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앱 구매가 어떻게 게임 산업을 망치는가' 에 대한 반론을 게제했습니다만, 원문을 번역 공유하셨던 윤지만님이 이에 대한 재반론을 기고하셨기에 저 역시 재반론합니다.


또한 고품격 게임 기획 포럼인 GDF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여러 의견을 주셨으니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아스팔트 7에서 게임의 모든 요소를 언락하는데는 3,500달러가 필요하지만,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 3,500달러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건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것을 프리미엄으로 제공할지 결정하는 개발사들이 점차 아스팔트7, 혹은 던전 키퍼와 같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특정 개발사가 아니라 모바일 게임 산업 전반이 그러한 경향을 갖는다는 것이다. 결국 예전에 비해 지금이 그러하듯, 앞으로는 일반적인 플레이어가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의 기준이 올라가 버리게 된다. 지금은 던전 키퍼 과금 정책에 분노하던 사람들이 앞으로는 던전 키퍼의 과금 방식에 적응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것은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저하시키고, 산업 전체에 해가 된다. 이런 얘기도 있다.

첫째, 언락 컨텐츠를 심어놓고 과금을 유도하는 모델과 던전 키퍼처럼 사실상 플레이가 불가능할 정도로 제약하는 모델은 서로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둘째, 개발사들이 모델을 가혹하게 가져가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시장에서 작동하는지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돈을 지불하는 것은 소비자이기 때문이지요. 재미가 있다면 돈을 쓰면서 하는 것이고, 재미가 없다면 공짜로도 안하는 것이 게임이지요. 던전키퍼는 그 멍청한 과금모델 덕분에 탑 페이지 버프를 받고서도 매출 순위 164위입니다. 과연 이 모양을 보고도 다른 회사들이 계속 저런 모델을 유지하고, 모든 게임이 그런 모델을 유지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짜증을 내면서도 그에 적응하게 될까요? 전 회의적입니다.


영화를 보여주기 전에 티켓을 팔아먹는 사람들을 당장 감옥으로 보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들을 감옥에 보내고 영화관엔 무료입장, 영화가 시작하고 5분 후 1차 과금, 클라이막스에서 2차 과금, 엔딩을 보려면 3차 과금을 하자. 영화 전부를 다 보려면 3,500달러가 들지만, 영화를 계속 볼지 말지를 결정하는건 관람객의 몫이니 괜찮다.[1]

'공짜'라고 해놓고 인 앱 결제를 유도하는 것은 '사기'라기 보다는 오히려 뚜껑을 까보지도 못하고 지불부터 유도하는 기존의 리테일 구조에 비해 플레이어에게 더 유리한 구조일 수 있다는 논조로 '리테일이야말로 사기'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토막으로 다뤄지는 군요. 일차적으로는 제 필력이 부족한 탓이겠습니다만, 전체 맥락에서 읽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자는 데모나 트레일러, 리뷰가 있다는 반박을 하시는데 리뷰는 타인에 의한 간접 경험이고 트레일러와 데모는 실제 컨텐츠를 알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광고이지만 이미 공급자 중심으로 편집된 것이기 때문에 실제 경험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요.

말씀하신 것과 같이 영화 한편에 3천 5백불짜리 F2P 모델에 대해선 제가 꾸준히 주장하는 바와 같이 저런 모델을 도입하는 것은 공급자의 자유이지만, 실제 지불하고 보는 것 또한 관람객의 자유라고 생각합니다. 즉, 시장이 판단할 문제라는 거지요.  

거듭 강조합니다만 게임을 포함한 문화컨텐츠는 자유경쟁시장에서의 기호상품입니다. 어떤 악독한 수익모델을 채용한다고 해도 사용자가 이를 거부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던전키퍼 모바일 처럼요.


요지는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고 있는 게임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앱 구매 덕분에 게임 산업이 커졌다고 말하는 것은 Thomas Baekdal 글의 포인트를 완전히 놓치고 있는 것이다. Thomas Baekdal은 인앱 구매가 게임성에 해를 끼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그래도 수익이 늘어났다고 반박하는건 제대로 된 반박이 아니다[2].


게임의 수익을 위해 게임의 본래 목적인 "재미"를 놓치는 게임이 많든 적든, 어쨌든 소비자는 재미있는 게임을 하고 돈을 쓸 겁니다. 시장은 그에 따라 움직이겠죠. 그러니 특정 게임이 괜찮은 컨셉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수익 모델 때문에 망가진 것을 아쉬워할 수는 있어도, F2P가 전체 게임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시장이 응징한다'라고만 쓰지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을 그랬나봅니다.

그리고 "수익"(사실 전 정확하게는 "시장"을 언급했습니다)으로 반박하는 이유는, F2P가 게임의 재미를 해친다는 주장은 실제로 그래서 게임의 재미가 얼마나 해쳐졌는지 검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재미있는 게임에 대해 돈과 시간을 지불한다는 가정을 전제로 할 때, 시장의 크기가 폭발적으로 확장되었다는 것은 사람들이 충분히 재미를 느꼈다는 것을 방증할 수 있겠죠. 시간 뿐만 아니라 돈까지 펑펑펑 쓸만큼 말입니다.


-추신-

기왕 반론을 하실 거였으면 제게 트위터 멘션이든 댓글이든 남겨주셨으면 좋을텐데 말입니다.

원문에서 트랙백, 코멘트 모두 막혀있는 관계로 트위터로 멘션 드리겠습니다.

by 고금아 2014. 2. 4. 14:58

고품격 게임 기획 포럼인 GDF에서 관련 주제에 대해 다른 분들도 여러 의견을 주셨으니 함께 봐주셨으면 합니다.


트위터에서 '인앱 구매가 어떻게 게임 산업을 망치는가'라는 번역문을 발견했습니다. 저자는 '무료 다운로드 + 인앱 구매'라는 구조는 사실상 게임이 아닌 사기이며, 개발자들은 이 끔찍한 모델을 거부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바일 게임을 이제 더 이상 게임이라고 부를 수 없는 포인트까지 와버렸다. 게임을 한다는 것은 당신이 재미를 쫓는다는 얘기와 같다. 게임을 한다는건 자리에 앉아 게임이 당신을 짜증나게 하길 오래도록 기다리다가 결국엔 신용카드로 게임 진행 속도를 올려버리는걸 뜻하는게 아니다. 그리고 나처럼 1990년대, 게임의 영광스러운 나날들을 기억하는 나이든 괴짜들에게 그건 봐주길 힘들 정도다.

그건 사기다. 그것도 삶에 남은거라곤 이기적인 탐욕밖에 없는 정신병자가 치는 사기다. 그들은 사기꾼으로 감옥에 들어가야하고, 앱 스토어에서 Editor’s Choice로 각광받아선 안된다.

이건 무도한 일이다.

당신과 나는 이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다. 이건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아니다. 이건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내가 글을 시작할때 말했다시피, 나는 이 글을 긍정적인 말과 건설적인 해결책으로 끝내고 싶다. 하지만 여기에 해결책은 없다. 이걸 멈추는 방법 말고는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당신, 모바일 게임 개발자들에게 나는 단순히 이렇게 요구하고 싶다. 가까운 욕실에 가서 거울에 자기 모습을 비추어 봐라. 거울에 비친 모습이 좋은가? 그 모습이 당신이 다른 이들에게 기억되길 원하는 모습인가? Bullfrog처럼 플레이할만한 가치가 있는 진짜 게임을 만들었기에 모든이들이 사랑한 게임 개발자로 기억되고 싶지는 않은가?

물론 원문에서 예시로 든 던전키퍼 모바일의 유료화 모델은 끔찍합니다. 한 블럭을 파내기 위해 4시간 24시간이라뇨. 아마도 F2P 게임 역사상 최악의 병크 중 하나로 기억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병크 하나만을 놓고 인앱구매 모델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입니다. 이건 마치 음주 운전 사고를 보고 대한민국에서 술과 자동차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것과 같은 레벨이지요.

저자는 무려 짧은 만화까지 그렸습니다. 뉴욕까지 가야하는 한 아가씨가 있는데, 택시 기사가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합니다. 아가씨가 타자 택시 기사는 5분 뒤에 차를 세우고 24시간 동안 기다릴 거라고 하지요. 만일 지금 출발하고 싶다면 돈을 내라고 합니다. 아가씨는 짜증을 내고 차에서 내립니다. 이 만화를 통해 저자는 인앱 결제가 이런 사기와 같다고 비판합니다만, 사실 이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스스로 그려놓고도 놓치고 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리면 된다는 거지요.

실제로 사용자가 결제를 하기 전까지 플레이어는 단 한푼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약간의 네트워크 비용과 시간을 제외한다면 말이죠. 이 게임을 계속 플레이 할지, 그리고 그를 위해 지불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플레이어가 결정할 문제입니다. 던전키퍼와 같이 과금 모델이 전체 게임 플레이에 지장을 줄 정도로 나쁘다고 하더라도, 지불을 해서라도 즐길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면 지불하고 계속 진행하는 겁니다. 혹은 재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과금 모델이 지나치게 가혹한데 그 재미가 비용을 정당화할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그냥 게임을 관두면 그만이죠. 아니면 돈을 내지 않는 선에서 게임을 플레이하거나요.

업데이트: 나는 진짜 문제를 보여주기 위해서 짧은 웹툰을 만들었다. 문제는 사람들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는게 아니다. 문제는 게임 개발자들이 우리가 공짜로 게임을 할 수 있다고 약속한게 거짓말이라는데 있다. 기다리는 것은 게임을 하는 것과는 다르다.

저자는 '기다림'에 기반한 유료화 모델을 거짓말이고 사기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이 '기다림'이야말로 현재까지는 가장 공정한 모델입니다. 돈을 내고 스테이지를 스킵하거나, 킹왕짱 아이템을 갖거나, 점수가 더블 트리플이 되어서 순위표 꼭대기에 올릴 수 있는 아이템들에 비해 게임플레이나 밸런스에 끼치는 악영향이 없거나 현저히 떨어지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것 이상으로 플레이하고자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과금합니다. 기본 플레이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돈을 낼 필요가 없지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게임을 플레이해야 성립하는 모델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플레이어는 적당히 만족할만한 선에서 기본 플레이를 제한합니다.

기본 게임이 재미있어야 함은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 기본 플레이를 어느정도로 제공하고 어떤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할지는 전적으로 개발사가 결정할 사안입니다. 그리고 게임을 지불하면서 플레이할지, 지불하지 않고 플레이할지, 그냥 플레이하지 않을지는 플레이어의 몫이죠. 수요-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유저 풀과 매출액이 결정됩니다.

던전키퍼처럼 터무니없이 기본 플레이를 강제한다면 수요층이 줄어들고 매출액도 함께 줄 것입니다. 또는 LOL처럼 기본 플레이를 너무 후하게 제공해서 서비스에 대한 욕구가 떨어진다면 매출 효율이 떨어질테죠. 던전키퍼 모바일은 병크가 맞지만 이는 시장에서 알아서 응징해줍니다. 실제로 던전키퍼 모바일은 2014년 2월 4일 오전 6시 북미 앱스토어 기준으로 매출액 164위에 올라와있네요. IP + 탑 페이지 노출을 생각하면 참 안쓰러운 성적이죠.

그리고 만약 당신이 여전히 (인앱 구매 쓰레기 없이) 진짜 게임을 만드는 몇 안되는 개발자 중 하나라면, 나는 당신에게 경의를 표하겠다. 당신은 나의 영웅이다.

Oceanhorn, Minecraft, XCOM, 그리고 여타 다른 게임들처럼 말이다. 당신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빛이 난다. 그리고 당신이 원칙을 고수할 수 있는 용기를 가졌기에, 나는 당신을 정말 사랑한다.

저자는 위와 같이 인앱 구매가 없는 리테일 게임[각주:1]의 개발자들을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저는 인앱 구매보다는 리테일 게임이야말로 진정한 사기라고 생각합니다. F2P 모델은 최소한 유저가 플레이를 어느정도 해본 뒤에 구매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재미가 있는지 없는지, 돈을 낼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 따져본 뒤에 결제하죠. 하지만 리테일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해보지도 않은 게임을 위해 미리 돈을 지불해야합니다. 재미가 있을지 없을지는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말이죠. 막상 구매했는데 듀크 뉴켐 포에버처럼 재미가 아주 똥망이라거나, 전설의 빅 릭스 처럼 도저히 진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버그투성이라도 환불은 없습니다. 아직 한푼도 쓰지 않은 상태가 사기라면 이렇게 이미 $60을 지불한 뒤의 좌절은 도대체 뭐라고 불러야할까요? 저자는 90년대를 '영광스러운 나날'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사실 그 영광스러운 나날에도 똥같은 게임은 숱하게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돈 내고 이 똥들을 산 뒤에 좌절했습니다. 다만 기억에서 잊혀졌을 뿐이죠.

어찌보면 모든 것은 게임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리테일 게임의 세계에서 게임은 뷔페입니다. 이미 비용을 선불로 지불했으니 당연히 모든 컨텐츠에 접근할 수 있어야죠. 무료 게임은 무료 뷔페 입장권이고 따라서 당연히 돈은 지불하지 않았지만 모든 컨텐츠는 무료로 무제한으로 즐길 것을 기대합니다. 이 관점에선 원문에서 인용한, 모든 자동차를 언락하기 위해선 $3,500을 지불해야한다는 사례는 당연히 분노해야할 사안이죠. 뷔페 입장만 무료일 뿐, 안의 메뉴들은 추가 요금을 받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F2P의 세계에서 게임은 서비스입니다. 한마디로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공원인거죠.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을 뿐 자유이용권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선 돈을 내야죠. 아무도 $3,500을 내고 모든 자동차를 언락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일 뿐이죠. 물론 그렇다고 정말 돈을 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즐길 수 없다면 사람들은 이 공원을 찾지 않을테고 결국 파산할 겁니다. 그러니 퍼레이드도 하고 화단도 가꾸는 거 아니겠습니까?

인 앱 결제가 게임 산업을 망친다는 것은 부분유료화 모델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오해입니다. 실제로 부분유료화 모델은 아시아의 게임 시장과 전세계적인 모바일 게임 시장을 이전보다 수백배 수천배로 키워줬지요.

  1. 용어가 생각나지 않아 일단 임의로 리테일 게임이라고 칭합니다. 한번 구매 후 추가 과금 없이 계속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말합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4. 2. 4. 06:41

2014년 밸브가 뭔가 큰 건을 하나 발표한다는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대부분은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밸브의 게임 콘솔 스팀박스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밸브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 된 스팀OS + 스팀 OS가 구동되는 하드웨어 + 스팀OS용 컨트롤러로 구성된 하나의 패키지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사실 스팀박스 자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이었습니다만 발표 내용은 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습니다. 오픈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한 게임용 콘솔이라뇨! 3DO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죠. 보자마자 DOA 사인이 왔습니다. 사실 리테일이 기반인 시장에서 디지털 마켓 & 다운로드 서비스 자체도 당시엔 말이 안되는 것이긴 했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과대망상으로 보였지요. 처음엔 스팀 OS 하드웨어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자 콘솔이라는 포장에서 오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떼어내고 생각하니 의외로 이게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어째서 굳이 하향세인 거실용 콘솔인가?

HDTV는 분명 크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선사합니다만, 그 반대 급부로 과거보다 큰 공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과거 PS2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사실 방 안에 작은 TV 하나를 두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42인치 TV를 개인 방 안에 둔다는 건 사실 좀 어려운 일이긴 하죠. 설치부터 플레이까지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HD 해상도를 지원하지 못함에도 Wii가 그렇게 불티나게 팔렸던 것은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기기가 아니라 공동 공간인 거실에서 가족 전체가,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장치로서 포지셔닝 된 덕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놀이도구로 다른 콘솔과 다른 타겟층을 가진 Wii를 제외할 경우, 현세대기의 보급량은 오히려 전세대기보다 적습니다. (전세대 = PS2 1억5천5백만 + 엑박 2천4백만 = 1억7천9백만 / 현세대 = PS3 7천5백만 + 엑박360 7천8백2십만 = 1억6천3백2십만. 출처 : 위키피디아)

반면 개발비는 치솟았고, 그 결과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열광할 수 있는 AAA 급 게임들이 대박을 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이 현세대기가 처한 상황이죠. 그래서 전 개발비가 더 치솟을 차세대기 시장을 오히려 더 암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게임 콘솔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PS4보다 AAA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셋탑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엑박원의 전략이 더 우수하다고 보았죠. 뭐 정신 나간 가격 때문에 맛이 가긴 했습니다만.

아무리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거실을 중심으로 한 콘솔 게임 시장이 스팀이 기반하고 있는 PC 시장보다는 훨씬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콘솔과 PC를 둘 다 보유하고 있는 게이머 입장에서, 거실을 주무대로 생각한다면 PC판 보다는 콘솔용을 구매하겠죠. 즉, 많은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든 없든 거실 진입 자체가 스팀 입장에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밸브 입장에서 거실을 뚫고 싶긴 한데 게임을 구동하는 전용 콘솔로 뚫으려면 난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가격, 하드웨어 성능, 마케팅, 서드 파티 확보 등 고려해야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죠. 하지만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셋탑이라면 이미 타이틀들은 확보되어있고 하드웨어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정도 사양이면 IPTV를 구동하는데에도 큰 문제가 없죠. 똑같이 게임 + IPTV 컨셉이지만 엑박원과는 차원이 다른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2. 스팀 고객들의 취향은 전통적 콘솔과 다르다.

또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스팀의 고객들이 거실에서의 게이밍을 원하냐는 것입니다. 먼저 스팀의 동접자 순위를 한번 살펴보죠.

위 도표는 스팀의 동접자 TOP 100 중 상위 30개만 추려낸 것입니다. DOTA2, 팀포트리스2, FM, 토탈워, 문명 등등 PC 독점작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들 중 대다수가 인터페이스 상의 문제로 콘솔에서 패드로는 플레이하기 힘든 게임들입니다. 물론 콘솔에서도 잘나가는 게임들은 스팀에서도 잘 팔립니다만, 전체적으로 스팀 게이머들의 취향은 콘솔 게이머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밸브가 발표한 패드는 "이전에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할 수 있었던 모든 게임은 이제 소파에서 할 수 있게 됩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 마우스로 하는 간단한 게임, 전략 게임, 탐험+확장+착취+말살 우주 탐험 게임, 다양한 인디 게임, 시뮬레이션을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라며 스팀이 기반하고 있는 PC 게임들을 플레이하기 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PC 전용의 게임들도 불편하지 않게 거실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죠.

우리는 스팀 OS가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전 세대까지 엑박360이나 PS3으로 게임을 해온 콘솔 게이머가 엑박원이나 PS4가 아닌 스팀OS 하드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PC로 게임을 해왔지만 가끔은 거실에서도 게임을 하고 싶은 게이머 계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층을 상대로는 스팀 OS 하드웨어 외엔 대안이 없습니다.


3. 스팀의 콘솔은 충분한 타이틀들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인가?

콘솔이 자생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해당 콘솔에서 구동되는 소프트웨어들입니다. 아무리 콘솔이 저렴하거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해당 콘솔에서 구동되는 타이틀이 충분치 않다면 해당 콘솔은 사실상 그 존재 의의가 퇴색되죠.

사실 서드 파티 개발사 입장에선 스팀 하드웨어 플랫폼이 시장에 충분히 보급되기 전까진 당장 얼마나 보급될지도 불확실한 스팀 하드웨어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비를 지출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스팀 하드웨어는 PC처럼 완벽한 커스터마이징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당장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나만의 등의 수식어를 통해 다양한 하드웨어 구성을 지원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콘솔로 게임을 개발하는 또하나의 이유 - 단일한 하드웨어를 통한 개발의 용이함 - 이 사라지게 되죠. 언리얼 엔진4나 크라이엔진4에서 스팀 하드웨어의 포팅을 도와준다면 그냥 어차피 100억 쓸 꺼 101억 쓴다는 심정으로 추가 포팅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직까지 에픽이나 크라이텍에서 스팀 하드웨어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밸브는 리눅스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된 스팀OS를 공개하면서 이미 수백개가 넘는 게임들이 스팀OS를 지원하며 AAA 게임도 지원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 리스트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PC 게임들 조차 스팀 OS보다 훨씬 많이 보급된 맥으로의 포팅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팀OS의 타이틀 수급은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밸브가 직접 공급하는 게임을 독점으로 묶어서 콘솔을 견인시키는 것입니다. 마소의 헤일로와 소니의 그란투리스모 처럼요. 물론 밸브 역시 하프라이프와 포털, 팀포트리스라는 막강한 IP를 소유하고 있긴 합니다. 레프트4 데드와 DOTA2 역시 잊어선 곤란하겠죠.

가마수트라에 따르면 하프라이프2의 시리즈 3편을 모두 합쳐도 판매량은 1100만장이 채 안됩니다.  하프 라이프2가 6백5십만장, 하프 라이프2 : 에피소드 1 1백40만장, (하프라이프2 : 에피소드2 외에 팀포트리스2와 포털1이 포함된) 오렌지박스가 3백만장이죠. 레프트 포 데드 역시 1,2편을 합쳐서 1200만장 가량입니다. 이 중 오렌지박스와 포탈2, 레프트 포 데드는 모두 멀티플랫폼이었죠. 과연 밸브가 이 퍼스트파티 게임들을 독점으로 묶어서 스팀 하드웨어에 베팅할 수 있을까요? (이미 오렌지박스와 레포데, 포탈을 공동으로 퍼블리싱 했던 EA와의 계약 문제는 없다고 가정할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타이틀 문제도 스팀 OS 하드웨어가 직접 게임을 구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말끔하게 정리됩니다. 현세대기 초기엔 멀티 플랫폼 이식을 도와주는 미들웨어가 없었고 또한 플랫폼 홀더 측에서 개발비를 일부 지원하는 조건으로 독점 (또는 기간 독점)을 걸어 전용 게임들이 많았습니다만, 언리얼 엔진3가 발전하고 또 개발비가 치솟으면서 이제 왠만한 콘솔 게임들은 멀티 플랫폼으로 PC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차세대기의 개발비가 더 오를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독점작이 아닌 이상은 PC로도 출시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생각할 때 스팀OS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PC로 출시되는 게임들은 먹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죠. 이때 스팀 OS 하드웨어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만일 거실에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굳이 멀티 플랫폼 게임을 콘솔로 구매하고 있다면, 그냥 저렴하게 스팀OS 기기 하나 갖다놓고 PC와 거실 양쪽에서 즐기라는 겁니다.

또한 이렇게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자사의 킬러 타이틀들을 독점으로 묶을 필요도 없습니다. 콘솔로 팔리면 콘솔로 팔리는 대로, PC로 팔리면 PC로 팔리는대로 이득이죠.


4. 스팀의 하드웨어는 과연 PS4나 엑박원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가?

사실 소프트웨어도 소프트웨어지만 하드웨어 자체의 경쟁력 또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이 바로 하드웨어의 가격 문제죠. 엑박원이든 PS4든 기본적으로 대량생산 + 추후 공정 개선으로 생산 코스트가 줄어든다는 것과 일단 콘솔을 보급하면 나중에 로열티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산비보다 낮은 가격에 밑지고 팔기 때문에 $399와 $499라는 가격이 책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팀 하드웨어는 밸브 독점 공급이 아닌 오픈 아키텍쳐를 내세우고 있지요. 밸브가 부품을 대량으로 발주하거나 손해를 감수할 의사도, 방법도 없는 시스템입니다.

또한 오픈 아키텍쳐를 표방하고 있는 이상, 사실 엑박원이나 PS4와 같은 스펙으로 같은 성능을 낼 수 있을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이들은 특화된 OS를 가지고 있으며, 게임에서 성능을 내기 위한 특화된 하드웨어 구조를 지니고 있지요. 소음과 전력 소모, 발열은 덤입니다. 아니 사실 가격이든 소음이든 전력이든 발열이든 다 떠나서, 최적화는 둘째치고 게임이 제대로 구동될지조차 의심스럽죠.

이 모든 것을 정리하자면, 스팀 하드웨어는 엑박원과 PS4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돌아갈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엑박원과 PS4보다 같거나 비싼 가격에 그보다 같거나 못한 스펙을 가진 머신이 됩니다. 물론 지금도 고사양의 PC로는 현세대는 물론 차세대의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3만5천원짜리 엑박 패드 하나만 꽂으면 완벽하게 콘솔처럼 플레이할 수도 있지요. 굳이 거실에서 PC로 즐겨야 한다면 그냥 PC를 TV에 연결하고 말지 굳이 그 고사양 PC를 스팀OS  전용기로 한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은  하지만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비싼 하드웨어를 쓸 필요도 없고, 또한 개개 하드웨어에 대해 치열하게 최적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엑박원이나 PS4에 비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5. IPTV + PC 게임 스트리밍. 가격이 관건

엑박원이든 PS4 든, 거치형 콘솔들은 모두 게임은 거실에서 TV로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거실에 꼭 그 게임 콘솔을 갖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요. 스팀 OS 하드웨어를 이들과 같은 독립적인 거치형 콘솔로 정의하게 된다면 가격 경쟁력, 타이틀 경쟁력 모두 기대하기 힘든, 시작부터 실패가 예정된 프로젝트가 됩니다. 나와서는 안될, 귀태 콘솔이죠.

발상을 바꿔서 게임은 PC로 플레이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가끔은 거실에서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일단 콘솔을 새로 구매하는 것은 매우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콘솔 자체도 비싸고, PC와 콘솔 양쪽에서 게임을 구매해야하니까요.  하지만 저렴한 셋탑 박스를 추가하면 PC 게임을 TV로도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에 스팀 특유의 세일과 쉬운 구매 & 설치가 붙어 나온다면 이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그리고 밸브 입장에서도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엑박원 & PS4로부터 점유율을 빼앗아올 수 있지요.

일단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스트리밍 게임이 콘솔 직결과 유사하거나, 적어도 불편을 느끼지는 않을 정도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엔비디아의 실드나 PS 비타가 스트리밍 게임을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둘 다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춰 해상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80 해상도로 품질 높은 스트리밍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사실 좀 의문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 부분만 해결된다면 콘솔 게이머와 PC 게이머, 캐주얼 게이머와 하드코어 게이머, 스탠드 얼론 게이머와 온라인 게이머 모두가 구매할만한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가격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스트리밍 셋탑이라는 가정 하에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격은 $99 입니다. 셋톱박스로도 애플TV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이지요. 만일 이 가격을 지키기가 불가능하다면, 최대한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가격은 셋탑 치고는 다소 비싸지만, 게임이 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납득이 가는 선인 $199라고 봅니다. $200을 넘어서게 되면 WiiU와 비교되겠죠. 아무리 WiiU의 인기가 적다고는 하지만, 게임을 직접 구동하지 않는 스트리밍 기계가 전용기와 유사한 가격이라면 심리적인 저항선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IPTV는 WiiU에도 있고 말이죠.

by 고금아 2013. 9. 24. 04:09

다들 '엑박원 망했어요'를 외치고 있는 가운데, 가마수트라에서 소니와 마소의 전략의 차이를 엔터테인먼트 셋탑 - 게임 콘솔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분석한 글이 있어 소개합니다.





원문 : What makes a platform? Games or users? Console makers place their bets.


- 콘솔 플랫폼 운영 비용은 기본적으로 플랫폼 보급 대수와 관계 없이 고정비용으로 간주할 수 있다.
-- (실제로는 콘솔을 더 팔수록 늘어나는 가변비용도 있지만 이는 늘어나는 수익으로 상쇄 가능)
- 어떤 콘솔도 발매 초기엔 적자를 면할 수는 없다. (하드웨어에서 적자를 보지 않는 닌텐도도 마찬가지)

Image

- 콘솔 메이커로썬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수익이 고정비를 초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 양 기종 모두 보급률과 고객당 매출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 그런데 두 회사가 취하는 노선은 전혀 다르다.

- MS는 퍼블리셔에 걸었다.
-- 중고 게임 제한, 온라인 체크는 수년간 중고 거래 때문에 골치아팠던 퍼블리셔들에겐 매력적
-- 또한 NFL이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컨텐츠 공급자에게 돈을 아끼지 않았음
-- 최고의 컨텐츠를 가진다면 게이머는 엑스박스 원으로 몰려들 것이라는 가정.

-소니는 게이머에 걸었다.
-- 중고 게임 제한 없고 통합된 미디어 센터 기능도 없다. (미디어 센터 기능은 있지만)
-- 이는 퍼블리셔보다 소매점에 유리하다. (중고 거래는 소매점에 더 많은 이익을 안겨줌)
-- 일단 콘솔을 많이 팔면 퍼블리셔는 고객이 많은 곳으로 몰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가정.

- 양 기종 모두 컨텐츠가 생명인 것은 사실.
- 하지만 두 회사는 서로 다른 전략을 구사
-- MS : 컨텐츠를 확보하면 유저는 따라온다.
-- 소니 : 유저를 확보하면 컨텐츠는 따라온다.

- 컨텐츠인가? 배급인가?
- 많은 투자가들은 항상 배급을 컨텐츠보다 우선시했다.
- 필자 개인적으로는 유저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플랫폼이 이기리라고 전망한다.
- 지켜보자.



일전에 MS의 전략이 더 우월하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철회합니다. 엑박원은 망했습니다.

플4의 초기 제조 원가는 플3과 마찬가지로 $599는 될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렇다면 플4의 가격은 $499가 한계라고 봤지요. 엑박원은 스펙이 낮으니 제조 원가를 $499 정도로 잡으면 출시가는 $399. 소니보다 훨씬 많은 현금을 갖고 있으니 가격을 $199는 좀 무리라고 쳐도 $299까지 낮춘다면 확실하게 플4를 압살할 수 있으리라고 봤습니다.

그런데 엑박원의 출시가는 자비 없는 가격 $499.. 전통적인 게이머에게도 부담이 되는 가격입니다. 그리고 플4의 가격은 $399. 게임 끝이죠. 스펙은 3/4 수준인데 가격은 $100 높다면 게이머로서는 구매할 이유가 전혀 없죠. 셋탑으로서도 마찬가지죠. 애플TV가 $99, 구글TV가 $199인데 누가 $499짜리 셋탑을 살까요. (개인적으로 미디어 셋탑으로는 $399도 비싸다고 생각합니다만)

물론 MS가 퍼블리셔들을 독점해서 플4를 소니 퍼스트 파티 게임 전용 머신으로 만들 수 있다면 플4가 $199에 나오고 엑박원이 $599에 나와도 엑박원이 이깁니다. 이게 MS 전략인데요.

문제는 퍼블리셔들을 독점할 수 있냐는 거죠. 어차피 퍼블리셔들에겐 누가 이기든 지든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멀티로 내면 누가 이기든 돈은 버는 거지요. 플4를 버렸을 때 얻는 손해보다 중고 게임 차단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명백히 크다는 것이 입증되기 전까진 굳이 퍼블리셔가 플4를 버리고 엑박원에 몰빵할 이유가 없습니다.

엑박원이 시장을 재패하기 전까지 퍼블리셔는 플4를 버릴 이유가 없는데, 퍼블리셔가 플4를 버리지 않으면 엑박원은 시장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순환참조 또는 데드락이죠. 당장 봐도 독점 타이틀의 수나 중량도 비슷한데다가 기껏 내세우는 것이 특정 DLC는 엑박한정... 퍼블리셔가 MS에 줄 수 있는 건 딱 이정도죠.

하여튼 뭐 어느 모로 봐도 엑박원을 살 이유는 없으니 MS는 엑박원 공장 닫고 패드 공장이나 확장해야할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콘솔 가격을 최소 $100불 이상 낮추거나 (이젠 $399도 어렵고 $299나 못해도 $349 정도는 맞춰줘야 한다고 봅니다.) 케이블 TV사와 제휴해서 저렴한 약정 옵션을 발표해야 할 겁니다.

어쨌든 $399라면 소니로서도 상당한 출혈일텐데, 플3때 $499로 내놓았다가 밀렸던 경험에 비추어 일단 지르고 본게 아닌가 싶습니다. 마소가 $499로 낼 줄 알았다면 $399로 내진 않았겠죠. 반대로 마소는 소니가 $399로 낼 줄 알았다면 $499로 내진 않았을테구요.

by 고금아 2013. 6. 13. 02:55
방금전에 XBOX ONE (이하 엑박원)의 프리젠테이션이 끝났습니다.

분명 차세대 게임 콘솔인데, 게임 이야기는 거의 없고 TV, 영화, 스카이프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에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했습니다. 그리고 이 기능들은 대부분 북미의 엔터테인먼트와 깊게 연관된 것이라 그 외 지역에서는 당분간 - 한국은 아마도 영원히 - 활용하기 힘들 기능들이었죠.

수많은 게이머들이 속았다 엿먹었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사실 전 MS가 굉장히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 선 콜옵 고스트 시연을 보면 기기 스펙 자체는 굉장히 향상되었습니다. 겉보기엔 배틀필드3나 크라이시스 같은 AAA급 타이틀을 하이엔드PC에서 풀옵으로 돌렸을 때와 유사한 레벨입니다만, 사실 그게 포인트죠. 100만원짜리 컴퓨터에서 볼 수 있는 퀄러티를 50만원 미만의 콘솔에서 즐길 수 있다는 거니까요.

문제는 스펙이 높아지고 표현의 폭이 넓어지면 그만큼 개발비도 치솟는다는 겁니다. 타이틀 가격을 100불씩 메길 것이 아니라면 결국 더 많이 팔아야 수익을 낼 수 있는데 지난 수년간 시장 상황을 보면 타이틀들의 판매량은 감소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콜옵 조차도 모던3를 기점으로 하향세를 보이고 있죠. 기존의 엑박360보다 많은 돈을 들여서 개발한 게임을 더 적게 깔린 콘솔에 팔아서 수익을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많은 게이머들이 (특히 비주얼) 퀄러티가 좋으면 게임도 플랫폼도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뭐 틀린 말은 아닙니다. 게이머에 한정한다면 말이죠. 하지만 이미 시장은 게이머들만 상대해서는 채산성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차 세대 콘솔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이머가 아닌 대중들에게도 팔아야하는데 이들은 퀄러티에 둔감하기 때문에 스펙을 높여봤자 현세대 콘솔 보급량 만큼 팔릴지 자신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게임 만들어서 파는 건 서드 파티 몫이고, MS가 해야할 일은 어떻게든 플랫폼을 많이 깔아주는 것이죠.

그래서 MS가 꺼내든 것이 기타 엔터테인먼트 기능입니다. NFL 중계를 보는 도중에 선수의 정보를 검색하는 것은 게임 자체를 즐기는 게이머들에겐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게이머가 아닌 사람에겐 그것 만으로도 엑박원을 구매할 수 있는 이유가 되죠. 플스2가 DVD 플레이어 기능을, 플스3가 블루레이 플레이어 기능을 매개로 일반인들에게 플랫폼을 보급했던 것과 유사한 전략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이런 쌍방향 엔터테인먼트는 광디스크 영상 재생과 달리 기술적인 문제 뿐만 아니라 컨텐츠 공급자와의 제휴가 필요하며 '독점'도 가능하다는 것이죠.

물론 이 컨텐츠 공급자 문제 때문에 북미 외의 지역에선 활용이 힘들긴 하겠습니다만, 사실 그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이로서 북미 지역에선 PS4에 비해 확고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고, 점유율을 높이는 것 만으로도 현세대기에 비해 더 많은 플랫폼을 확보할 수 있을 겁니다. 쉽게 말해 본진인 북미에서 소니를 몰아낼 수 있다는 거죠.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이 기능을 활용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PS4가 유사한 기능을 탑재하고 이 지역 컨텐츠를 독점하지 않는 한, 불리할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MS의 현금동원력을 볼 때 어렵지 않게 이 지역도 독점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그리고 설령 게임 판매 수익이 기대에 못미친다 하더라도 이쪽에서 또다른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죠.

쉽게 말해 엑박원은 말 그대로 꽃놀이 패를 들고 PS4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다고 봅니다. 뭐... 논-게이머들이 차세대로 넘어가지 않고 쌍방향 엔터테인먼트도 시큰둥하다면 큰 손해를 보겠습니다만, 어쨌든 PS4 보다는 유리한 위치에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덧-

이미 플스2,3에서 미디어 재생 기능으로 재미를 보았고 영화사와 음반사까지 거느리고 있는 소니가 왜 PS4를 게임콘솔로 한정지었는지는 상당히 의문스럽긴 합니다. 본체 대기 중 패드 충전 같은 건 사실 신형PS3에서 업데이트 해줬어야 하는 문제들이었고, PS VITA를 사용한 리모트 플레이도 글쎄요... 비타를 번들로 끼워준다면 모를까...


by 고금아 2013. 5. 22. 03:46

0. 여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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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주중과 주말엔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의 클로즈 베타가 진행되었습니다. 언제 신청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래전에 신청을 했고, 당첨이 되어 꾸준히 클베 일정이 날아오긴 했지요. 다만 24시간이 아닌, 시간 제한이 걸려있었는데 항상 시간이 맞지 않아 플레이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주말 동안은 24시간으로 운영되어 플레이를 해봤죠.

원작을 둔 게임이 항상 그렇듯이 별 볼일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만..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이에 고무되어 원래는 클베 플레이 후기를 쓰려고 했으나... NDA (비공개각서)가 걸려있었습니다. 영상, 스크린샷은 물론 게임에 관련된 정보도 공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외부에 공개된 자료를 중심으로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을 소개하려 합니다. 우선 트레일러부터 한번 보시죠.



1. 마블 슈퍼 히어로가 등장하는 MMORPG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은 마블 코믹스의 히어로들이 등장하는 MMORPG입니다. 슈퍼히어로 + MMORPG라고 하면 City Of Heroes(이하 COH)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을 겁니다. 나만의 히어로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기존의 슈퍼 히어로를 사용하고픈 욕구야 당연했겠죠. 이에 COH를 제작했던 Crypic Studios는 마블의 IP를 라이센스해 새로운 MMORPG를 개발합니다. 이름하여 Marvel Universe Online! 하지만 배급사였던 MS가 2008년 시장성이 없다고 판단해 손을 떼고, Cryptic Studios는 마블 대신 Champions라는 TRPG 룰을 라이센스 해 Champions Online을 개발, 출시합니다.

2009년 Gazillion은 마블과 10년짜리 장기 라이센스 계약을 맺고 Marvel Super Hero Squad Online을 출시합니다. 저연령층이 대상인 MMO 액션RPG 게임으로, Cryptic이 계획했던 MMORPG와는 거리가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을 통해 경험을 축적한 Gazillion은 언리얼3 엔진을 사용해 마블 캐릭터가 등장하는 본격적인 MMORPG를 제작하게 됩니다. 바로 Marvel Heroes Online 이죠.


2. 어벤져스와 디아블로가 만나다.

TM & ⓒ2012 Marvel & Subs. All rights reserved. ⓒGazillion, Inc. All Rights Reserved.
(사진 출처 : http://www.mmorpg.com/gamelist.cfm/game/693/feature/7213 )

위 스크린샷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은 여타 다른 MMORPG보다 디아블로를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디아블로의 비전을 제시했던 스텝이 개발을 지휘하고 있다'는 문구를 본 기억은 있는데 출처가 기억이 안납니다. 하지만 실제로 디아블로를 만든 블리자드 노스의 공동창업자였던 David Brevik 이 Gazillion의 회장과 COO를 맡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요. David Brevik의 비전은 분명했습니다. MMORPG + 디아블로2의 후계작. + 신선한 IP. 다소 얄팍해 보이긴 합니다만, 실제로 Brevik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렇진 않습니다.

"저 자신이 Marvel : Ultimate Alliance의 팬입니다."

"디아블로를 제작한 사람으로써, 유사점을 발견했고 디아블로와 마블 히어로를 결합시켜 이토록 제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어준 마블에 감사합니다. 마블 MMO를 제작하기 위해 Gazillion에 합류했을 때 제 배경과 Marvel : Ultimate Alliance에 대한 애정을 결합하니 우리가 뭘 해야할 지 결정하는 건 쉬운 일이었죠."

"요즘 MMO라고 하면 WOW나 그 종류의 유사품들을 말하죠. 원래는 에버퀘스트였지만, 언제나 완전히 다른 성향의 MMO가 일부 존재해왔습니다."

"MMO는 전체 게임의 구조가 아니라 게임 플레이의 종류를 말합니다. 한 공간에서 수천명의 사람들과 게임을 한다는 걸 의미하죠. 저는 디아블로를 만들었던 사람이고, 디아블로 2를 다음 단계로 끌고 가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IP를 주입하고 싶었죠"

"히어로 물은 판타지 게임에서는 불가능한 것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장르에 새로운 게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MMO 액션/RPG를 만든다는 건 장르의 진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발언을 읽고 아이팟이 떠올랐습니다. 다른 회사들이 MP3 파일을 재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에 집중할 때, 잡스는 음악을 즐기는 유저의 입장에서 접근했습니다. CD를 MP3로 리핑하는 것도 귀찮으니 iTunes에서 자동으로 CD를 MP3나 AAC로 변환해주고, 음악 넣고 빼기도 귀찮으니 그냥 큼직하게 30GB 하드 달아놓고 컴퓨터와 연결만 하면 자동으로 음악이 전송되게 했죠. 크고 무겁고 비쌌던 아이팟이 MP3 플레이어의 대명사가 된 것은 최고 책임자가 제품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었고, 그 제품의 사용에 뚜렷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 또한 비슷합니다. 그냥 잘나가는 장르, 잘나가는 형식, 유명한 IP의 기계적인 결합이 아니라 최고 책임자 본인이 스스로 이 게임이 왜 재미있는지, 어떤 게임이 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비전만 갖고 게임이 잘 나올수는 없고, 결과물을 봐야겠지만 전 상당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위의 게임플레이 영상을 보시면 되겠네요. 필드엔 언제나 하나하나 때려잡기엔 쉽지만 다구리 당하면 조금 곤란할 것 같은 잡몹들이 득시글 거립니다. 그리고 다른 히어로를 만나는 순간, 아주 화려한 콜라보가 형성되죠. 특히 길드워2의 다이나믹 이벤트 처럼 필드상에서 베놈, 고르곤 등의 보스가 나타나면 그 순간이 바로 어벤져스가 됩니다. 위 영상에선 33분50초부터 시작되네요. (위 영상에선 진 그레이나 아이언맨 처럼 뽀대나는 히어로들이 안나와 좀 밋밋해 보입니다만, 실제로는 굉장히 화려합니다.)

전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행도 디아블로입니다. 물 떠와라. 물 떠오고 나면 끓여와라. 끓이고 나면 만두 삶아 와라 뭐 이런 풍부하지만 단순한 잡퀘 없이, 담백하게 메인 퀘스트 중심으로 끌고 갑니다. 가야 할 곳에 대해 대강의 방향은 표시해주지만 지도상에서 찝어주지도 않고 바닥에서 경로를 그려주지도 않는데 맵은 넓고 랜덤하게 재생성됩니다. 그러니 딴 생각 할 필요 없이 돌아다니면서 몹들 썰면서 쭉쭉 내다리면 됩니다. 몹들도 중간 중간 노랭이 파랭이 섞어서 리듬이 있지요. 딱 디아블로입니다. 그러니까 재미있다는 거죠. 제가 주말 내내 이걸 붙잡고 있느라 손목과 어깨가 아플 지경입니다.


3. 착한 유료화 모델

또 한가지 특기할만한 점은, 이 게임은 MMORPG로는 드물게 처음부터 부분유료화를 고려하고 제작되었다는 겁니다. 캐릭터, 스킨, 5% 경험치 부스터 (시간제), 5% 희귀 아이템 부스터 (시간제) 등을 판매하고 있지요. 좋게 보자면 흔히 말하는 '착한' 유료화죠.

뭐 유저 입장에선 결제를 강제하지도 않는다는 점은 긍정적입니다만, 사실 전 이 모델로 돈을 벌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마블에 캐릭터가 아무리 많다 한들 한계는 있을테고, 그 이전에 모든 캐릭터를 다 살 필요도 없지요. 스킨에 딱히 스탯이 붙어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캐릭터와 스킨 둘 다 한번 구입하면 영구히 사용할 수 있습니다. LOL 처럼요. 부스터 성능도 미묘하구요. LOL도 그렇고, 북미는 아직 낭만이 남아있나봅니다.


4. 출시 일정과 파운더즈 팩

일단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은 6월 4일 정식으로 오픈합니다. 아직 한달 가량 남은 셈이죠. 하지만 출시 전에 파운더스 팩을 구매하면 정식 오픈 전부터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19.99 짜리 스타터 팩은 2일, $59.99 짜리 프리미엄 팩은 4일, $199.99 짜리 얼티밋 팩은 무려 7일 전부터 게임을 할 수 있죠. 특히 얼티밋 팩은 출시 시점 기준 전 캐릭터를 주는 데다 베타 키도 주기 때문에 제법 푸짐한 편입니다만, 앞으로 클베를 얼마나 더 할지는 모르겠네요.

저같은 경우는 아이언맨 + 헐크 + 캡틴 아메리카 + 미스 마블, 그리고 캐릭터당 스킨 2개씩이 포함된 어벤져스 어셈블 팩을 구매했습니다. 로마노프 동무나 토르, 호크아이가 빠진 건 아쉽지만 각 팩 마다 일정액의 게임 머니를 끼워주는 데다 사전 예약시 보너스 머니도 얹어주는지라 나중에 그걸로 구매하려고 생각중입니다.

스타터팩은 캐릭터 1종이 기본이고 프리미엄팩은 4종이 기본입니다만, 1종 캐릭터에 스킨을 아주 듬뿍 얹은 프리미엄 팩도 있습니다. 특히 최근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아이언맨은 영화에 등장했던 스킨 6종을 묶은 무비 스타 팩과 만화에 등장했던 스킨 6종을 묶은 아머리 팩을  따로 팔고 있습니다. 단, 이번 아이언맨3에 나온 Mk42 스킨은 얼티밋 팩 한정이라 저 스킨 하나 때문에 얼티밋을 고려하는 지인도 있습니다.. (얼티밋 한정 스킨엔 헐크와 울버린도 있습니다만 여러분의 안구를 보호하기 위해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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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반기 MMORPG의 다크호스

개인적으로 원작을 둔 게임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캐릭터성에만 집착해 게임으로는 반쪽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은 캐릭터성이 게임성을 잡아먹기는 커녕, 양자가 서로를 끌어주는 매우 이상적인 구도를 형성했습니다. 엔드게임까지 해본 것은 아니라 만렙을 찍은 뒤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 과정은 매우 즐거웠습니다. 그리고 설령 구공온처럼 만렙 컨텐츠가 없다고 하더라도 디아블로가 가진 파밍이 있고, 다양한 캐릭터가 있으며, 구공온과 달리 게임 진행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에 $59.99가 딱히 아까울 것 같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반기 MMORPG의 다크호스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by 고금아 2013. 4. 30. 02:54

루리웹에 가보니 구공온에 대한 간략번역본이 있더군요.

조금 더 자세히 번역해보겠습니다.





GDC 2013 : 스타워즈 구 공화국(이하 구공온)의 힘겨웠던 시작과 부분유료화 전환


- 개발 전 상황

- 경쟁자는 이미 자리잡았거나, 기술적으로 앞서있는 상황

- MMO에서 검증된 적 없는 엔진을 라이센스[각주:1]

- 브랜치 구조를 지원하지 않아서 한달간 새 빌드 없이 간 적도 있다고

- 출시 1년 전만 해도 한 존 당 10명 밖에 수용하지 못함

- 개발팀 300명! (원래 바이오웨어 인원수의 3배!)


- 기본 기능 구현에 고생함

- 경매장 만드는데 최고의 프로그래머들을 투입해 4달 걸림

- 채팅, 길드, PVP 등 기본 기능이 2011년까지 계속 개발중이었음

- 그 결과 시간 부족으로 혁신을 이루지 못함

- 브랜치 구조 때문에 제작비 폭등 - 음성 녹음보다 훨씬 비쌈


- 시작은 좋았다.

- 불안요소들

- 엔드게임 컨텐츠가 충분치 못했다

- 소셜 기능들도 누락되었다.

- 테스트 인원이 적었다.

- 어쨌든 발매와 동시에 150만 카피 판매

- MMO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팔린 게임


- 몰락의 시작

- 2012년 1윌이 되면서 컨텐츠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소모됨

- 160시간으로 4개월 정도 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1달만에 소진됨

- 첫 달이 끝나자 1/3 (약 백만)의 유저가 게임을 끝냄

- 이 유저들에게 남은 컨텐츠는 오퍼레이션(인던) 1개 뿐.

- 그나마 파티 검색 시스템도 없었다.

- 첫 패치에서 PVP를 내놓았으나 결정적인 버그가 있었음

- 여론을 주도하던 팬들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 폭포수처럼 번짐

- 구독자 증가가 둔화되더니 아예 감소하기 시작

- 4월에 패치를 내놓았지만 인구가 적은 서버들을 합치지도 않았고, 여전히 파티 매칭 시스템 없음

- 5월, 구독자가 130만까지 감소. 구조조정 시작.

- 6월에 드디어 파티 매칭 도입 + 서버 통합 시작

- 하지만 구독자는 계속 감소

- 그리고 바이오웨어의 공동창업자들인 레이 무지카와 그렉 제스쳑이 은퇴함


- 2012년 11월 부분유료화 전환

- 업데이트 주기 단축

- 기존 이용자와 새 이용자들에게 서비스가 나아졌다는 것을 확실히 해야 했음

- 부분유료화 모델 속에 향상된 월정액 플랜과 카르텔 마켓(유료템샵) 추가.

- 11월과 12월 사이에 구독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

- 유저가 늘어서 로그인 큐가 다시 나타남

- 카르텔 팩이 유저들에게 먹혔다.

- 랜덤 아이템을 구매하고, 제약없이 되팔 수 있다. (캐릭터 귀속이 없음)

- "아이템을 얻기 위해 팩에 수백달러를 쏟아부었다고 하더라도, 되팔 수 있기 때문에 완전히 속았다는 기분은 들지 않을 것"

- 그리고 커스텀 의상이 그 다음으로 많이 팔림


- A New Hope

- 현재 서구에서 두번째로 많은 구독자를 보유한 MMOG

- 부분무료화 전환 후 200만개의 계정이 새로 생성도었고, 매일 수천명씩 늘고 있음

- 카르텔 마켓은 EA의 소액결제 시스템 중 가장 큰 규모 - 엄청난 수익을 낳고 있다.

- 엔드게임은 더 탄탄해졌고 더 작으면서도 민첩한 팀이 됨


- 향후 계획

- 곧 출시할 Rise of the Hutt 확장팩을 시작으로 몇개의 확장팩들을 포함한 향후 몇년간의 계획을 밝힘

- "여러분들이 MMORPG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적인 것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 라이센스에 집중해서 말이죠."

- 그리고 바이오웨어의 MMO 스튜디오는 이제 EA가 준비중인 다른 MMO들의 핵심에 위치.






참 힘들게 개발했군요.

그나저나 부활은 상당히 믿기 힘들긴 합니다만, 랜덤 아이템은 흥할만 하기도 하단 말이죠..


  1. HeroEngine으로 출시한 게임은 구공온과 Faxion Online. 단 두 작품 뿐. 후자는 2011년 5월에 출시해 8월에 서비스 종료.. http://massively.joystiq.com/2011/08/24/faxion-online-closing-the-doors-of-heaven-and-hell/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3. 30. 09:04


참고로 본 연구원이 이 인터뷰의 발단을 제공한 개발자들 중 하나다. 그리고 추천 당시 염려했던 그대로, 많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표현에 낚여서 (여기엔 인벤이 제목을 자극적으로 단 것도 원인이지만) 껍질인간님이 생각하고 있는 본질과 관계 없는 덧글을 달거나 비웃고 있다.

평소 껍질인간님의 블로그, 데들리 던전에 대해 글을 쓸 생각이 있었던 터라, 사람이 양심의 가책 없이 심심해질 수 있는 시간은 불금 저녁에 한번 글을 써보고자 한다.

껍질인간님에 동조하지 않는, 비난가 - 제대로 정독하지 않고 맥락을 읽지 못한 채 단어에 낚여서 욕을 퍼붓기 때문에 비판가가 아닌 비난가라고 표현한다 - 들이 가장 먼저 보이는 반응은 '내가 재미있게 한 게임을 쓰레기라고 하다니! 난 용서할 수 없다!!!' 사실 데들리 던전은 이전부터 발더스 게이트를 RPG를 망가뜨린 주범이라며 비난했고, 베스트 셀러인 콜 오브 듀티를 게임이 아니라고 깐 걸로 유명했다.

모던워페어 리뷰의 별 0개의 의미는 빵점이라기 보다는 '점수없음'의 의미에 가깝다. 제작자가 플레이어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게임'이 아닌, 마치 게임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영상 체험'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게임이 아닌 것에 게임으로서의 점수를 줄수는 없다는 의미라 생각하길 바란다. 물론 멀티플레이는 배제한 싱글플레이 캠페인에 대한 평가다.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이 껍질인간님을 존중하는 건 비록 그 결론에 동의할 수 없더라도, 그 근거가 명확하고 논리가 정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근거와 논리를 제거하고 결론만 갖다놓으면 그냥 망상가가 된다. 위 인터뷰에서 중요한 지점은 모던워페어가 게임이 아닌 영상체험이라는 부분이 아니라, 왜 게임이 아니라 영상체험인지가 되어야 했다. 그 부분에 대한 부연 질문을 했어야 한다.

여하튼, 데들리 던전에 FPS(및 그와 관련된 혼합장르) 게임 리뷰는 총 6개 포스트이다. 데이어스 엑스 (2/5), 데이어스 엑스 2  (4/5), 듀크 뉴켐 포에버 (2/5), 바이오쇼크 (2/5), 콜 오브 듀티 4 : 모던 워페어 (0/5), 크라이시스 (1/5). 이들 중 RPG로 평가받은 데이어스 엑스 1,2편과 바이오쇼크를 빼고 순수한 FPS는 듀크 뉴켐 포에버(이하 DNF), 콜 오브 듀티 4 : 모던 워페어(이하 모던), 크라이시스 이 세 작품 뿐이다. 특히 전 세계 모든 매체에서 칭송받은 모던이 0점인 반면 두들겨맞은 DNF는 2/5라는 비교적(=_=)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지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어째서 DNF는 게임으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현대FPS들의 절대다수가 하프라이프 클론인만큼 DNF도 듀크뉴켐3D의 훌륭했던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버리고 하프라이프식 일방통행으로 변한것은 누구나 쉽게 예측이 가능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FPS들이 단순히 일방통행 레벨 디자인과 실시간 영화적 연출만을 가져와 슈팅파트만을 강조한데 반해서 DNF는 훨씬더 하프라이프에 가깝게 일방통행 통로에서 퍼즐을 풀며 길을 찾는 시간이 슈팅파트를 압도할만큼 퍼즐적 요소가 많은 구성을 보여준다.

(중략)

퍼즐만 봤을때는 하프라이프1과 2의 딱 중간수준으로 FPS로서는 준수하지만 그것만으로 하프라이프 수준의 레벨디자인에 도달했다고 보기에는 힘들다. 하프라이프가 비선형 레벨디자인을 포기면서까지 추구한 부분은 영화적 연출이었고 이는 단순히 콜옵식의 직접적으로 영화틀기 수준의 스크립트 연출이 아니라 게임플레이 자체를 영화적 연출로 승화시키고자 함이었다. 플레이어가 조작하는 슈팅 상황 자체가 단순히 쏘고 피하기가 아니라 영화적인 장면처럼 진행되기를 원했고  퍼즐또한 대놓고 그냥 퍼즐이 아니라 스토리를 전개시키고 영화의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주기위한 퍼즐이었다.

위는 DNF 리뷰에서 인용한 것인데, 하프라이프, 퍼즐, 비선형 레벨 디자인이 굉장히 자주 언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현대 FPS는 하프라이프가 아니라 콜 오브 듀티의 클론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FPS의 핵심을 1인칭으로 총을 쏘는것에 두고 있다. 사실 FPS라는 말 자체가 First Person Shooter가 아닌가. 따라서 울펜슈타인3D - 둠 - 하프라이프 - 모던워페어로 이어지는 계보를 그릴 수 있다. 아름다운 이땅에 금수강산에 울펜슈타인3D님과 둠님이 터잡으시고, 하프라이프는 스토리텔링을 게임플레이의 주된 요소로 편입시켰으며 모던 워페어는 한발 더 나아가 스토리텔링을 게임의 중심으로 승화시켰다. 이 과정에서 게임플레이는 초반의 울펜슈타인3D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어쨌든 1인칭으로 총을 쏜다는 플레이는 바뀌지 않았다.

FPS는 던전RPG의 파생 장르나 시뮬레이션의 관점으로 보기 때문에 '하프라이프'식 레일슈터는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껍질인간님에게 FPS의 본질은 총싸움만은 아니다.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껍질인간님은 FPS의 근원을 던전RPG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길찾기'는 FPS의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길찾기'가 사라진 대신 '퍼즐'이 있는 하프라이프는 서자라고는 해도 어쨌든 FPS의 가문에 포함될 수 있다.

문제는 이게 FPS라는 것이다. RPG나 어드벤쳐가 아니고 FPS란 말이다. RPG나 어드벤쳐에는 플레이어가 스토리를 진행시킬수 있는 수많은 행위가 가능하다. 근데 FPS라는 장르는 플레이어가 할수 있는 행위라고는 총을 쏜다와 길을 찾는다 밖에는 없다. 총을 쏘고 길을 찾는걸로 뭔가 대단한 스토리를 진행시키는게 가능하다면 애초에 하프라이프가 대단한 주목을 끌었을리가 없다

(중략)


실질적으로 이 게임에는 총쏘기가 없다. 달리기만 있다. 이게 무슨소리인지는 게임을 해본사람은 다 알것이다. 슈팅은 총을 쏴서 적을 없애는게 기본인데 모던워페어는 아무리 총을 쏴서 적을 없애봐야 적이 없어지지 않는다.

어느 길목에 놓인 작은 차 한대 뒤에서 엄폐하는 적이 한명 보인다. 그 길목을 지나가기 위해 적을 쏴서 잡는다. 근데 죽이자 마자 다시 한명이 고개를 내민다. 죽인다. 또나온다. 죽인다. 수십명을 죽였다. 계속나온다. 수백명을 죽였다. 그래도 계속 나온다. 아니 도데체 저 조그만 차 한대 뒤에 무슨 차원문이라도 있는것인지 궁금해서 그 차 뒤로 가본다. 그러자 갑자기 더이상 적이 나오지 않는다.

모던에 대한 비판은 단순히 길찾기가 없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게임에서 '총쏘기'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질문에서 나온다. 총을 쏴서 적들을 다 죽인 후에 진행할 수 있다면 총쏘기는 이 게임의 핵심 요소일 것이다. 하지만 모던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기준이 다 죽이느냐에 있지 않고 특정지점까지 이동하느냐에 있다. 총쏘기는 거들 뿐. 그러므로 이 게임은 총쏘기 게임이 아니라 달리기 게임이다. 총쏘기도 없고 길찾기도 없으므로 이 게임은 FPS가 아니다. 여기에 자동회복 등으로 인해 게임으로서의 난이도도 없으므로 게임도 아니라는 것이 모던에 점수를 줄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요약하자면 껍질인간님에게 FPS 게임이란 던전RPG에서 전투가 슈팅으로 대체된 하부 장르로, '총쏘기'와 '길찾기'가 이 장르의 핵심적 게임플레이이다. 여기서 스토리텔링을 위해 '길찾기'를 '퍼즐'로 대체하는 것 까지는 인정해줄 수 있다. (탐탁치는 않지만) 이 논리 체계하에서 허접하나마 퍼즐이라도 있는 DNF는 FPS 가문의 서자인 하프라이프의 덜떨어진 후손으로써 5점 만점에 2점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총쏘기도 없고 길찾기도 없는 모던은 당연히 FPS가 아니다. 그리고 나머지 영역에서 게임으로써의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따라서 껍질인간님은 모던을 게임이 아니라고 평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내가 그렇게 재미있게 즐긴 게임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게임도 아니라고 까다니!'라고 분노하지만, 사실 여기서 '게임이 아니다'라는 평가는 저열하다기 보다는 평가할 수 없다는 의미에 가깝다. 다른 포스트들을 보면 평가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가열차게 깐다. '메탈리카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와 '메탈리카 따위를 좋아하는 너네는 쓰레기다'는 엄연히 다르다. 물론 껍질인간님의 어투가 좀 공격적인 면이 없진 않지만 어쨌든 모던을 즐긴 유저들을 직접 공격한 것은 아니다.[각주:1]

일단 게임이 아니다 라는 부분을 떼고 보면, 모던에 대한 평가는 3단논법으로 정리될 수 있다.

전제1) FPS의 핵심 요소는 총쏘기와 길찾기이다.
전제2) 모던에는 총쏘기도 길찾기도 없다.
결론) 따라서 모던은 FPS가 아니다.

아주 깔끔하게 도출된 타당한 논리이다.[각주:2] 우리는 지난 대선 내내 같은 방식의 논리를 마주해왔다.

전제1) 한나라당에 반대하면 빨갱이다.
전제2) 문재인은 한나라당에 반대한다.
결론) 따라서 문재인은 빨갱이다.

제법 비슷하지 않은가? 이런 타당한 논리에 대한 비판은 결론이 아니라 그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던 전제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본 연구원이 비판하고 싶은 부분은 무엇이 FPS 게임의 본질인가에 대한 부분. 일단 FPS를 던전RPG의 파생장르라고 볼 수 있는 근거에 대한 의문이 든다. 아카라베스와 같은 RPG 게임들이 던전에서 1인칭 시점을 채택했던 것도 맞고, 위저드리 처럼 던전만을 강조한 던전 RPG들이 80년대에 흥했던 것도 맞다. 하지만 1인칭으로 미로를 돌아다니며 뭔가 물체를 쏘아내는 최초의 게임은 아카라베스(1979)보다 5년 전에 나온 Maze War였고, 이 Maze War를 보통 FPS의 시초라고 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위키피디아 참고)

Maze War는 제목 그대로 미로를 무대로 하고 있지만 비슷한 시기의, 초창기 FPS 게임으로 함께 꼽히는 Spasim의 경우는 미로가 아닌, 우주 공간을 다루고 있다.

이 두 게임의 본질은 '길찾기'와 '총쏘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인칭으로 보면서 공격한다'는 것에 있음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만일 FPS의 역사에서 앞부분을 전부 뚝 떼어내고 울펜슈타인3D와 둠을 놓는다면 '길찾기'와 '총쏘기'가 핵심에 위치해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앞뒤로 위저드리와 울티마 언더월드를 놓는다면 던전RPG의 파생장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껍질인간님이 말하는 FPS는 우리가 생각하는 FPS와 전혀 다른 게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1인칭으로 쏘는 게임을 First Person Shooter라고 부른다. 따라서 길찾기가 있든 없든, 퍼즐이 있든 없든 1인칭으로 총을 쏜다면 그 게임은 FPS이다. 여기엔 버추어캅 같은 레일 슈터 게임들도 하부 장르로 포함될 수 있다. 반면 껍질인간님이 말하는 FPS는 총을 쏘면서 미로를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열쇠 등을 얻어 진행하는 게임으로 울펜슈타인3D부터 둠2를 지나 다크포스[각주:3]까지의 게임을 말한다. 하프라이프는 여기에 서자로 끼워주는 것이고. 나는 이 분류가 FPS라는 장르 전체의 핵심을 관통하지 못하고 특정 시기의 게임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고, 그래서 모던은 FPS 게임이 아니라는 결론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

사실 이러한 '장르 구분에 대한 편협함'은 FPS 게임보다는 RPG 게임에서 더 자주 보인다. 껍질인간님은 울티마 4 (5/5), 웨이스트랜드 (4/5)에 대해 후한평가를 내린 반면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 (1/5),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 (2/5)에는 낮은 점수를 부여하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는 아예 리뷰 목록에도 없다. 다른 카테고리에서 열심히 까이긴 하지만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3대 RPG는 위저드리, 울티마, 인터플레이RPG 이고 각각 대응하는 대표적 특징으로서는 던전, 퀘스트, 룰 이라고 간단하게 요약할수 있다. 이 세가지 특징은 CRPG를 정의하고 발전시켜온 가장 중요한 특징들이었다.

껍질인간님은 무려 5편에 걸쳐 RPG의 흥망성쇠를 이야기하는데, 1부2부를 읽고 난 뒤에야 이분이 생각하는 RPG의 핵심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기본적으로 RPG는 Dungeons And Dragons와 같이 사람들이 모여앉아 주사위를 굴려가면서 하는 TRPG(Table-talk Role Playing Game)[각주:4]이 진리이다. 이 안에는 탐험도 있고 캐릭터의 연기도 있으며 즉흥성도 있고 몰입도 있다. 하지만 항상 모여앉아 플레이하긴 힘드니 컴퓨터로 이를 대체한 것이 CRPG(Computer Role Playing Game. 일반적으로 RPG라고 하면 이 CRPG를 일컫는다.)이다. 컴퓨터 따위가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을 흉내낼 수 없으므로 CRPG는 본질적으로 TRPG의 불완전한 모사품이다. 하지만 던전 탐험에 대해서 죽도록 파고 들어간 '위저드리', 비선형적인 진행을 추구한 '울티마', 그리고 전투 외의 영역에까지 룰을 확장시킨 '웨이스트랜드' 이 세 작품은 플랫폼의 한계 내에서, 각각의 영역에서 플랫폼의 능력을 한계까지 뽑아냈으니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 반면 드래곤퀘스트 등과 같은 일본 RPG들은 이 작품들 중 딱 전투만 잘라다가 스토리를 붙인 족보없는 녀석들로 RPG라는 이름이 붙어서는 안될 족속들이다.

발더스 게이트가 까이는 이유는 유서깊은 D&D 룰을 베이스로 하고 스토리를 강조한다면서도 던전(의 완성도), 퀘스트(의 비선형 구조), 룰(의 비전투 영역 적용) 어느 한 부분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데아의 불완전모사에 대한 무성의한 불완전모사인 일본RPG에다 전투 룰만 D&D를 갖다붙인, 방계의 서자가 감히 CRPG 왕조의 적통으로 보위에 오른다는데어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나마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의 경우는 종족 / 직업 / 배경별로 다른 도입부의 오리진 스토리에서 비선형적 퀘스트의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기 때문에 별 1개라도 받아갔지만 그마저도 없는 발더스 게이트에게 별점 따위는 가당치도 않다.

다른 게임들에 대한 평가 기준도 사실 비슷하다. 해당 게임이 다양한 선택지를 주고 이에 따라 스토리가 (특히 메인 스토리가) 바뀌는 비선형적인 퀘스트 구조와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가가 먼저 체크된다. (대부분은 여기서 탈락하면서 별점을 절반 정도 잃는다.) 만일 스토리가 선형이라면 게임을 계속 플레이할만큼 충분한 동기를 제공하는지를 체크한다. (그리고 보통 여기서 별점을 추가로 잃는다. 선형 구조인데 스토리를 칭찬한 경우는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전투가 재미있거나 던전이 재미있으면 별점을 받는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비선형성에서 별점을 잃기 때문에 많지 않은 리뷰지만 별 4개 이상을 받은 것은 웨이스트랜드와 울티마4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한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도대체 TRPG에서 언제부터 그렇게 스토리가 중요했던 건가? 최초의 RPG라는 D&D의 기원을 파면 워게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태초에 나폴레옹 시대의 가상 독일 마을에서 2개의 군대가 싸우는 브라운슈타인이라는 게임이 있었다. 데이브 웨슬리는 여기에 시장, 은행가, 대학 총장 등의 다른 인물들을 추가함으로써 다자 참여 게임을 만들었다. 특히 기존의 보드게임과 달리 플레이어와 캐릭터가 1:1로 매칭이 된다는 점[각주:5]과 플레이어간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구조가 RPG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이 변종 브라운슈타인에 영감을 받은 게리 가이각스는 체인메일이라는 중세 배경의 미니어쳐 워게임을 제작하는데 여기에 기본적으로 판타지 설정에 대한 보충자료가 동봉되어있었다. 이 체인메일에선 캐릭터들이 경보병, 중보병, 장갑보병, 경기병, 중기병, 중장기병으로 나뉘어 각각의 특성을 지니고 있었고, 판타지 확장팩에선 마법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여기서는 캐릭터 별로 다양한 기능과 속성을 지니며 이들이 조화를 이룬다는 원칙이 성립된다.

그리고 여기에 성장까지 포함되면서 드디어 최초의 Role Playing Game인 Dungeons and Dragons가 탄생한다. 전사와 마법사와 도적과 엘프와 드워프가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면서 지하 감옥을 돌아다니다가 성장하는 게임이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Role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보통 RPG를 '역할 연기 게임'으로 번역할 때 캐릭터의 연기를 '역할연기'로 착각하곤 하는데 사실 태초의 RPG엔 그딴거 없었다. 정확히는 몰입하고 연기할 캐릭터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RPG에서의 Role은 주체로서의 한명의 인간, 캐릭터가 아니라 전투에서 사용되는 하나의 유닛으로서의 Role을 말한다. 함정을 찾고 잠긴 상자를 여는 도적의 역할, 다친 동료를 치료하는 성직자의 역할을 준수하고 이를 즐기는 것이 태초의 Role Playing 이었다. 이 도적이 호색한인지 아닌지, 성직자가 술을 좋아하는지 마는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는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D&D에서 캐릭터의 가치관을 질서-중립-혼돈으로 나누는 것은 이런 연기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각 가치관을 대상으로 하는 스펠 구조 때문이었다.

스토리 역시 마찬가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단지 어떤 던전을 터는지가 중요했고 여기에 대한 이유만 대충 붙여줄 수 있으면 상관없었다. 심지어는 캐릭터 시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아무 플레이에나 끼어드는 케이스도 가능했다. D&D의 세계에 여관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고.

물론 TRPG가 진행되면서 사람들이 스토리에 재미를 느끼고, 그러다보니 나중엔 아예 스토리를 주로 즐기는 스토리텔링 게임들도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RPG는 그냥 던전파고 다니면서 함정 피하고 전투하며 노는 게임이지 선택과 결과가 서로 연쇄를 이루는 장엄한 스토리를 즐기는 게임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발더스 게이트와 드래곤 에이지 오리진은 능력과 속성이 분배된 여러 클래스의 캐릭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전투를 벌인다는 RPG의 기본 속성을 매우 훌륭하게 구현하고 있으며 벰파이어 마스쿼레이드 블러드라인(이하 VMBL)에서 대화의 연기를 극찬한 것은 사실 RPG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이다.

또한 CRPG의 중요한 특성으로 계속해서 비선형적이면서도 서로 맞아 떨어지는 퀘스트 - 스토리 구조를 이야기하지만, 여기에 언급되는 게임은 울티마4,5,6과 웨이스트랜드에 그친다는 점도 지적할만한 부분이다. 만일 그런 구조가 CRPG의 중요한 구성요소라면 다른 게임들도 비슷한 노선을 추구했어야 하고 이 안에서 우/열이 나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게임의 사례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저 속성은 CRPG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요소라기 보다는 일부 게임의 특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이 부분은 껍질인간님의 FPS관이 울펜슈타인3D ~ 다크포스 + 하프라이프에 이르는 특정 기간에 한정되어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FPS에서도 RPG에서도 '정통'을 주장하지만 실제 그 '정통'은 기원과는 관계 없이 그 장르가 어느정도 형성된 특정 지점의 특징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 이후의 변화는 사문난적으로 배척한다. 이미 그 '정통'이 본질에서 어느정도 진화가 된 이후라는 점을 감안하면 '내가 좋아하는 부분 까지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그 이후의 진화는 인정할 수 없다'는 상당히 모순된 입장이다.

종종 껍질인간님의 블로그를 남에게 소개할 때 '머리는 잘라도 머리카락은 못자른다며 위정척사를 부르짖는 구한말 선비'라고 표현하는데, 사실 이게 정말 괜찮은 비유다. 춘추 전국 시대 공자와 맹자는 인간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유학을 창설한다. 그리고 주자가 이를 기반으로 인간의 본성에까지 탐구해 들어가면서 성리학이 발생한다. 조선은 당대 최신의 유학이었던 성리학에 입각해 세워진 국가였다. 하지만 본고장인 중국의 성리학은 현실세계로의 실천을 강조한 양명학으로 발전해나가지만 조선은 이 양명학마저 이단으로 치부해버린다. 이 점이 껍질인간님의 스탠스와 상당히 일치한다.

난 극히 평범한 PC 게이머 중 1인에 불과하다. 단지 PC 게이머가 멸종위기라 내가 신기하게 보이는 건가.

사실 껍질인간님의 게임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바로 이 'PC 게이머'라는 단어에 있다. 사전적으로만 풀이하자면 PC 게임은 PC에서 돌아가는 게임이고, PC게이머는 PC를 주된 플랫폼으로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뜻이 되겠지만 데들리 던전 블로그의 '빠큐'라는 코너에선 PC게임을 별도로 정의하고 있다.

제가 말하는 PC게임이란 단순히 PC로 나오는 게임을 말하는게 아니라 70년대 말~80년대 초반에 북미에서 처음 시작된 어드벤쳐/RPG/워게임/시뮬레이션류에 뿌리를 두고 영향받은 게임들을 일컫습니다. 그러면 왜 PC게임이나 리뷰하지 콘솔게임을 리뷰하냐고 묻는다면 현재 PC게임이 콘솔게임에 완전히 편입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 PC게임이 콘솔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FPS나 RPG는 순전히 PC게임쪽에서 시작되어 콘솔로 넘어온 장르입니다. 그러니 제가 콘솔FPS/RPG를 리뷰한다고 해도 PC게임쪽에 치중된 관점을 가지고 리뷰하게 됩니다. 게임전체에서 보면 편협하다고 해도 할말이 없지만 PC게임이라는 테두리 안에서는 전혀 편협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축구선수가 야구못한다고 잘못된 선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축구선수가 야구까지 잘할려고 하다보면 결국 둘다 못하는 어정쩡한 선수밖에 되지 않습니다.

사실 이보다 더 적나라한 차이를 드러낸 댓글이 있었는데 어느 포스트에 달렸는지 까먹었다. 내용은 '원래 콘솔은 코흘리개 애들이나 갖고 노는 것이고 PC는 고학력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의 소유물이었음! 그러니 PC 게임은 당연히 말초적인 콘솔게임보다 더 머리쓰는 게임임' 뭐 이런 거였다. (생각나는 대로 쓴건데 당연히 왜곡이 들어갔으리라 생각된다...)

PC게임, PC게이머라는 단어에 얽메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사실 모든 오해는 사라진다. '"70년대 말~80년대 초반에 북미에서 처음 시작된 어드벤쳐/RPG/워게임/시뮬레이션류에 뿌리를 두고 영향받은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때와 같은 게임이 나오지 않음을 한탄하며 지금의 게임을 그때 그 시절의 잣대로 평가한다. 이것이 데들리 던전의 본질이다. 말투가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나라 잃은 신채호 선생의 글이 얼마나 과격했는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아니다. 다만 다음 인용과 같이 드문드문 나타나는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좀 걱정스럽긴 하다.(발더스 게이트가 없었다면 서양 RPG의 입문작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겠지.. 폴아웃 그 대사 많고 복잡하고 어려워보이는 게임을 어떻게...)

만약에 발게이가 없었더라면 윈도우98이후 서양RPG의 입문작은 폴아웃이 됐을겁니다. 실제로 발게이 전까지 가장 유명하던게 폴아웃이었거든요. 그랬다면 서양RPG가 그냥 전투가 좀 더 재밌고 사이드퀘스트가 많고 이동이 자유로운 일본RPG의 확장판이라는 오해는 없었겠지요. 다른 RPG들이 오해의 피해를 입을 일도 없었을테구요. 발게이를 통해서 아케이넘같은 게임을 접할 사람들은 발게이 대신 폴아웃이 있었으면 훨씬 일찍 아케이넘을 했을 사람들입니다. 디아블로 하던 사람들은 어짜피 RPG팬이 될 가능성이 없는 캐주얼 게이머들이 대다수였구요.

그렇다고 해서 데들리 던전이 읽을 가치가 없는 곳이냐면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껍질인간님이 과거의 게임에서 칭찬하고 있는 부분들은 분명히 현대에 복각해서도 재미있을 법한 요소가 많다. 리소스와 마켓의 한계 때문에 쉽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까이는 게임들도 분명 필요 이상으로 난타당하고 있긴하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편협한 안목이지만 그 안에서의 논리는 아까 말한 것과 같이 정연하다. 이렇게 잘 정돈된 글을 읽는다는 것은 제법 즐거운 일이며 나 또한 PC게이머의 끄트머리를 경험한 세대로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한다.

뉴턴 물리학은 시간과 질량의 절대성을 기반으로 자연계의 힘과 그 작용을 밝혀냈다. 하지만 광속의 세계는 이 질량과 시간의 절대성을 부정하는 상대성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뉴턴 물리학이 필요 없는 건 아니다. 뉴턴 물리학은 여전히 많은 영역을 설명해줄 수 있다. 중요한건 뉴턴 물리학은 아리스토텔레스 과학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했고, 상대성이론은 뉴턴 물리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설명하기 위해 정리되었다는 점이다. 어떠한 훌륭한 철학이나 이념도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고, 또한 여기서 새로운 변화가 생겨날 수 있다. 어떠한 비판이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교조주의는 고사만을 불러올 뿐이다.

사실 본 연구원도 한때는 저런 교조주의를 고집하던 때가 있었다. 영웅전설 시리즈를 좋아한다는 아가씨에게 '남들이 재미있다고 하니 재미있겠지만 난 그따위 일본식 RPG는 RPG로 인정할 수 없어!'라고 이야기 한다거나, 디아블로 시리즈에 대해선 '성장만 남은 잡종 RPG따위 난 인정할 수 없다!'라고 외친다거나. (그래놓고 어스토와 창세기전, 이스와 젤리아드는 엄청 즐겼다는 것은 함정) 그런데 2005년에서야 겨우 접한 디아블로2는 엄청 재미있었다... 그리고 미친듯이 즐겼던 구공화국의 기사단이 결국은 일본식 RPG였다. 그러고 나서야 게임은 게임일 뿐, 재미만 있으면 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제작비가 늘어나고, 또 이 제작비를 회수하기 위해 과거보다 훨씬 많은 대량의 유저를 타겟으로 잡으면서 게임들이 점점 획일화 되어가고 속편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복제에만 집착하는 현재의 게임계 - 특히 싱글플레이어 게임계 - 는 나 역시 걱정스럽다. 하지만 이런 경향 속에서 게임을 즐기는 인구는 과거에 비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천만장씩 팔리는 게임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새로운 재미가 탄생하고 있기도 하고.

누가 뭐래도 게임은 대중을 상대로 한 문화상품이다. 물이 없으면 물고기가 죽듯이, 대중과 호흡하지 못한다면 대중문화는 소멸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대상으로 하는 대중의 성향이 변화한다면 게임도 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살아남은 게임들은 이미 변화한 상태이고, 그 게임을 하는 우리도 과거와 다른 시각을 지니고 있다.

발더스 게이트는 처음 나왔을 때에는 하다 관뒀지만, EE 버전을 하니 여전히 힘들었다. 그토록 칭송하던 시스템 쇼크2는 2003년에도 클리어하고 2007년에도 클리어했지만 2013년 GOG 버전으로 다시 시도하니 어렵고 불편해서 못해먹겠더라. (특히 인벤토리와 총기 고장) 그 재미의 본질은 사람 하나 없는 우주선에 홀로 남겨진 고독과 그로 인한 공포이지 인벤토리의 빡빡함과 총기 고장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가 바이오쇼크를 시스템 쇼크2의 정신적 후계작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건 인벤토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고독과 공포가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난 과거에 재미나게 했던 게임 그대로를 원하지 않는다. 21세기에 유행하는 복고풍 나팔바지가 과거 아버지세대의 그 나팔바지가 아닌 것 처럼, 훌륭했던 게임의 유전자가 현대의 감각으로 부활해주길 바랄 뿐이다.

-덧-

그런 점에서 레전드 오브 그림락은 불합격. 정통 1인칭 파티제 던전 크롤러를 원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21세기에 한칸 한칸 움직이는 던전이라니! 그건 이미 마이트 앤 매직6도 극복했고 위저드리8과 위저드 앤 워리어즈도 극복한 문제였다긔!! 그리고 왜 쓸데없이 전투는 현대화해서 실시간 탑재하고, 마법은 뜬금없이 룬 문자를 클릭하게 한거임...

  1. 물론 간접적으로는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이야기는 후술. [본문으로]
  2. 논리의 타당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내용의 참됨이 아니라 구조의 완결성에 존재한다. [본문으로]
  3. 둠2 엔진으로 스타워즈 세계관을 구현했던 게임으로 높낮이만 있던 둠2에 비해 다층 구조를 지니고 있고 스위치 조작에 의해 맵 차체가 변화하는 등 FPS 중 '길찾기'의 재미가 극한까지 강조된 게임. 제다이가 아닌 일반 병사를 주인공으로 한 게임이기도 했지만 추후 제다이 나이트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주인공인 카탄 카일이 제다이가 되어 이 부분은 희석된다. [본문으로]
  4. 다른 표현으로는 Pencil and Paper Role Playing Game 이라고도 한다. [본문으로]
  5. 대부분의 보드게임 / 워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여러 캐릭터 - 코스티켄 식으로 말하자면 게임토큰 - 을 다룬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3. 16. 00:46

삼성이 이번에 갤럭시4와 함께 스마트폰용 블루투스 게임 컨트롤러를 발표했다..


(사진 출처 : engadget. http://www.engadget.com/2013/03/14/samsung-prototype-wireless-game-pad-hands-on/ )


어라? 어디서 굉장히 많이 본 듯한 디자인이다.


(사진 출처 : 위키피디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Xbox_360_wired_controller_1.jpg )


뭐... 한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게임 컨트롤러를 만들려면 다른 제품을 벤치마킹했어야 할테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패드 중의 하나인 엑박360 컨트롤러를 벤치마킹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이정도면 벤치마킹이 아니라 그냥 표절 아닌가...

사실 삼성이 독자적인 게임 콘솔을 만든 역사가 있다. 이름하여 Samsung DVD-N501/N2000. 국내는 DVD-N591. 뭐 사실은 다른 DVD보다 좋은 프로세서를 탑재한 고성능 DVD 플레이어이고, 여기에 게임 기능이 끼어있는 형국이었지만 어쨌든 나름 플스2가 경쟁상대라고 언플도 했던 기억이 있다. 독자 포멧은 아니고 Nuon 이라는 플랫폼. 자세한 건 위키피디아 참고


(삼성의 흑역사 누온 DVD 플레이어 with 조이패드. 저 조이패드는 N64의 것을 연상시키지만, 저게 저 제품에 번들로 들어간건지 서드파티 제품인지는 불분명하다.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Nuon_%28DVD_technology%29 )


여하튼, 삼성이 발표한 블루투스 게임 컨트롤러 - 기니까 앞으로 줄여서 '짭박패드'라고 하자 -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일부는 저 ABXY 배치는 드캐에서도 있던 것이며, D-Pad는 세가세턴 때에도 있던 거라고 쉴드 치는 양반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드캐 패드를 한번 보자.

(출처 : 위키피디아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Dreamcast_controller_%28lit_from_left%29.jpg )


ABXY 버튼이 마름모 꼴로 배치되어있고, 특히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Y B A X 버튼이 배치되어있으며 빨강 파랑 노랑 녹색의 원색이 사용된 점은 드림캐스트도 동일하다. 하지만 엑박 컨트롤러는 드캐 패드와 버튼에 배당된 색상, 버튼의 재질, 버튼에 기호를 마킹한 방식이 전혀 다르다. 반면 짭박패드는 버튼의 색상, 재질, 기호 마킹한 방식이 엑박 컨트롤러와 완벽하게 일치하고 있다.

D-Pad의 경우 사실 닌텐도가 십자키에 대한 특허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각주:1] 비슷한 형태가 메가드라이브, 세가세턴, 플레이스테이션 등 다양한 컨트롤러에서 발견된다. 어디 한번 살펴보자.


(세가 세턴 컨트롤러.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Sega_Saturn_Controller_-_Type_2.png )


(메가드라이브 컨트롤러. 출처는 위키피디아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Mega_Drive_Controllers.jpg )


위 두 패드에 사용된 D-Pad는 가운데 원형 구멍[각주:2]이 있으며 닌텐도의 것 처럼 십자 형상이 강조되어, 중앙 부분에서 직각으로 연결되는 부분만 곡선으로 부드럽게 이어주는 형태를 띄고 있다. 다시 한번 위로 엑박 컨트롤러의 D-Pad를 보면 십자 모양이 크게 강조되어있지 않고, 십자가가 굵으며 세가와는 반대로 네 귀퉁이를 부채꼴로 깎아낸 모양으로 세가의 것과 완전히 구분된다. 그리고 짭박패드는 이 모양을 그대로 갖다쓰고 있다.

이 D-Pad는 사실 엑박 컨트롤러의 유일한 약점으로 꼽히는 부분이다. 방향 입력이 지나치게 딱딱해서 캐릭터를 컨트롤하는데 사용하기 보다는 대부분 무기 선택키로만 사용하는데 바로 이 D패드와 동일한 모양을 채택했다는 점에서 웃음을 금할 수 없다.

다른 제품을 참고하되, 단점을 보완하거나 장점을 더 키우거나, 새로운 기능을 넣는 등 원본을 개선시켰다면 그건 벤치마킹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비판이나 개선 없이 그대로 갖다쓴다면 그건 표절에 불과하다.











  1. 위 드캐 패드의 십자키는 닌텐도로부터 라이센스 받았다고 [본문으로]
  2. 마스터시스템 (한국명 겜보이)에선 저 원형 구멍에 봉을 연결해서 쓸 수 있었는데 그 흔적인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3. 15. 17:45

작년 미국의 비디오 게임 시장은 전년도에 비해 10% 가량 축소되었다. 그리고 Wii와 달리 WiiU의 판매량도 신통찮아보인다.

구미의 업계인들은 현세대 게임기에 대한 피로 현상을 원인으로 꼽으며 차세대기가 나오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이다. 그러면서도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게임의 성장에 대해선 별개의 시장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이 업계는 게이머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게이머가 게임을 만들고, 게이머가 게임을 구매한다. 하지만 이런 게이머의 패러다임으로는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납득하기 힘들 것이다. 질량과 시간의 절대성에 기반한 뉴튼 물리학으로는 광속의 세계를 다룰 수 없다. 우리는 게이머가 아닌 시각으로 게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선 콘솔이 가지는 한계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할 필요가 있다. 분명 콘솔은 사양이 통일되어있고 사용이 쉽다는 측면에서 PC에 비해 게임 플랫폼으로써 우위를 점해왔다. 하지만 동시에 TV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CRT를 사용하던 이전 세대에선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작으니까. 작으니까 집안 여러곳에 TV를 둘 수 있었다. 방 안에 둘 수도 있었고. 하지만 현세대는 HDTV를 요구하며, 이는 보다 큰 공간을 요구하며 TV의 가격을 차치하더라도 이 HDTV가 위치할 수 있는 공간은 한정되어있다. 그래서 HD 환경에서 콘솔 게임을 즐긴다는 것은 가족 공용재인 TV의 배타적 소유권을 획득해야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Wii가 불티나게 팔리던 시점은 HDTV의 보급시기와 일치한다. 비록 Wii 자체는 HD 스펙이 아니었다고는 하지만, 집에 새로 들여놓은 40인치 이상의 HDTV 앞에서 온가족이 즐기는 게임이 Wii의 컨셉이 아니었던가. Wii는 캐주얼 게임의 혁명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가족과 게임의 타협에 대한 새로운 모델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은 기본적으로 혼자 즐기는 놀이이다. 물론 온라인으로 멀티플레이를 하기도 하고, 오프라인에서 모여서 PC방에서 단체로 게임을 즐기기도 하지만. 화면 분할 멀티플레이 보다는 각자가 고유의 디스플레이와 컨트롤러를 가지는 것이 사실 더 재미있다. 게임은 이런 개인적인 놀이인데, 플레이하기 위해선 가족 공동체와의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게임 시장의 성장을 다시 한번 바라보자. 물론 게임 플랫폼으로써 성능으로 보나 조작 체계로 보나 스마트폰 / 타블렛은 현세대 콘솔에 상대가 안된다. 하지만 이들은 콘솔과 달리 유저가 매우 쉽고 간편하게 독점할 수 있는 플랫폼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히려 PS VITA나 3DS 같은 휴대용 게임기가 더 팔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여전히 게이머의 시선에 머물러있을 뿐이다. NDS를 견인했던 캐주얼 게임들은 이미 스마트폰에 잠식당했다. 스마트폰은 필수품이기 때문에 추가 지출도 필요 없고, 게임 자체에 대한 지출은 더 쉬우며, 이런 게임들은 전용 입력기를 필요로하지도 않는다. 기기 스펙도 좋아졌으니 모던 워페어 급의 AAA급 타이틀을 PS VITA 용으로 내놓는다면?  집에서도 밖에서도 트리플 A급 타이틀을 플레이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게이머들은 살 것이다. 하지만 그들 대상으로는 절대로 손익 분기를 맞출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에 많은 돈을 쓰지 않는다. 아니 사실 그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거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게임을 소비하긴 하지만, 게임에 대해선 별로 관심이 없다.

게이머들에게 게임은 취미이고 탐구의 대상이다. 그래서 게임을 비교하는 것에 굉장히 능숙하고 이 게임은 다른 어떤 게임보다 낫다느니 못하다느니 이건 비운의 걸작이라느니 등등의 이야기를 하곤 한다. 더 나은 게임이 더 잘 팔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세대 콘솔이 나오면 시장이 다시 트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건 모두 이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게임은 소비의 대상일 뿐이다. 시간을 떼우고 노는 여러가지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에 지불한 금액(+시간)이 아깝지만 않으면 그걸로 족하다. 어떤 게임을 다른 게임과 비교할 기준도, 의사도 없다. 단지 본인 기준으로 재미있냐 없냐만을 따질 뿐이다. 게이머들은 A~D,F 이 5단계로 게임을 평가하지만 대중들은 Pass / Fail 2단계로 평가할 뿐이다. 게이머들이 게임1은 75점이니 C, 게임2는 90점이니 A 이런식으로 바라볼 때 대중들은 과락 기준인 70점을 넘었으므로 둘 다 합격이라고 바라보는 것이다.

그래서 게이머들에게 모바일 게임은 콘솔을 플레이하지 못하는 시간 - 심지어는 플레이 하는 중에도 -을 채워주는 보완재일 순 있어도, 대체재는 되지 못한다. 헤일로를 플레이하면서 로딩이 뜰 때 마다 짬짬이 확밀아를 할 순 있어도 확밀아 하느라 헤일로를 안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중들에게 모바일 게임은 콘솔 게임의 대체재가 될 수 있다. 양자가 충분히 재미있다면 접근성이 좋은 쪽이 유리하다. (이 접근성엔 시공간적인 접근성 뿐만 아니라 금액에 대한 접근성까지 포함된다.)

이미 사람들은 WiiU를 구입하지 않고 있다. (가마수트라에 따르면 1월 판매량은 10만대인데 이 중 40%가 반품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Wii는 캐주얼 시장에서 폭발적으로 팔렸지만, 이 구매자들은 대부분이 非게이머들로 새 콘솔을 살 생각이 없는 계층인 것이다. XBOX360이나 PS3가 보다 게이머 지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쪽 차세대 콘솔은 상황이 그보단 더 낫겠지만, 게이머 농도가 낮은 계층이 현세대 콘솔에 안주해버릴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더 팔리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차세대기가 열어줄 미래는 장미빛이라기 보다는 잿빛이라고 본다.

물론 국내는 콘솔 시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온라인 게임이 대세지만 기본 구조는 유사하다. 컴퓨터는 방 안에 있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유부남은 유부남대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선 여전히 안방마님의 윤허가 필요하기 때문에 스마트폰의 접근성이 의미를 지니며 따라서 일정 계층에게는 스마트폰 게임이 온라인 게임의 대체제가 될 수 있다.

또 게이머와 대중의 괴리는 사실 국내 온라인 시장에서 더 선명하게 나타나는데, 간단하게 온라인 FPS 게임 시장을 바라보자. 게이머의 기준으로 봤을 때에 AVA는 분명 서든어택보다 훌륭한 게임이다. 하지만 점유율이나 매출은 오히려 후자가 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AVA가 훌륭한 게임인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들에게 서든어택 또한 충분히 훌륭한 게임이었다. 그래서 소수의 하이엔드 게이머들은 AVA로 옮겨갈 이유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굳이 멀쩡히 플레이하던 서든어택을 버리고 AVA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이 바닥에서 시장은 개척되는 것이 아니라 선점되는 것이다.

이 선점효과는 국내 온라인 시장과 북미 콘솔 시장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다. 북미 콘솔 시장은 한마디로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1회 구매를 기준으로 하는 콘솔 게임을 대하는 태도는 영화와 비슷하다. 베를린이 재미있으면 베를린을 보고, 7번방의 선물이 재미있으면 7번방의 선물을 보면 된다. 둘 다 재미있으면 둘 다 보면 된다. 어차피 플레이시간이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경쟁이 서로 배타적이진 않다. (물론 돈이 없으면 하나만 보겠지만, 이런 사례는 사실 드물다.) 반면 온라인 게임 시장은 드라마와 같다. 야왕을 보면 마의를 못보고 마의를 보면 야왕을 못본다. 물론 우리는 둘 다 보고 싶으면 하나를 본방으로 보고 남은 하나는 재방이나 동영상으로 보겠지만, 이렇게 다시볼 수 없다고 가정해보자. 시간은 한정되어있고 하나를 고르면 나머지는 고를 수 없다. 그렇다면 선발주자가 아주 재미가 없거나(사실 그렇다면 이미 안보겠지만) 후발주자가 아주 월등하지 않은 이상 굳이 후발주자를 선택할 이유가 없다.

물론 후발주자인 서든어택이 스페셜포스를 추월한 사례가 있긴 하다. 하지만 출시일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고, 서든 어택은 난이도나 난입으로 보나 스포보다 더 캐주얼한 게임이었다. 그리고 계약을 둘러싼 잡음이 있기도 했고. 이런 여러가지 점을 종합해볼 때 유저들이 스포를 버리고 서든으로 이주할 이유는 충분했다. 오히려 스포가 유의미한 장르내 2위를 유지했고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선점효과를 방증한다. (같은 관점에서 최근의 AOS 붐은 매우 비관적이다. LOL은 이미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데 후발주자들은 차별화를 내세우면서 오히려 더 하드코어한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

여하튼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게이머들의 시대는 끝났으니 이제 다함께 카카오톡 게임이나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런 유저들의 변화에 대해 비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플랫폼 간의 대체 - 보완 관계는 플랫폼 자체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수용층이 결정하는 것이다. 콘솔 게임도, 온라인 게임도 모두 대중들에게 충분히 어필할만큼 캐주얼한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문제는 스마트폰 대신 콘솔(해외) / 온라인(국내) 게임을 할 이유를 제공할 수 있냐는 것. 그리고 이 이유를 제공할 수 있다면 단위 유저당 오히려 구매력은 콘솔(해외)/온라인(국내)쪽이 우위다. 그리고 온라인 게임의 경우는 기존 게임 놔두고 새 게임을 할 이유를 제공해야 할 것이다.

기존의 非MMORPG 온라인 게임들은 대부분 판 단위의 게임에 집중했을 뿐, 거시적 관점에서 유저를 이끌어가는 구조에 대해서는 그다지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하사 이상을 달아야 어느정도 쓸만한 총을 살 수 있다는 정도는 존재했지만 보다 거시적인 비전 - 왜 이 게임을 계속 해야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제공해주진 못했다.

이런 부분에선 최근 러시아 게임들이 재미있는 실험을 진행중이다. 월드 오브 탱크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탱크끼리의 포격전이 아닌 그 테크트리였다. 수많은 탱크라는 컨텐츠들이 부품 단위의 작은 성장으로 쪼개져있고, 이들은 다시 새로운 탱크라는 큰 보상과 연결되어있다. 유저는 끊임없이 테크 트리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한판에 대한 플레이 동기를 제공한다. 잦은 보상과 플레이 동기 제공은 캐주얼 게임 혁명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최근 파이널 테스트를 진행한 워페이스 역시 매우 비직관적이지만 어쨌든 총기 언락을 통해 유사한 성장 구도를 선보인 바 있다. 이런 영역은 앞으로 연구를 진행해야 할 부분이다.

콘솔은.. 뭐 답이 없다. 사실 콘솔로 게임할 사람들은 이미 현세대기로 재미있게 하고 있고, 차세대기 가봤자 개발비만 늘고, 플랫폼은 오히려 덜 보급될거고... 게임 가격을 높이거나 DLC 매출을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한계가 있으니 최종적으로는 멀티플레이를 더 강화하거나 그런데 사실 이것도 기존에 다 했던 건데 .. 차라리 킥 스타터로 투자 받아서 스팀으로 인디 게임 파는게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스팀은 구매의사와 구매력 모두 훌륭한 플랫폼이고 인디 게임에 대한 수요도 존재하니까. 어쨌든 트리플A급 싱글플레이어 게임은 채산성의 문제로 쇠락할 것으로 전망된다.(사실 따지고보면 국내 패키지 게임 시장이 소멸한 이유도 불법복제 그 자체가 아니라 그로 인한 채산성 악화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지금 앱스토어에서 인앱 결제 게임과 별개로 스탠드 얼론 게임들이 나름 자생하는 것 처럼, 분명 싱글플레이어 게임의 수요는 존재하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스팀 유저들은 충분히 게임을 찾아서 구매할만한 의사와 능력이 있으므로 이 수요에 맞춰서 개발해야 할 것이다.


-덧-

이미 축구 관련으로 장문을 번역하면서 기력을 소진한 이후에 쓴 글이라 두서가 없다...



by 고금아 2013. 3. 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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