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4 전용 게임이고, 전 캡쳐할 장비도 없거니와 굳이 캡쳐하는 수고를 들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이미지는 없습니다.)

디 오더는 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온 게임입니다. 1인칭(3인칭) 슈팅, 빅토리아 시대의 그 독특한 분위기, 대체역사, 스팀 펑크. 제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이 다 녹아든 게임이었거든요. PS4를 구입한 이유도 절반 이상은 독점작인 디 오더를 플레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벗뜨. 게임이 출시되기 직전부터 볼륨에 대한 문제가 터져나오더군요. $60짜리 AAA급 타이틀 치고는 플레이타임이 짧다는 것인데, 크게 신경쓰진 않았습니다. 콘솔 스펙이 올라갈수록 제작비가 기하급수로 올라가는데 비해 $60이라는 가격은 이전 세대의 것이라, 가격을 올리지 않는 한 볼륨을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어차피 한번 깨고 마는 것이 콘솔 게임인데, 재미만 있다면 뭐 좀 짧아도 나쁘지는 않다고 봐요.

그래서 최근엔 게임을 영화에 비유하지 말고 스테이크에 비유하자는 이야기도 있지요. 얼마전 분당에서 먹은 스테이크 300g이 약 4만원이었는데, 사실 4만원이면 배터지게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많습니다. 더 싼 스테이크도 있고 더 비싼 스테이크도 있지요. 혹자는 더 싼 스테이크에 만족하고 더 나은 스테이크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기 꺼릴 수도 있고, 누군가는 차라리 10만원 내고 훨씬 더 맛난 스테이크를 먹고자할 수도 있지요. 결국은 개인의 만족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여하튼, 그래서 볼륨에 대한 악평은 무시하고, 설을 맞아 한국에 간 김에 한카피 구입하긴 해서 클리어했습니다. 볼륨이 짧다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더군요. 왜냐하면 다른 모든 요소들이 하나같이 허접하거든요.

일단 기본적인 게임플레이부터 봅시다. 배경이 어떻든, 그래픽이 어떻든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3인칭 슈팅 게임입니다. 그런데 이 3인칭 시점에서 이동하고 총 쏘는 것 부터가 구립니다. 그래픽은 좋은데 명암 대비가 매우 강합니다. 그래서 게임 내내 상당히 많은 요소들이 그림자 속에 묻혀서 잘 안보여요. 길이든, 적이든 뭐든지 간에요. 게다가 레터박스가 화면 위아래를 잘라먹고 있지요. 레터박스 때문에 잘리거나 너무 어두워서 그림자에 묻혀서 발 아래쪽이 잘 안보입니다. 발이 물체에 걸려서 움직이질 못하는데 왜 움직이질 못하는지 플레이어가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한 3인칭 슈팅은 기본적으로 엄폐를 기본으로 하는데, 엄폐에 붙고 떨어지는 동작이 상당히 느릿하고 끈덕지며 뻣뻣합니다. 그래서 조작감이 상당히 짜증나지요. 게다가 어떤 물체는 타고 넘을 수 있고 어떤 물체는 그게 안되는데 어떤 물체가 되고 어떤 물체가 안되는지도 상당히 불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동하는 경험 자체가 매우 구려요.

전투씬은 그나마 낫습니다. 전투 없이 그냥 이동만 하면서 스토리를 전달하는 씬이 전체 플레이타임의 약 30%를 차지하는데, 이때는 움직임 속도 마저도 느립니다. 아주 느릿 느릿 양반 걸음으로 걷지요. 당연히 뜀박질은 불가능하구요. 특히 첫번째 원탁 회의를 마치고 회의장을 빠져나올 땐 정말 환장하는 줄 알았습니다. 출구는 원탁 서쪽에 있고 플레이어는 원탁 남쪽에 있는데 서남쪽에 NPC들이 통로를 틀어막아서 그 느릿한 걸음으로 동쪽 - 북쪽을 거쳐서 서쪽으로 빠져나가야 했거든요. WTF!

AI와의 총격전도 참 더럽게 만들어뒀습니다. 엄폐를 기반으로 한 3인칭 슈팅의 황금률은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한다는 것인데, 몹들이 잦은 빈도로 엄폐물 뒤에 숨어서 팔 뻗어 총만 내놓고 냅다 갈겨대요. 정작 플레이어는 그 손이라도 조준해서 쏘려면 몸을 노출해야하는데 말입니다. 그런데 또 이 팔만 뻗고 쏘는게 플레이어의 조준 사격보다 더 정확합니다.

HALO 이후 게임패드를 사용하는 1/3인칭 슈팅 게임들은 기본적으로 조준을 도와주는 기능이 들어가있지요. 이 게임도 예외는 아니구요. 그런데 디 오더에선 이 조준 도움 기능이 거의 동작하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이면 머리를 맞출 수 있었을 상황에서 여지없이 빗나가요. 그런데 손만 내놓고 쏘는 AI는 훨씬 정확하죠. 그래서 안맞고 쏜다는 긴장감 보다는 그냥 맞으면서 쏜다는 개념으로 게임이 돌아갑니다.

전반적으로 이 게임의 총격전은 뭔가 현대 게임 답지 않게 굉장히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스나이퍼들은 깜빡이는 빛으로 자기 위치를 노출하긴 하는데요, 그 빛 보고 쏘려고 몸 일으켜서 조준하는 순간 한방 맞습니다. 보통은 상대가 쏘기 전에 먼저 맞히는 쪽으로 진행되는데, 이 게임에서 스나이퍼 상대하려면 일단 한방 맞은 뒤에 다음 방 맞기 전에 쏴 죽여야 해요.

뭐 총을 많이 맞아도 쓰러져서 블랙워터 한모금 빨고 잠깐 있으면 풀로 회복이 되니까 그렇게 맞아가며 쏴 죽이는게 어렵지는 않습니다. 철뚜껑 쓴 샷건 맨 만나기 전엔 말이죠. 샷건은 한방 맞으면 바로 위의 빈사 상태가 되는데 블랙워터 빨기 전에 바로 다음 방이 날아오거든요. 그럼 그냥 죽는 거죠 뭐. 게다가 저 철뚜껑 쓴 애는 약점이라는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체력이 높은데다가 머리는 헬멧으로 보호되고 있거든요. 보더랜드2 처럼 헬멧을 날려서 머리를 노출시킨다거나 그런거 없습니다. 쟤는 그냥 쎕니다. 딱 두방에 플레이어를 죽일 수 있는 샷건을 들고 있는데 헤드샷은 안통하고 30발짜리 탄창을 모두 쏟아부어야 죽을 정도로 맷집이 쎄요. 솔직히 마지막 보스보다 저 헬멧 쓴 샷건맨이 10만배쯤 더 무섭습니다.

그리고 전투씬들의 구성이 매우 단순하다는 것 또한 지적해야겠죠. 일단 AI의 종류가 매우 적습니다. 외관상으로 봐도 반란군 병사, 통합인도회사 경비원, 그리고 정체를 밝힐 수 없는 조직 이렇게 세종류인데 헬멧 쓴 애와 안쓴 애 이정도가 다에요. 뭐 헬멧 안쓴 애들은 나름대로 다양한 무기를 들고 나오긴 하는데 딱히 차이는 없습니다. 다들 그냥 엄폐물 뒤에 숨어서 쏘는게 다에요.

슈팅 게임의 AI라는게 전부 사람 마냥 아주 조직적이고 영리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쪽을 강조하는 게임이 있는가 하면 몹들에게 다양한 행동 양식, 강점, 약점을 줘서 다양한 게임플레이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디 오더는 둘 다 아닙니다. 그냥 커버 가운데 두고 참호전을 벌이는데 딱히 적에게 개성은 없어요.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전투가 굉장히 불공평하니까요. 그런데 재미있지도 않습니다. 가끔씩 벽에 붙어서 조준을 했더니 내 뒤통수가 화면을 가려서 오히려 총을 쏠 수 없었던 경험은 뭐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구요.

게임의 가장 중요한 매력포인트인 설정과 스토리도 사실 문제가 많습니다. 일단 설정부터 이야기하자면요, 이 게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세계가 어떤 세계인지 전혀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1886년이고 런던인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래서 그 영국은 어떤 영국인가요? 혼종(half breed)랑 싸우는데, 얘네랑은 왜 싸우는 걸까요? 통합 인도 회사가 굉장히 중요하게 다뤄지는데 왜 동인도회사가 아니라 통합 인도 회사일까요? 영국이 인도와 완전히 통합한 상태인가요? 주인공 동료 중엔 라파예트 라는 친구가 있단 말이죠. 맨날 무슈 마드무아젤 그러고 있는데 도대체 이 프랑스인은 왜 이 영국의 기사단에 와있는 걸까요? 혹시 다아시 경의 모험처럼 영국과 프랑스가 하나로 합쳐진 걸까요? 반란군이라는 조직은 도대체 누구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는 건가요? 아니 그 이전에, 기사단(The Order)란 무엇인가요? 이들은 누구의 지휘를 받는 건가요? 언제 설립되었죠?

게임은 이런 질문에 대해 어떠한 답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냥 기사단이 있고, 혼종이 있고 싸워요. 통합 인도 회사라는게 그냥 있어요. 반란군은 반란군이구요. 유일한 예외는 목에 걸고 있다가 골로 가겠다 싶으면 빨아먹는 액체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것도 중반부에 가야 그게 뭔지 나오죠. 스포일러이므로 생략하겠습니다.

게다가 스토리는 더 막장스러워요. 각 씬이 있긴 한데 이 씬들의 연결이 전혀 말이 안됩니다. 예를 들자면 말이죠. (스포일러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두리뭉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주인공은 A라는 동네를 비밀리에 정찰하는 임무를 받아요. 그런데 그냥 밑도 끝도 없이 A라는 동네에 있는 B라는 장소로 이동하라는 미션이 되죠. B로 가는 동안 반란군의 매복을 만나요. 여기서부터는 그냥 쫓겨서 이리 저리 마구 이동해요. 그러다 보면 B 앞에 와있어요. 그런데 B는 이미 경찰들이 둘러싸고 있단 말이죠. 아니 이미 경찰이 포위하고 있는 동네에 다녀오는 게 왜 비밀 임무가 된단 말입니까. 그리고 저 경찰들은 뭐 땅에서 뿅 하고 솟아난 건가요? 그냥 저들이 들어갈 때 같이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그 뒤가 더 웃기는 게, 경찰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출동은 했는데 진입하진 못했다고 하고 주인공은 거기서 늑대인간들을 발견해요. 그리고 공중 지원을 통해 늑대인간을 쫓아내는 공격을 먼저 하고 안으로 뛰어들기로 하죠. 이때 일행이 4명 중 주인공을 포함한 2명은 지하를 통해 B로 진입하기로 하고 2명은 밖을 담당하기로 합니다. 그래서 주인공이 B 안에서 누구랑 싸우냐면, 늑대인간이에요. 아까 공중 공격한 건 어떻게 된 걸까요? 분명히 다른 늑대인간들은 다 도망쳤는데 말이죠. 그런데 주인공은 여기에 어떤 의문도 표하지 않아요.

한편 B 안에서 다시 2명이 서로 찢어지는데 다른 동료가 자기가 뭔가를 발견했다며, 주인공더러 직접 확인하라고 해요. 동료가 말한 그 방에 가보면 단서들이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옆에 있는 방 안에 있어요. 그런데 그 방의 문은 잠겨있어서 주인공이 자물쇠를 따야하죠. 그렇다면 주인공의 동료는 그 방 안을 먼저 뒤져본 뒤에 굳이 문을 잠근 건가요? 아님 그 방은 동료가 살펴보지 못한 방이었던 걸까요? 그리고 B 현관으로 나오면 밖을 담당하기로 2명 중 한명이 현관을 등지고 놀고 있어요. 다른 한명은 아예 저 멀리서 경찰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담소중이구요. 아니 안에서 총질하고 난리가 났는데 뛰어들진 못하더라도 뭔가 경계는 하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문제는 모든 스토리라인이 이따위 방식으로 흘러간단 말이죠. 이렇게 초지일관 앞뒤 안맞고 개연성 없이 흘러가는 스토리는 참으로 오래간만이에요. 꼴에 반전이랍시고 2개를 박아넣은 것이 있는데, 그조차도 너무 뻔해서  - 물론 복선이나 떡밥 따위 없습니다 - 정말로 이따위를 반전이라고 넣어뒀다는 사실 자체가 반전이었어요.

설정을 굳이 스토리에서 썰로 풀지 않고 사물들을 통해 전달하는 것도 요즘 추세죠. 툼레이더 리부트라거나 섀도우 오브 모르도르 보면 물건 주워서 살펴보면 백그라운드 스토리 흘러나오는 것 처럼요. 이 게임에도 그렇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사물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신문이라거나 사진이라거나 모형이라거나 또 녹음기 테이프라거나. 그런데 얘들이 위에서 말한 역할을 전혀 해주질 않습니다. 사진은 그냥 사진이에요. 아무런 내용이 없어요. 좌우로 돌려보고 뒤집어보는 기능은 있는데 딱히 뒤집어서 뭔가 이야기가 나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습니다. 심지어 뭔가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그런 장면도 단 한번도 없어요. 다른 사물들도 마찬가지구요. 이 방면에서 가장 쓸모있을 녹음기 역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뭔가 원래 예정에 없었는데 출시 얼마 안남기고 사장이 넣으래서 그냥 넣는 시늉만 한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에요.

레벨 디자인 또한 아주 개판이죠. 뭔가 목표는 주어지는데 그래서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감이 잘 잡히지 않습니다. 방향 지시 마커 같은 건 없어요. 게다가 앞서 말한 것 처럼 명암 대비가 강해서 잘 안보이는 구석도 많구요. 그래서 이 게임에서 길을 찾는 가장 좋은 전략은 걸려서 움직이지 못할 때 까지 전진하는 겁니다. 걸리면 좌우 둘러보고 안막힌 쪽으로 이동 -> 그러다가 걸리면 다시 좌우 둘러보기... 애초에 하프라이프 / 콜 오브 듀티 이후로 게임이 직선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것이 쉽게 쉽게 직관적으로 술술 진행하라는 것인데, 이렇게까지 길찾기가 더럽고 불편하고 불쾌한 게임은 정말 근 10년동안 처음이었어요. (죄송합니다. 듀크 뉴켐 포에버는 아직 안해봤어요)

그 외에 가만히 보면 잘나가는, 다른 게임에 있는 요소들이 대부분 빠짐없이 들어가있긴 합니다. 이를테면 QTE 라거나 잠입 미션이라거나 말이죠. 그런데 사실 QTE도 빈도는 잦은데 사실 그렇게 재미있지도 않고 - QTE라는 것 자체가 원래 뽀대나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한 것인데 말이죠 - 어렵지도 않고. 잠입은 이게 웃기는게, 뒤에서 적을 죽이려면 접근해서 QTE가 발동되어요. 타이밍 맞춰서 △을 누르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입니다. 적 바로 뒤에 붙어도 말이죠. 그런데 일반 배틀에선 거리만 붙이면 정면에서도 △ 눌러서 근접 공격으로 죽일 수 있거든요? 왜 정면에선 그냥 누르기만 하면 쓱싹 하고 베어죽일 수 있는데 뒤에서 살금살금 따라붙었을 땐 꼭 굳이 타이밍을 맞춰야 할까요?

이런 불만들을 견디고 견뎌서 간신히 엔딩을 보고 나자 이 게임이 뭘 노린 건지는 알겠더군요. 슈팅 게임, 빅토리아 시대, 대체역사, 스팀펑크, 흡혈귀, 늑대인간, 아더왕, QTE 등등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을 잘 버무려 아주 맛난 비빔밥을 만들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문제는 이게 하나같이 완성도가 떨어져서 만들고 났더니 꿀꿀이죽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런 점에서 볼륨이 작은 건 차라리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었어요.

뭐 그래도 그래픽은 좋습니다. 게임 플레이 화면이든 컷씬이든 간에 이정도면 3D 애니메이션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아주 좋아요. 그런데 그렇게 때깔이 좋으면 뭘합니까. 그래봤자 꿀꿀이죽인 걸요.

$60은 솔직히 터무니 없고, 한 $10 정도라면 돈이 아깝진 않을 것 같네요. 시간은 아까워두요.

아 이 게임 하고 나니까 라이즈가 하고 싶어지네요.

by 고금아 2015. 3. 1. 03:57



0. 걱정 반 기대 반의 옵시디언 작

사우스파크 진실의 작대기(이하 작대기)의 제작사인 옵시디언은 참으로 재미난 회사입니다. 확장팩까지 포함할 때, 전신인 블랙아일부터 따지면 14개, 옵시디언으로는 총 7개의 게임을 출시했지만 그 중 단 한작품 - 알파 프로토콜 - 을 제외한 모든 작품이 다른 게임의 속편이거나, 다른 게임의 엔진을 빌려다 만든 게임이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속편들이 대부분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블랙아일 시절의 폴아웃2, 플레인스케이프 토먼트, 아이스윈드데일 시리즈부터 시작해서 옵시디언이 만든 구공화국의 기사단2, 네버윈터나이트 2, 폴아웃 뉴 베가스 등 쇼킹했던 전작 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모두 성공한 작품입니다. 혁신적인 RPG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RPG를 만드는데엔 일가견이 있는 제작사임엔 틀림없습니다.

문제는 이 능력이 남의 게임 받아다가 만들 때에만 발휘된다는 것이겠지요. 3대 JB 스파이(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존 바우어)를 게임으로 옮긴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였던 '알파 프로토콜'은 옵시디언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독자 IP 였습니다만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던전시즈 3' 역시 전작의 엔진을 이어받지 않고 Onyx 엔진으로 제작했습니다만 쫄딱 말아먹었죠.

21세기 RPG의 명가라면 베데스다와 바이오웨어를 꼽습니다만, 사실 옵시디언도 그에 꿇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역시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와서 뜯어고치고 추가하는 것이 아닌, 독자 개발로 재미를 본 적은 없기 때문에 저 둘과 동일선상에 놓기는 애매합니다. 그래서 진실의 작대기는 기대 반 우려 반의 작품이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어느정도 재미는 있으리라고 생각됩니다만, 성공한 게임의 엔진을 받아쓰는 속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알파 프로토콜처럼 괴작이 나올수도 있다는 걱정이 들었지요.

그리고 결과는..... 사우스 파크 게임이 나왔습니다.


1. 사우스파크 게임

사실 옵시디언이 그동안 만들었던 게임들은 매우 훌륭한 속편들이었습니다. 뭔가 전작을 뛰어넘는 수준의 오리지널리티도 없고, 전작보다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은 적도 없습니다. 게임 그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옵시디언이 만든 속편들은 사실 굉장히 탄탄하긴 해도 전작에 비해 그렇게까지 뛰어난 적은 없습니다. 대신 속편을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뭘 원할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캐치하고 표현해줬죠., 예를 들어 구공화국의 기사단 2는 상당한 분량을 1편의 후일담에 할애해 1편이 만들어놓은, 영화로부터 3천년전의 새로운 세계와 1편의 모험담에 대한 향수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다이 능력을 빵빵하게 채워넣어 제다이가 되고팠던 유저들의 욕망을 해소하지요. 구공화국 1편의 1/3은 제다이가 아닌 클래스로 진행되고, 따라서 시스템적으로 고레벨 제다이에 대한 표현이 부족했거든요. 네버윈터나이츠 2는 파티 사이즈를 늘리고 에픽한 영웅담을 강화해 정통 D&D 3.5를 즐기고 싶다는 포인트를 자극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작대기는 원작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옵시디언의 장점이 매우 잘 활용한 게임입니다. 아이템부터 스킬, 스토리 진행, 연출 모든 면에서 이 게임은 완벽하게 사우스파크를 재현해내고 있습니다. 방귀에 불을 붙이는 화장실 개그부터 매트릭스 같이 유명한 매체의 패러디, 정치인에 대한 풍자, 외계인과 같은 음모론, 성적 소수자에 대한 다소 위험해보이는 개그자까지, 전체적인 게임 자체가 '사우스 파크의 등장인물들이 나오는 RPG게임'이 아니라 그냥 '사우스 파크 게임' 입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렇다고 해서 사우스파크에 대한 깊은 지식을 요구하거나 강요하지도 않는다는 점입니다. 사실 저는 사우스파크 시리즈의 팬이 아닙니다. 오래전 나왔던 극장판을 본게 전부거든요. 하지만 작대기는 사우스파크의 개그 코드를 계승하면서도 독자적인 스토리라인을 따라가기 때문에, 굳이 TV판이나 극장판에서의 사전지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이전에 사우스파크를 본 적이 있다면 '아 그래 이런 개그였지'라고 생각하고, 본 적이 없다면 '아 이게 사우스파크의 개그구나'라고 납득하면 됩니다. 그냥 게임만 해도 이 골때리는 개그 센스에 그냥 넘어갈 수 밖에 없습니다.


2. 턴제 RPG 전투

그럼 이제 '사우스파크 게임'이 아닌 RPG 게임으로써의 작대기를 이야기해봅시다. 일단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위에서 보는 것 처럼 전투가 턴제로 구성되어있다는 점입니다. 왼쪽엔 플레이어의 파티가, 오른쪽엔 적들이 나타나고 양쪽이 번갈아가면서 액션을 취합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턴제 구성은 이런 구성은 현재 대세가 된 실시간 전투와 달리 보다 전략을 요구하는 장점이 있습니다만, 사우스파크는 이 전략성이 굉장히 잘 구현된 게임입니다.

우선 적들은 그냥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3X2의 행열 안에 위치하고 있어서 각 행에서 가장 앞쪽에 있는 적만 근접공격이 가능합니다. 공격에 따라선 한 행에 있는 적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고, 한 열 전체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도 있지요. 화상, 구역질, 열받음 등 다양한 상태 이상이 존재하고, 이 상태 이상에 따라 추가데미지나 추가효과를 주는 경우도 다양합니다. 또한 데미지를 차감하는 '아머'와 공격 자체를 무효화하는 '실드'가 존재하기 때문에 아머가 강한 적에게는 한번에 큰 데미지를 주는 '강공격'을, 실드가 많은 적에게는 여러번 공격해 실드를 깎아먹을 수 있는 '약공격'을 사용하고, 또한 적들이 근접 혹은 원거리 공격에 대한 카운터 자세를 취하는 등 굉장히 고민할 거리가 많은, 전략적인 전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실시간 전투가 대세가 된 것은 이렇게 전략적이다보니 전투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높아 난이도가 올라가고, 전투 자체에서 오는 긴박감이 다소 떨어진다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겠죠. 사우스파크는 전략적인 깊이는 있으면서도 이를 캐주얼하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턴제 게임에서 아이템의 사용은 공격과 마찬가지로 턴을 소모합니다. 그래서 아이템을 사용해서 회복을 시켜야 할지 공격을 해야할지 고민해야 하죠. 하지만 작대기에선 아이템을 사용한 뒤에도 여전히 공격할 수 있습니다. 들과 달리 아이템을 사용해도 여전히 그 턴에 공격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임들은 공용 아이템 창고와 캐릭터 아이템 인벤토리를 분리해서, 캐릭터가 당장 갖고 있는 아이템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그런 제한도 없습니다. 또 어떤 게임들은 회복이나 버프 아이템들을 본인에게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데 비해 작대기는 이 제한도 풀려있습니다. A라는 캐릭터가 아이템을 사용해서 B를 회복시키는 등의 행위가 가능하죠. 한 캐릭터가 한 턴에 아이템은 단 하나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제약들을 모두 풀어버렸기 때문에 말 그대로 포션을 빨아가며 전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소해보이지만 사실 이걸로도 턴제 전투가 굉장히 캐주얼해집니다.

또한 사용자의 집중을 유지하기 위해 전투의 모든 행위에 대해 유저의 반응을 요구한다는 것도 중요한 요소입니다. 일단 근접이든 장거리든 기본 공격부터 공격 명령을 내린 것으로 끝나지 않고 공격 모션 도중 반쩍 하는 이펙트가 나올 때 버튼을 누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타이밍이 좋으면 당연히 데미지가 늘어나고 무기나 인챈트에 따라선 부가 효과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특수능력들은 보다 다양한 액션을 요구하기도 하는데 위 스크린샷에서 보듯 지미의 기술인 '자장가'를 사용할 때엔 DDR 처럼 박자에 맞춰 버튼을 누르는 작은 리듬액션 게임이 나옵니다. 돌맹이를 던지는 '다윗의 돌팔매'를 사용하기 위해선 스틱을 빙글빙글 돌려야 하고 에릭의 기술인 '저주'를 사용하기 위해선 열심히 버튼을 연타해야 합니다.

이런 타이밍 액션은 공격시 뿐만 아니라 방어시에도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상대가 공격을 할 때 캐릭터 아래에 위와 같이 방패 문양이 나타나는데 이때 버튼을 누르면 가드에 성공하고, 그러면 보다 적은 데미지를 입습니다. 데미지를 완전히 무효화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 데미지가 상당히 높기 때문에 계속 가드에 성공하지 않으면 전투가 꽤 힘들어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귀찮거나 어려울 때 불러낼 수 있는 '소환'이 있지요. 서브퀘스트를 통해 동네 주민을 돕다 보면 주민들이 보답으로 '소환' 아이템을 주기도 합니다. 이 아이템을 사용하면 해당 캐릭터가 소환되어 그냥 전투를 끝내버립니다. 1회용이라 다시 사용할 수 없고, 보스전에선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긴 합니다만 상당히 유용합니다. 무엇보다 각 소환수(?)의 등장씬과 공격씬을 보는 재미도 매우 쏠쏠하지요.


3. 충실한 RPG 컨텐츠

전투 외에 육성 / 수집과 같은 RPG 게임의 보편적인 요소도 상당히 충실하게 잘 갖춰져 있습니다. 경험치가 쌓이면 레벨이 오르고, 레벨이 오르면 HP나 PP(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자원)의 한도가 오르는 외에 스킬 업그레이드 점수를 얻습니다. 스킬 자체는 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생기며 플레이어는 어느 스킬을 강화할지를 고르면 됩니다. 스킬을 강화한다고 해서 단순히 데미지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킬에 다양한 속성이 부여됩니다. 예를 들어 위에 나온 '다윗의 돌팔매'는 2레벨에선 데미지가 올라가지만 3레벨부턴 맞은 대상의 공격력을 낮추고 도발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4레벨에선 랜덤한 적에게 돌맹이가 튀어 2명까지 공격할 수 있게 되는 식이죠.

스킬 외에 특성(Perk)라고 하는 능력도 20종이 준비되어있습니다. 이 특성들은 스킬들 처럼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획득하면 그대로 효과가 발휘되는 패시브 스킬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최대 HP를 늘려준다거나 어떤 포션을 먹어도 공격력 상승 효과가 덤으로 따라온다거나 HP가 낮을 때 방어력이 올라가는 등 굉장히 유용한 효과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이 특성은 스킬과 달리 레벨과는 무관하게 친구의 '수'에 따라 획득됩니다. 친구를 다섯명 사귀면 특성 하나, 그 다음엔 10명, 20명 이런 식으로 획득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수를 늘리기 위해선 정해진 스토리라인만 따라가는 외에 마을을 탐험하면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나야 합니다. 특히 어떤 캐릭터들은 사이드퀘스트를 주고, 이를 완수해야만 친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아이템들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아이템들은 공격력이나 방어력 등 기본적인 성능 외에 방어력을 무시한다거나, 여러 적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다거나 하는 등 다양한 특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각 아이템에 (다른 게임이었다면 보석이나 룬이라고 불렸을) 악세사리를 달아 특수능력을 더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장착한 아이템은 게임 내 캐릭터에게 바로 적용됩니다. 머리엔 속옷 '헬멧'을, 몸에는 발퀴리 아머를, 손에는 게 손을 끼고 캐나다 할버드를 든 모습 그대로 게임 내를 활보합니다.

캐릭터의 성장, 스킬, 특성, 아이템, 사이드퀘스트 등 작대기는 전체적으로 RPG로서 가져야할 기본적인 컨텐츠들을 풍부하게 잘 갖추고 있습니다. 라이센스를 받아 만든 게임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죠. 하지만 이렇게 건실한 게임을 잘 만드는 것이 옵시디언의 특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4. 풍부한 퍼즐 / 어드벤쳐 요소

또한 게임 내에 깔려있는 풍부한 퍼즐 요소에 대한 언급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투 중이 아닐 때엔 게임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물들을 조작할 수 있는데, 이들은 각기 작은 퍼즐들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퍼즐은 새로운 길을 여는 것입니다. 위 스크린샷은 외계인들이 배치한 워프 기계를 활용해 지나갈 수 없는 길을 지나가는 간단한 퍼즐입니다.

그 외에 공중에 메달려있는 물체를 떨어트려 적을 맞춘다거나, 적이 밟고 서있는 물웅덩이에 전류를 흘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주변 사물을 이용해 전투 없이 적을 물리치는 퍼즐이 상당히 많이 배치되어있습니다. 당연히 이렇게 적을 쓰러트려도 동일한 경험치를 받을 수 있지요. 이런 퍼즐요소 역시 건실한 RPG를 잘 만드는 옵시디언의 특기가 잘 살아난 부분입니다.


5. 하지만 아쉬운 점들

이렇게까지만 써놓으면 완벽한 게임처럼 보입니다만, 사실 전체적인 밸런스 분배는 상당히 아쉽습니다. 저레벨 구간에선 기본 능력이 부실해서 각종 능력과 아이템과 스킬을 쥐어짜내야하는데 경험치는 정말 쥐꼬리만큼 지급됩니다. 그래서 초반엔 레벨을 올리는 것이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캐릭터가 어느정도 성장하고 아이템을 갖춘 후부터는 전투가 쉬워집니다. 저레벨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월하게 전투를 진행할 수 있지요. 그리고 획득하는 경험치도 갑자기 상대적으로 많아집니다. 보통 저레벨 구간에서 빨리 성장하고 고레벨에서 느리게 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이상적인 성장곡선인데, 작대기는 반대로 저레벨 구간에서 느리고 힘들게 성장하는 반면 고레벨 구간에선 매우 쉽고 빠르게 성장하는 괴상한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 전투는 게임 후반부에 들어서면 아무런 의미를 잃게 됩니다. 비전투 상황에서 먼저 장거리로 스턴 걸어놓고 전투에 들어간 뒤 캐릭터와 카트만이 각각 전체공격 스킬을 한번씩만 쓰면 대부분의 전투가 그대로 끝나버리거든요. 게임이 쉬워지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의미가 사라집니다. 약공격으로 실드를 해제하는 것도, 강공격으로 아머를 뚫는 것도, 근접 공격이나 장거리 공격에 대한 반격기도, 무기의 특수 능력도 모두 한 턴에 2번의 스킬로 게임이 종료되면서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버린 것이죠. 보스전에선 카트만을 아예 선택할 수 없도록 빼놓는 것을 보면 옵시디언 역시 후반부에서 밸런스가 무너졌다는 인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미 수차례 연기한 바 있고, 옵시디언도 지금 상황이 좋지는 않은지라 그냥 출시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컨텐츠의 볼륨이 부족한 것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제가 공략을 거의 보지 않고 혼자 멘땅에 헤딩해가면서 엔딩을 볼 때 까지 약 17시간이 걸렸습니다. 공략을 보고 최단루트로 따라간다면 10시간 내외로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성장컨텐츠는 그보다도 훨씬 전에 이미 고갈된다는 점입니다. 최대 15레벨까지 성장시킬 수 있는데 게임을 3/4 정도 진행한 시점에서 이미 15레벨을 달성해버렸거든요. 그 이후부턴 딱히 게임을 즐긴다기 보다는 최고속도로 남은 스토리를 진행시키는데 역점을 두게 됩니다. $59.99짜리 AAA 게임 치고는 다소 부족한 볼륨입니다.


6. Game of the Year 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Gag of the Year는 확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작대기는 상당히 잘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사우스파크라는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RPG로서도 굉장히 충실한 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만일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이 없다면 정말 GOTY를 받아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반대로 위와 같은 단점이 있음에도 특유의 사우스파크스러운 감성이 게임을 끝까지 끌고 나갑니다. 100점 만점이 될 수 있는 게임이었습니다만 다소 부족한 볼륨에서 5점, 밸런스 조절에서 10점을 삭감해서 전체적으로 85점을 주고 싶습니다. 명작의 반열에 끼긴 애매하지만 충분히 수작이라고 평가할만한 게임이죠. 사우스파크를 평소에 챙겨보던 팬이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 (물론 사우스파크의 유머 코드 자체에 거부감이 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만).


by 고금아 2014. 3. 9. 01:36

늘 그렇듯이 GDF에도 쓴 글입니다. 관련된 토론은 GDF에서 이어질 예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비인기 게임이라 그닥 반응이 없을 것 같습니다. 퍼즈도라를 갖다 붙인게 어그로가 되어 흥행하기만을 기대할 뿐.....)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359

포스팅 할 땐 모바일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스팀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234330/

계정 연동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0. 퍼즐 퀘스트 시리즈의 최신작

테트리스, 레밍즈, 비쥬얼드, 애니팡 등 전통적으로 퍼즐은 하드 코어 게이머는 물론, 캐쥬얼 유저들에게도 고루 어필할 수 있는 장르였습니다. 그리고 RPG는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꾸준히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를 아주 강력하게 부여할 수 있는 장르죠. 그리고 퍼즐 앤 드래곤(이하 퍼즈도라) 덕분에 우리 모두는 이 둘의 결합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YS 등과 같은 액션 RPG나 창세기전 등과 같은 SRPG가 80년대에 이미 등장했던 반면 퍼즐 RPG는 21세기에 들어서고나서야 개척됩니다. 액션이나 전략과 달리 퍼즐과 RPG의 성장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었죠. 퍼즐은 당면한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임이고, RPG의 성장은 계속된 플레이가 중첩되어 캐릭터가 점점 강력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성장을 해서 퍼즐이 쉬워진다면 그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성장 했지만 메인 플레이인 퍼즐은 그대로라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요. 지금은 소드 앤 포커, 마이트 앤 매직 클래쉬 오브 히어로즈, 퍼즈도라 등 다양한 게임들이 퍼즐을 전투로 대체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 방법론을 사용하고 퍼즐 RPG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은 퍼즐 퀘스트였습니다.


위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퍼즐 퀘스트는 말 그대로 RPG의 모든 것과 매치3 퍼즐의 모든 것이 함께 망라되어있는 용광로 같은 게임입니다. 아이템을 사고 육성하고 모험을 떠나고 대화하는 모든 행위는 RPG인 반면, 전투는 비쥬얼드 스타일의 매치3 퍼즐로 구성되어있지요. 색색깔의 젬을 모은 뒤 해당하는 젬으로 마법을 쓰거나 해골 젬을 맞출 경우는 적을 직접 공격합니다. 그리고 무기와 방어구 등의 아이템들이 이 전투에 능력을 더해주지요. 지금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구성입니다만, 등장 당시만 해도 굉장히 획기적인 컨셉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퍼즐 RPG가 대중화된 지금, 오히려 퍼즐 퀘스트의 이름은 듣기 힘들어졌습니다. 퍼즐 퀘스트의 성공 이후로 내놓은 속편들이 죄다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퍼즐 퀘스트 갤럭트릭스는 일단 배경이 SF였고(SF가 뭐가 어때서!!! 라지만 사실 SF 소재로 성공한 게임이 드물죠) 퍼즐이 6각형 맵으로 바뀌면서 퍼즐을 풀기도 어렵고 그래서 운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6각형 퍼즐을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이 영상만 봐도 도대체 블록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퍼즐퀘스트2는 다시 중세풍 판타지와 정방형으로 돌아왔습니다만 RPG 파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RPG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던전 탐사는 사실 1편에선 퍼즐 그 자체로 대체되었습니다만, 이번엔 그 던전 탐사 자체를 RPG 파트의 핵심으로 내세운 것이죠. 그리고 보다 세분화된 아이템 슬롯과 다양한 아이템(및 그 속성) 등을 보면 이건 그냥 디아블로라는 생각 밖에 안듭니다. 물론 디아블로는 훌륭한 게임입니다만 디아블로의 전투는 기존 RPG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하나의 전투가 퍼즐인데 거기에 디아블로까지 얹으니 게임이 상당히 무거워졌죠.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풍이었던 전작과 달리 땀내 후끈 나는 양키 스타일로 바뀌면서 캐주얼한 게이머들에겐 상당히 어필하기 힘든 스타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덤으로 아이폰용은 말 그대로 그냥 단순 포팅이라 손가락 조작에 전혀 특화되어있지 않았죠. 퍼즐의 젬을 제외한 모든 버튼들이 너무 작아서 정말 누르기 힘겨웠습니다.

2에서 굉장히 실망한 터라, 사실 신작을 기대하고 있진 않았는데, 얼마전 지인이 퍼즐 퀘스트 신작이 나왔다고 추천하시더군요. 바로 마블 퍼즐 퀘스트였죠.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이하 마아블로)를 플레이하고 있고 관련된 글도 많이 쓰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전 딱히 마블 코믹스의 팬은 아닙니다. 마아블로도 애초에 아무 기대 안하고 그냥 신청한 베타가 되었다가 디아블로 스타일의 게임 플레이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이고, 페이스북 / iOS용 마블 얼라이언스도 페북 게임 치고 드물게 RPG라서 좀 하다가 관둔 것이지요. 마블 워 오브 히어로즈는 당시 모바일 CCG 연구 보고서를 쓰기 위해 플레이했었고 끝나자마자 지웠습니다.

쓰고 보니 참 설득력이 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전 마블 게임의 경우 대부분 '마블' 게임이라기 보다는 마블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이 마블 퍼즐 퀘스트 역시 '퍼즐 퀘스트 신작인데 스킨이 마블'이라는 느낌으로 게임을 설치했죠.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20불을 현질한 뒤였습니다. 이거 굉장히 쉽지 않은게, 전 아이튠즈 미국 계정을 사용 중입니다. 미국산 신용카드가 없기 때문에 오픈 마켓에서 기프트카드를 사서 충전하고 있지요. 기프트카드는 상품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무통장 입금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오픈 마켓에서 검색한 뒤 주문하고, 모바일 뱅킹으로 돈을 송금하고, 코드 찍힌 메일 기다리고, 다시 이걸 모바일에서 언락하는 이 귀찮은 프로세스는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20불을 질러버렸단 말이죠.

그러니 이 게임을 여러분께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1. 보다 캐주얼해진 퍼즐 전투

우선 퍼즐 구조부터 전작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기본적인 비쥬얼드 룰(애니팡 룰)을 따라 매 턴 마다 젬 하나를 그 상하좌우 1칸 이내의 다른 젬과 서로 바꿀 수 있고, 같은 젬이 셋 이상 가로 또는 세로로 이어지면 해당하는 젬들은 사라지며(매치), 매 턴 마다 최소 1개의 매치는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4개를 일렬로 이으면 턴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고 추가턴을 받았던 1,2편과 달리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추가턴 없이 그 4개를 포함하는 한줄을 통째로 날립니다. 가로로 4개가 이어졌다면 한 행(Row)을, 세로로 4개가 이어졌다면 한 열(Column)을 날리죠. 5개의 보석이 연결되면 앞서 언급한 추가턴을 받고 하나의 크리티컬 젬(위에 M)을 얻게 됩니다. 크리티컬 젬은 와일드카드처럼 아무 젬으로든 연결될 수 있고, 매치가 이루어지면 크리티컬 데미지를 줍니다. 

퍼즐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전투 방식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1편이든 2편이든 기본적으로 퍼즐 퀘스트에서 젬을 없애서 데미지를 주는 것은 해골 젬을 없앴을 때 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격은 퍼즐 보드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킬이나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고, 퍼즐은 이 스킬/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행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죠. 각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선 각종 색상의 마나가 일정량 이상 필요하고, 젬을 없애면 해당하는 젬의 색깔에 해당하는 마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구조였습니다.

퍼즐 퀘스트에서도 젬을 매치시키면 스킬 사용에 필요한 자원인 AP(마나)를 얻는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적에게 직접 데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각 캐릭터와 레벨에 따라서 각 젬이 얼마의 데미지를 주는지는 다릅니다만, 어쨌든 젬을 없애는 것 자체로 데미지를 줍니다. 매 턴 데미지를 주고 받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게임 페이스가 빠릅니다.



 

스킬 또한 이전보다 발동조건이 단순해졌습니다. 퍼즐퀘스트 1,2만 하더라도 각 스킬들은 2~3가지 색상의 마나를 조합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파이어볼을 쓰려면 빨간 마나 10 + 파란 마나 3 + 노란 마나 2. 이런 식이었죠. 하지만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각 스킬은 하나의 마나만을 사용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아이언맨의 리펄서 블라스트의 경우 빨간 AP 10개만 모으면 사용할 수 있죠. 옆에 보이는 노란 젬, 파란 젬은 각각 그 색깔의 마나를 사용하는 다른 스킬들입니다.

오른쪽 스크린샷을 보시면 퍼즐 보드 위에 4개의 동그라미와 막대기가 보일 겁니다. 좌측부터 3개의 동그라미는 3명의 히어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막대기들은 해당하는 각 히어로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과, 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AP의 종류(색깔), 그리고 그 AP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죠. 각 히어로들은 최대 3개의 스킬을 가질 수 있는데 제일 왼쪽에 있는 토르(망치)의 경우, 현재 스킬이 1개 뿐이며 이 스킬은 녹색 AP를 소모합니다. 이제 절반 가량 채웠네요.

마지막 구슬은 색상이 없는, 환경 젬을 상징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선 파란 빌딩이 그려진 젬들이죠. (7젬 아닙니다.) 이 젬은 흰색 AP를 생산하는데 히어로 스킬은 이 흰색 AP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매 전투마다 배경이 정해지고, 해당하는 배경에 따라 이 흰색젬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지죠. 위에선 도시가 배경인데, 스킬을 사용하면 핫도그를 먹고 히어로들이 50점의 HP를 회복합니다.


2. 하지만 사실 더 깊어진 게임 플레이

 

 

이렇게 써놓으면 마치 게임이 이전보다 굉장히 간략화된 것 같습니다만, 사실 게임플레이는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졌습니다. 아까 스크린샷을 보시면 각 젬 마다 기호가 그려져있고, 이 기호는 3개의 히어로 아이콘들과 일치합니다. 이 기호는 해당하는 젬을 맞췄을 때 어느 히어로가 공격을 할지를 나타냅니다. 각 히어로들은 고유의 HP와 각 색깔의 젬을 맞췄을 때 상대에게 주는 데미지가 각각 달리 설정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각자 고유의 스킬들을 가지고 있고, 각 스킬들은 필요한 AP의 종류와 양이 다르죠.

위에 보이는 아이언맨 마크 40은 현질로 뽑아낸 3성 히어로로 분명히 강력합니다. 하지만 노란색과 빨간색 이외의 젬에 대해선 공격력이 떨어지고,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AP에 대해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즈도라에선 색상만 맞으면 해당하는 색상의 모든 몬스터가 공격하기 때문에 단색덱과 같은 전략도 가능합니다만,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해당하는 색상으로 가장 아프게 때릴 수 있는 히어로만 공격하기 때문에 각기 색깔에 대해 강점을 가진 파티를 잘 짜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티를 짜는 전략 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서도 조금 깊게 들어가면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상단을 다시 한번 보시면 좌측에 3명의 히어로가, 우측에 3명의 악당이 배치되어있고 이 중 각 1명씩이 강조되어있습니다. 가장 앞에 나와있는, 가장 크게 나타나는 히어로나 악당이 바로 공격을 받을 대상이 됩니다. 플레이어는 악당들 중 누구를 때릴 지 선택할 수 있지만, 악당들은 가장 앞으로 나와있는 히어로를 공격합니다. 따라서 HP가 가장 약한 놈을 먼저 팬다거나, 가장 스킬이 아픈 놈을 먼저 패서 없애는 등의 전략이 가능합니다. 물론 스킬의 대상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찝어서 스턴을 건다거나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공격을 받을 히어로를 직접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단지 마지막으로 공격한 캐릭터가 앞으로 나오죠. 단순하게 플레이한다면 그냥 보이는 대로, 콤보가 많이 나올법한 대로 젬을 매치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공격이 끝난 후 누가 공격을 받을지도 의식해야 합니다. 좌측 스크린샷 기준으로 봤을 때 만일 노란색 젬으로 매치를 만든다면 (물론 위 스크린샷에선 불가능합니다만) 아이언맨이 아프게 때린 뒤에 제일 앞에서 남겠죠. 그런데 아이언맨은 현재 HP가 가장 적습니다. 위 스샷에선 292점이지만 만일 HP가 간당간당한 상태라고 생각해보죠. 그때도 과연 자신있게 노란 젬을 맞출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소개한 것 만으로도 풍성한 게임 플레이이긴 합니다만, 이정도에서 그쳤다면 전 이렇게 긴 리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는 기존의 매치3 퍼즐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게임플레이를 제공합니다. 매치3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것이죠. 바로 특수 타일입니다. 오른쪽 스크린샷에서 숫자가 붙은 해골이나 주먹이 그려진 타일들을 의미합니다.

해골이 그려진 특수 타일들은 쉽게 말해 시한폭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타이머가 0이 되기 전까지 없애지 못하면 정해진 특수효과 - 주로 데미지를 주고 주변 타일들을 없앱니다. -가 발동됩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굉장히 평범해 보이겠죠. 이런 폭탄이야 매치3에서 흔히 보는 것이잖습니까. 문제는 이런 타일을 적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플레이어의 스킬 중에도 이런 타이머를 세팅하는 스킬들이 있고, 타이머가 0이 되면 효과가 발동해서 상대에게 데미지를 줍니다. 이 스킬을 사용하고 나면 플레이어들은 물론 본인도 해당 타일을 없애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AI가 해당 타일을 없애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플레이를 해야겠죠.

주먹 타일은 보드에 남아있는 동안 타일 하나당 1점씩의 데미지를 적에게 줍니다. 이 타일들 역시 가급적이면 계속 남겨야 합니다. 방패 타일들은 같은 방식으로 데미지를 막아주고, 칼 타일들은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이제까지 매치3 퍼즐의 게임 플레이는 타일들을 '없애는' 플레이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젬을 많이 없애라(비쥬얼드), 특정한 종류의 젬을 없애라 (주키퍼), 젬을 빨리 없애라(애니팡), 특정한 위치의 젬을 없애라(쥬얼 퀘스트), 위에서 나온 것들을 다 하면서 방해하는 젬들을 같이 없애라(캔디 크러쉬 사가) 등등. 하지만 특정한 타일을 없애지 않고 남기는 것을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포함시킨 게임은 마블 퍼즐 퀘스트가 처음입니다.

비쥬얼드가 처음 나왔을 때 '게임비평'은 퍼즐 게임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게임이라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까지 모든 퍼즐 게임에서 한번에 여러개의 타일이나 블럭 등을 날려버리는 플레이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였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한 대로 연쇄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이 과정에서 게임에 실패할 수 있지만 어쨌든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점수로 보상받는 것은 물론, 타일이나 블럭들이 날아가면서 퍼즐의 난관 또한 상당히 해결됩니다. 하지만 비쥬얼드의 오리지널 플레이는 더 이상 맞출 젬이 없으면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당장 매치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계속해서 매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량 연쇄가 발생하게 되면 점수는 높아지지만 오히려 게임을 계속 클리어해나가기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지요.

마블 퍼즐 퀘스트의 특수 타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해가 되는 특수 타일을 없애는 것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게임플레이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특수 타일을 없애지 않도록 보존하고, 또한 상대가 없애지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는 개념은 매치3 퍼즐 게임 플레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 것 하나 만으로도 마블 퍼즐 퀘스트는 칭송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3. PVE 파트

 

 

퍼즐 파트가 상당히 강화된 반면 퀘스트 파트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던전을 탐험해야했던 퍼즐퀘스트2는 물론, 거점 단위로 이동하던 퍼즐퀘스트1에 비해서도 굉장히 간략하게 축소되었습니다. 게임은 챕터로 나누어져있고, 각 챕터들은 여러개의 배틀로 쪼개져있습니다. 각 배틀들 사이엔 선/후 관계가 있어 특정 배틀을 먼저 클리어해야 다음 배틀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분기 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사실 어느 쪽을 먼저 고르든 아무런 상관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배틀 앞 뒤로는 만화 스타일의 짧은 대화씬이 들어가지요.

기존의 퍼즐 퀘스트 시리즈가 콘솔 게임에 바탕을 둔 구성이었다면, 마블 퍼즐 퀘스트는 바하무트, 확밀아, 퍼즈도라 등 탐색과 스토리, 분기 보다는 진행 그 이외엔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바일 게임의 구성입니다. 특히 기존 시리즈들과 달리 이미 깼던 배틀을 다시 플레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각 배틀을 클리어하고 나면 히어로들의 레벨을 올리는데 사용되는 ISO-8, 히어로 하나를 뽑을 수 있는 고용 토큰, 히어로 보유 한도를 늘리거나 히어로를 뽑는데 쓰이는 히어로 포인트, 특정 히어로 카드 자체 등 다양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배틀 마다 이들 중 최대 4가지의 보상을 내걸죠. 뭘 받을지는 랜덤입니다. 즉, 모든 보상을 받기 위해선 최소 4번 이상 클리어해야 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녹색 체크가 모든 보상을 다 받았다는 의미이고 노란색 도돌이표는 한번 이상 클리어 했지만 모든 보상을 받진 못했다는 뜻이죠. 실제로는 꽝도 존재하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번 플레이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구성을 가진 게임들은 보통 에너지나 하트, 행동력 등과 같은 방식으로 컨텐츠에 접근하는 빈도를 통제함으로써 컨텐츠가 지나치게 빨리 소모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수익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마블 퍼즐 퀘스트는 이와 달리 히어로들의 HP를 통해 직접적으로 통제합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은 전투가 끝난 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회복됩니다.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전투에 참가시킬 수 있지만 그만큼 전투 중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사망한 히어로는 전투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아주 느긋한 플레이어라면 쉬엄 쉬엄 플레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 플레이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템을 써서 즉시 회복 시켜주거나 (당연히 공짜로도 얻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론 캐쉬템입니다.) 더 많은 히어로를 보유해야겠죠. 그러려면 히어로 보유 한도를 늘려야 할 테구요. 당연히 둘 다 캐쉬템이지만 퍼즈도라 처럼 돈을 쓰지 않아도 게임 중 캐쉬 포인트를 찔끔찔끔 얻을 수 있습니다.


4. PVP 파트


 


마블 퍼즐 퀘스트는 특이하게도 PVP 컨텐츠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실시간으로 대전하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다른 플레이어의 덱을 가지고 AI가 플레이합니다. 시스템이 골라주는 5명 중 한명을 상대로 플레이하게 되고, 상대와의 전력 격차에 따라 승리시 포인트를 얻습니다. 이 포인트를 가지고 순위를 메기고, 일정 포인트에 도달할 때 마다 또한 보상을 받습니다. 어쨌든 상대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고, 보상이 상당히 후하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막혔을 땐 이렇게 PVP를 뛰어서 얻은 보상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좋은 컨텐츠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힘은 책임과 함께 오는 것 처럼, PVP가 PVE보다 마냥 유리하지는 않은 것이, PVP는 보상이 큰 만큼 히어로들이 부상을 더 자주, 크게 입습니다. PVE는 보스전에서만 턴을 주고 받습니다. 자코들은 타이머 타일을 설치해서 데미지를 주긴 해도 기본적으로 턴을 가져가지 않으므로 기본 공격도 없습니다. 타이머 타일들을 계속 제거해나간다면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고 클리어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PVP는 턴을 주고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데미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잘 키운, 더 희귀한, 더 강한 히어로를 만나기 때문에 현질의 욕구도 같이 올라간다는 것 또한 중요하지요.


5. 히어로의 성장


 

 

사실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성장에 관한 부분입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에서 히어로는 레벨과 스킬, 2개의 축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둘이 아주 사악한 방법으로 서로 연결되어있지요.

왼쪽 스크린샷은 레벨 성장입니다. 각 레벨별로 젬에 대한 데미지, HP 등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레벨은 많이 사용한다거나, 다른 히어로를 갈아먹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 중 얻는 ISO-8을 먹여야 오릅니다. 288이라고 적혀있는 바로 저 보라색 수정이지요. 그런데 ISO를 먹이는 RAISE LEVEL 버튼이 비활성화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41이라고 적혀있는 레벨 캡 외에 좌측에 별도로 최대 레벨이 18이라고 적혀있지요. 도대체 둘의 차이는 뭘까요?

그리고 오른쪽 스크린샷은 스킬 성장인데, 파란색 AP를 먹는 Ballistic Salvo 스킬은 스킬 레벨도 없고, 현질로 올리는 버튼도 아예 빠져있습니다. 과연 이 스킬은 몇레벨이 되어야 열리는 걸까요? 정답은 '그런거 없다' 입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에서 각 히어로는 최대 3가지의 스킬을 가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1개의 스킬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 중 무엇을 가지고 있을지는 랜덤이지요. 다른 스킬을 장착한 같은 히어로의 기본 카드를 먹이면 해당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오른쪽 스크린샷의 경우는 빨간색 스킬을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에다가 노란색 스킬을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을 먹인 결과물인 겁니다. 파란색 스킬을 쓰려면 다시 파란색 스킬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을 얻어서 갈아먹여야겠지요.

또한 이 스킬의 레벨은 ISO를 먹여서 올리는 레벨과 별도로 올라갑니다. 새 스킬을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히어로 카드 중에서도 해당 스킬을 가지고 있는 기본 카드를 얻어서 갈아 먹이거나, 돈을 먹여야 합니다. 별 1~2개짜리 싸구려 카드는 스킬 하나 올리는데 드는 비용이나 히어로 하나 뽑는 비용이나 비슷했는데, 별 3개짜리 레어 히어로는 스킬 하나 올리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10달러에 육박합니다. 그나마 이미 갖고 있는 스킬은 돈으로라도 올릴 수 있지만, 위의 파란 스킬 처럼 아직 배우지 못한 스킬은 돈으로도 못채웁니다.

 

 

또한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히어로라고 다 같은 히어로가 아니라는 겁니다. 모던 호크아이, 클래식 호크아이 등 다양한 종류의 히어로가 있으며 이들은 희귀도나 성능이나 스킬 등이 모두 각각 다릅니다. 갈아 먹여서 스킬 올리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바로 그 카드가 필요합니다. 별이 많을수록 - 희귀할 수록 카드 먹여서 스킬 올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그나마 아이언맨 마크 40는 키울만 합니다. 아이언맨 마크 40이 무조건 나오는 뽑기가 1100 포인트거든요. 어차피 돈 먹여서 키울려고 해도 1200씩 드는데 블루 노리고 한번 땡겨볼만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스킬 레벨을 올릴 때 위에 나와있는 아까 언급한 최대 레벨도 함께 올라간다는 겁니다. 레벨 캡은 이렇게 스킬 먹여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의 한계가 되는 거지요. 물론 돈을 안내도 히어로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PVP 포인트 보상이나 PVE 배틀 보상으로 히어로를 직접 받을 수도 있고, 히어로 뽑기 토큰을 받을 수도 있으며, 꽝으로라도 무조건 얻는 ISO로 히어로 뽑기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원하는 히어로가 뽑혀 나온다는 보장이 없지요. 마크40 같은 레어 히어로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지금 후드나 매그니토 같은 빌런들도 뽑을 수 있는데, 이걸 안뽑은게 정말 다행입니다.


6. 퍼즈도라에 대한 양이(洋夷)들의 대답

사실 퍼즐 퀘스트 갤럭틱스나(안해봤지만) 퍼즐퀘스트2의 경우, 게임 플레이 자체가 이전 퍼즐 퀘스트보다 나아졌다고 보긴 힘듭니다. 소드 앤 포커나 룬스펠도 마찬가지구요. 실제로 퍼즐과 RPG에 대한 게임플레이 자체를 발전시킨건 퍼즈도라입니다. 파티 구성, 육성, 진화 등 퍼즐과 RPG 양쪽에서 퍼즐 퀘스트와는 확연히 구분되고 더 깊은 게임플레이를 보였죠.

마블 퍼즐 퀘스트가 여기에 각 색깔의 젬으로 가장 아프게 때릴 수 있는 단 한명만이 때리게 함으로써 다른 방식의 파티 구성을 만든 건 수평적 확장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 한명이 다음 공격을 받도록 만듦으로써 공격 뿐만 아니라 방어도 고려하게 만들었고, 특수 타일들을 통해 타일을 없애는 것 뿐만 아니라 지키는 것 까지도 게임 플레이에 포섭한 점은 분명 수직적 확장입니다. 퍼즈도라의 성과가 눈부신 만큼, 마블 퍼즐 퀘스트의 성과도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 사실 대부분은 마블 게임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특히 국내에선 마블 게임이라서 더 안할 테구요.

다만 게임 플레이 뿐만 아니라 F2P 유료화 모델과 이에 따라오는 성장 / 육성 시스템이 덩달아 발전한 것은 유저 입장에선 좀 아쉽습니다. 퍼즈도라의 복잡한 진화 시스템과 달리 깔끔하고 알기 쉬운 것 까지는 참 좋은데 그 결과물은 퍼즈도라보다 더 사악하면 더 사악하지 덜하지 않은 물건이 나왔네요.

뭐 어쨌든, 게임플레이로나 유료화모델로나 이 게임이야말로 퍼즈도라에 대한 양이들의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by 고금아 2013. 12. 6. 04:33

스팀 가을 세일 기간 동안, 평가가 좋다는 말에 덥석 사버린 Gone Home 감상입니다. 원래는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만, 누군가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리뷰 할 도리가 없군요.



게임은 1년여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케이틀린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자동 응답기에 늦은 밤 도착하고 공항에서 셔틀 버스를 탈테니 마중나올 필요 없다고 메시지를 남기긴 했습니다만, 어머니는 커녕 아버지도, 여동생도 보이지 않습니다. 케이틀린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Gone Home은 위와 같이 케이틀린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마우스 이동과 WASD 키를 사용해 FPS 게임 처럼 자유롭게 집 안을 이동할 수 있고, 원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을 열거나 닫거나 물건을 집거나 보는 등의 모든 행위는 마우스 클릭으로 이루어지지요. 그리고 사실 이게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사실 이 Gone Home을 게임으로 보아야하는지는 상당히 의문스럽습니다. 물건을 줍고 소지품을 사용한다거나,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퍼즐을 푸는 등의 모든 게임 플레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널려있는 메모나 노트를 보는 것이 유저가 할 수 있는 전부지요. 물론 중간 중간 잠겨 있어 지나갈 수 없는 문과 같은 장애물도 존재합니다만, 이들은 모두 이동의 결과로 그냥 열립니다.

등장 인물 없이 노트나 메모만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스토리 텔링은 이미 시스템 쇼크 2에서 선보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Gone Home에서 노트와 메모에 담긴 이야기들은 사용자가 스토리를 유추하기 위한 용도가 아닙니다. 메모를 건드리면 난데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지금 이 집에 있지 않은 다른 등장인물의 독백을 재생되고 메모는 이 독백을 보충할 뿐이죠. 사실 이 독백이 상당히 생뚱맞기 때문에 주인공이 혹시 싸이코메트러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게임플레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스토리텔링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선 To The Moon과 비교되긴 합니다만 To The Moon은 유치하나마 미니게임 퍼즐이라도 있었던 반면, Gone Home은 그나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미니 게임을 떼놓고 보자면,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라는 점은 동일하지요. 그리고 To The Moon이 3인칭 시점에서 대사와 연출로 그 스토리를 전달한 반면 1인칭 시점으로 몰입감을 높이고 어떠한 연출 없이 독백으로 풀어간다는 점은 뚜렷한 차이입니다.

게임플레이를 떠나서 과연 Gone Home이 제공하는 경험은 만족스러운지를 본다면, 좀 애매합니다.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는 조금 신선하긴 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스토리 자체의 스케일이 작고, 너무 단조롭습니다. 좀 신파긴 하지만 To The Moon의 스토리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작고 간단한 일로 시작해서 반전과 큰 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반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죠. 스토리 자체도 누구나 코끝이 찡해질만큼 서정적이면서 또한 유저들이 몰입할 수 있구요. 하지만 Gone Home은 그 구조가 상당히 단순하고 중반부에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결말에 이르러선 허탈해집니다.

게임으로든,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로든 $19.99는 폭리입니다. 플레이시간이 80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요. 하지만 $5 이내로 구입하실 수 있다면 뭐 VOD로 그냥저냥한 영화 한편 본다고 생각하고 즐길만은 합니다.


by 고금아 2013. 12. 5. 02:42

GDF에도 쓴 글입니다. 관련 토론은 아마도 GDF에서 이어질 지도 모릅니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배틀필드4(이하 배필4)와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이하 고스트)가 출시된지 약 20일 정도 지났네요. 처음엔 배필은 역시 배필이고, 고스트는 역시 콜옵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평가가 좀 바뀌었습니다. 배필은 역시 배필이지만 고스트는 콜옵 치곤 좀 이상하다 정도루요.

뭐 싱글은 콜옵 맞습니다.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스크립트들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처럼 요란한 씬들을 구성하는 한편, 우주정거장이나 개와의 싱크로, 헬리콥터와 탱크 조종 등 중간 중간 새로운 경험들이 제공됩니다. 그런데 사실 싱글은 튜토리얼일 뿐, 우린 멀티 하려고 콜옵을 사지요.

그런데 멀티가 상당히 불쾌합니다. 분명히 콜옵은 콜옵인데 이전 모던 워페어 시리즈 만큼의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맵과 새로운 무기들에 적응이 될 되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계속 해봐도 확실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기본 요소는 콜옵 그대로인데 말이죠. 이걸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고스트의 멀티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콜옵 멀티의 기본적인 요소는 모두 간직하고 있지만 그 콜옵 멀티가 재미있는 이유는 모두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발전된' 게임 디자인을 통해서 말이죠.

우선 가장 기본적인 맵을 한번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콜옵의 멀티플레이 맵들은 서든 어택 처럼 고정된 기지를 지니는 대칭 구조가 아니라 비대칭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지가 없기 때문에 맵 곳곳에서 랜덤하게 스폰되지요. 사실 콜옵의 멀티가 재미난 이유의 90%는 바로 이 비대칭 구조 + 랜덤 스폰에서 옵니다. 대칭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니 구석 구석 다양한 재미를 주는 레벨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정된 스폰 포인트가 없으니 고정된 동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캠핑이 힘듭니다. 대칭구조 맵에선 '이 곳을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캠핑하지만 콜옵에선 이 확신이 없지요. 그리고 전자는 뒷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후자는 항상 뒷치기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대신, 콜옵의 맵들은 좀 더 크고 단순한 구조를 지닙니다. 맵이 큰 대신 스프린트 속도가 빨라서 조우 빈도는 높습니다. 그리고 고저는 있지만 일부 건물의 2층 정도를 제외하면 입체적인 구조물이 적고, 또 이렇게 내려다보는 장소는 모두 2중, 3중으로 뒷치기에 노출됩니다. 또한 야외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구조물들로 인해 시야를 조절합니다. 넓고 짧게 보이거나, 좁고 길게 보이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콜옵의 멀티 플레이는 여타 다른 FPS 게임들에 비해 굉장히 캐주얼합니다. 어찌 보면 술래잡기라고 느껴질 정도루요. 이게 콜옵 시리즈의 멀티 플레이의 핵심 비결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스트는 여기에 좀 더 게임 디자인 적인 기교를 부렸습니다.

고스트의 맵들은 콜옵의 맵들보다 좀 더 입체적입니다. 공간을 2~3개 층 정도 쌓아놓은 구조물이 많습니다. 기존 콜옵을 할 땐 미니맵에서 그냥 적의 위치만 보면 되었는데, 지금은 적의 위치 외에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이렇게 맵이 입체적이다 보니 이 고저차를 이용한 플레이가 상당히 강조되어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또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사격하는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죠.

또한 빛과 그림자에 의한 명암 효과도 이전 시리즈보다 두드러집니다. 이전엔 기본적으로 맵 자체의 조도가 일정했습니다. 실내 / 실외의 밝기 차이도 심하지 않았구요. 하지만 고스트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명암 대비가 굉장히 뚜렷합니다. 같은 실외라고 하더라도 그림자에 숨어있으면 잘 보이지 않고, 또한 실외에선 실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내에서 실 외로 나갈 때 HDR 효과도 강합니다.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고저차의 활용이나 명암 대비에 의한 은폐효과 등은 보다 전략적인 게임플레이를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게임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최소한 (주력은 이미 다 떠났지만) 인피니티 워드는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오히려 이전보다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쾌해졌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전략적인 게임플레이를 최대한 활용하면 결국 캠핑 플레이가 나오니까요.

이전까지 콜옵 멀티의 재미는 단순하고 명쾌한 것에 있었습니다. 특히 죽음을 굉장히 쉽게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였죠. 딱히 숨을 곳도 없고, 숨는다고 유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스나이퍼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캠핑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조우하니 보통은 총을 맞아도 정면에서 사격자를 바라보면서 맞고,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쉽게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 아니까 랜덤 스폰해서 금방 그곳으로 달려가 복수를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고스트는 다릅니다. 높고 어두운 곳에서 숨어있으면 일단 적에게 발견되기도 힘들고, 발견된다 한들 피아 식별에 시간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시야 거리가 이전작들보다 넓고 길기 때문에 접근하는 공격자보다 대기하고 있는 캠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그리고 맵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다시 리스폰 된 뒤에 원래 위치로 돌아가긴 커녕, 당장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힘듭니다. 그렇게 헤메면 이번엔 다시 다른 캠퍼를 만나서 사냥당합니다.

특히 저같은 SMG 개돌러들은 그냥 고기 과녁이 되어버렸죠. 캠핑 포인트에서 이미 에임 잡고 기다리고 있으니 소총이 에임들어가는 사이에 조준 없이 힙으로 먼저 쏜다는 SMG의 장점이 그냥 완벽하게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언급한 것과 같이 시야가 넓고 길어진 것도 한몫 하구요.

레벨 디자인 뿐만 아니라 메타게임 디자인도 발전했습니다. 모던 워페어 2 까지만 해도, 특정한 종류의 총을 많이 쓰면 같은 종류의 다른 총이 언락되고, 새로 언락된 총을 많이 쓰면 도트 사이트나 소음기 같은 부착물이 언락되고 위장무늬가 언락됩니다. 그리고 많이 하면 PERK(장전 속도 증가, 레이더에 탐지 되지 않음과 같은 패시브 스킬들. 최대 4개 까지 장착 가능합니다.)들도 언락되고 뭐 그런 식이었죠.

고스트의 메타 게임은 다소 방식이 다릅니다. 레벨이 오르거나, 플레이를 잘하거나 하면 스쿼드 포인트라는 코인을 얻게 되고, 무기나 부착물 등은 이 코인을 소모해서 언락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코인을 소모하지 않으면 어떤 무기나 부착물도 언락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코인이 충분하면 한번에 무기와 부착물 등을 여럿 언락할 수 있습니다. 모던3에선 새 총을 먼저 언락한 뒤에 이 총으로 또 한두시간 플레이를 해야 이 총에 도트 사이트를 달 수 있었지만 고스트에선 한방에 그냥 총 언락하고 도트 사이트도 달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PERK는 특정 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언락이 되고, 코인을 쓰면 바로 언락이 됩니다.

이전엔 언락하는 행위 자체는 게임플레이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부착물 달려면 좀 더 오래 플레이해야 하니 가끔 극복의 대상이긴 했지요. 언락해놓은 총기 / 부착물 / PERK / 킬스트릭 등을 어떻게 조합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군장을 꾸리느냐가 메타게임의 게임플레이였습니다. 하지만 고스트에선 언락하는 행위 자체도 게임플레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무장이나 방어구를 먼저 풀 것인지, 특정한 PERK를 코인으로 먼저 풀 건지 등에 대해서도 전략을 짜야 한다는 거지요.

PERK의 편집도 보다 강화되었습니다. 이전엔 4가지 종류별로 1개씩의 PERK를 골라서 장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각 PERK마다 1~3점의 점수가 분배되어있고 총합 8점이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PERK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메타게임을 강화해서 재미있어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게 아니니까 문제죠. 일단 언락에 대한 성취감 자체가 줄었습니다. 이전엔 설령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새로운 카모 패턴을 얻고, 부착물을 얻고, PERK를 얻는다는 성취감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코인으로 지급하게 되니 내가 무언가를 언락했다는 것 자체가 크게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온라인 FPS에서 게임머니 조금 얻은 기분이에요. 특히 코인 지급 시점도 좀 애매한 것이, 이전 콜옵의 메타게임에서 장비와 부착물의 언락은 레벨과는 또 별개로 돌아갔습니다. 레벨업 하는 동안에 중간 중간 이것 저것 언락되어서 레벨업 과정에서도 성취감을 줬는데 코인은 이게 좀 애매합니다. 레벨이 오르면 어느정도 주는 건 맞는데, 그 중간에도 주긴 해요. 그런데 이게 언제 지급되는지가 좀 애매합니다. 이전엔 무기에도 숙련도가 있고 매 세션이 끝날 때 마다 무기에 대한 숙련도 진행상황을 보여줬는데 지금은 레벨 사이에 코인 지급 기준은 불분명합니다.

콜옵의 메타게임이 위대했던 것은 세션 단위로 진행되는 FPS 게임에서,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게임플레이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동기부여라는 거죠. 하지만 고스트의 메타게임은 이 동기를 전혀 제공하지 못합니다. 월탱의 메타게임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고생고생해서 높은 티어의 전차를 하나 언락하고 나면 당장은 기쁘긴 한데 업글이 없어서 또 게임이 힘들어집니다. 그거 붙잡고 또 업글하고 살만해지면 다시 높은 티어의 전차를 얻는 식으로 계속 플레이를 유도하죠. 콜옵의 메타게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새 총 하나 언락하면 다소 불편하지만 그거 들고 열심히 뛰어서 도트 사이트 붙이고, 소음기도 붙이고 또 그러다가 새 총 언락되면 써보고 이런 식으로 꾸준히 플레이를 유도합니다. 하지만 고스트에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지요.

이렇게 메타게임이 복잡해지면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반응성도 이전보다 떨어집니다. 이전엔 세션과 세션 사이의 인터미션에서 잽싸게 커스텀 메뉴로 가서 방금 언락한 총이나 부착물들을 장착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니 당연했지요. 그런데 메타게임이 복잡해지면서 커스텀에 시간이 많이 들어 이젠 아예 방에서 나가지 않으면 인터미션에서 군장을 꾸리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니 언락에 대한 성취감은 더더욱 떨어지지요.

고저차와 명암 대비를 사용한 전략적인 플레이, 보다 유저 선택의 폭을 넓힌 메타게임. 개개로 보면 분명히 이전보다 발전된 게임 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콜옵은 단순한게 매력인 게임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다가 게임플레이를 얹어놓으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면서 게임은 오히려 이전보다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니, 사실 불쾌합니다. 과유불급이라는 속담이 영어엔 없었던 걸까요?

그러고보면 반대로 게임 후의 결과 화면은 쓸데 없이 줄여놓았습니다. 원래 콜옵은 게임이 끝난 후에 별 시시콜콜한 것에 대해서도 칭찬을 했습니다. "가장 많은 거리를 이동" "가장 높은 곳에 위치"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적을 가장 많이 죽임" 아무리 게임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소소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플레이어의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다시 한번 게임에 뛰어들 동기를 제공했죠. 그런데 고스트는 이 마저도 없습니다. [자세히보기]를 누르면 볼 수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안보입니다. 이건 도대체 왜 뺀 걸까요?

by 고금아 2013. 11. 27. 03:25

매스 이펙트 트릴로지의 마지막을 장식할 매스 이펙트3 최후의 싱글플레이어 DLC '시타델'이 발매되었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아놔 섀도우 브로커만 아니었어도 시리즈 내내 이렇게 DLC에 탈탈 털리진 않았을텐데...'


플레이 타임은 약 4시간. 뭐 그럭저럭 할만은 하다. 그런데 이게 1200MP[각주:1] 한화 2만원돈 이라는 건 말이 안된다!! 게다가 이 절묘한 가격은 MP 판매 단위 사이를 스쳐지나가기[각주:2] 때문에 남은 MP가 없으면 실 지출은 24000원에 육박!!!!!!


가격이나 뭐 이런걸 다 떼고 봤을 경우, 마치 브루스 윌리스가 나오는 한편의 헐리우드 영화처럼 액션과 음모와 유머가 잘 섞여있다. 유머만 놓고 봤을 땐 DLC는 물론 본편보다 낫다. 그런데 이게 오히려 이전의 본편과 DLC들과는 괴리감이 들 정도. 그 외에 시리즈의 영웅인 앤더슨 제독[각주:3]이나, 나머지 멤버들의 색다른 일면을 볼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그래도 이걸 1200MP나 받으면 도둑놈 심보지...


여하튼 요약하자면

스 이펙트 시리즈의 DLC는 전부 가성비가 꽝!

시타델 역시 가성비 꽝!

단, 매스 이펙트 2의 '섀도우 브로커' 이건 정말 돈이 아깝지 않음.

또하나 추천하자면 매스이펙트3의 '리바이어선' DLC

그다지 재미는 없지만 엔딩의 이해를 도움. (그러게 엔딩을 좀 잘 만들지..)

하지만 난 전 시리즈의 전 DLC를 다 샀을 뿐이고...



  1. XBOX360에서 추가 컨텐츠를 구입하는 화폐 단위. 1MP = 약 16원 [본문으로]
  2. 판매 단위가 500MP - 1000MP - 2000MP - 5000MP - 6000MP. 1200을 맞추려면 500MP+ 1000MP 이렇게 구매해야한다. [본문으로]
  3. 게임 시리즈에선 큰 활약이 없지만, 매스 이펙트 세계를 다룬 소설 시리즈는 앤더슨이 주인공이었다.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3. 3. 7. 01:53



0. 10년만의 리부트

2010년 이후 게임계의 이슈라고 한다면 역시 리부트 열풍일 것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처럼 잘 팔리고 있는 작품들의 속편들이 꾸준히 제작되는 거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이미 10여년 전에 끝난 시리즈들이 새로이 출시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엔 Deus Ex Human Revolution이나 XCOM : Enemy Unknown 처럼 원작의 액기스만 추출한 뒤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작품들도 있지만 Syndicate 처럼 소재를 제외하면 원작과의 연관고리를 찾기 힘든 경우도 존재한다.[각주:1] 이번에 리뷰할 Spec Ops The Line(이하 더 라인)은 후자에 해당한다.

1998년 Spec Ops : Rangers Lead the Way로 시작된 스펙옵스 시리즈는 제목 그대로 2인 1조로 구성된 특수부대의 활약을 다룬 TPS 게임이었다. (당시엔 TPS라는 개념 조차 희박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발매된 레인보우6나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실내에서의 CQB를 다룬 것과 달리 이 게임은 소수 인원으로 적진 깊숙히 침투해 정찰 활동 등을 하는 레인져 성격의 특수전이 소재였는데, 국내에선 위 스크린샷 처럼 엉성하거나 거꾸로 인쇄된 한국어(북한도 게임의 무대에 포함된다.) 때문에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이번에 소개할 Spec Ops The Line은 10년만에 나온 후속작으로 완전히 새로운 개발진에 주인공이 특수부대이고 소수의 NPC를 데리고 다닌다는 점 외에는 원작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작품이다. 죽은 IP로 어떻게든 수익을 내보려는 IP 홀더와 그냥 신규 IP로 출시하는 것 보다는 죽은 IP라도 달고 내보내서 위험부담을 덜고 싶은 개발/유통사의 이해가 일치한 결과로 보이는데, 사실 그냥 신규 IP로 출시했어도 굉장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 전부터 소개하려고 벼르고 있던 게임이다. 때마침 때마침 스팀에서 세일중이기도 하고, 한글 패치도 나온 터라 날 잡고 이 게임을 소개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번 한글 패치는 국내 유통사인 H2의 허가를 얻은 것으로, 추후에도 이렇게 저작권 문제를 해결한 한글화 패치가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1. 어서와, 두바이는 처음이지?

최악의 모래폭풍이 두바이를 덮쳤다. UAE 정치가들과 유력가들이 비밀리에 이 도시를 탈출한 가운데 아프간 작전을 마치고 귀환하던 33대대는 이 도시의 구호 작전에 자원했지만 도시를 포기하고 귀환하라는 명령에 불복, 부대 전체가 탈영해버렸다. 시속 80마일의 광풍 속에서 필사적으로 시민들을 탈출시키려 한다는 소식을 마지막으로 33대대와의 통신이 끊어지고 UAE는 두바이를 무인지대로 선포했다. 그리고 6개월 뒤 "미합중국 육군 존 콘래드 대령이다. 두바이에서의 소개 작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사망자가 너무 많다."는 내용의 무선이 반복적으로 감지되자 미 합중국은 마틴 워커 대위가 이끄는 3명의 델타포스 대원들을 파견한다.


2. 기본에 충실한 게임

밀리터리 TPS 게임으로서 더 라인은 굉장히 기본에 충실한 구성을 보인다. 엄폐와 조준 사격을 중심으로 전투를 진행하고 가까운 거리에선 근접 공격이 가능하다. SCAR-H, HK 417, M249 SAW, UMP45 등 현대의 다양한 총기가 등장하지만 총기를  커스터마이징 등의 옵션은 없다. 저격총을 사용하는 루고와 M249 SAW를 사용하는 아담스, 2명의 부하들에게 타겟을 지정해줄 수 있지만 직접 이 둘을 조종할 수는 없으며 딱히 이 둘에게 목표를 지정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 전투한다. 

그리고 모던워페어 이후로 밀리터리 게임이라면 한번씩은 등장하는 헬기 기관총 조작이나 공중 폭격 등도 들어가있다. 하지만 이게 전부다. 특별히 스테이지가 오픈월드로 구성되어있어 탐험을 하는 것도 아니고, 스토리에 분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일자로 정해진 스테이지를 따라서 전투를 반복하기만 하면 된다. 딱히 퍼즐 요소도 없다. 좋게 말하면 기본에 충실하지만 나쁘게 말하자면 전혀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런 전투 만으로 더 라인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사실 이 게임의 핵심은 게임 플레이가 아닌 스토리에 있기 때문이다.


3. 아직도 자신이 영웅이라 생각하나?

주인공인 마틴 워커 대위는 과거 아프간에서 작전할 때 콘래드 덕분에 생명을 건진 인연이 있다. 이때 대령을 직접 만났던 워커는 그가 굉장히 좋은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고 있다. (단지 고마워서만은 아니다.) 그래서 그는 대령과 그 휘하의 33대대를 구출하려 한다. 하지만 대령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두바이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대령과 33대대는 반대자들을 잔혹히 살해하며 두바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린탄까지 거침없이 사용하는 모습을 보며 워커의 작전은 콘래드와 33대대의 구출에서 축출로 바뀌어간다. 하지만 워커의 작전이 진행될수록 의도와 달리 오히려 더 많은 무고한 생명들을 해치게 되고, 워커는 점점 임무에 집착한다. 이 과정에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워커를 지켜보는 것이 이 게임의 핵심이다.


4. 스토리의, 스토리에 의한, 스토리를 위한 게임

사실 인게임에서의 스토리텔링 기법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더 라인은 특별할 것이 없다. 유저의 선택에 의해 의미 있는 분기가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입력을 필요로하지 않는 영상도 빈번하게 재생된다. 당장 위에 있는 그림만 보더라도 최근 게임들은 저기서 입력을 받아서 타이밍을 사용한 미니 게임 들어갈 것 같지만 그냥 영상이다. 그것도 이미 렌더링 된 영상. 하지만 더 라인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영역에서 스토리를 게임에 반영한다.

예를 들자면 위와 같은 로딩 화면. 처음엔 적의 공격을 피하려면 웅크리라는 등의 팁이 출력된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우측처럼 사용자를 비난하기 시작하면서 로딩화면 조차도 스토리텔링의 도구가 된다.

또한 워커의 얼굴 상태를 통해서 극의 긴장과 워커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그리고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아까 공중폭격 씬을 자세히 보면 스크린에 워커의 얼굴이 비치고 있다.

이런 깨알같은 디테일의 백미는 바로 타이틀 화면. 너덜너덜한 성조기가 거꾸로 메달려있는 첫 화면부터 범상치 않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그 구성까지 바뀌어간다. 타이틀 화면을 스토리텔링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임은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이런 디테일이 있지만, 또한 독특하게도 아주 암울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 만으로 이 게임의 핵심이 스토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 게임이 스토리의 게임인 진정한 이유는 게임의 본질은 의미있는 의사결정에 있고, 이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결과를 예상할 수 있어야 하며, 일단 결정이 내려진 이후에는 보상이나 처벌이 주어진다는 게임 디자인의 기본 규칙을 일부 깨트렸기 때문이다. 바로 스토리를 위해. 자세한 내용은 칼럼란에 번역해 두었다.


5. 광기의 심장

대령이 오지 깊숙한 곳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고, 특수부대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오지 속으로 파고 든다는 이야기는 이미 '지옥의 묵시록'으로 영화화 된 적이 있다. 본지가 하도 오래되어 자세한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를 지배하고있던 광기에 대해서는 기억이 난다. 영화의 원작인 Heart of Darkness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각주:2] 더 라인은 이 광기를 단순히 관찰하는 것 만이 아니라 광기의 한가운데에 플레이어를 던져놓는다. 이 오싹한 체험은 이제까지 약 20년간 게임을 해오면서 이 게임만큼 감정을 강하게 자극하는 게임을 본 적이 없다. 과연 게임을 예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더 라인을 시켜보라. 그리고 스토리가 게임의 본질이 될 수 있는지 묻는 사람이 있다면 더 라인을 시켜보라..


-덧-

본 게임은 현재 스팀 겨울 세일 항목으로 50% 세일된 가격 $14.99에 판매되고 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50300/


-덧2-

굉장히 혐오스러운 장면이 포함되어있어 노약자 임산부 및 미성년자에게는 권하지 않음...






  1. 원작 Syndicate는 쿼터뷰 시점에서 4명의 캐릭터를 움직이는 실시간 전술 게임에 가까운 형식이었지만, 새로 제작된 Syndicate는 FPS 게임으로 리부트 되었다. 사이버 펑크 세계를 다루고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공통분모를 찾기 힘들다. [본문으로]
  2. 작중 대령의 이름도 Heart of Darkness의 작가 Joseph Conrad에서 따온 듯 [본문으로]
by 고금아 2012. 12. 23. 10:12

뭐.. 길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RPG 쯔꾸르 XP로 만들어졌으며 짧은 어드벤쳐 게임이다. 퍼즐이라 할 것도 없고 사실상 스토리만 따라가면 된다. 스토리만. 이 게임(사실 고전적 게임론에 따르면 이건 게임도 아니겠지만)의 매력은 바로 이 스토리에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못다 이룬 꿈을 후회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만일 그 꿈을 이룬 것으로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이 게임은 죽음이 임박한 사람들로부터 의뢰를 받아 그분들이 기억을 조작해 편안한 마음으로 소천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기억을 조작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의뢰인의 기억을 되짚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 적절한 지점에서 기억을 바꾸면 나머지는 자동으로 재구성되는 것이다. 이번 의뢰인이 이루지 못한 꿈은 달에 가는 것. 하지만 본인도 그 이유는 모른다고 한다. 플레이어는 의뢰인의 기억을 되짚어가면서 - 의뢰인의 인생을 되짚어가면서 - 그가 왜 달에 가고 싶어했는지를 추적하게 된다. 계속해서 과거로 과거로 이야기를 추적해나간다는 점에선 메멘토와 유사한 구조이기도 하다. 메멘토와는 달리 굉장히 따뜻한 - 약간은 중2스럽기도 한 - 멜로물이긴 하지만.

어쨌든 엔딩을 보고 나면 코끝이 찡해질 감성적이고 잘 만든 이야기다. 한글 지원되며, 현재 스팀에서 50% 할인해서 $4.99에 판매중인데, 이정도면 괜찮은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by 고금아 2012. 12. 21. 14:33

0. 해를 품은 달 RPG를 품은 디펜스 게임

이전 Might and Magic : Clash of Heroes 때에도 언급했지만, 확실히 RPG는 재미있다. 그리고 다른 장르와 결합해도 재미있다. 그래서 처음엔 액션 게임, 전략 게임과 결합했고 최근엔 퍼즐 등으로 결합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할 Defender's Quest(이하 DQ)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디펜스 게임과 결합한 RPG이다. 혹은 RPG를 받아들인 디펜스 게임이다.


1. 게임의 기본적 구성

기본적으로 게임은 일반적인 디펜스 게임과 같은 형식을 지니고 있다. 정해진 입구에서 일렬로 들어오는 적 몬스터들이 최종 지점에 도착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이를 위해 플레이어는 다양한 특성(과 비용)을 지닌 유닛들을 맵 상에 배치해야 한다.

단, 기존 디펜스 게임들과 달리 전투 중엔 유닛을 추가로 구매할 수가 없다는 점이 일단 가장 큰 차이점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부연하자면 기존 디펜스 게임들은 자원만 충분하다면 유닛을 무제한으로 배치할 수 있다. 하지만 DQ에서는 스토리나 마을에서 구매함으로써 확보한 유닛만 배치할 수 있다. (배치할 때엔 비용을 지불한다.) 아무리 자원이 넘쳐나더라도 이미 갖고 있는 유닛을 모두 배치했으면 더 이상 유닛을 배치할 수 없다. 대신 포인트를 소모해서 배치된 유닛을 강화시킬 수 있고, 고유의 스펠을 사용해 전투에 직접 개입할 수도 있다.

(Kingdom Rush. 출처는 공홈)

이미 Kingdom Rush에서도 스킬을 통해 사용자가 전투에 직접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쿨타임 외엔 아무런 제약이 없어 보너스의 개념으로 스킬을 마구 사용하던 Kingdom Rush와 달리 DQ는 포인트를 소모한다. 유닛의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바로 그 포인트 말이다. 따라서 기존 디펜스 게임과는 약간 다른 의사결정 요소를 지닌다. 일단 목돈이 들어가는 새 유닛 추가가 생략되어 고민할 거리가 다소 줄어들긴 하지만, 기존 유닛 업그레이드 효과가 아무래도 신규 유닛 추가 보다는 약한 만큼 말린다고 생각될 때 그다지 할 수 있는게 없다는 기분이 들긴 한다.


2. 성장 요소

대신 유닛들과 플레이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재미는 다른 디펜스 게임들과 확연한 차이점을 가져다준다. 각 유닛들은 고유의 이름과 외관이 있고 사용자가 이를 변경할 수도 있다. 스토리상 추가된 캐릭터들은 스토리 모드에서 대사도 하며, 성장을 통해 새로운 스킬을 익힐 수 있다. 아이템도 착용시킬 수 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바로 이, 유닛이 아닌 '파티'와 함께 성장하는 디펜스 게임이라는 것에 있다.


3. 탐험

전투가 끝나고 나면 위와 같은 탐험 화면이 나온다. 플레이어는 저 노드들을 따라다니며 스토리를 진행하고, 마을에서 아이템과 유닛을 구매한다. 붉은색 원들이 전투를 상징하는데, 각 전투는 캐주얼 - 노멀 - 어드밴스드 - 익스트림의 4가지 난이도를 지니고 있어 이미 깼던 전투를 여러번 반복할 수 있다.


4. 스토리

스토리는 위와 같은 컷씬으로 진행되며 딱히 음성이나 거창한 애니메이션이 지원되지는 않는다. 제한된 예산으로 만드는 인디게임 특성을 감안할 때 이정도면 매우 훌륭하다고 생각된다.


5. 총평

디펜스 게임 역시 꾸준히 인기 있는 장르지만, 사실 최근의 디펜스 게임들은 그래픽과 소재가 조금 다를 뿐 시스템적으로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DQ는 RPG 요소를 과감히 도입해 디펜스 게임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낸 훌륭한 수작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90년대 스러운 고풍스런 도트 그래픽. 알맹이는 굉장히 진보적인데 이를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껍데기가 너무 고리타분해보인다. 여하튼 디펜스 게임을 좋아하는 유저라면 반드시 해볼 것을 권장한다.


6. 기타

DQ의 정가는 $14.99이나 현재 스팀 겨울 세일 중이라 66% 세일이 적용되고 있다. 단돈 $5.10! 별다방 커피 한잔이면 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 가서 지르시라!! (본 연구원은 스팀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니 오해하지 마시라...)


여기서 지르시라!!!!









by 고금아 2012. 12. 21. 11:46



0. 몰락한 가문의 서자

Might & Magic(이하 M&M)이라는 타이틀은 듣기만 해도 짠한 기분이 들게 한다. 초기엔 퀘스트 중심의 울티마, 던전 중심의 위저드리와 달리 뚜렷한 지향점 없이 물량 만으로 간신히 3대 RPG에 끼었다. 하지만 울티마 위저드리 모두 신작이 출시되지 않던 90년대 후반, 2.5D를 받아들인 6편을 출시함으로써 이른바 '정통' RPG의 맹주로 거듭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RPG는 이제 끝났어. 돈 때문에 하는 거지'라며 6편 엔진 그대로 7,8편을 찍어내며 몰락을 자초했다. 이러한 방침에 개발자들이 반발하자 잘라버리고 시간에 쫓겨 만든 9편이 폭망하면서 결국 New World Computing은 파산했다. 이후 Ubi Soft가 M&M의 IP를 사들여 Heroes of Might and Magic(이하 HOMM) 외에 M&M의 타이틀로 다양한 게임들을 출시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보면 비천한 출신을 딛고 영웅이 되었다가 초심을 잃고 몰락한 뒤 후손들이 근근히 살아가는 한 귀족 가문의 흥망성쇠를 그리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여하튼 오늘 소개할 Might & Magic : Clash of Heroes (이하 COH)는 Ubi가 부지런히 뿌리고 있는 씨앗 들 중 하나로 캐나다의 Capybara Games에서 개발되었다. 2009년 닌텐도 DS용으로 먼저 발매되었고 2011년 HD로 리마스터 되어 엑스박스 라이브 아케이드와 PSN, 그리고 PC로 출시되기도 했다.

스토리 상으로는 히어로즈 오브 마이트 앤 매직 5의 프리퀄에 해당한다고는 하지만, 게임 플레이는 M&M이나 HOMM과 전혀 무관하게 퍼즐 RPG 형식을 지니고 있다. '서자'라고 부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1. 퍼즐과 RPG의 결합?

RPG도 퍼즐도 각기 인기있는 장르지만 둘을 합친 복합장르의 게임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게임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누적된 플레이가 정량적으로 게임에 재투입되는 RPG와 달리 퍼즐은 그렇지 않다는 것. 쉽게 말하자면 RPG는 레벨이 깡패인데 이걸 퍼즐에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는 대결구도를 만들고 그 안에 성장요소를 집어넣는 건데, 이게 안되면 RPG의 핵심인 성장과 결합이 힘들다. 액션 중에서도 대결이 없는 플랫포머는 RPG와 결합하지 못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뿌요뿌요나 아이돌 머니 익스체인저와 같이 대결 구도를 가진 퍼즐 게임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대결 구도에 레벨로 대표되는 플레이어의 정량적 성장을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 이것이 항상 문제였다. 퍼즐퀘스트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좌 : Puzzle Quest. 출처는 위키피디아. 우 : Sword & Poker. 출처는 Gaia 공식 홈페이지)


(Runespell : Overture. 출처는 스팀)

2007년 발매된 퍼즐퀘스트는 비쥬얼드 규칙(애니팡 규칙이라고 하는게 더 이해가 빠르려나?)으로 없앤 보석의 색깔에 따라 마나를 얻고, 이 마나로 마법을 써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형식으로 전투를 구현해냈다. 드디어 퍼즐과 대결과 성장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일단 가능성이 확인되자 다양한 작품이 쏟아져나왔다. Puzzle & Quest는 전통적인 5X5 포커 퍼즐을 RPG와 결합시켰고 Runespell : Overture는 윈도우에 기본으로 깔려있는 '카드놀이'와 RPG를 결합시켰다.


2. 보다 적극적인 전투와 퍼즐의 융합

퍼즐 RPG로서 M&M COH가 지니는 가장 큰 특징은 퍼즐의 객체와 전투의 주체가 분리되어있지 않다는 점이다. 기존의 퍼즐 RPG에서 퍼즐은 자원 또는 공격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플레이어 캐릭터가 이렇게 만들어진 자원을 통해 대상을 공격한다. 퍼즐 퀘스트의 보석들이나 소드 & 포커 및 룬스펠에서 카드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한다. 반면 M&M COH에서는 바닥에 깔려있는 유닛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고, 이들 유닛을 어떻게 운용하는지가 퍼즐을 구성한다.

(좌 : Astro Pop. 출처는 iplay.com/ 우 : Magical Drop 출처는 retrogamer.net)

퍼즐의 기본 원리는 상단의 Astro Pop이나 Magical Drop처럼 Pull & Push Match 3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이름은 본 연구원이 임의로 붙인 것으로, 정확한 명칭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또한 이 형식을 처음으로 창안한 게임의 제목 또한 제보 받는다.) 이 형식의 기본 매커니즘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1. 블록들은 최 상단에서부터 아래로 쌓여 내려온다.
    2. 유저는 각 열에서 가장 아래에 위치한 블럭을 가져올 수 있다.
    3. 가져온 블럭을 원하는 열의 맨 아래에 붙일 수 있다.
    4. 이런 조작의 결과로 동일한 블럭이 3개 이상 연결되면 해당 블럭들은 사라진다.


M&M COH에서는 각 유닛들이 블록의 역할을 한다. 즉, 플레이어는 쌓여있는 유닛들 중 가장 가까운 유닛을 다른 열로 옮기게 되는 것이다. 만일 같은 유닛이 세로로 3개 붙으면 해당 유닛들로 공격대가 형성되고, 가로로 3개가 붙으면 벽을 만든다. 공격대는 말 그대로 상대방 캐릭터를 공격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벽은 자기 캐릭터와 유닛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공격대가 벽과 유닛들을 뚫고 화면상에 보이는 최종 방어선 (상하단, HP바 옆으로 이어진 선)에 닿게 되면 캐릭터에게 직접 데미지를 입힌다. 최종적으로 HP가 0이 된 캐릭터는 전투에서 패배한다.

단, 이것이 기존의 게임들처럼 실시간으로 진행되지는 않고 턴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매 턴마다 플레이어(및 상대 NPC)는 3점의 행동 포인트를 얻고 1점의 행동 포인트를 소모해 블럭을 옮기거나, 원하는 블럭 하나를 제거하거나, 유닛을 추가로 불러올 수 있다. 블럭을 제거할 때엔 위치에 관계 없이 원하는 블럭을 제거할 수 있고, 제거로 인해 벽이나 공격유닛이 형성되면 1점의 행동 포인트를 획득한다. 또한 유닛은 무제한으로 추가할 수 없고 죽거나 공격에 소모됨으로 인해 전장에서 제거된 유닛 들만 한꺼번에 데려올 수 있다.

공격대는 결성 즉시 공격하지 않고 정해진 턴이 지난 후에 공격에 들어간다. (화면상에 보이는 2,1이 각 2턴과 1턴 뒤에 공격한다는 의미이다.) 같은 색깔의 공격대가 같은 타이밍에 공격하게 되면 연쇄가 발생해서 더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다. 또한 공격대는 전방으로 직진하는데, 만일 전방에 벽이나 유닛이 있다면 이들과 전투를 벌이며 이 과정에서 공격대의 HP가 0이 되면 소멸한다. (따라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이 외에 플레이어 캐릭터 본인의 공격 스킬로 상대를 공격할 수도 있는데 사실 이 게임에서 M&M 스러운 구석이 있다면 바로 이 부분일 것이다.(정확히는 HOMM스러운 부분이지만)

기존의 Pull & Push RPG는 테트리스나 뿌요뿌요와 마찬가지로 신중한 고민 보다는 빠른 시간 내에 패턴을 찾는 유형의 플레이를 추구하는 퍼즐이었다. 하지만 M&M COH는 이에 직접적인 대결 구도와 턴제를 도입함으로써 마치 장기나 체스를 두는 것 처럼 전체 퍼즐을 내려다보며 한수 한수 신중히 움직이는 퍼즐로 바꿔버렸다. 아예 전혀 다른 퍼즐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퍼즐이 매우 재미있다.


3. 있을 건 다 있는 RPG 요소

그렇다면 이번엔 RPG 요소를 한번 찾아보자.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RPG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성장요소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유닛들 모두 고유의 HP와 능력치를 지니고 있다. 전투를 통해 경험치를 얻고, 레벨이 오르면 이들 능력치가 성장하는데 유저 임의로 능력치를 분배할 수는 없다. 또한 아이템을 착용할 수 있는데 각 아이템별로 다양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탐험 단계에서는 화면상에 보이는 각 스팟들을 클릭함으로써 해당 스팟으로 이동하며, NPC와의 대화가 가능하다. 또한 퀘스트를 진행할 수 있는데 메인 퀘스트외에 서브 퀘스트도 존재하고 ! / ? 로 퀘스트 여부를 표시하는 등 현대 RPG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특성은 다 지니고 있다.


4. 웰메이드 퍼즐 RPG

(3월의 라이온. 우미노 치카 작)

시간을 들여 캐릭터를 성장시켜가며 감정을 이입하는 RPG는 원래 인기 있는 장르이다. 주어진 문제를 풀어나가는 퍼즐 또한 인기 있는 장르이다. 재미있는 장르와 재미있는 장르를 합치면 무지 재미있는 장르가 나올 것 같지만, 사실 이 배합을 찾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잘 만든 퍼즐 RPG를 만난다는 것은 매우 반갑고도 유쾌한 경험이다. 아마존에서 연말 세일하길래 산 것이었는데, 이걸 왜 이제야 플레이했는지 아쉽다.


by 고금아 2012. 12. 19.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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