없어서 못판다더군요. 음반에 포토카드 랜덤으로 끼워넣어서 최애 카드 뽑으려면 평균 10여장, 전 멤버 수집하려면 몇십장 사야 하는 것도 그렇구요. 한마디로 일본 가챠 게임의 캐릭터들은 능력치가 붙어있는 게임 토큰이라기보다는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최애와 같은 위치를 가지고, 가져야만 합니다.(그러고보니 대표적인 일본 가챠 게임이 아이돌 마스터군요...) 그래야만 게임적으로 큰 의미가 없고 외적으로 큰 보너스가 없다고 하더라도 저런 가격으로 팔 수 있습니다. 또한 동시에 게임 구조상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은 자기 만족 상품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가챠에서만 구입할 수 있어도 공정성에 큰 문제가 없는 것이죠.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니까요.

결국 일본 가챠 게임을 만들고 운영한다는 것은 한달에 수십만원씩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최애를 만들고 추가해나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능력치 빠방한 것 만으로는 부족하고 외모, 성격 등에서 사람의 취향을 저격해야하는 거지요. 때로는 성능이 나쁘지만 애정으로 인기있는 캐릭터도 성립할 정도로 말이죠. 메인 컨텐츠와 이벤트 컨텐츠에서 스토리가 계속 강조되는 것 또한 '게임의 서사'를 전달한다기 보다는 '캐릭터의 서사'를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5천년만에 부활한 마왕이 천년 불침의 제국 수도를 함락하든 말든 사실 아무도 별 관심이 없습니다. 하지만 항상 침착 냉정함을 유지하던 날카로운 인상의 여 교관 캐릭터가 수도 수복을 외치는 이유가 사실은 피난 나올 때 두고 온 비장의 하드BL 콜렉션을 남들 몰래 회수하기 위함이라는 데서 갭모에가 터지고 캐릭터가 팔리는 거지요.

데레스테, 시노마스, 키라라 판타지아, 소드 아트 온라인 등 IP를 기반으로 한 게임이 많이 나오는 것 또한 이 캐릭터의 중요성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이 많이 출시되면서 처음 보는 생소한 캐릭터를 소개하고 그 매력을 전달하고 사용자를 포획하기 보다는 이미 검증된 캐릭터를 활용하는 편이 훨씬 수월할 수 밖에 없으니까요.


1-8. 가챠로 최애를 뽑고 즐기는 놀이로서의 수집 게임

이제까지 수평 성장 중심의 일본식 가챠 게임의 구성을 살펴보았는데요, 수직 성장 중심의 게임과 비교하고 그 차이점에 가져다주는 효과를 나열하고 있으니 마치 일본식 가챠 게임이 한국 게임보다 우월하다는 이야기로 비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는 그게 아니라, 겉보기에 같은 '수집형 게임'이라고 해도 한국식 게임과 일본식 게임은 서로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고 실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장르라는 겁니다.

일본 가챠 게임이 추구하는 방향은 '가챠로 수집해서 즐기는 놀이'에 가깝습니다. 첫번째 파트인 수집의 재미는 나오나 안나오나 두근두근하면서 가챠를 까는 과정 자체에서 발생합니다. 원하는 물건이 안나와도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돈을 투자할만한 가치가 있어요. 10만원 들고 10시간 파칭코를 쳤는데 결국 손에 8만원이 남았다고 칩시다. 이 상황을 2만원으로 10시간 재미있게 놀았다고 생각할 때 일본식 가챠 게임은 놀이로써 성립합니다. 2만원 잃고 왔다 혹은 20만원 만들어올 생각이었는데 2만원 잃었으니 무려 12만원 손해봤다는 마인드에선 이건 고객 등 털어먹는 날강도 유사게임이에요. 심지어 이 뽑는 기회를 과금으로만 제한한다? 낮은 등급의 캐릭터는 절대로 높은 등급이 될 수 없다? 이건 뭐 돈 없으면 게임도 하지 말라는 슈퍼 불공평 노양심 쓰레기 앱이죠.

플레이에 대한 보상, 성장 인센티브가 적은 것 또한 가차에서 뽑은 물건을 가지고 노는 '놀이'이기 때문입니다. 낮은 확률울 뚫고 좋은 캐릭터 뽑았으니 그걸로 한동안 신나게 노는 놀이터에요. 어찌 보면 게임 컨텐츠 자체가 플레이의 대상이 아니라 보상인 것이죠. 재미있게 놀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기준은 가챠에서 잭팟이 터졌는지 여부이지 게임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했는지가 아닌 겁니다. 오랜 시간 플레이 한 것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일본식 가챠 게임은 플레이하기 힘듭니다.

결국 한국식의 성장형 수집 게임과 일본의 가챠형 수집 게임의 차이는 둘 중 누가 더 우수하고 열등한 관계라기 보다는, 사용자가 갖고 있는 게임을 바라는 관점과 추구하는 재미의 차이라는 겁니다. 일본의 가챠 수집 놀이가 한국의 관점에선 플레이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돈만 밝히는 유사게임일 수 있고, 한국형 수집 게임의 한발 한발 키워나가는 재미가 일본에선 돈내든 안내든 똑같이 고생하는 공산주의 지옥일 수도 있지요. 핵심상품인 캐릭터에 요구되는 덕목 또한 게임 토큰으로써의 유용함 / 감정을 이입하는 최애로 다르구요. 다만 이 양자의 차이와 그 원리를 이해하고 있으면 게임을 다른 국가에 서비스 할 때 사용자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하고, 로컬라이징 하기에 도움이 되겠지요.



2. 도탑전기류

일본 가챠 게임은 육성보다 수집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했는데요, 대륙에서 발전한 도탑전기류 게임은 반대로 육성을 크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수집형 게임이라고 하지만 수직적인 육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래도 시스템 상 6성 + 풀초월 + 각성 + 올 스킬 만렙과 같이 육성의 최종 단계라는 것이 존재는 합니다. 도달하기가 더럽게 어렵고, 업데이트를 통해 뒤를 늘려나갈 뿐이죠. 하지만 도탑전기류는 말 그대로 성장이 끝도 없이 이어집니다.


2-1. 수집이 아닌, 육성 게임

도탑전기류 게임은 굉장히 많은 성장축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축은 '등급'과 '성급' 입니다. 흰색 - 녹색 - 파란색 - 보라색 등 색상으로 주로 표현되는 '등급'은 일반 스테이지에서 드랍되는 아이템들을 통해 성장합니다. 각 캐릭터 마다 각 단계별로 필요한 아이템과, 해당 아이템이 드랍되는 스테이지가 달라지지요. 별의 갯수로 표현되는 '성급'은 각 캐릭터의 조각이 일정 갯수 이상 쌓이면 올라갑니다. (아직 보유하지 못한 캐릭터는 조각을 일정 갯수 모아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캐릭터의 조각은 각 캐릭터의 조각이 나오는 영웅 스테이지에서 드랍되기도 하고, 가챠에서 이미 갖고 있는 캐릭터가 중복 당첨되었을 때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플레이를 통해 캐릭터의 조각을 얻을 때엔 어떤 캐릭터의 조각을 얻을지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다는 부분입니다. 손오공 스테이지에선 손오공의 조각이 드랍되고 크리링 스테이지에선 크리링의 조각이 드랍되기 때문에, 손오공 조각이 필요하면 손오공 스테이지를, 크리링 조각이 필요하면 크리링 스테이지에 들어가면 됩니다. 확률에 따라 조각이 드랍되지 않을 수는 있고(보통 하루 3번 플레이할 수 있는데, 3번 다 돌면 1조각 이상은 나옵니다.), 내가 원하는 캐릭터의 조각이 나오는 스테이지에 아직 진입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캐릭터를 얻고 키울 것인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의 결정에 따릅니다. 등급 성장 역시 가능한 최고 난이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캐릭터의 등급을 올릴 수 있는 재료를 주는 스테이지를 도는 형식이죠. 그래서 이 게임의 본질은 한정된 행동력을 사용해서 사용자가 원하는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에 있습니다. 캐릭터의 획득 자체는 쉽습니다.


2-2. 합리적 상품으로써의 가챠

주어진 행동력을 소모해 원하는 캐릭터를 육성하는 것이 도탑전기의 핵심이라고 할 때, BM의 핵심은 바로 이 행동력의 수급에 달려 있고 여기서 도탑전기류 게임을 다른 수집형 RPG와 구분짓는 가장 큰 요소인 누진제가 등장합니다.


앞서 한국식 수집형 게임은 플레이로 캐릭터 수급이 가능하고 성장이 보상을 강화하기 때문에 성장에 의해 행동력이 가챠보다 더 큰 효용을 지닐 수 있는 반면 일본 가챠 게임은 가챠에서만 캐릭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가챠의 효용이 일정하게 유지된다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은 플레이에 의한 캐릭터 수집과 육성을 기본으로 하지만, 이 행동력의 수급을 강하게 제약합니다. 돈을 내고 행동력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살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심지어 일정 이상은 구입할 수 없습니다. 적은 돈으로 보상을 2배 3배로 늘릴 수 있기 때문에 소과금자 입장에선 행동력의 효용이 크지만 게임에 재미를 붙이고 돈을 쓰기 시작하면 행동력의 가격이 높아져 종국에는 차라리 가챠를 사는 편이 더 경제적인 선택이 되는 것이죠.


이런 비교 우위를 확립하기 위해선 행동력을 빨리 소모시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행동력이 쓰지 못해 남아돌고 있다면 굳이 행동력을 추가로 구매할 필요가 없고, 가챠가 비교 우위를 가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도탑전기 이후의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소탕권의 형식으로 편하게 행동력을 소모하는 횟수를 제한하는 대신, 소탕을 기본 기능으로 탑재하고 있습니다. 행동력 소진을 어렵게 만들어 소탕권을 팔아 푼돈을 벌기 보다는 행동력을 우선적으로 소진시키는 것이 훨씬 더 매출 견인에 유리하다는 것이죠.



 

가끔 아무리 행동력 누진제 때문에 가챠의 가성비가 보전된다고 하더라도, 조각을 모으는 것이 캐릭터를 얻는 것 보다 만족감이 더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일단 가챠에서 얻는 캐릭터를 조각으로 얻는 경우는 이미 해당 캐릭터를 가지고 있을 때 뿐입니다. 없던 캐릭터를 가챠에서 얻을 땐 항상 바로 사용 가능한 완제의 형식으로 얻습니다. 캐릭이 나왔는데 조각이라 바로 쓸 수 없다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중복 캐릭터라 조각을 얻는 것이 과연 매력적이냐는 질문이 따라옵니다. 만일 일본식 가챠 게임 처럼 플레이를 통해 조각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조각은 물론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성급 성장이라는 게 결국은 같은 캐릭터를 계속 겹쳐 쌓아올리는 한계 돌파인데 중복 당첨 몇번이 모여야 겨우 1한돌이 되고, 한돌에 필요한 중복 당첨이 계속 늘어나는 가혹한 구조니까요.

하지만 영웅 스테이지의 존재가 이 중복에 의한 조각 모음을 굉장히 매력적인 상품으로 변모시킵니다. 중복 당첨으로 얻는 조각의 숫자를 같은 수의 조각을 얻는데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과 비교해보면 계산이 바뀌는 것이죠. 예를 들어 위 드래곤볼의 예를 들자면 (KOF98UM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중복 당첨시 받는 조각의 수는 21개이고, 한 영웅 스테이지를 플레이할 수 있는 횟수는 하루 3번입니다. 크리링의 조각을 하루 최대 3개까지 얻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3번 플레이에서 조각이 1개 정도 떨어지기 때문에 조각 21개면 최소 7일 통상 21일이라는 시간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굉장한 메리트가 있지요.


2-3. 안전한 상품으로써의 가챠

도탑전기는 가챠를 가장 합리적인 상품으로 포장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가챠가 여전히 결과물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상품이라고 보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이 문제를 무엇이 나올 지는 알 수 없지만 가챠에서 무엇이 나오는 손해는 보지 않음을 보장함으로써 회피합니다.

간단한 예가 바로 모든 캐릭터를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부분입니다. 손오공은 최고 등급인 SSR이고 야무치는 그보다 한창 떨어지는 R급이라는 식으로 캐릭터 별로 성능과 희귀도, 성장 한계를 완전히 갈라놓는 일본식 게임들과 달리 도탑구조는 모든 캐릭터가 같은 성급에선 동급이고, 모두 함께 공평하게 무한정의 성급을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위 스크린샷만 보더라도 야무치를 근성으로 키운 야무치가 동급의 손오공에 뒤쳐지지 않지요. (전투력이 1.7% 가량 차이가 나는데 이는 연관 캐릭터 수집 보너스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원치 않는 캐릭터를 뽑을 수는 있어도, 뽑아봤자 아무 쓸모 없는 쓰레기 캐를 뽑는 경우는 없습니다. 하다 못해 재채기 하면 인격이 변하는 런치 까지도 손오공과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원하는 손오공이 나오면 손오공 키워서 좋은 것이고, 원치 않는 크리링 나와서 크리링이 더 강해지면 크리링 쓰면서 손오공 모으면 됩니다.



 

물론 아무리 시스템상 밸런스 상 동급이라고 해도 분명히 선호하는 캐릭터와 비선호하는 캐릭터는 갈리게 되어있고 비선호하는 캐릭터가 걸리면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게임 진행을 진행하는 덱의 크기는 정해져있기 때문에 주력 덱을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는 잉여가 되는 것도 사실이죠. 도탑전기 이후의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여러 캐릭터를 보유하는 것에 대해 보너스를 부여하고 많은 캐릭터를 활용하는 컨텐츠를 통해 이 문제를 보완합니다. 예를 들어 KOF98UM의 '숙명'은 특정 조건의 캐릭터 조합을 보유했을 때 추가적인 보너스를 부여합니다. 주캐가 친 겐사이라면 당연히 겐사이의 조각 획득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당장 사용하지 않을 켄수, 아테나, 야마자키의 획득도 켄사이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죠. 드래곤볼 용주격투의 경우는 연관 캐릭터의 획득 뿐만 아니라 획득 이후의 성장에 대해서도 추가 보너스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을 보시면 피콜로는 이미 17호와 피콜로 대마왕이 있어서 보너스를 받고 있지만 17호와 피콜로 대마왕의 등급을 올리면 이 보너스가 더 커지는 구조입니다. 또한, 일본 가챠 게임의 속성 처럼 아주 강력하고 노골적이진 않더라도 특정 캐릭터가 있으면 더 유리한 컨텐츠나 패배한 캐릭터는 계속 버려가면서 덱 전체를 활용하는 컨텐츠 등으로 주력 / 선호 캐릭터가 아니라도 많이 가지고 있고 많이 키우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합니다.


2-4. 깊고 자잘한 수직 성장 체계


 


게임의 플레이로 수집과 성장을 병행한다는 점에선 한국의 수집형 게임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도탑전기류는 훨씬 더 많은 컨텐츠를 통해 끝없이 성장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성급 성장만 하더라도 동일 캐릭터 n장 획득으로 완결되는 한국의 초월이나 일본의 한계돌파와 달리 7성 도달까지 가챠로는 수십번의 중복 당첨에 해당하는 수백개의 조각을 요구할 뿐더러 7성에 도달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조각을 사용하는 성장 컨텐츠가 이어집니다.


 

 

등급 성장과 성급 성장은 대표적인 성장 컨텐츠이긴 하지만, 사실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그 외에도 다양한 성장 컨텐츠를 구비하게 됩니다. 여기에는 플레이 시간 확보와 성장 체험 리듬 보완이라는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등급 성장과 성급 성장 모두 스테이지에서의 파밍을 대상으로 하는데 소탕을 기본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실제 플레이 타임이 굉장히 짧습니다. 몇시간씩 사용자들을 붙잡고 괴롭힐 필요는 없지만 계속해서 사용자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선 꾸준히 하루에 한두시간 정도의 플레이타임은 필요하고, 이를 소탕이 불가능한 추가 컨텐츠로 해결합니다. 그리고 이 스테이지가 아닌 이 추가 컨텐츠에서 드랍되는 자원을 사용한 성장 컨텐츠를 둬서 플레이 할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죠.


두번째 이슈는 성장의 발생 빈도에 관한 것입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은 기본적으로 육성의 깊이가 무제한으로 깊기도 하지만, 그 단계도 굉장히 잘게 쪼개져있습니다. 조금 하다 보면 성장! 조금 더 하다 보면 또 성장!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주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의 축에서 성장 피드백이 나타나는 주기는 계속 길어져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성장 컨텐츠를 A->B->C 이렇게 직렬로 배치 하지 않고 동시에 진행하도록 병렬로 연결해두면 한 컨텐츠의 성장 주기 동안 다른 컨텐츠의 성장 피드백이 끼어들면서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의 성장 컨텐츠 전반에 대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고해주세요.


하지만 아무리 다수 성장 컨텐츠가 다양하고 끝 없이 깊다고 해도 컨텐츠를 빨리 소모한 고과금자들은 성장이 둔화되어 매너리즘을 느끼게 되고, 성장의 깊이가 깊어지면 신규 유저가 뒤따라잡기가 힘들어진다는 근본적인 육성 중심 게임의 근본적인 문제는 남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은 이를 성장 컨텐츠를 병렬로 추가함으로써 해결합니다. 통상적으로 오픈 후 2~3개월 정도에 새로운 플레이 컨텐츠와 성장 컨텐츠가 추가됩니다. 그런데 이 신규 컨텐츠는 저레벨부터 참여할 수 있도록 기존의 성장컨텐츠와 병렬로 추가됩니다. 모든 난이도를 커버할 수 있도록 병렬로 추가되기 때문에 추가 컨텐츠를 모든 사용자가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게임 초반 단계부터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컨텐츠가 추가되면 추가될수록 뒤에 합류한 사용자들은 이전에 합류한 사용자들보다 합류 이후의 플레이 타임 기준으로 더 많은 보상을 받게 되고 더 빨리 성장할 수 있게 되지요. 하지만 이 컨텐츠는 기존에 없었던 것이기 때문에 상위 그룹에겐 여전히 새로운 도전이 됩니다. 성장 중심의 게임에서 컨텐츠를 추가하면서 상위 그룹과 하위 그룹의 문제를 동시에 보완할 수 있는 훌륭한 솔루션입니다.



2-5. 수평 확장의 한계와 보완

하지만 이렇게 성장이 깊어질수록 주력 캐릭터를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커져서 신 캐릭터를 추가해도 신캐로 갈아타기 힘들다는 문제는 여전히 남습니다. 다른 성장 컨텐츠들이야 갖고 있는 자원을 모두 털어넣어서 어느 정도 당길 수도 있다지만 (사실 무한 성장 때문에 자원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굉장히 제한적입니다만) 성급 성장만큼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신캐 조각 파밍 스테이지를 추가한다고 해도 최대 하루 3조각 정도인데 7성 이상으로 끌어올리려면 조각이 수백개는 필요하고, 이를 가챠에서 조달하려고 한다면 기존의 다른 캐릭터들의 조각도 그만큼 쌓여버릴 테니까요. 이는 신캐의 상품성 측면에서도 큰 문제가 되지만 기존에 없던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기 힘들다는 측면에서도 큰 부담이 됩니다.


KOF98UM이나 드래곤볼 용주격투의 경우는 이 문제를 그냥 수용해버립니다. 어차피 깊은 성장이 게임의 핵심 요소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애초에 IP 기반이기 때문에 신캐릭터를 많이 추가할 수 없지요. 드래곤볼 용주격투만 하더라도 이미 런치 까지도 끌어다 쓰고 있는 마당인 걸요. 대신 신캐릭터를 '한정' 판매함으로써 상품성을 극대화 합니다. 위의 루갈 이벤트가 예시인데요, 이벤트 기간 동안 판매되는 이벤트 가챠에서만 루갈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챠 까서 루갈이 나올 확률은 극히 드물고, 실제로는 가챠 구매 횟수 누적에 의한 확정 보상으로 루갈을 지급합니다. 각 단계마다 루갈 조각을 지급하고, 특정 단계까지 가면 루갈 캐릭터를 획득하기에 충분한 수량의 조각이 쌓이는 것이죠. 사실상 몇십만원의 고정가로 판매하는 것입니다. 그 이상을 지불할 수 있는 유저를 위해선 구매 횟수에 따른 랭킹 보상을 걸어둡니다.

물론 조각 모음에 의한 성급 성장은 끝이 없기 때문에 단계별 보상을 모두 획득하고 가챠 구매 1위를 찍는다고 해도 루갈을 완전히 끝까지 성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플레이어들도 그걸 알고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이 판매가 성립합니다. 신캐의 성장엔 한계가 있다는 것과, 획득에 필요한 비용 등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있습니다. (가챠에서 획득할 확률은 공개되진 않지만 누구나 0이라고 생각할 거니까 예외로 칩니다.)  그래도 XX만원 더 내고 획득하고 XX만원 더 내고 5성까지 키워보는 것은 오롯이 사용자의 선택인 것이죠.

그래도 이게 동작하는 것은 IP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기본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호감이 깔려있기 때문에 게임 상 쓸모가 있든 없든 일단 획득하는 것 자체도 상당한 만족감을 줍니다. 게다가 저런 특판 캐릭터들은 이런 수집욕을 자극할 수 있는 상징성 있는 특급 캐릭터로 선별됩니다. 루갈, 폭주 이오리, 초 사이어인 손오공 등이죠. 이미 100만원 이상 썼고 충분히 육성시킨 단계에선 수십만원에 루갈이나 초사이어인 손오공을 고작해야 몇십만원에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까지 나쁜 장사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경험담이므로 신뢰하셔도 됩니다.


물론 이 신캐로의 전환 비용 문제를 게임 디자인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루토 화영닌자의 경우, 조각 모음에 의한 성급 성장을 제외한 다른 모든 성장 컨텐츠가 캐릭터 귀속이 아닌 계정 귀속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 성장이 뒤쳐져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새 캐릭터로 갈아탈 때 받는 불이익이 없습니다. 액션 RPG 게임의 특성상 캐릭터 교체로 인한 경험 변화가 크고, 스펙상으론 뒤쳐질 수 있어도 스킬의 위력이나 효용 측면에서 체감 효용을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성급이 기존 캐릭터보다 낮다고 하더라도 갈아탈 동기가 충분히 부여됩니다.


콘트라 리턴의 경우는 육성의 대상과 경험의 변화를 주는 대상을 캐릭터와 무기로 분리하고 있습니다. 플레이를 통해 수집하고 육성할 수 있는 토큰은 무기입니다. 하지만 이 무기를 들고 뛰는 캐릭터는 B급 이하는 장기 플레이로 획득할 수 있지만 A급 이상은 상품으로써 판매합니다. 각 캐릭터는 모든 무기를 들 수 있기 때문에 기존에 성장시킨 보너스를 그대로 신캐릭터에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콘트라 리턴 유료화 관련한 내용은 이전 포스트를 참고 부탁드립니다.)

이런 디자인 차이가 실질적으로 어떤 결과를 안겨주고 있는지는 차트를 보면 드러납니다. 드래곤볼은 첫 3개월 이후에 일찌감치 30위권 밖으로 밀려난 반면 나루토 화영닌자는 꾸준히 20위권 안쪽을 드나들고 있고 콘트라 리턴도 제법 오랫동안 선전하고 있지요. 콘트라는 아재 IP이고 나루토가 아무리 중국에서 인기가 좋아도 드래곤볼보다 나은 IP일 리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IP 차이보다는 이 신캐 친화도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겁니다.

하지만 이런 변주가 도탑전기류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냐면 그건 아닙니다. 나루토 화영 닌자와 콘트라 리턴은 실시간 PVP가 강조된 액션 게임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새 캐릭터 새 스킬이 주는 플레이 경험 변화가 훨씬 크기 때문에 신캐의 상품성도 더 높고, 장기 운영에서 매너리즘을 해소하는데에도 더 효과적입니다. 그래서 나루토든 콘트라든 신캐를 그냥 가챠 풀에 추가하는 수준이 아니라 B급은 일정 액수 젬에 직접 판매하고 A급은 현찰 몇만원에 판매하고 S급은 몇십만원에 획득 + 랭킹 보상으로 추가 성장까지 보장하는 등 아주 적극적으로 판매하고 있지요. KOF98UM이나 드래곤볼 용주격투 처럼 사용자가 간접적으로 조작하는 게임에서도 비슷한 전략이 동작할지는 좀 더 고민해볼 문제라고 봅니다.


2-6. 돈 쓰는 재미가 있는 육성 게임

앞서 살펴본 일본 가챠 게임의 경우는 좋은 캐릭터를 얻기는 힘들지만, 일단 얻고 나면 그 캐릭터로 재미있고 신나게 한두달 즐기는 것으로 보상하는 구조라고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잭팟은 잘 터지지 않기 때문에 잭팟이고, 터지면 대박이 나야 잭팟이며, 그래야 시도하고 결과를 기대할 때의 두근거림 자체도 돈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죠. 반면 중국의 도탑전기류 게임은 가챠의 특권성과 불확실성을 배척하고 있습니다. 돈을 내건 안내건 누구나 캐릭터 수집과 육성에 도전할 수 있고, 어떤 캐릭터를 키울지 어떻게 키울지에 관한 모든 사항을 플레이어가 결정합니다. 자원을 원하는 대로 사용해 그 결과로 따라오는 캐릭터의 성장을 즐깁니다.

행동력 구매, 조각 스테이지 플레이 제한 리셋 등 다양한 컨텐츠에 걸려있는 누진제는 무과금자에겐 열린 기회를, 소/중과금자에겐 합리적인 소비 옵션을 제공하면서 동시에 고과금자에겐 가챠를 합리적이고 안전한 상품으로 포장해줍니다. 그 결과 예산이 얼마이든 항상 매력적인 상품이 존재하고, 얼마를 쓰든 간에 이득을 보면 이득을 보지 손해는 보지 않았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남깁니다.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으면 들인 비용이 모두 매몰되어 얼마를 쓰건 안쓴 것과 동일하게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가챠 중심 게임에 비하면 확실히 돈을 쓰는 재미가 매우 뚜렷합니다.

 

 

특히 이 돈 쓰는 재미가 게임 초반에 아주 강력하다는 것 또한 중국 게임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당장 1~2성 밖에 없는 상태에서 10가차 마다 지급해주는 4성 캐릭터는 초반의 게임 진행에 아주 큰 도움이 되어 만족도가 높습니다.  캐릭터가 부족할 때 가챠 효율이 높은 것은 일본 가챠 게임도 마찬가지지만, SSR SR 같은 태생 적 한계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뭘 뽑아도 도움이 되지요. 각 젬 상품에 대해 처음 1번씩은 2배의 젬을 지급해주는 첫 구매 2배젬 또한 사실상 표준으로, 게임 초기에 적은 비용으로 굉장히 큰 이득을 봤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줍니다.

이 게임 초반의 구매 만족도는 한국의 네티즌들이 격렬히 증오하는 VIP 시스템으로 극대화 됩니다. VIP 시스템이 지불한 금액에 대해 추가적인 혜택을 준다고는 하지만 사실 저 혜택들은 대부분 누진제 상에서 구매 한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행동력 50점의 6회차 구매 가격이 10연차 절반 가격이고 7회차 구매 가격이 10연차의 2/3 가격인데 하루에 6번 살 수 있던 것을 7번으로 늘려주는 게 뭐 얼마나 대단한 혜택이 되겠습니까. 핵심이 되는 것은 특정 VIP 레벨에 도달했을 때 1번씩 살 수 있는 VIP 전용 상품이죠. 쓰다보니 VIP 레벨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VIP 레벨을 노리고 돈을 쓴다면, 고정 가격에 VIP 한정 캐릭터를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게 해주는 이 VIP 한정 상품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VIP 상품들은 굉장히 저렴하기 때문에 남는 젬으로는 가챠를 굴리러 갑니다.

이 VIP 한정 상품에서 지급하는 캐릭터의 배치도 굉장히 절묘합니다. KOF98UM에선 마이를, 드래곤볼 용주격투에선 18호를 VIP 1레벨부터 배치했는데 두 캐릭터 모두 4성 전체 공격 특성이 걸려있어서 게임 초반부에 활용성이 매우 좋습니다. 다른 캐릭터 모두 1,2성 비리비리해도 쟤들 전체 공격 한번씩에 판이 그냥 깨져요. 그리고 이후로 계속해서 조각을 팔아서 플레이어 진도에 맞춰 5성 정도로 키울 수 있게 해주다가 100만원 넘어가면 초사이어인 손오공 처럼 가격에 걸맞는 물건을 배치하지요.


2-7.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돈 쓰는 재미

이렇게 돈 쓴 것에 대해 아주 화끈하게 혜택을 퍼부어주지만, 이 돈 쓰는 재미가 남의 재미와는 충돌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누구를 얻어서 어디를 깨고 못깨고는 순전히 자기 개인 만족입니다. PVP의 경쟁이 있긴 하지만 이 또한 스트레스가 매우 적습니다. 성장이 반영되는 동기식 PVP는 사실 개인의 컨트롤 보다는 매치 상대와의 스펙 차이가 승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요인이 됩니다. 약한 상대를 만나 입맛대로 갖고 노는 재미도 있지만 터무니 없이 반대로 터무니 없는 상대에게 농락당하는 불쾌함도 상존하지요. 서비스가 오래되어 쪼렙 구간이 얕아지면 뉴비들은 더더욱 썰림 만을 경험하게 됩니다. 설령 아주 완벽하게 매칭을 해준다고 해도 결과적으로 승률은 50%가 됩니다. 승자와 패자가 동시에 발생하니까요.


하지만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사용자가 대전 상대를 고를 수 있는 비동기식 PVP를 기본으로 탑재합니다. 플레이어의 지금 순위에 맞춰 상대할 후보군을 시스템이 제시하고, 이 중 원하는 상대를 골라서 도전합니다. 비동기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플레이하고 있지 않은 계정도 모두 상대로 지목할 수 있습니다. 도저히 상대가 없는 독보적인 천하제일 지존무쌍이 아닌 이상, 나와 재미있게 겨룰만한 상대는 항상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 후보군 중에서도 사용자가 스펙을 비교해서 이길만 한 상대를 골라서 싸우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플레이어가 승리합니다. 만일 졌다면 그건 운이 나빴거나, 플레이어가 과욕을 부린 결과인 것이죠. 물론 다른 플레이어가 나에게 도전해서 지고 순위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이 과정을 보지 못합니다. 즉 플레이어는 PVP에서 이기는 경험만을 합니다. 돈 없어서 지거나 하는 그런 불쾌한 경험은 없는 거지요.

VIP 특전 캐릭터의 효용 또한 제한됩니다. 초반에 주는 마이나 18호의 전체공격은 PVE에선 굉장히 강력하지만 PVP에선 상대 캐릭터를 잡을만큼 강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가 스킬을 쓰는데 필요한 분노 게이지만 올려주곤 합니다. VIP 캐릭터 없어서 PVE를 조금 힘들게 플레이할 순 있어도 PVP에서 억울하게 밀릴 일은 없지요. 100만원 넘어가면 주는 초사이어인 손오공 같은 경우는 분명 PVP에서 쓸만할 지 모르겠습니다만, 조각 수급이 어려워서 성급 성장이 제한되기 때문에 전력으로 쓰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2-8. 장기 운영에서의 한계

도탑전기류 게임이 추구하는 것은 성장하는 재미와 돈 쓰는 재미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를 통해 점점 더 강해진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지만 농도가 더 짙습니다. 한국이 힘들게 큰 허들을 넘어갈 때의 쾌감에 중점을 둔다면 중국은 어렵지는 않지만 많이 깔려있는 허들을 하나하나 타고 넘어가는 재미를 중시합니다. 그리고 돈을 쓰더라도 모 아니면 도 식의 도박을 한다기 보다는 돈을 쓴 만큼 더 빨리 강해진다는 느낌을 주지요.

사드 때문에 중국 수출길이 막혔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전에 중국에 나간 게임도 존재합니다. 한국에서 성공한 게임도 있고, 아예 중국 시장에서 먼저 출시한 게임도 있지만 다들 큰 성공을 거두진 못했죠. 바로 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재미를 맞춰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봐요.

하지만 도탑전기 류 게임은 시간이 지나고 충분히 성장하고 나면 이 재미가 약해진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아무리 성장축을 많이 깔아둔다고 해도 결국 모두의 주기가 길어지고 나면 성장 단계에서 오는 피드백이 줄어들고 동기 부여가 약해지는 것이죠.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가 줄어들면 당연히 돈 쓰는 재미도 떨어집니다.

더 큰 문제는 구조적으로 이런 피로감을 해소할만한 장치가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매너리즘을 타파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새로운 수집 대상과 새로운 플레이 경험을 줄 수 있는 새 캐릭터를 투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장이 너무 깊기 때문에 새 캐릭터로 갈아타기 힘들고 그래서 새로운 플레이를 경험하기가 힘듭니다. 수집 대상은 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게임 내 토큰으로서의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지요.

2016년 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에반게리온이나 성투사 성시, 원피스 등 도탑전기류 게임들이 그래도 꾸준히 출시되고 차트애도 보였는데 2017년 들어서 거의 자취를 감춘 것 또한 바로 이 문제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전통적인 도탑전기류는 이미 채산성에서 한계를 보인 것이죠.

그리고 최근엔 이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도탑전기류의 틀에서 벗어난 게임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도탑전기류 게임이 갖고 있는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일본 가챠 게임의 요소를 일부 받아들여서 장기 운영에 유리한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관련된 내용은 2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2부로 이어집니다..






  1. 기본으로 주는 R등급 1레벨로도 클리어할 수 있는 극초반 스테이지에선 은상자 금상자가 나오지 않습니다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이들 스테이지들은 말 그대로 튜토리얼 단계라 반복 플레이할 이유가 없고 금상자 은상자에서 주는 진화 재료는 SR, SSR 카드가 있어야만 쓸모 있습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7. 12. 10. 23:12

0. 가챠라는 시스템

최초 정액 기반의 요금제에서 부분 유료화라는 과금 형식이 창설된 이후 기간제 부스트 서비스, 종량제 아이템, 기간제 아이템 등 다양한 시스템이 고안되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고객의 지불 의사와 한계에 맞춰 최대한의 과금을 끌어내는 가격 차별화의 측면에서 볼 때 현재까지 가장 효율적인 모델은 확률형 아이템 판매 - 가챠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 방식이 가지고 있는 사행성에 대한 이슈가 있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이는 가챠라는 시스템을 운용하는 방식에 따른 문제이지 가챠 자체의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매우 낮은 확률로 얻는 결과물 - 이하 SSR이라 칭하겠습니다 - 이 있어야 깰 수 있는 스테이지가 있다거나 PVP 중심이라 해당 아이템을 못가진 자는 계속 밟혀야 하는 등 게임 진행에 아주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는 게임에선 가챠는 사용자를 쥐어짜는 도구로 사용됩니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게임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만,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더군요.

반면 SSR이 강하긴 해도 게임 진행상 필수는 아니라면, SSR은 자기만족을 위한 기호품 내지 사치품에 머무르게 되며, 확률형이라는 형태로 이를 구입하고 말고는 사용자의 의사에 맡긴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가챠로 얻는 SSR을 게임 플레이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이 경우에도 가챠는 일종의 선택형 시간 단축 서비스에 머무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SSR을 소비자의 선택적 기호품의 영역으로 배치한다고 하더라도, 가챠는 기본적으로 원하는 상품에 대해 지불할 비용을 소비자가 선택할 수 없고, 원하는 것을 얻을 때 까지의 비용이 모두 매몰비용이 된다는 점에서 가챠가 소비자에게 불리한 구조임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낮은 확률을 딛고도 가챠를 사도록 가챠의 매력을 높이는 방법이 여러가지로 연구되고 있지요.

이런 관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게임 2가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제가 최근 플레이하고 있는 '콘트라 리턴'(이하 콘트라)과 '우타 마크로스'(이하 우타마크)인데요, 전자는 횡스크롤의 런앤건 스타일 슈팅 게임이고 후자는 마크로스의 캐릭터와 노래를 베이스로 한 리듬 게임으로 공통점이 눈꼽만큼도 없어 보입니다만, 시스템적으로 '꽝'의 효용을 높임으로써 가챠의 매력을 보완한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 콘트라 리턴

1-1. 왕후 장상의 씨를 나눴다.. 왜?

콘트라 리턴 게임 자체는 이전에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코나미의 고전 명작 콘트라를 소재로 만든 모바일 슈팅-RPG 게임으로 전민돌격(한국명 백발백중)과 유사하게 총기의 조각을 모아서 총기를 수집하고 육성하는 메타 게임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총기의 조각을 모아서 새로 획득하거나 별 갯수를 끌어올릴 수 있는데 이 조각은 영웅던전에서 얻을 수도 있고, 가챠에서 얻을 수도 있지요. 가챠에서 새로운 총기를 얻을 땐 아이템 자체가 떨어지고, 이미 갖고 있는 총기가 중복 당첨되었을 땐 조각으로 줍니다. 이 구조 자체는 도탑전기에서 확립된 것이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오렌지색 SS -> 오렌지색 S -> 보라색 S -> 보라색 A 등으로 각 총기 별로 태생적인 등급을 구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챠로 물건을 판매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 가챠에서 나올 수 있는 물건의 갯수, 즉 가챠 풀의 크기입니다. 아무리 상품을 확률로 판다고 하더라도, 나올 수 있는 결과의 경우의 수가 적다면, 확률은 금방 정복되어버립니다. 예를 들어 SSR이 나올 확률은 5%인데 SSR이 4종류 밖에 없다면 개별 SSR의 확률은 1.25%이고, 가챠를 80번만 뜯으면 얻을 수 있게 되는 거지요. 그렇다고 SSR의 확률을 1%로 낮추게 되면 아예 SSR 획득 자체가 어려워서 사용자가 그냥 포기해버릴 가능성이 커집니다. SSR 획득 자체는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지만 그 중 내가 원하는 SSR을 얻기는 어렵게 만들어서 Near-Miss 상황을 계속 만드는 것이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 유리합니다.

일본의 가챠 게임들은 캐릭터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계속 더해나감으로써 이런 가챠 게임의 구조를 유지해나가고 있습니다만, 도탑 전기나 나루토, KOF98UM과 같은 IP 기반 중국 RPG 게임들은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의 숫자가 이미 제한되어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캐릭터의 수는 이미 한정되어있는데 손오공은 원래 쎄니까 SSR, 야무치는 약하니까 R 이런 식으로 쪼개버리면 각 등급 별로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의 수가 정말 제한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들 게임들은 캐릭터의 등급을 없애는 식으로 대응합니다. 스킬이나 특성 등에 따라서 실제로는 좋은 캐릭터와 나쁜 캐릭터가 갈리겠지만, 적어도 시스템적으로는 모두 대등한 위치에 있기 때문에 누굴 뽑아도 SSR인 것이고, 그 중 내가 원하는 SSR을 얻기가 힘들어지는 거지요.


하지만 이것도 사용할 수 있는 캐릭터가 어느정도 있을 때에나 성립하는 이야기 입니다. 이전에 소개했던 대륙의 에반게리온의 경우 처럼 원작에 등장하는 에바와 파일럿 함쳐서 10개도 안되는 상황에선 원작에 나오지도 않던 X30호기니 R15호기와 같은 가상의 기체를 끼워넣어도 가챠를 운용할만큼의 수량이 나오지 않는 거지요. 그래서 등급을 아예 나누어 SSR에 해당하는 오렌지색 3성 기체들의 획득 확률이 낮은 명분을 확보하고, SSR들을 끝없이 쌓아올리는 구성을 취합니다.


콘트라 리턴 역시 위 에반게리온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물론 총기 아이템 막 찍어내는 거야 어려울리 없겠습니다만, 각각의 총기들에 대한 차별화에서 문제를 안고 있는 거지요. 게임 상의 총기들은 돌격소총, 저격총, 로켓포, 분사기, 기관포 5가지로 나뉘는데, 여기서 이미 총기들의 특성과 그로 인한 게임플레이가 거의 완전히 결정나버립니다. 캐릭터 게임이라면 힐러 중에도 즉시 힐을 주는 캐릭터, DOT 힐을 주는 캐릭터, 힐 량은 적지만 쿨이 짧은 캐릭터 등과 같이 여러 방법으로 분화할 수 있겠습니다만, 총기 갖고는 그런 식의 차별화를 할 여지가 없지요. 물론 FPS에서는 데미지, 탄창 갯수, 정확도 등으로 분화를 합니다만, 콘트라 리턴은 횡스크롤 슈터거든요. 총알이 앞으로 한발 나가느냐 3방향으로 나가느냐 스플래쉬 데미지가 있냐 없냐와 같은 정도가 아닌 차별성을 구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차별성은 이미 총기 종류에서 쪼개졌구요.

특성에 따른 수평적 차별화가 힘들기 때문에 수직적 차별화를 꾀할 수 밖에 없는 거지요. S는 A보다 강하고, 같은 S라도 오렌지S가 보라색S보다 구하기도 힘들고 더 셉니다. 하지만 조각 모음에 의한 성급 성장 (일본식으로 말하자면 한계돌파가 되겠죠)가 게임 내 주된 성장축이기 때문에 보라색 S도 조각 모아서 6성 만들고 부지런히 강화하면 조각을 못모아서 3성에 머무른 오렌지S보다 더 좋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오렌지S 조각 모아서 4성 5성 만들면 가볍게 보라색S를 제쳐버리겠지만, 이건 돈이 정말 정말 정말 많이 들어가는 길입니다.


1-2. 수평 성장을 유도하는 장치들

아까 한 카테고리 내에서 개별 총기에서의 차별화는 힘들다고 해도 총기 유형 별로는 특성이 강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콘트라 리턴은 수평 성장의 동기 부여가 약해진다는 또다른 문제를 안게 됩니다. 플레이어 입장에서 다양한 아이템을 수집할 이유가 줄어든다는 거지요. FPS와 마찬가지로, 총기의 특성과 플레이 경험이 밀접하게 연결되기 때문에, 자신의 취향이 아닌 총기는 얻을 필요가 없어지는 겁니다. 저격 플레이를 좋아하는 유저는 저격총을 선호하고, 저처럼 닥돌을 좋아하는 유저는 SMG나 돌격소총을 좋아합니다. 이런 상황에선 SSR이라고 해도 자기가 좋아하는 유형에 안맞으면 별 감흥이 없어지고 그만큼 가챠 만족도가 떨어지고, 결정적으로 신상품을 투입해도 그게 자신이 선호하는 유형의 총기가 아닐 경우 스킵해버릴 가능성도 큽니다.

콘트라 리턴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수평 성장을 유도하는 장치들을 보강해 넣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위 스크린샷에 있는 일일 컨텐츠 '군계대수军械大帅' 입니다. 이 컨텐츠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각각 정해진 유형의 무기로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스크린샷은 수요일인데, 수요일은 로켓포의 날이군요. 해당 유형 무기의 성장 정도에 따라 난이도를 선택할 수 있는데 당연히 난이도가 높아지면 보상이 좋아집니다. 저난이도에선 저등급 무기의 조각이, 고난이도에선 고등급 무기의 조각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번 3일차 7일차엔 최고 무기를 체험할 수 있는 체험티켓을 줘서 무/저과금자도 고등급의 조각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줍니다.(라지만, 실제로는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진제 먹여서 팔기 때문에 실제로는 고과금 유저들에게 일주일에 2번 3만원씩 뜯어가는 용도로 사용됩니다.)


또한 5개 유형별로 무기를 1개씩 등록해두면 추가 스탯을 주는 무기 코어(武器核芯) 시스템도 있습니다. 게임에 직접 들고 들어가는 무기는 2종 뿐이고 실제로는 이 두 무기만 육성하게 되는데, 나머지 총기들도 적어도 유형별로 1개씩은 꾸준히 성장을 시키도록 유도하고 있지요.


1-3. 모든 꽝들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무기 도감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군계대수든 무기코어든 종류별 1개씩의 최강자를 모으도록 유도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 최강자가 아닌 나머지 아이템은 어떠한 의미도 부여받지 못합니다. 말 그대로 꽝인 것이죠. 물론 가챠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원하는 물건이 아니면 다 꽝이긴 합니다만, 가챠를 지속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선 꽝은 꽝이지만 아주 꽝은 아닌, 절반 정도의 성공이라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주는 쪽이 중/저과금 사용자의 공략에 유리합니다. 그래서 도탑전기류 게임들은 아까 언급한 것 처럼 원하는 것이 아니어도 어쨌든 동급 캐릭터라는 식으로 위안삼을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하거나, 캐릭터 수집에 대해 보너스를 제공하는 식으로 비인기 캐릭터의 수집을 성장 축으로 끼워넣음으로써 꽝에 게임적 의미를 부여하고 사용자의 멘탈 데미지를 케어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콘트라 리턴은 무기 도감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꽝에 게임적 의미를 부여합니다. 도감은 총 5가지의 총기 유형별 도감으로 나뉘고, 현재 가지고 있는 총기와 아닌 총기를 보여주며 총기를 더 많이 수집할 수록 보너스를 줍니다. 여기까진 사실 일반적인 도감 컨텐츠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겉보기에는 말이죠.


하지만 실제 도감의 동작은 굉장히 독특합니다. 보통은 도감은 특정 조건을 만족시키도록 유도하거나, 수집한 항목의 갯수를 바탕으로 보상을 주곤 합니다만 콘트라 리턴의 도감은 도감 경험치에 의해 도감 레벨이 오르고, 도감 레벨이 오르면 스탯 보너스가 증가한다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도감 경험치는 새로운 총기의 획득, 기존 총기의 성급 성장에 의해 획득할 수 있습니다. 경험치 -> 레벨 -> 보너스의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이 도감 내에서는 최 하급인 녹색 C급도 어느정도의 가치를 지닙니다. 물론 같은 성급에 대해서도 등급이 높을 수록 경험치가 높긴 합니다만, 어쨌든 낮은 등급이라도 경험치가 발생하고, 때로는 경험치 획득으로 인해 도감 레벨이 오르고 보너스 스탯을 받는 긍정적인 경험을 줍니다.


획득 자체에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급 성장에 대해 보상을 준다는 점에선 데스티니6의 도감 시스템과 유사해보입니다만, 사용자 경험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선 콘트라 리턴의 성급 성장은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것이지, 이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 컨텐츠는 아닙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조각들은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어있고, 충분히 모이면 그냥 성급을 올리면 됩니다. 특정 아이템의 조각을 모으기 위해 자원을 추가로 사용하는 방법도 제한되어있지만, (영던 일일 제한 리셋이라거나 가차 구입이라거나) 이를 하급 아이템이 사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리고 성급을 높이는데 들어가는 자원은 해당 아이템에만 관여할 뿐, 다른 아이템과는 공유되지도 않지요. 그래서 그냥 별 생각없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으면 잡템 조각이 쌓이고 빨간불 들어와서 들어가보면 어라 성급이 올랐네? -> 도감 경험치가 올랐네? -> 도감 레벨이 올랐네? -> 전투력이 올랐네? 이렇게 가끔 찾아오는 선물 처럼 받아들여집니다. 도감에서 보상을 받기 위해 뭔가를 희생하거나 할 필요 없이 말이죠.

보상의 종류 또한 다르죠. 데스티니6는 위 스샷 처럼 골드나 젬과 같은 자원을 돌려줍니다. 제가 데스티니6를 많이 플레이해보지 않아서, 저 잡캐를 6성으로 진화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350젬에 4500골드보다 큰지 작은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주력캐라면 어차피 6성을 가야하니 겸사겸사 개평 받아 간다고 생각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잡캐를 저 젬 벌겠다고 자원 쏟아 키울 것 같지는 않네요. 반면 콘트라 리턴은 영구적인 스탯 보너스를 주기 때문에 훨씬 효용이 큽니다. 한창 성장이 정체되어있을 때 잡템 얻었더니 도감 경험치가 오르고 도감 레벨이 올라 전투력이 올라갔다. 그래서 새 스테이지에 도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등과 같이 훨씬 좋은 경험을 줍니다.


1-4. 구조적 문제를 캐주얼하게 극복하다

지난 IGC 강연에서의 주제는 '중국 게임의 캐주얼함' 입니다. 멘탈에 데미지를 주지 말고 살살 달래가면서 끌고 가는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죠. 도탑전기의 BM과 메타 구조도 같은 기조에 서있었구요. 콘트라 리턴은 그동안 도탑전기가 플레이어 멘탈 데미지를 케어하기 위해 발전시켜온 대부분의 요소들을 사용할 수 없거나 사용하기 힘든 불리한 구조를 가진 게임입니다만, 이를 매우 영리하게 보완해냈습니다.

특히 제가 높이사는 부분은, SSR의 가치를 높여 고과금자를 대상으로 공략하는 것이 아니라, N이나 R등 꽝에 해당할 바닥의 가치를 높임으로써 전체 유저에 대해 가차 상품의 매력을 높였다는 점입니다. 원하는 것이 안나와도 적당히 멘탈 데미지를 덜 받고 적당한 성공으로 위안받으며 또 한편으로는 더 큰 성공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부추기는 것이 중국식 가챠의 핵심이라고 할 때, 꽝에 대한 데미지가 적다는 부분에 대해선 오히려 기존의 나루토나 드래곤볼 보다도 더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본질적으로 캐릭터 보다 만족도가 낮을 수 밖에 없는 장비 장사임에도 말이죠.


2. 歌マクロス 우타 마크로스

두번째로 소개할 게임은 일본의 歌マクロス(우타 마크로스, 이하 우타마크)입니다. 마크로스 시리즈의 캐릭터와 노래를 소재로 한 리듬 액션 게임이죠. 팬심으로 열심히 플레이하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리듬액션 게임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배경 화면이 너무 화려해서 노트가 잘 보이지 않는다거나 구질구질한 노트가 등장하는 등 평가가 미묘한 구석이 있는 게임입니다만, 뭐 나쁘진 않습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구성은 지금 가장 잘나가는 모바일 리듬액션 게임인 아이돌마스터와 유사합니다. 가수들을 모아서 유닛을 구성하고, 이 유닛들을 데리고 게임에 들어갑니다. 노트에 맞춰 입력하면 점수를 받고 유닛들이 자동으로 스킬을 발동하곤 합니다. 특별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가수가 메인 상품이 아니고, 가챠에서 가수를 뽑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말이죠. 네, 이 게임도 가챠에서 캐릭터를 팔지 않습니다.


2-1. 캐릭터는 장식일 뿐입니다.

가챠에선 양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마크로스는 캐릭터의 수량이 적은 IP입니다. 파일럿이나 뭐 조연까지 끼면 조금 늘 수 있겠지만, '가수'라고 한정지어버리면 민메이, 바사라, 밀레느, 쉐릴님, 배추벌레, 아귀, 왈큐레 4명 해서 총 10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가챠 장사를 할 수 없지요. 초사이어인 손오공을 빨간 손오공 노랑 손오공 찢어진 손오공으로 뿔려서 장사한 드래곤볼 폭렬 격전 처럼 얼굴에 철판 깔고 양을 뿔리는 시도도 생각해볼만 합니다만, 이 게임에선 가수가 중앙에 3D로 나와서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캐릭터 베리에이션 하나하나가 다 돈이란 말이죠. 그래서 이 게임은 고심끝에 가챠를 해체하지 못하고, 원작 애니메이션의 장면들을 가챠로 파는 무리수를 둡니다. 게임 내에선 '플레이트' 라고 부릅니다.



캐릭터 자체도 약간의 속성과 스탯 보너스를 가지긴 합니다만, 게임의 핵심이 되는 스킬도, 스탯도 모두 플레이트에 부여되어있습니다. 특히 플레이트 내부에 있는 메인 보드에 일종의 스킬트리 형식으로 여러 스탯 보너스가 깔려있고, 게임을 플레이해서 얻는 자원들을 소비해서 각각의 보너스들을 해금하는 형식으로 성장합니다. 플레이트의 희귀도는 별의 갯수로 표현되는데, 등급이 높을수록 보드가 더 길어집니다. 스킬트리 형식이라고 해도 선행 노드를 언락해야 후행 노드가 언락될 뿐, 한쪽 루트를 파면 다른쪽을 파기 힘들어진다거나 하는 구성은 아닙니다.


그래서 게임의 핵심이 되는 대부분의 항목은 플레이트에 모여있고, 캐릭터는 플레이트를 담는 그릇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래도 각각의 캐릭터와 상성이 맞는 플레이트가 있고 안맞는 플레이트가 있다는 것과 같이 캐릭터가 게임적으로 아주 무의미하진 않습니다.


2-2. 꽝이 모여서 캐릭터와 발키리를 얻는다

캐릭터가 아닌 플레이트를 판매할 수 밖에 없는 사정은 위에서 설명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핵심 요소가 담겨있다고 하더라도, 플레이트는 캐릭터에 비해 수집 욕구가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의 주력 상품은 플레이트이지만, 플레이어의 수집 대상은 캐릭터의 옷과 발키리로 나눠집니다. 플레이트를 통해 간접적으로 판매되는 형식이죠


게임 상엔 플레이트와는 별개로 '에피소드'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특정 캐릭터의 특정 의상이나 특정 발키리와 연결되어있지요. 예를 들어 위 스크린샷에 있는 What'bout my star?라는 에피소드를 완수하면 셰릴님의 의상을 한벌 얻는 식입니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각각의 에피소드엔 에피소드 포인트가 있고 에피소드 포인트가 일정량이 될 때 마다 보상을 지급합니다. 그리고 컴플릿에 도달하면 의상이 해금되지요.발키리 에피소드면 발키리가 해금됩니다.


그리고 각각의 에피소드 포인트는 관련된 플레이트의 수집과 육성으로 획득합니다. 각 플레이트는 특정한 에피소드에 속하고, 한 에피소드엔 복수의 플레이트가 연결되어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플레이트의 노드들 중 '에피소드' 노드를 열면 에피소드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지요. 이게 플레이트의 조합 완성으로 컴플릿 되거나, 해당 에피소드의 모든 플레이트를 다 끌어모아야 컴플릿에 도달할 수 있다면 얄짤없이 컴프 가챠에 걸립니다만, 실제로는 포인트 형식이고 목표점이 전체 플레이트를 다 모아야 할 만큼 크지는 않기 때문에 컴프 가챠 요소는 아닙니다. 이미 에피소드를 완성한 이후에도 연관된 플레이트의 에피소드 포인트를 얻으면 아무 에피소드에나 포인트를 더해줄 수 있는 만능 포인트로 전환해주기도 합니다.


2-3. 플레이트의 매력 보완 계획

하지만 아무리 게임의 핵심 스탯을 담고 있고, 많이 모으면 의상을 해금할 수 있다고 해도 이 플레이트 나부랭이 자체가 가지는 매력은 캐릭터에 비해 훨씬 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은 그 외에 추가적인 장치들로 플레이트의 매력을 보완하는데요. 예를 들어 이미 갖고 있는 플레이트를 중복으로 얻을 경우 그자리에서 바로 성급을 1단계씩 올려줍니다. 흔히 말하는 한계돌파죠. 보통 이 한계돌파는 제일 좋은 SSR 에서나 의미가 있습니다만, 우타마크에선 조금 다릅니다. 1성부터 한계돌파로 계속 올라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급이 올라가면 노드 트리가 확장되거나, 추가 에피소드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시크릿 보드가 열리는 등의 특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낮은 성급의 중복이 떠도 에피소드 해금에 도움이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뭔가 돈내고 사기엔 다소 아쉬운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그래서 1일 3회, 가챠를 공짜로 뽑을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우정 포인트와 같은 자원 소모 없이, 그냥 하루에 세번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시간이 4시~12시, 12시~20시, 20시~4시로 흩어져있기 때문에 한번에 몰아서 받을 순 없고, 꾸준히 들어오기만 하면 됩니다. 에너지 충전 한계가 작기 때문에 틈틈히 자주 들어와야 하는 게임 특성상 그렇게 무리한 요구는 아니구요, 중국 게임에서의 밥타임과 같이 주기적으로 사용자에게 특정 시간에 접속하는 습관을 심어준다는 측면에서 리텐션 유지에 아주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플레이트의 가치만 높다면 더 좋았을텐데 말이죠.


2-4. 가챠 계의 데칼챠, 데칼 가챠

처음 우타마크를 플레이했을 때 가챠 화면을 보고 정말 뿜었습니다. 가챠가 아닌 데칼 가챠라니요. 그리고 가챠를 돌린 다음에 또 한번 뿜었습니다. 캐릭터도 아닌 장면 따위를 가챠로 팔다니 이거 정말 데칼챠구나! 그런데 게임을 조금 플레이하면서 컨텐츠를 들여다보니 이게 정말 캐릭터를 팔 수 없는 게임에서 뭐든지 팔려고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3. 정리

사실 가챠와 가장 궁합이 잘 맞는 건 캐릭터입니다. 게임적 의미를 부여해 가챠 풀에 추가하면서도 전체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쉽고, 또 게임적 성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캐릭터 고유의 매력으로 상품화 할 수도 있지요. 캐릭터 가챠가 흔히 말하는 왕도라면 콘트라 리턴이나 우타마크의 경우는 사도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사도라고 하면 이 두게임은 억울할 수 도 있겠네요. 보통 사도라고 한다면 부작용은 있지만 효과가 확실하거나 쉽고 빠른 길이어야 하는데, 이 두 게임은 굉장히 어렵고 힘든 길을 걷고 있으니까요.

나라도 다르고, 게임 장르도 다릅니다만, 이 두 게임이 캐릭터가 아닌 물건을 가차로 팔기 위해 선택한 방향은 가차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꽝에 대해서 시스템적으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멘탈 데미지를 줄여주고 유의미한 보상을 준다는 점에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과금 관련 쪽을 연구하고 고안하는 게 직업이긴 합니다만, 사실 제가 추구하는 방향은 '수익의 극대화'가 아니라 '행복 과금'입니다. 얼마를 쓰든 사용자가 행복하고, 행복한 만큼 쓴다면 그게 공급자 / 사용자 모두를 만족하는 궁극의 길이 아니냐는 거지요. 뭐 지리산에서 도닦는 이야기로 보이긴 합니다만, 사실 가챠는 이 '행복과금'을 이루기엔 그다지 좋은 도구는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꽝, 실패로 끝나니까요.

요즘 가차에 대한 소비자 여론이 적어도 인터넷 상에선 꽤나 험악해 보이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이건 가차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가차의 운영 방침상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를 써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얻어봤자 키우는데 하세월이다, 기껏 키워서 쓸만해졌더니 더 쎈게 나왔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면 예쁜 여자가 줄을 선다던데 막상 S대 가봤자 그런거 없더라..는 이야기 처럼, 고난의 길인데 그걸 해낸다고 뭔가 딱히 행복해지지도 않는 거지요.

그래서 제가 요즘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가챠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인데, 그 중 아래쪽 즉 꽝에 대한 행복도를 높이는 방법으로 콘트라와 우타마크의 사례가 재미있어 소개드렸습니다. 캐릭터 중심의 게임에서도 유저 불행도 관리 측면에서 충분히 도입해볼만한 디자인이라고 생각됩니다.



4. 광고

그러고보니, 제가 이번 IGC2017에도 강연을 합니다. 'HIT 일본 진출기'라는 제목 그대로, 거창한 노하우 전수 까지는 아닙니다만, 한국 특화 게임인 HIT를 일본에 팔기 위해 했던 했던 고민들과 그 결과로 나온 디자인들, 그리고 이를 실행한 경과 등을 소개합니다.


2017년 9월 1일 14:20,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 3층 강의실을 찾아 주세요.

http://igc.inven.co.kr/detail.php?code=Y29kZTM4




by 고금아 2017. 8. 27. 21:33

최근 드래곤볼 용주격투를 플레이하는 중, 흥미로운 지점이 있어서 공유합니다.


카드 단위로 캐릭터를 수집하고 합성하는 일본계 카드 게임과 달리 도탑전기는 조각을 단위로 하고 있습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죠.

성급 

조각 단위 (조각의 수)

 필요 당첨 수

 3

 60

 1

 4

 80

 2

 5

 100

 4

 6

 125

 6

참고로 도탑전기류의 가차는 일반적으로 10연가차시 온전한 캐릭터 하나를 보장하는데, 그래서 뽑힌 캐릭터가 이미 있는 캐릭터일 경우는 일정 갯수의 조각으로 전환해줍니다. 드래곤볼의 경우 21장으로 바꿔줍니다. 그래서 한 캐릭터의 성급을 올리기 위해서 가차에서 해당 캐릭터에 당첨되어야 하는 횟수는 계속 증가합니다.

이와 같이 같은 캐릭터를 서로 누적시키는 성급(星級) 성장에 있어서 재료가 되는 아이템의 양을 보다 유연하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은 꽤 큰 장점입니다. 플레이어가 절망할 정도로 캐릭터의 당첨 확률을 낮추지 않아도, 아니 플레이어가 기분 좋을 정도로 당첨 확률을 높여 놓아도 실제로 해당 캐릭터의 성급을 끝까지 성장하기는 어렵도록 유지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이 성급 성장에는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일정 단계 이상을 지나면 요구 조각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성장의 주기가 급격하게 길어진다는 것이죠. 기본적으로 중국 시장은 한국에 비해 플레이어들의 인내력이 낮습니다. 주기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피드백을 받지 못하면 - 설령 그게 HP 1점씩 오르는 거라고 해도 - 목표를 상실하고 이탈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탑전기류 게임에선 성급 성장 외에 등급 성장 (흰색 -> 녹색 -> 녹색+1 -> 녹색+2...)이나 아이템, 스킬 등 다양한 성장 컨텐츠를 병렬로 배치해 어느 한 축의 성장 주기가 늘어지더라도 다른 성장 축에서 성장 피드백을 주도록 배치하고 있지요.

하지만 가장 결정적으로 매출을 올려주는 컨텐츠는 성급 성장이기 때문에, 성급 성장의 주기가 길어지고 사용자가 성급 성장을 사실상 포기하게 되는 건 개발사 입장에서 그렇게 달가운 상황은 아닙니다.

그런데 드래곤볼은 성급 성장 시스템을 살짝 비틀어서 이 문제를 개선하고자 합니다.


우선 첫번째는 성급 성장에서 각 성급 사이에 중간 단계를 설치한 것입니다. 좌측 스샷의 무천도사를 보시죠. 화면 상단엔 별 5개 중 2개가 차있는데 그 아래엔 별 7개 중 4개가 차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 아이콘엔 별 4개가 떠있지요. 이 무천도사는 기본적으로는 4성입니다. 4성에서 5성이 되기 위해선 캐릭터 조각 100개가 필요하지요. 기존의 도탑류 게임에선 0개를 모았을 때 부터 99개를 모았을 때 까진 캐릭터에 아무런 변화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느정도 완성이 눈에 보이는 단계가 되기 전까지는 딱히 조각을 더 모아야겠다는 동기를 부여받기 힘듭니다.

하지만 드래곤볼은 0개에서 100개 사이를 20개 단위로 쪼개놓았습니다. 매 20개를 모을 때 마다 성장을 하도록 구성했죠. 그래서 저 무천도사는 4+2/5성이 되는 거지요. 우측의 초사이어인 오공은 4+1/4성인 거구요.

이 구조는 성급 성장의 기본적인 장점을 유지하면서도 피드백 주기가 지나치게 길어진다거나 목표가 너무 멀어서 동기부여를 받지 못한다는 단점을 완화시켜줍니다. 보다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던져줌으로써 꾸준히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죠. 이런 식으로 목표를 잘게 쪼개서 던져주는 것은 텐센트 게임의 최근 추세입니다.


 

 

이것 만으로도 동기부여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최근엔 '도감' 시스템을 추가했습니다. 사실 이전에도 이와 유사하게 캐릭터의 조합에 의한 보너스를 부여해서 특정 캐릭터들을 수집 육성하게 하는 장치는 존재했습니다. 예를 들어 손오공의 경우 베지터를 갖고 있으면 A 스킬을, 크리링을 가지고 있으면 B 스킬이, 무천도사가 있으면 C 스킬이 언락되는 식이었죠. KOF98UM의 숙명과 유사합니다.

도감은 비슷하게 캐릭터들을 일정 그룹으로 묶어두고 다 같이 보유하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만, 보유에 더해 성급 성장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많은 캐릭터를 보유할 수록, 그 캐릭터들의 성급이 높을 수록 속도 보너스를 받습니다. PVP에서 선공 여부를 결정하는 '속도'는 상위 랭커들에겐 굉장히 중요한 속성이죠. 그래서 저과금 / 초보 유저들에겐 그냥 성장 컨텐츠가 하나 늘어난 것 뿐이지만 상위 랭커들에겐 주력으로 상요하는 최강의 카드 6장을 최고로 키우는 것 외에 다른 캐릭터들도 수집하고 육성해야 할 - 돈을 써야 할 - 이유를 제공해줍니다.

그리고 상단의 저 보물 상자와 막대 그래프.. 캐릭 하나 1성 오를 때 마다 진도가 차오르고 진도가 얼마 이상 차오르면 보상을 줍니다. 정말 구석구석 꼼꼼하게 촘촘하게 보상을 걸어둡니다.

최근 검색해보니 블소 모바일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 같습니다. 사실 시스템 면면을 따져보면 블소 모바일은 도탑전기 모델에 굉장히 충실합니다. 하지만 그 모델이, 그 시스템이 추구하는 재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 정말 큰 패착이었습니다. 중국 유저들은 플레이하는 재미가 아니라 키우는 재미로 플레이한다는 거죠. 뭐 사실 RPG류가 다 그렇긴 합니다만, 한국이 효과가 크면 주기는 길어도 버틴다는 멘탈리티인 반면 중국은 조금만 지루해도 퓨즈가 나가는 개복치 멘탈입니다. 그래서 성장의 피드백 주기를 가능한 짧게 가져가고, 가능한 빨리 당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던져줘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드래곤볼이 도탑전기 류 RPG의 성급 성장에 가한 이 개량은 작지만 꽤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by 고금아 2016. 5. 19. 04:03

콜 오브 듀티 온라인은 예상대로 꽤 잘 만들었다.

기존 콜옵의 미션들을 PVE로 활용하고 있고, 기존에 이미 검증된 맵들 외에 중국 유저들을 위해 랜덤 스폰이 아닌 고정 베이스 기반의 팀 데스매치 맵도 추가했고, 스토리 기반이 아닌 서바이벌 베이스의 PVE도 있고 좀비 모드도 있다. 중국의 평균적인 사양을 감안해서 그래픽도 다운시켰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텐센트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 매 년 천만장 이상 팔아제끼고 있는 월클급 IP인데도 말이다. (러시아 안에서만 잘나가는데도 '너네가 게임을 알아?'라는 마인드로 퍼블리셔를 다 씹었던 모 게임과는 달리).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이 게임의 미래는 밝지 못하다. 크파에 익숙한 중국의 게이머들 취향에 맞춰 뜯어고치다보니 오히려 크파 하다 말고 이걸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겠다. 그냥 그래픽이 조금 더 좋고 우클릭으로 줌 해야하는 것이 불편한 게임이 되어버렸다. 특히 중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춰 고정 베이스 기반의 맵을 추가한 것이 치명타. 콜옵의 PVP 멀티는 랜덤 스폰 때문에 전투 국면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고정 베이스 기반 맵이 있으니 유저들은 굳이 새로운 랜덤 스폰을 하는 대신 그냥 고정 베이스 맵에 눌러 앉아버렸다.

게다가 그래픽이 좋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크파와 tgame (역전)에 비교해서지 객관적으로 지금 기준으로 딱히 좋지도 않다. 저사양에서도 돌아갈 수 있는 건 당연한 건데 고사양에서도 옵션이 잘려나가서 2~3년 전 게임으로 보인다. 애초에 FPS 시장의 보수성을 감안할 때 크파나 tgame 잡는 건 무리이고 A.V.A나 워페이스가 점유하고 있는 하이엔드 FPS 시장은 장악할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그마저도 어려워보인다. 새로운 게임플레이에 대한 욕구는 결국 하드코어 게이머의 것인데, 이들은 게임플레이 못지 않게 그래픽에 대한 욕구도 갖고 있다.

좋은 게임을 가지고, 시장에 맞췄을 뿐인데 오히려 매력이 다 깎여버린 역설적인 결과가 나왔다.

운이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내가 맡아온 FPS 게임들은 하나같이 뭔가 매력 포인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좀 낯설고 어렵고 불친절한 녀석들이었다. 매력은 있지만 그 매력을 느끼기 전에 다들 도망가버리는 이 게임들을 나는 '청국장 같은 게임'이라고 부른다. 콜옵은 굉장히 캐주얼한 게임이지만, 보수적인 아시아 온라인 FPS 시장에선 청국장이 될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국장의 냄새를 완전히 지워버려서 되나...

상업예술로서 시장과 관객을 의식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 과정에서 본연의 매력을 잃어버렸다는 점에서는 내일로 칸타빌레와 유사한 면도 있다. 위험하니까 만화적인 연출은 날리고 (일본이 좀 더 만화적인 연출에 익숙하긴 하지만 꽃남을 생각해보면 한국 시장에서 만화적인 연출이 안먹힌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판과의 비교 까지 염두에 둔다면 그것이 합리적인 결론일 수는 있다.). 그래도 캐릭터는 살려야겠으니 바보같은 인형 옷은 입히고. 제작비가 모자라니 PPL은 집어 넣고. 이미 검증된 요소인 제2남주와 삼각관계를 집어넣자. 이 모든 걸 종합하니 결국은 뭔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튀어나와버렸다.

반면 미생은 오히려 극화였던 원작에 없던 '만화적인' 연출을 군데군데 사용하면서 (눈에 비치는 하트 조명... 여간 잔망스럽지 않아..) '만화 원작'을 부담이 아닌 자산으로 받아들였다. 대부분의 씬들은 대사 하나 하나 전부 원작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단, 원작에서 다소 평면적일 수 있었던 캐릭터들은 좀 더 강화했다. 그래 나 청국장이다. 청국장이니까 당연히 냄새가 나지. 그런데 맛나단 말이다! 라고 외치는 것 같다.

기획자들은 필연적으로 하드코어 게이머인 경우가 많다. 시끄럽기만 하고 돈은 안되는, 정작 돈 낼 유저들의 취향은 모르거나 경멸하는. 그래서 주니어들에게 항상 주문하는게 덕내부터 빼고 오라는 것이고, 나 스스로도 항상 이게 프로페셔널한 기획자로서 도출한 결론인지 게이머로서 본인의 취향이 반영된 것인지 돌아보고 점검한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이건 이래서 안되고 저건 저래서 안되고 이런 식으로 뭔가를 자꾸 쳐내는데 익숙해진다.

콜옵 온라인을 보고, 내일로 칸타빌레를 보고, 미생을 보고 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나는 과연 지금 청국장에서 냄새를 빼고 있는 것이 아닐까?


by 고금아 2014. 11. 30. 23:18


원래는 울펜슈타인 뉴 오더 (이하 뉴오더)의 풀 리뷰를 쓸 생각이었습니다만, 고양이가 멀티탭을 건드리는 불의의 사고로 세이브 데이터가 망가져서 중후반까지 진행했던 모든 것들이 초기화되었습니다. 차마 다시 플레이할 수는 없어서, 간단하게 게임 디자인 적으로 눈여겨볼 2가지를 추려봅니다.


1. 공간 탐색을 재미를 다시 강조하다.

1993년의 FPS의 맵과 2010년의 맵을 비교한 유명한 짤방입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혐오하는, 맥락을 무시한 멍청한 짤방이죠. 울펜슈타인, 둠 시절의 FPS는 기본적으로 던전RPG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갈까 오른쪽으로 갈까. 이 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어딘가에 숨겨진 공간이 있진 않을까. 이런 긴장감이 그 시절 FPS의 핵심적인 재미였죠. 하프라이프는 복잡한 비선형적인 맵 구성을 퍼즐로 대체하는 대신 이제까지 게임 플레이와는 분리되어왔던 스토리텔링을 게임 플레이 안으로 포섭시켰습니다. 그리고 콜 오브 듀티에 와서는 그나마 있던 퍼즐조차도 버리고 헐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스타일의 장대한 모험극을 1인칭으로 즐기게 되죠. 그리고 이 스타일이 현재의 FPS 게임에선 주류가 됩니다. 애초에 추구하는 재미가 다르고, 그에 따라 맵 디자인도 바뀌어온 것인데 이런 맥락을 제쳐놓고 막연하게 과거에 비해 맵 디자인이 바보같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겁니다. 특히 게임 디자이너라면요.

뉴오더는 하프라이프 이후로 사라진, 바로 그 공간 탐험을 다시 강조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 자체는 선형이고 시나리오에 따라 강제로 하수구, 감옥 등 다양한 공간에 배치됩니다만 이 공간들은 콜옵 처럼 완전히 자동 선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직접 미지의 공간을 탐험해서 길을 찾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갈림길도 있고, 지름길도 있고, 지름길을 잘 찾으면 다소 유리한 상황에서 전투하는 보너스도 있지요.

다만 공간 탐험을 강조하고 있다고 해서 위에 보이는 1993년 게임처럼 방대한 맵을 탐험하도록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비선형 구조를 지닌 작은 던전들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선형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조금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3층 건물의 1층으로 진입해서 옥상으로 빠져나간다고 생각해봅시다. 그런데 한번에 1층에서 옥상까지 가는 중앙 계단이 없고, 각 층에서 다음 층으로 가는 계단을 찾아야 하는 거에요. 그럼 전체적인 진행은 1층 -> 2층 -> 3층 -> 옥상으로 빠져나가는 선형 구조가 됩니다. 하지만 각 층은 서로 다른 레이아웃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 층의 비선형적인 공간을 탐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작은 비선형 맵이 이어져서 선형 구성을 이루죠 실제로는 작은 비선형 맵도 어느정도 방향성을 지니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왼쪽 오른쪽 이 문을 열까 말까 두근두근하는 맛은 있습니다.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 자체는 과거의 저 거대한 비선형 맵보다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콜옵 식의 진행에 익숙한 캐주얼 게이머들에게는 큰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공간을 탐험하는 재미를 주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시리즈의 전통인 숨겨진 공간, 보물수집을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저렇게 ?로 표시해놓으면 밝혀내지 못할 비밀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지도에 나오지 않는 보물도 존재하고 보물이 있는 곳은 알겠는데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퍼즐인 경우도 많습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어서 다른 곳에 있는 환풍구를 탄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2. 튜토리얼과 성장, 게임의 결합 - PERK

성장 개념이 있는 FPS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망작이었던 2009년 울펜슈타인에도 있었고 파크라이에도 있었죠. 그런데 이전까지의 성장은 주로 스토리 진행에 따라 자동으로 어떤 능력이 주어지거나, 게임 진행으로 얻은 자원으로 구매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왔습니다. 보스를 죽였으니 보스가 가진 능력을 하나 준다거나, 혹은 이제 20레벨이 되었으니 스킬 포인트 1점을 가져가고 이걸 원하는 곳에 박으라는 식이었죠.

뉴오더의 PERK는 도전과제와 비슷하게, 행위를 통해 능력을 얻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의 예시를 보자면 헤드샷을 40번 하고 나면 무기를 바꾸는 속도를 높여주는 '퀵드로우'라는 특성을 얻는다는 식이죠. 나이프로 몇명의 적을 암살하고 나면 나이프를 던져서 암살할 수 있게 되고, 수류탄으로 사람을 얼마 이상 죽이면 수류탄 보유량이 늘어나는 식입니다. 그리고 선행 퍼크를 배워야 다음 퍼크를 열 수 있는 등의 연쇄도 존재하지요.

이 PERK 구성은 일단 특정한 행위를 반복할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선 도전과제와 유사하지만, 이게 게임 플레이에 보너스 혹은 성장으로 돌아온다는 점에선 언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 행위들이 단순한 동작을 무식하게 반복시킨다기 보다는 '벽에 엄폐한 상태에서 총 쏘기', '지휘관을 죽이기' 등 이 게임의 특징적인 행위를 반복시킨다는 점에서는 그 행위에 대한 튜토리얼의 성격을 갖고 있기도 합니다. 퍼크를 열기 위해 필요한 반복 횟수가 비교적 적고, 그림과 설명이 크게 따라나온다는 점에서 특히 이 튜토리얼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by 고금아 2014. 6. 16. 01:53

아래 네버윈터의 전투-스킬과 함께 다루려고 했다가 부연이 길어서 따로 정리합니다.

그동안 D&D 시리즈는 비 마법적 공격을 단순히 '공격' 하나로 처리해왔습니다. 마법사나 사제 등 마법을 가진 클래스들은 상황 봐가면서 자신이 가진 여러가지 능력들 중 무엇을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해야 하지만 전사나 도적 등은 그냥 '때려요' 밖엔 선언할 게 없었죠.

물 론 명중을 희생해서 데미지를 높이는 파워 어택이라거나, 적을 앞뒤로 포위하면 명중에 보너스를 받는 플랭킹(도적은 플랭킹 상황에서 기습을 적용받으며 추가 데미지가 들어갑니다) 등과 같이 고민할 거리가 없지는 않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모든 선언은 그냥 '때려요'입니다. 그리고 파워어택이든 플랭킹이든 사실 가능하면 무조건 해야하는 거지, 이거 대신 저걸 쓴다거나 하는 식의 전략성은 없어요.

그리고 공격 판정도 굉장히 심플했습니다. 각 마법은 의지력, 반사신경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저항할 수 있고 그래서 마법은 상대의 저항을 고려해서 골라야하지만 공격은 그냥 방어도(AC) 하나만으로 퉁쳐졌죠. 스켈레톤은 칼로 때리면 데미지가 덜 들어간다는 정도 외엔 딱히 차이가 없습니다.

WOD만 하더라도 공격에서 선택지가 상당히 많습니다. 피와 살이 튀는 처절한 육박전이 주가 되는 워울프의 예를 들자면 기본적으로 명중률이 낮은 대신 데미지가 높은 '할퀴기'와 명중률이 높은 대신 데미지가 낮은 '물기', 성공하면 지속적으로 데미지를 주는 '껴안기' 등 상당히 많은 공격 옵션이 존재하지요. 그런데 데미지의 양은 '공격의 기본 데미지 + 명중에서 온 보너스'이고 공격 횟수는 원하는 대로 쪼갤 수 있기 때문에 (쪼갤수록 명중률은 떨어집니다.) 얼마나 쪼개서 때릴지도 중요한 변수가 됩니다. 잘게 쪼개서 많이 성공하면 총 데미지양은 늘어나겠지만, 각 공격에 대해서 각각 데미지 흡수 판정이 있기 때문에 너무 잘게 쪼개면 총 데미지양은 높은데 데미지가 모두 흡수되어서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적게 줄 수 있습니다. 상대의 대미지 흡수력에 따라 어떤 메뉴버로 어떻게 쪼개서 얼마나 때려야할지 전략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또 본행동에 이어서 돌아오는 추가 행동을 어떻게 써야할지도 고민해야죠. 본행동을 쪼개서 공격하고 추가행동으로 정해진 횟수 만큼 회피할 수도 있고, 반대로 본행동에선 공격하는 대신 확률은 계속 낮아지지만 횟수에 관계 없이 모든 공격을 회피 시도할 수 있는 전력회피를 선언하고 추가 행동으로 아프게 데미지를 줄 수도 있습니다. 상당히 머리를 많이 써야하는 전투에요. 물론 그 반대급부로 전투 페이스가 느리긴 합니다만.

D&D4는 그동안 마법 클래스들만 가졌던 '매뉴버'의 개념을 모든 클래스에 나눠주고 있습니다. '파워'라는 형식으로 말이죠. 특히 기본 공격이라는 개념이 완전히 사라지고 그 대신 즉시기'At Will Power'라는 파워를 갖게 됩니다. 1레벨에서도 여러개가 제시되고 이들 중 2개를 배우게 되죠. 그래서 '기본 공격'에 해당하는 공격을 할 때에도 여러가지 옵션이 생깁니다. 데미지가 적은 대신 명중률이 높은 공격, 반대로 명중률이 높은데 데미지가 낮은 공격, 데미지는 약하지만 상대를 한칸 밀어내는 공격, 보통 데미지이지만 상대의 어그로를 끄는 공격 등 전사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거지요.

그리고 기존 마법 클래스들의 마법과 같은 역할을 하는 조우기'Encounter Power'가 주어집니다. 넓은 범위에 공격을 가한다거나, 특별한 속성 공격을 하는 등 즉시기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하지만 한 전투에서 단 한번만 사용할 수 있지요. 쉽게 말하자면 이제 근접 공격 클래스들도 '필살기'가 하나씩 생긴 겁니다.

마지막으로 조우기보다도 강력한 일일기'Daily Power'도 주어집니다. 조우기보다도 훨씬 강력한 기술이지만 게임 상 시간으로 하루에 한번만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이 걸립니다. 그러니 말 그대로 보스전까지 아껴둬야 하는 궁극기이자 초필살기인 거죠.

이 렇게 기술들의 사용 횟수와 빈도에 대해 제한이 걸림에 따라 D&D 4에서는 기술을 카드 형식으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즉시기를 사용할 때엔 해당하는 카드를 보여주기만 하면 되지만 조우기나 일일기는 사용하고 나면 마스터에게 돌려주고, 마스터는 전투가 끝나거나 날짜가 바뀔 때 다시 플레이어에게 돌려주는 형식이죠. 조우기나 일일기는 전투 혹은 하루가 지나기 전에 같은 기술을 다시 사용할 수는 없기 때문에 기존의 '메모라이즈'(마법사는 그날 쓸 마법의 종류와 갯수를 따로 지정해야했습니다.)가 굉장히 직관적이고 편하게 정리되었스니다. 또한 카드에 어떤 속성이고 어떤 굴림을 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정리되어있어서 많은 스킬들을 보고 익히고 쓰기에도 편하구요. 단, 마법사는 다른 클래스보다 많은 일일기를 배우고 이 중 어느것을 쓸 지 전날 결정하도록 바뀌었습니다. 메모라이즈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닌 셈이죠.

이런 파워 개념 외에도 내부 시스템이 굉장히 워게임스럽게 바뀌었습니다. D&D 3.5에서와 마찬가지로 정사각형 격자 맵을 사용하고 지형, 시선(Line Of Sight)나 통제지역(Zone Of Control. 적 유닛과 인접한 타일에 들어가면 멈춰야 한다) 등과 같이 위치에 따른 전략 요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탱커들 같은 경우는 상대를 밀고 당기는 등의 액션도 있고 어그로를 끄는 파워도 있습니다. (어그로를 끈 대상이 아닌 다른 대상을 공격하면 페널티를 받는다는 식입니다.)

이렇게 쓰고 나니 또 플레이하고 싶은데... 기회가 잘 안생기네요. ㅎㅎ

by 고금아 2014. 6. 13. 16:54

 과거 저렴하게 만들 수 있고 쉽고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MMORPG라는 것을 한번 연구해본 적이 있습니다. 특히 제가 담당했던 부분은 전투 시스템에 대한 대략적인 컨셉을 잡는 것이었는데 이때 중점을 뒀던 부분이 바로 스킬에 대한 부담을 줄이자는 것이었죠. 1부터 =까지 한줄에 12개, 그것도 모자라서 2줄 3줄의 스킬바에 스킬을 쌓아두고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부담이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디아블로3, 길드워2,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 등의 게임을 참고해서 여러개의 스킬을 배울 수 있되 이들 중 일부만을 선택하도록 하는 스킬덱이었습니다. 입맛에 맞게 전략적으로 스킬 덱을 구성하고 실제 전투는 기본 공격 중심으로 단순하게 가져가다가 스킬은 쓸 수 있으면 그때 그때 쓴다는 심플한 컨셉이었죠. 해당 프로젝트가 접히면서 이와 관련된 생각이나 연구는 딱히 진행하지 않았는데 최근에 비슷한 컨셉의 게임이 나와 소개하려고 합니다. 시티 오브 히어로즈로 유명한 크립틱에서 제작한 네버윈터 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HUD를 한번 보시죠. 제일 먼저 가운데에 눈에 띄는 노란 보석은 액션 포인트 게이지입니다. 적을 공격하고 죽일 때 마다 차오르지만 비전투 상황이라고 해서 깎이지는 않습니다. 그 위에있는 ^자는 사실 2칸으로 구성된 스태미너 게이지로, 굴러서 동적 회피를 할 때 마다 한칸씩 빠집니다. 그리고 이 보석 좌우에 있는 1,2번 슬롯은 각각 2개의 궁극기(Daily Power) 입니다. Q,E,R에 할당되어있는 세개의 빨간 슬롯은 3개의 특수기(Encounter Power)이고 마우스 좌/우 클릭에 할당된 두개의 녹색 슬롯은 즉시기(At-Will Power) 입니다.

즉시기는 딜레이 없이 마음껏 사용 가능합니다. 그래서 영어로는 At-Will Power 이고 기본 공격에 해당합니다. 특수기는 쿨타임이 있어 어떤 특수기를 한번 사용하고 나면 10~20초 정도의 기다려야 합니다. 궁극기는 스킬 자체에 쿨타임은 없습니다만 액션 포인트가 만충된 상태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하고 나면 다시 채워야죠. 이 기본 구성은 길드워2의 전사 캐릭터 스킬 시스템과 거의 동일합니다. 아드레날린 게이지가 3단계가 아니라 한칸이고, 마우스로 직접 공격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말이죠.

하지만 사실 이 구성은 유명한 TRPG 시스템인 Dungeons And Dragons(이하 D&D)의 최신작, D&D4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D&D4에서 즉시기는 매 턴 한번씩 제한 없이 쓸 수 있고, 특수기는 한번의 전투에서 단 한번만 쓸 수 있고 궁극기는 하루에 단 한번 쓸 수 있는 기술이죠. 이 턴제 TRPG 시스템에 최적화되어있는 구성을 실시간 액션 MMORPG에서 어떻게 표현하나 싶었는데 이렇게 아주 매끄럽게 옮겨놓았습니다. 브라보.

그리고 눈여겨보셔야 할 점은 특수기를 쓸 때 쿨타임을 제외하면 어떤 자원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누구는 MP를 소모하고 누구는 분노를 축적했다가 방출하고 누구는 딜 구슬을 모았다가 쓰고 이런 식의 2차 자원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관리해야 할 부분은 HP와 쿨타임이 전부입니다.

Tab키에 할당된 파란 버튼은 클래스별로 다른 역할을 해줍니다. 제 캐릭터는 도적인데 Tab키로 은신 모드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서 약간 좌하단에 위치한 보라색 그래프가 바로 스텔스 미터로 이게 끝까지 차있어야 은신에 들어갈 수 있고 은신에 들어가면 줄어드는 형식입니다. 도적의 모든 특수기들은 은신 상태에선 추가 효과가 발생합니다. 마법사는 특수기 1개를 골라서 Tab 버튼에 할당할 수 있는데 Tab에 할당되면 스펠 전문화라고 해서 그 마법은 추가 데미지나 부가 효과가 같은 보너스를 받는 식입니다.

그리고 Tab과 Q 사이에 작은 노란 버튼 2개가 보이는데 이는 클래스 특성 스킬을 할당하는 자리입니다. 플레이어는 여러개의 클래스 특성 스킬들 중 2개를 골라 저기에 배치할 수 있죠. 당연히 배치한 스킬만이 효과를 발휘합니다..


즉시기 2개, 특수기 3개, 궁극기 2개 + Tab 까지. 총 8개의 파워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만, 당연히 배울 수 있는 파워는 훨씬 많습니다. 이들 중 당장 쓸 것을 8개 채우는 거죠. 즉시기도 여러가지가 있어 골라서 잡으면 됩니다. 1레벨에서 받는 즉시기는 앞으로 전진하면서 적을 베는 근접 공격과 멀리 떨어진 적에게 단검을 날리는 (LOL 코르키의 미사일처럼 3초당 1개씩 생기는데 총 8개까지 축적됩니다.) 원거리 공격 이렇게 두가지였습니다. 뒤에 한 자리에서 연속해서 상당히 여러번 베면서 큰 데미지를 주는 근접공격이 생겼는데 발동까지 시간이 걸리고 일단 베기 시작하면 공격을 끊기가 까다로워서 처음 받았던 근접 공격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원거리 공격은 발동이 조금 느린 대신 한번 공격하면 DOT 데미지를 주는 파워가 생겨서 갈아치웠죠. 자기 플레이 패턴이나 다른 스킬들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파워 덱을 구성하는 재미도 찰집니다. 단, 파워를 갈아치면 10초간은 그 파워를 못씁니다.

그리고 나서 위쪽의 파워 트리를 보시면 실제로는 이게 트리가 아니라는 점에 눈길이 가실 겁니다. 파워 간에 딱히 선/후 관계가 없어 파워 트리에 특정 포인트를 쓰기만 했으면 그냥 익힐 수 있습니다. '특정 레벨'이 아니라 '특정 포인트 투자'라는 부분이 또한 포인트인데요, 첫줄에 있는 스킬들 위에 20포인트부터 사용 가능이라고 적혀있는 것이 보일 겁니다. 20레벨이 아니라 30레벨 아니 100레벨에 도달해도 파워에 20점을 쏟아붓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파워는 얻을 수 없습니다. '레벨'이 아니라 '이제까지 투자한 포인트'를 기준으로 삼으면서 포인트를 아껴두었다가 후반 레벨에 나온 좋은 스킬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행위를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있습니다. 각 스킬은 3단계까지 업그레이드가 가능한데 3단계 업그레이드도 20점을 투자한 이후부터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30점 이후의 파워들은 파라곤이라고 해서 30레벨에서 결정하는 세부 직업에 따라 결정됩니다. 도적의 경우 은신-기습을 주로 하는 Master Infiltrator와 장거리 공격에 중점을 두는 Whisperknife로 쪼개집니다. 그리고 뭘 고르는지에 따라 30포인트 이후의 스킬셋이 달라지요.


캐릭터 특성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캐릭터 특성은 클래스 특성과 달리 퀵슬롯에 등록하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는데, 각 열에 몇점 이상을 투자해야만 다음 열에 투자할 수 있도록 열리는 구성입니다. 그리고 오른쪽의 특성들은 30레벨 전까지는 잠겨있다가 무슨 세부직업을 고르느냐에 따라 다시 달라지죠.


스태미너를 소모해서 동적 회피를 할 수 있고, 2차 자원 없이 쿨타임만으로 스킬들을 통제하는 것은 길드워2와 동일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이 게임은 블레이드 앤 소울과 같은 형식의 논타게팅 액션 전투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우스룩에 WASD로 이동하고 그래서 파워와 관련된 단축키들은 1,2(궁극기) / Q,E,R (특수기) / Tab에 기본적으로 배치되어있지요. 3번은 아티팩트 슬롯이고 누르기 힘든 4,5,6번은 포션 빠는 슬롯, 7은 탈것을 불러내는 데에 할당하고 있습니다. 전투에 들어가면 힘들이지 않고 아주 쉽게 쉽게 파워를 쓰고 포션을 빨 수 있습니다.

블소의 경우는 대전게임의 연속기라는 개념에 좀 더 집중해서 어떤 공격을 명중시켰느냐에 따라 스킬들이 계속 바뀌고 그 가운데 써야 할 스킬들을 또 재빨리 눌러야하는 부담이 있습니다만 네버윈터는 그런 것 없습니다. 스킬은 쓸 수 있고 쓰고 싶을 때 쓰면 되는 것일 뿐이죠. 대신 기본 공격의 모션이나 타격감이 괜찮습니다. 일반적으로 서양 MMORPG는 타격감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있는데 네버윈터의 타격감은 상당히 시원시원하면서도 플레이하면 피곤할 정도는 아닌 적정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기획자로써 길드워2를 상당히 좋아하지만 전투 템포가 다소 느리고 6번 이후의 스킬을 사용하기가 힘들다는 점은 불만이었습니다만, 네버윈터는 이를 상당히 시원시원하게 잘 풀어냈습니다. 쉽고 간단하면서도 깊이가 있는 전투라는 점에서는 이제껏 나온 MMORPG 중에선 가장 뛰어나지 않나 싶습니다. 블소 처럼 피곤하지도 않구요.

다만 이렇게 전투-스킬 시스템을 잘 만들어두고도 정작 나머지 부분에서는 각 레벨 대에 맞는 존이 있고 거기 가면 또 메인퀘와 잡퀘들이 우루루 공급되는 모습이 아주 일반적인 MMORPG의 구성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WOW에서 성공했지만 한번 지나간 공간을 두번 방문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맵이 말 그대로 '소모'되고 레벨에 따라 유저들이 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된다는 문제가 있었죠. 사실 그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길드워2가 밝혀냈다고 봐야겠습니다만.

컷씬 따위 없고 심지어 인게임 연출도 없이 단순히 대화창으로만 돌아가는 메인 퀘스트의 진행이나, 같은 공간에서 계속 뺑뺑이를 돌리는 모습을 보면 스타워즈 구공화국이나 블소처럼 아주 많은 자본이 투입된 게임은 아닌 걸로 보입니다. 그리고 딱히 필드 이벤트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필드 상에서 유저의 협력이 이루어지지도 않고,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여기 있다는 정도 외에 딱히 MMORPG로서의 MMO함이 잘 드러나지도 않습니다. 차라리 필드를 걷어내고 인던 중심으로 만들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긴 합니다. 뭐 이 포스트에서 자세히 다룰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여하튼 스팀에서도 서비스 중이니 한번쯤 해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메타 크리틱 점수는 낮은데 꽤 재미있어요. 다만 이게 스팀 계정가지고 게임 계정을 연동하는게 아니라 공홈에서 별도 계정을 만들어야하는데 한국은 IP 제한이 걸려있을 겁니다. Zenmate가지고는 안되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7일 혹은 30일 무료 체험 있는 상용 VPN으로는 등록이 될 겁니다. 일단 계정만 만들면 플레이하는 것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by 고금아 2014. 6. 13. 04:55


0. 동기식 멀티플레이의 금기

예전 피쳐폰 시절도 그렇지만, 아이폰이 도입된 초기엔 모바일이라는 플랫폼에 대한 개념은 안드로로 날려보내고 익숙한 게임을 단순하게 스마트폰으로 이식한 게임이 많았습니다. 정확하지도 않은 가상 패드를 쓰고 로딩은 길고 중간에 그만둘 수 없는, 기존 게임의 모사품들이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모바일 게임이란 언제 어떻게 하다가 언제 어떻게 관둘지 모른다는 특성을 이해하면서 한손으로 조작이 가능하고 언제든 멈출 수 있거나 플레이 단위가 아주 짧아야 한다는 등의 일반적 원칙들이 자리잡았습니다.

특히 실시간 멀티플레이에 대한 환상이 많이 깨졌죠. PC에서 실시간 멀티플레이 게임이 잘 되니까 모바일에서도 실시간 멀티 플레이 게임을 만들면 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만 사실 이건 말이 안되는 소리입니다. 배터리는 엄청나게 먹지요, 모바일 네트워크는 불안정하지요, 플레이는 언제 중단될 지 모르죠. 확밀아, 퍼즐 앤 드래곤 등 성공한 게임들은 모두 비동기식 멀티 플레이를 채택하고 있스니다. 만일 2014년 지금 누군가가 모바일로 실시간 동기식 멀티플레이 게임을 만들겠다고 하면 대못박힌 야구방망이로 뒤통수를 후려쳐도 업계 보호 차원에서 정당방위로 인정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생각했습니다. 드래곤 포커(이하 도라포)라는 게임을 해보기 전까지는 말이죠.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보시죠.


1. PVE 포커 RPG



게임 플레이는 간단합니다. 5명의 플레이어가(사람이 부족할 경우 CPU가 대신 채웁니다.) 파티를 짜서 던전에 들어가고, 매 스테이지마다 1~3마리의 몬스터가 나타납니다. 매 턴마다 플레이어가 먼저 공격을 하고 몬스터가 반격을 합니다. 플레이어들은 매 턴 마다 4장의 카드를 받고 그 중 1장씩의 카드를 냅니다.(다음 턴이 되면 리셋해서 다시 4장의 카드를 받습니다.) 원페어부터 파이브카드에 이르기까지, 일단 역이 메이드 되면 메이드 된 카드들이 몬스터들을 공격합니다.

포커 룰 대로라면 역을 메이드해서 공격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될 수 있겠습니다만, 도라포의 포커 룰은 원래의 포커룰보다 훨씬 느슨합니다. 위 오른쪽 스크린샷을 보시면 2-3-4-5-5의 5장인데도 스트레이트가 메이드 된 것을 볼 수 있지요. 도라포는 5장이 아닌 4장만으로도 스트레이트가 만들어지며 중간에 페어가 한장 끼어있을 경우 5장 모두 스트레이트로 칩니다. 4장이 아닌 3장만 연속되어도 '미니 스트레이트'라고 해서 역으로 쳐주기도 하지요.(단, 원페어보다 아래로 칩니다.) 플러쉬 역시 스다하크(스페이스,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의 4종으로 구성된 기본 포커와 달리 적-청-녹 3개의 속성만이 존재하기 때문에 훨씬 메이드하기 쉽습니다. 대신 플러쉬는 투페어보다도 아래로 설정되어있지요. (그리고 익히 짐작하시겠지만 3속성은 수>화>목>수 의 가위바위보 밸런스입니다.)

다섯명이 한장씩 차례대로 내기 때문에 실제로는 20장의 카드 중 5장으로 역을 만드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역은 잘 나오는데, 이걸 만들어가는 과정이 쏠쏠합니다. 한명 한명씩 카드가 쌓여가면서 어떤 역들이 가능한지 점점 구체화되고, 최종적으로 큰 역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긴장감은 사실상 세븐카드 포커에서 한장씩 카드를 받아볼 때와 같은 감정입니다. 다만 완전 랜덤인 세븐카드 포커와 달리 여기선 각자가 특정한 역을 그리면서 카드를 낸다는 점이 차이겠지요.


2. 어째서 동기식 멀티플레이인가?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각자 무슨 카드를 지금 손에 들고 있는지 알려줄 수 없습니다. 사실 자기 차례가 되기 전엔 본인도 자신의 손패를 알 수 없죠. 그래서 사실 굉장히 정교한 전략이나 협력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어차피 무슨 역을 만들지는 2~3구에 이미 정해지고, 그 뒤는 정말로 그 카드들이 손에 들어오느냐의 문제 뿐이죠. 위 스크린샷을 보면 1,2구째에 목 속성으로 7,8이 만들어졌습니다. 스트레이트 또는 플러쉬 비전인데 3구째 플레이어가 6이나 9가 없었는지 일단 Q로 플러쉬 비전을 붙여둡니다. 어차피 4장만으로 스트레이트가 가능하고 플러시가 원페어보다 약하기 때문에 수 속성의 9를 갖다 붙여서 스트레이트 비전을 밉니다. 그리고 5구째에 불7을 붙이면서 원페어로 망했죠.

사실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에 머리 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차피 손에 들어오지 않은 카드는 내지 못하니까 결국 7을 내서 원페어로 망하더라도 딱히 그사람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이 게임에서 협력이라는 건 사실 정교한 게임 플레이가 아니라 단순하게 5명의 운을 합쳐서 같이 굴리고 모두 함께 보상받죠. 이것도 엄연히 협력이고, 멀티플레이 협력에서 요구되는 보상과 의외성이 모두 충족됩니다.

 

 

물론 그 댓가는 참혹합니다. 동기식 멀티플레이 게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서버와 통신해야 하며 통신망에 이상이 생기면 위와 같은 화면이 뜹니다. 3G 인터넷 환경이 좋은 한국은 모르겠지만, 안터지는 곳도 많고 터져도 속도가 1K씩 나오는 이곳 중국에선 정말 자주 보는 화면이죠.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에 복귀한다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접속이 끊긴 채로 내 차례가 지나면 AI가 자동으로 패를 내버립니다. 그나마 저렇게 돌아오기라도 하면 다행이지, 간신히 접속 이어서 들어와보니 이미 다 죽어있으면 참 억울하고 짜증이 납니다. 게임 내적 요인이 아닌 외적 요인으로 플레이어에게 게임 내적으로 손해를 입히면 안된다는 건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만, 이 게임에선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 과일은 달콤합니다. 반대로 이 게임이 비동기식 멀티플레이를 채택했다고 한번 가정해봅시다. 확밀아처럼 레이드를 뛸 수도 있을테고, 퍼드 처럼 남에게서 카드를 한장 빌려올 수도 있겠죠. 어느 쪽으로 가든 간에 유저는 오롯이 자신의 운으로 게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포커라는 게임이 기본적으로 원페어 이상을 만들기 어려운 게임이죠. 협력에 의한 즐거움 이전에 기본 게임플레이에서부터 역 만들기가 어려워 짜증날 가능성이 큽니다. 


3. 또다른 랜덤 요소들

 

 

콜렉팅 카드 게임으로 당연하게 스킬과 합체기라는 또다른 요소들이 게임에 개입합니다. 각 카드는 최대 1개의 스킬을 지니고 있는데, 카드가 메이드 된 역에 포함되어 공격할 때 랜덤하게 발동됩니다. 체력을 회복시켜준다거나, 특정한 속성을 공격을 가한다거나, 적 전체에게 공격하는 등 다양한 효과가 있지요. 반면 합체기는 랜덤이 아니라 메이드 된 카드들 중 같은 카드가 2장 있거나 서로 연관된 카드들이 있을 경우 반드시 발동됩니다. 같은 카드 2장은 익히 예상할 수 있지만 연관된 카드라는 건 딱히 게임상에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터져나오죠. 그럼 이런 표정이 되는 겁니다.


4. 게임의 중심요소로서의 의외성(도박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

이 게임의 핵심 가치는 다섯명의 운을 합쳐서 도박이 지닌 의외성 중 긍정적인 부분만을 돌려준다는 것에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의외성이 플레이어에게 손해를 끼치지는 않습니다. 항상 플레이어에게 유리한 쪽으로 작용합니다. 운이 좋으면 더더욱 유리한 결과가 나오겠지요. 물론 4구까지 스티플 비전이었는데 5구째에 카드가 말려서 원페어도 못만드는 지지리도 궁상맞고 눈물나는 상황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굉장히 희박한 일입니다.

 

 

위 스크린샷을 한번 보시죠.  왼쪽 하단을 보면 BET 이라는 버튼이 있고 여기를 클릭하면 게임머니를 걸 수 있습니다. 보통 표시된 액수의 10배까지 걸 수 있고 결과에 따라 돌려받는 액수가 다릅니다. 대결 형식이 아니라 패의 질만을 보는 포커 게임들은 보통 2페어는 만들어야 건 돈을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쓰리카드 이상이면 조금씩 늘어나고, 1카드 이하는 건 돈을 돌려받지 못하죠. 하지만 이 게임에선 원페어만 나와도 건 돈을 그대로 돌려받습니다. 스트레이트가 만들어지면 5배, 파이브카드면 아마 8배 까지도 돌려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차피 저렇게 걸고 돌려받는 액수는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카드 한장 강화하는데 몇만 골드씩 소모되는데 1000골드 걸어서 8천골드 돌려받아봤자 간에 기별도 가지 않죠. 사실 게임 내 경제 측면에서 저 베팅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유저에 대한 일종의 작은 보너스죠. 

일찍이 의외성은 놀이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의외성을 중심으로 꾸며진 게임은 많았죠. 하지만 드래곤 포커는 의외성을 게임의 핵심으로 사용하면서도 그 중심을 아주 유저에게 친화적인 방향으로 옮겨놓았습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유저에겐 좋습니다. 더 좋을 수 있고 덜 좋을 수 있지만 어쨌든 손해는 보지 않습니다. 물론 상징적으로 손해보는 케이스를 남겨두긴 했지만 사실상 발생하지 않죠. 이 원칙은 다른 게임에도 충분히 확대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5. 게임 내에서의 전략 요소

 

이렇게만 써놓으면 게임이 거의 완전히 의외성으로만 굴러갈 것 같습니다만, 이게 또 완전히 랜덤이라면 플레이하는 의미가 덜하겠죠. 플레이어는 받은 손패를 내는 것 외에 SP 스킬이라는 형태로 게임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SP는 쉽게 말하자면 '기 게이지'로 역이 만들어질 때 마다 쌓이는 점수입니다. 당연히 좋은 역이 만들어질수록 많이 쌓이고 최대 100%까지 쌓이죠. 플레이어는 이 SP를 소모해서 다양한 효과를 끌어냅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카드화 확률 증가입니다. 이 게임은 퍼즈도라와 마찬가지로 적 몬스터를 쓰러트릴 때 마다 일정 확률로 그 몬스터를 자기 것으로 가져올 수 있는데 확률 증가 카드를 쓰면 이 확률을 높일 수 있지요. 손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손패중 일부를 랜덤하게 버리고 다시 몇장을 가져올 수도 있고 몬스터의 스킬 발동 확률을 높일 수도 있습니다.

이 SP 스킬들은 모두 다양한 카드 형태로 등장합니다. 카드화 확률 증가의 경우 랜덤하게 1장만 올려주는 카드가 있는가 하면 2장 올려주는 카드도 있고 3장 모두 올려주는 카드가 있습니다. 손패 바꾸기도 1장부터 3장까지 다양하지요. 당연히 좋은 카드일수록 SP 비용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SP 스킬을 가지고있다고 다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들 중 일부를 선택해서 장착해 게임에 들어갑니다. 어떤 SP 스킬을 장착할 것인지부터 어떤 스킬을 언제 쓸 것인지까지 유저의 전략과 개입을 필요로 하지요.


6. 동기식 플레이와 친구의 활용

또한 동기식 게임이다보니 친구관계를 활용하는 방식도 다른 게임들과는 다릅니다. 퍼드의 경우 친구의 리더카드를 빌려올 수 있고, 그래서 좋은 리더카드를 지닌 친구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반대로 자신도 좋은 리더카드를 유지할 필요가 있죠. 도라포는 친구의 파티에 빈자리가 있으면 그 던전에 난입할 수 있는 '같이하기' 기능이 존재합니다.

기존에 게임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CPU 보다는 사람이 들어오는 것이 당연히 유리합니다. 지능도 AI보다는 사람이 좋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CPU 보다는 좋은 카드들을 갖고 있을테니까요. 하지만 난입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난입은 중요한 메리트가 있습니다. 스태미너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게임은 퍼드처럼 던전에 들어가면 스태미너를 소모하는데, 회복 속도에 비해 소모량이 상당합니다. 5분에 1점씩 차는데 1레벨 던전도 최대 9점을 소모하죠. '최대' 라는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각 던전에서 스테이지를 넘어갈 때 마다 스태미너가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1레벨 던전의 경우 3점짜리 스테이지가 3개 있는 것이죠.

만일 제가 최대 60점을 소모하는 던전에 들어가고 싶은데 당장 가진 스태미너가 45점 밖에 없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15X5로 75분을 기다리거나 유료템인 젬을 먹어서 스태미너를 채워야겠죠. 하지만 만일 다른 친구가 이미 그 던전에 들어가있고 2스테이지에 있다면 저는 첫 스테이지의 참가비인 20점을 낼 필요가 없으므로 난입이 가능합니다. 그럼 난입해야죠.

중간에 난입하게 되면 당연히 지난 스테이지에 대한 보상은 받지 못하지만, 앞으로의 스테이지에 대한 보상에는 아무런 페널티가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던전에 꼭 가야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가급적이면 일반 던전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친구의 던전에 난입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그리고 이 친구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본인도 계속 던전을 돌고 덱을 성장시키는 것이 중요하죠.


7. 덱의 관리와 확장

 

 

이제까지 동기식 멀티플레이 PVE 포커 게임으로써의 면모를 살펴보았다면 이번엔 카드 컬렉팅 게임으로써의 도라포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덱 구성부터 시작해보죠. 플레이어의 덱은 1장의 A카드와 12장의 일반 카드로 구성됩니다. 일반카드는 다시 火 속성 카드 4장, 水 속성 카드 4장, 木 속성 카드 4장으로 구성되죠. 원한다고 火속성만 12개 꽂고 그럴 수 없습니다. A 카드는 항상 A입니다. 나머지 카드는 던전에 들어갈 때 마다 랜덤하게 번호가 매겨집니다. 지난번에 들어갔을 땐 저기 보이는 이프리나가 2였는데 이번엔 7일 수도 있고 다음번엔 Q일 수도 있지요. 당연히 각 카드는 강화 진화 가능하구요.

당연히 레벨이 올라갈수록 한계 코스트는 올라가겠지만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숫자는 13개로 제한되어있습니다. 등급이 올라갈수록 코스트를 높이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겠습니다만 그러기엔 13장을 반드시 갖고 있어야한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쪼렙이라도 (아니 쪼렙일수록) 가차에서 뽑은 좋은 카드를 덱에 떡 하고 박아서 게임에서 쓰는 재미가 중요한데 자칫하다간 좋은 카드 뽑으신 건 축하드릴 일이지만 그거 쓰려면 나머지 카드를 모두 허접한 걸로 박거나 열렙해서 코스트 한계를 높인 뒤에 쓰라는 괴악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지요. 이렇게 가차 뽑는 보람이 없어선 곤란합니다. 마블 퍼즐퀘스트가 그런 케이스였죠.[각주:1]

이 문제를 회피하기 위해 꼬붕(子分)이라는 시스템이 붙어있습니다. 왼쪽 스크린샷에 보면 보라색 버튼이 있지요. 도라포에선 13장의 카드 아래에 꼬붕이라는 서포터 카드를 붙일 수 있습니다. 오른쪽 스크린샷 보시면 A카드인 '소악마 나나' 아래에 '배고픈 팬더'를 꼬붕으로 붙인 상태죠. 꼬붕은 자신이 붙어있는 메인 카드의 스펙에 보너스를 주고, 꼬붕의 고유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 팬더의 꼬붕 스킬은 메인 캐릭터의 할퀴기 스킬을 올려주는 군요. 40레벨이 되면 A카드의 꼬붕 슬롯이 열리고, 이후 레벨이 오르면 다른 카드들의 꼬붕 슬롯도 열립니다. 처음엔 하나만 열렸다가 2개 3개 4개로 점점 늘어나는 구조죠.

이 꼬붕 슬롯은 앞서 말한 것 처럼, 덱 크기의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좋은 카드의 코스트를 무진장 높이지 않으면서 코스트 증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합니다. 또한 메인과 꼬붕 카드의 조화, 꼬붕 카드로서의 특성과 장점 등 다양한 요소가 가미되면서 덱 구성의 게임플레이를 강화하지요.


8. 카드의 강화와 진화

 

 

 

강화/진화 시스템은 (다른 부분들이 다 그러하듯) 기본적으로 퍼드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강화는 카드를 갈아먹여서 경험치를 쌓고 레벨을 올리는데 같은 카드를 먹이면 카드의 스킬 레벨이 오릅니다. 진화의 경우, 필요한 카드가 정형화 되어있습니다. 경험치나 스킬을 올려주는 전용 몬스터의 경우는 같은 몬스터, 그 외는 오른쪽 스샷에 나온 것 처럼 진화용 카드들을 먹이면 됩니다. 

 

 

강화든 진화든 기본적으로 다른 게임들과 큰 차이가 없는데, 보상은 좀 남다릅니다. 진화를 통해 새 카드를 도감에 추가할 때 마다 용석을 지급해주거든요. 지금 보신건 레어 급을 레어+급으로 추가했더니 용석 1개를 준 것인데, 좀 더 희귀한 카드를 만들면 좀 더 주기도 했습니다. 용석은 퍼드의 알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하나 톡 까먹으면 스태미너를 풀로 회복시켜주고, 던전에서 죽었을 때 부활할 수 있고, 유료 가차를 깔 때 쓰입니다. (용석 4개당 가차 한번). 그러니 당장 덱에 넣지 않을 카드라고 하더라도 성장해서 진화시키고 다시 용석으로 가져가는 것이 유리합니다.


9. 반복 플레이를 요구하는 극비 미션


 

 

던전 리스트를 보면 Clear 여부 외에 트레져(보물) 획득 여부가 따로 구분되어있는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각 던전은 하나씩의 보물을 가지고 있으며, 플레이어가 던전을 클리어하면 기본적으로 일정한 보상을 받는데 거기에 더해서 추가로 얻을 수 있습니다. 단 한번만 얻을 수 있지요. 그래서 클리어는 했지만 아직 보물은 얻지 못한 던전이 존재하고, 보물까지 얻고 나야 비로소 그 던전을 클리어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위 스샷의 두번째 던전은 클리어를 못했는데도 보물은 얻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그 던전 보스전 도중에 네트워크 장애(=_=)로 튕기면서 발생한 현상입니다.

 

 

각 에어리어(같은 난이도 - 별 갯수 - 를 지닌 던전의 집합)을 모두 클리어 하면 다음 던전이 열리면서 보상으로 덱 코스트 한계를 올려줍니다. 그렇다면 보물을 모두 얻으면 무슨 보상이 있을까요? 그 비밀은 아까 왼쪽 스샷의 왼쪽 코너에 있는 "극비 미션"이라는 메뉴에 있습니다. 극비 미션에 가보면 특정한 보물을 모으면 그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스샷은 별 10개짜리 노말 던전에서 나오는 보물 셋을 모으면 용석을 무려 10개나 주는군요. 각각 어느 던전에서 나오는 보물인지 지정되어있습니다.

용석을 째째하게 한두개도 아니고 5개 10개씩 마구마구 뿌려주니 유저 입장에선 여기에 메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보물이 나올 때 까지 계속 던전을 돌아야하니 컨텐츠 소모도 늦춰주고, 돈주고 사야하는 아이템을 준다고 하니 유저가 좀 더 오래 자주 많이 게임을 하게 되지요. 이게 정말 사악한게 자고로 돈보다 빼앗기 힘든게 시간인이고 이 시간을 자발적으로 갖다바치도록 유도할 뿐더러 이렇게 얻은 용석을 써버릇하면 나중엔 용석을 사서 쓰게 됩니다. 그리고 비과금 유저도 충분히 이 보물찾기로도 게임을 꾸려갈 수 있구요. 저같은 경우, 지금까지 무과금으로 저렇게 무료 용석으로 가차 까면서 무리없이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현질하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지요. (절차가 복잡해서 돈을 못쓰고 있습니다.)


10. 동기식 PVP


 

 


 PVE가 동기식이었던 만큼, PVP 역시 동기식으로 구성되어있습니다. PVP를 플레이하기 위해선 콜로세움 티켓이라는 별도의 아이템을 사용해야 하는데 (4장 소모하는군요) 참가비는 29 스태미너 포인트. 스샷 찍을 당시 37레벨인데 보통 던전 하나 도는데 36 정도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스태미너 코스트는 저렴합니다. 레벨과 그간의 성적에 따라 리그가 나눠져있고 매 주마다 특정 스킬들에 보너스를 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PVP에서 선전하려면 다양한 카드들이 필요하겠죠. 참가를 누르면 5:5로 매칭이 됩니다.


 

 

PVP 역시 다섯명이 차례대로 각자 1장씩의 카드를 내는 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양팀이 동시에 카드를 내죠. 그리고 매 턴 더 높은 역을 만든 팀 부터 공격합니다. 위 스샷에선 제가 속한 팀이 풀하우스고 상대 팀이 원페어니 제 팀이 먼저 공격합니다. 공격 차례가 되면 상대방의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합니다. (물론 타겟은 랜덤이죠) 플레이어의 HP가 0이 되면 다음 턴 시작 전에 HP가 풀로 회복되지만, 그 턴에는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 카드가 역에 포함되어있다고 해도 말이죠. 그래서 일단 선공을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최종적으로는 5턴동안 상대에게 준 데미지의 합계가 많은 팀이 승리합니다. 그리고 왼쪽 하단을 보시면 자기가 획득한 BP(상대에게 데미지를 줘서 얻은 점수)를 놓고 다시 베팅할 수 있지요?


 

 


PVP 게임을 끝내고 나면 드래곤 메달을 받습니다. 승리 수당으로 2개, BP 수당으로 2개 받았네요. 데미지를 잘 주고 BP 베팅에도 성공하면 좀 더 돌려받겠죠. 이 드래곤 메달은 다른 아이템으로 교환받을 수 있습니다. 한정상품인 레어 캐릭터로 바꿀 수 있고, 강화/진화용 특수 몬스터 카드와도 바꿀 수 있습니다. SP 카드를 살 수도 있고 무료가차를 뽑는 포인트인 PP로도 바꿀 수가 있군요. PVE가 랜덤 보상에 기반해서 돌아간다면 PVP는 확정보상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점이 포인트가 되겠습니다. 아마도 다들 오른쪽의 소악마 리노를 노리겠지요.


11. 醫는 精하면 禁忌를 초월한다

흔히들 어렸을 때 읽은 책 한권이 평생을 좌우한다고들 하지요? 보통은 무슨 무슨 책을 읽고 아이가 감명받아 갑자기 삶의 목표를 찾고 기력이 샘솟아 기적을 이루는 무슨 간증같은 이야기로 이어집니다만, 저같은 경우 초등학교때 故이은성 작가님의 '소설 동의보감'이 바로 인생을 결정지은 책이었습니다. 이순재 옹 주연의 '집념', 서인석옹 주연의 'TV 동의보감', 전광렬 주연(보다는 예진아씨가 유명한) '허준' 최근엔 김주혁 주연의 '구암 허준'으로 무려 네번이나 드라마로 방영된 작품이지요.

제 가 이 책을 읽고 생명의 소중함과 그 생명을 다루는 의사들의 숭고한 삶에 큰 감명을 받았다면 의대에 가서 가문의 영광이 되었겠습니다만, 제가 감명을 받은 것은 오히려 유의태와 그 친구들의 태도였습니다. 침술의 일인자 유의태, 탕약의 천재 김민세, 부술의 달인 안광익. 셋 다 아주 안하무인이지요. 하지만 허준은 그런 그들을 보면서도 베알은 꼴리지만 실력이 저 오만을 커버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보고 초등학생이던 저는 '아 실력이 있으면 오만해도 되는구나'라고 받아들인 겁니다. 뭐 어쩌겠어요 이미 이번 생은 틀려먹은 걸.

원래 하려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극 중 허준은 내의원 시험을 치러 한양에 가다가 진천 버드네라는 곳에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을 치료하게 됩니다. 이때 되뇌이는 말이 있지요. "醫는 精하면 禁忌를 초월한다" 뜸에 쓸 수 없는 쑥으로 뜸을 뜨면서, 침을 놓으면 안되는 시간에 침을 놓으면서 수없이 되뇌이는 말입니다. 어차피 의라는 것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인데, 제한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런 금기는 어떻게든 된다는 말이죠. 오만해도 결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장당하지 않고 그래도 이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건 저 문장도 같이 외웠기 때문일지 모르겠습니다.

드래곤 포커야 말로 의는 정하면 금기를 초월한다는 말이 참 어울리는 예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친구에게 소개받을 때만 하더라도 턴제 동기식 멀티플레이라는 말에 어느 병신이 그딴 걸 만들었냐고 비웃었지만, 실제 게임은 그 동기식 멀티플레이에서만 가능한 재미를 훌륭하게 전달해주고 있었죠. 무서운 속도로 배터리를 소모하고, 네트워크가 불안하면 망가지지만, 그래도 계속 붙잡고 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게임입니다. 메인 게임 플레이 외에 카드 수집과 성장, 덱 구성 등의 메타게임도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있구요.

가차폰이 도박이냐 아니냐는 말이 오가는 와중에 가차폰에 더해서 아예 도박을 소재로 한 게임을 소개하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상당히 잘 만든 게임이고 한번쯤 해보셨으면 합니다.


  1. 같은 카드를 갈아먹여서 레벨 한도를 높이는 것은 확밀아와 동등하지만 기본 레벨이 정말 짜고(15레벨) 카드를 계속 갈아먹일수록 레벨 한도 증가량이 큰 구조입니다. 돈을 때려박아서 3성 아이언맨을 하나 뽑아도 15레벨에 더 이상 레벨을 올릴 수도 없어서 3성 아이언맨을 몇장 더 얻기 전까진 아무 쓸모가 없지요. 기본 레벨을 넉넉하게 주고 추가 레벨을 짜게 주는 확밀아와는 반대로 가차에서 좋은 카드가 나와도 전혀 즐겁지가 않습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4. 5. 18. 20:44

이전에 이미 FPS에서 탈것이 등장하는 대규모 점령전에서 고려해야 할 사안들에 대해 한번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GDF :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136

블로그 : http://tophet.tistory.com/86

말미의 요약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 탈것들이 등장하기 위해선 게임의 무대는 넓고 개방되어있어야 한다.
    • 넓고 개방된 공간이기 때문에 전투 밀도는 낮아지고 유저는 전투 보다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 특히 스나이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해지는데,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스나이핑에 의한 죽음은 유저에겐 짜증나는 경험이 된다.
  •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가 문제가 된다.
    • 탈것은 보병보다 강하기 때문에 그 의미를 가진다.
    • 탈것을 탈것으로 견제하게 하면 게임의 승패가 소수의 탈것 에이스의 플레이에 좌우된다.
    • 하지만 보병이 탈것을 견제할 수단을 갖지 못하면 보병으로써의 플레이는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해진다.
  • 특히 탈것의 소유권이 분명하지 않을 경우 분쟁의 소지가 있다.
    • 탈것을 타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에이스가 타면 유리하다는 팀 욕구가 충돌할 수 있다.
      • 설령 누가 잘 탄다고 해도, 이를 증명할 방법이 없다.
    • F2P 모델을 염두에 둘 경우, 전체 유료화에도 장애가 된다..
      • 탈것이 강하기 때문에 굳이 돈을 내고 아이템을 구입할 필요가 없다.
      • 탈것에 대한 소유권이 없기 때문에 탈것 자체에 대한 유료화 스킴도 고안하기 곤란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잘 해결한 사례로는 홈프론트를 예로 든 적이 있습니다.


  • 거점을 3개로 제한함으로써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을 적절히 유지하면서 게임 밀도 관리.
  • 죽지 않고 킬을 계속 쌓을 경우 상대방에게 해당 플레이어의 위치를 노출시킴으로써 장거리 스나이퍼를 견제.
  • 게임 중 얻는 포인트를 소모해서, 리스폰할 때 탈것을 탄 채로 게임에 투입시켜 소유권 분쟁을 사전에 방지.

그런데 3월 출시를 앞두고 지금 베타 테스트 중인 타이탄 폴이 또다른 방법으로 이 탈것이 등장하는 점령전의 문제를 풀어냈기에 이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1. 타이탄과 보병이 공존하는 레벨 디자인

기본적으로 탈것을 위한 레벨과 보병을 위한 레벨은 서로 상이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탈것은 당연히 보병들보다 크기가 크고 이동 속도가 빠릅니다. 따라서 넓고 개방된 공간을 필요로 하지요. 특히 전투기 등과 같이 빠른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은 필연적으로 공간이 넓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크고 개방된 공간에서의 보병전은 그다지 재미가 없습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적이 작은 점으로 표현되고, 장거리에서 은폐/엄폐한 상태에서 작은 점에 대고 딱콩 딱콩 총알을 쏘아대는 것이 가장 유리한 전술이 되지요. SMG나 샷건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장거리에서의 저격이 가장 유리한 전략이 됩니다. 적을 찾아 드넓은 맵을 이동하다가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는 저격병의 총알을 맞고 죽는 것은 상당히 불쾌한 경험이지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이는 거대한 이족보행이 등장하는 이상, 기본적으로는 크고 개방된 공간을 무대로 하고 있습니다만, 동시에 실내공간을 다수 배치해 보병전 또한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자아도취 코더들은 보병의 마지막 방어수단인 건물들을 부술 수 있게 함으로써 보병을 탈것들의 사냥감으로 전락시켰습니다만, 타이탄 폴에서 보병들은 건물을 방패 삼아 타이탄의 공격을 피하고, 때로는 이 건물들로부터 타이탄을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점령전에서 점령해야 할 거점들은 대부분 타이탄을 탄 채가 아닌, 보병으로만 점령할 수 있는 공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한쪽 팀의 타이탄 전력이 압도적이라고 할지라도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선 보병들이 실내전에서 활약해줘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타이탄에서 내려서 거점을 점령하는 등의 플레이도 필요해지지요. 하지만 이 거점이 있는 건물과 건물 사이는 외부에 노출되어있는 개방 공간입니다. 아무리 실내전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야외의 타이탄 전력에 밀리게 되면 중요한 건물에 진입하기가 어려워지죠.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에서 탈것과 보병의 밸런스는 상당히 애매한 지점입니다. 탈것이 보병에 비해 지나치게 강하면 보병은 탈것의 먹이로 전락해서 보병 플레이의 재미가 떨어지고, 탈것이 약해지면 탈것의 의미가 희석되는 부분이 있지요. 하지만 타이탄폴은 탈것의 공간과 보병의 공간을 분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영리하게 회피합니다. 실외는 타이탄들끼리 전체 전장의 주도권을 놓고 전투를 벌이게 하고 실내에선 보병들끼리 승부를 보는 이중구성 덕분에 어느 쪽을 플레이해도 무력하게 학살당하기 보다는 흥미진진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2. 보병과 타이탄의 밸런스

일반적으로 탱크나 타이탄과 같이 장갑이 두꺼운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에선 이런 장갑을 뚫고 공격할 수 있는 클래스를 따로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댓가로 대인전투력을 희생당하지요. 이런 구성은 이론적으로는 제법 괜찮습니다. 완전한 대인전투력을 갖는 대신 탈것엔 속수 무책으로 당할 것인가, 혹은 대인전투력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탈것을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라도 할 것인가는 흥미로운 선택이지요. 하지만 유저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면 사실 그다지 유쾌한 것은 아닙니다. 대인 전투력에 몰빵해서 탈것에게 죽든, 로켓을 든 댓가로 보병에 죽든 어쨌든 죽는 것은 동일하지요. 그리고 설령 로켓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게 탈것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다는 정도이지 탈것을 한방에 압도할 수 있을만큼 강력하지도 않구요.

타이탄폴은 타이탄을 공격할 수 있는 무기를 아예 기본 구성에 포함시켜버립니다. 주무기, 보조무기(권총) 외에 대타이탄 무기 1종을 가지고 들어가는 거지요. 기본적으로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보병으로 타이탄을 만난다고 해도 엄폐해서 반격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데미지를 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타이탄의 실드와 장갑이 두껍기 때문에 한방에 큰 타격을 입힐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여럿이 한꺼번에 공격할 경우엔 타이탄의 공격 만큼이나 의미있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만약 보병이 조금 더 모험을 즐긴다면, 상대 타이탄에 올라타는 로데오 플레이도 가능합니다. 점프해서 메달리든, 건물 위에서 뛰어내리든 일단 로데오에 들어가면 보병은 타이탄의 코어를 직접 공격할 수 있지요. 이 로데오 어택은 실드를 무시하면서 장갑에도 큰 피해를 입히기 때문에 사실 타이탄의 공격보다도 더 위협적입니다. 특히 타이탄으로써는 올라탄 보병을 공격할 방법도 없지요. (전기 구름을 생성시켜 데미지를 줄 수도 있는데, 이 장비를 설치하면 전방에서의 공격을 막아내는 추가 실드를 포기해야 합니다.) 물론 당연히 위험합니다. 보병은 타이탄에게 밟혀 죽을 수도 있고, 타이탄의 주먹에 맞아 죽을 수도 있고, 적 타이탄이나 적 보병에게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하면 확실히 잡는다는 보장이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로써는 시도해볼만한 도박이죠. 병과 개편 전의 배틀필드 온라인에서도 약점을 노려도 최소 2~3방을 맞춰야하는 대전차병 보다는 위험하긴 해도 C4를 붙여 한방에 탱크를 날리는 특수병이 더 인기있곤 했지요.

일반적으로 보병이 탈것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절망적입니다. 숨지 않으면 바로 죽고, (숨어도 벽을 날리기도 하지요) 숨어도 마땅히 반격할 수단이 없습니다. 하지만 보병이 타이탄을 만나는 순간은 굉장히 유쾌합니다. 일단 적 타이탄의 위치는 미니맵 상에 공유되기 때문에 피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고, 설령 마주친다고 해도 숨을 공간이 있습니다. 그리고 숨어서 반격을 가할 수도 있고, 역으로 그 타이탄을 일격에 제압하는 도박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러면서도 타이탄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3. 보병은 이동조차 재미있다.

위와 같이 보병과 탈것 간의 밸런스를 맞춘다고 해도 여전히 레벨의 문제는 남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간이 넓어지게 되면 병력은 분산되기 마련이고 보병은 전투보다는 이동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열심히 뛰다가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는 총에 맞아 죽는 마라톤 게임인 배틀필드가 되겠죠. 그리고 복잡한 실내 공간은 보병을 탈것으로부터 보호해줄 순 있지만 반대로 보병들이 길을 찾아 이동하는데 장애가 되곤 합니다. 특히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은 플레이어가 이해하고 숙지하기 상당히 힘든데, 이는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의 멀티플레이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지요.

타이탄폴은 보병들의 이동력을 강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해 나갑니다. 기본적으로 스프린트시 보병의 이동속도는 타 게임에 비해 상당히 빠릅니다. 그래서 실제 거리는 멀지만 이동하는데 드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2층 높이까지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로 점프가 높은데 점프 중에 2단 점프로 또한번 뛰어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도 높이가 모자라면 모서리를 잡고 기어오를 수도 있지요. 덕분에 플레이어는 수직적으로 복잡한 공간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밀리터리 FPS에서 높은 곳에 있는 적을 뒷치기로 제압하려면 입구를 찾아 헤메야 하지만 타이탄폴에선 그냥 뛰어오르면 되지요. 그래서 건물은 복잡하지만 어렵지는 않은, 상당히 재미난 요소가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 벽타기 등의 파쿠르를 집어넣어서 이동 자체의 재미를 높였습니다. 지루한 마라톤에서 신나는 탐험이 되는 거지요. 처음엔 이렇게 점프하고 파쿨르 하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마우스 키보드를 사용하는 PC라면 몰라도 게임패드로 조작하는 콘솔에선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만, 실제로 게임을 해보면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파쿠르를 하는 외부 공간은 타이탄들의 것이고, 실내는 좁기 때문에 파쿠르로 이동할 수가 없거든요. 상당히 절묘한 밸런스지요.


4. 봇을 통해 전투 밀도를 관리.

한편, 공간이 넓어짐에 따라 발생하는 전투 밀도 문제는 미니언이라고 불리는 봇을 투입함으로써 해결합니다. 설령 플레이어들을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구석구석 배치되고 스폰되는 미니언들을 잡으면서 이동 중에도 짧게 짧게 전투를 할 수 있지요. 덕분에 넓은 공간에 12명의 플레이어만 있어도 게임이 심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조준 능력이 떨어지는 플레이어들도 미니언을 잡아서 팀에 기여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지요.


5. 타이탄의 대중화

또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전장에 타이탄을 배치하는 방식에 관한 것입니다. 배틀필드는 '퀘드 데미지'나 '슈퍼 아머'등과 같이 하이퍼 FPS에서 맵 상에 등장하는 보너스와 같은 관점으로 접근했습니다. 맵 상에 탈것들은 그냥 존재하고, 아무나 이 탈것들을 잡아 타면 되는 방식이었죠. 이 구조는 탈것들이 거점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한번 거점을 잃으면 탈것의 보유량에서도 밀리고, 이 탈것들로 인해 다시 거점을 잃는 악순환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또한 탈것을 타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죽이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와 승리하고자 하는 팀의 욕구가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라는 전투는 안하고 헬기가 스폰되는 장소에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거나 내가 더 잘타니 나에게 양보하라고 말다툼을 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지요.

반면 홈프론트는 게임 중 얻은 포인트를 소모해 사용하는 아이템의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탈것의 스폰이 거점과는 분리되어있기 때문에 거점 상황에 따른 부익부 빈익빈이 발생하지 않고, 자신의 포인트를 소모해서 직접 탄 채로 스폰하기 때문에 소유권 문제도 없습니다. 탈것 타겠다고 줄서서 기다리는 문제도 없지요. 하지만 잘 하지 못해도 포인트가 쌓인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잘하는 사람이 더 많은 포인트를 얻고 탈것을 더 자주 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피할 수는 없고,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각 팀이 사용할 수 있는 탈것의 갯수가 종류별로 정해져있기 때문에 포인트가 있는데도 원하는 탈것을 탈 수 없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배틀필드 보다는 훨씬 세련된 방식으로 밸런스와 플레이어들의 욕구를 해결해냈다고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이 문제에 접근합니다.

타이탄폴에서 모든 플레이어는 4분에 한번씩 타이탄을 소환할 수 있습니다. 미니언을 죽이거나 상대 플레이어를 죽이면 이 쿨타임이 조금씩 단축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플레이어는 타이탄을 좀 더 빨리 자주 탈 수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아무리 못하는 플레이어라고 하도 4분에 한번씩은 타이탄을 탈 수 있습니다.

또한 이 타이탄은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사망 후 타이탄을 탄 채로 스폰할 수도 있지만, 필드 상에 소환(사실은 공중투하)해도 그 주인이 정해져있습니다. 남의 타이탄의 어깨에 올라탈 수는 있어도 타이탄을 조종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타이탄의 주인 뿐입니다. 설령 필드에 타이탄을 소환해놓고 그걸 타기 전에 죽으면 타이탄은 소환하지 않은 것으로 처리되어 스폰할 때 타고 나올 수 있고 스폰 후에 소환할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탈것이 등장하는 FPS라고 해도 탈것이 그렇게까지 많이 투입되지는 않습니다. 배틀필드 온라인은 탈것을 많이 배치하면 플레이어들이 탈것을 더 많이 타고 재미있게 놀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실제로는 탈것에 무력하게 당하는 불쾌한 경험만이 양산되었죠. 그렇다고 누구나 탈 수 있을 만큼 탈것을 늘리면 이젠 보병 플레이가 의미가 없어집니다. 상당히 난감한 문제죠. 하지만 타이탄폴은 이미 타이탄과 보병의 밸런스를 맞춰놓았기 때문에 필드상에 타이탄이 많이 뿌려지더라도 보병의 플레이에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타이탄들이 많이 깔려있기 때문에 야외에선 타이탄들의 대규모 교전이 발생하지요.

잘하는 사람에게 보너스를 주지만 부익부 빈익빈을 초래할만큼은 아니고, 잘하지 못해도 타이탄을 타는 경험을 제공해주며, 타이탄이 많이 깔려도 보병에게 절망적인 경험을 주지 않고, 타이탄 끼리의 교전을 유도해 보병전과는 또다른 재미를 줍니다.


6. 탈것이 등장하는 FPS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만든 인피니티 워드의 핵심 개발자들이 독립한 회사인 만큼, 사실 타이탄폴의 재미는 믿어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족 보행 병기인 타이탄이 등장한다는 이야기가 나오자 살짝 불안해지기도 했습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FPS는 분명 매력적인 소재이긴 합니다만, 막상 게임으로 만들고 보면 레벨 부터 시작해서 탈것과 보병간의 밸런스 등 굉장히 까다로운 부분이 많거든요. 물론 플래닛사이드2처럼 탈것을 보병과 같은 게임자원 중 하나로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이는 캐주얼한 유저들에겐 상당히 어려울 수 있지요. 그렇다고 스웨덴산 똥덩어리처럼 만들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마도 홈프론트에서 조금 발전된 형태 정도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타이탄폴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맵이 커져서 이동이 지루해진다면 이동을 재미있게 만들고, 소수의 에이스들만 탈것들을 독점하는 것이 문제라면 그냥 모두에게 타이탄을 뿌립니다. 보병이 탈것을 만났을 때의 절망이 문제라면 희망을 주고 보병의 플레이가 의미없는 것이 문제라면 보병에게 의미를 부여합니다. 하나하나 따져보면 작은 변화들이지만 큰틀에서 보면 서로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어 획기적인 변화를 이끌어냈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게임플레이의 깊이와 캐주얼함의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냈다는 겁니다. 탈것이 등장하는 다른 FPS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전략적으로 플레이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미시 플레이는 직관적이고 유쾌합니다. 과연 현대 혹은 근미래를 무대로 한 게임에서 이를 어떻게 적용해야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타이탄폴은 탈것이 등장하는 FPS 게임 디자인에 있어 하나의 거대한 획을 긋는데 성공했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18. 02:20
| 1 2 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