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이 GDF에도 쓴 글입니다. 관련된 토론은 GDF에서 이어질 예정..(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비인기 게임이라 그닥 반응이 없을 것 같습니다. 퍼즈도라를 갖다 붙인게 어그로가 되어 흥행하기만을 기대할 뿐.....)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359

포스팅 할 땐 모바일용만 있는 줄 알았는데, 스팀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http://store.steampowered.com/app/234330/

계정 연동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0. 퍼즐 퀘스트 시리즈의 최신작

테트리스, 레밍즈, 비쥬얼드, 애니팡 등 전통적으로 퍼즐은 하드 코어 게이머는 물론, 캐쥬얼 유저들에게도 고루 어필할 수 있는 장르였습니다. 그리고 RPG는 캐릭터의 성장을 통해 꾸준히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를 아주 강력하게 부여할 수 있는 장르죠. 그리고 퍼즐 앤 드래곤(이하 퍼즈도라) 덕분에 우리 모두는 이 둘의 결합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YS 등과 같은 액션 RPG나 창세기전 등과 같은 SRPG가 80년대에 이미 등장했던 반면 퍼즐 RPG는 21세기에 들어서고나서야 개척됩니다. 액션이나 전략과 달리 퍼즐과 RPG의 성장이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었죠. 퍼즐은 당면한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게임이고, RPG의 성장은 계속된 플레이가 중첩되어 캐릭터가 점점 강력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성장을 해서 퍼즐이 쉬워진다면 그것도 이상하고, 그렇다고 성장 했지만 메인 플레이인 퍼즐은 그대로라면 그것 또한 이상하지요. 지금은 소드 앤 포커, 마이트 앤 매직 클래쉬 오브 히어로즈, 퍼즈도라 등 다양한 게임들이 퍼즐을 전투로 대체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이 방법론을 사용하고 퍼즐 RPG라는 장르를 개척한 것은 퍼즐 퀘스트였습니다.


위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퍼즐 퀘스트는 말 그대로 RPG의 모든 것과 매치3 퍼즐의 모든 것이 함께 망라되어있는 용광로 같은 게임입니다. 아이템을 사고 육성하고 모험을 떠나고 대화하는 모든 행위는 RPG인 반면, 전투는 비쥬얼드 스타일의 매치3 퍼즐로 구성되어있지요. 색색깔의 젬을 모은 뒤 해당하는 젬으로 마법을 쓰거나 해골 젬을 맞출 경우는 적을 직접 공격합니다. 그리고 무기와 방어구 등의 아이템들이 이 전투에 능력을 더해주지요. 지금 보기엔 너무나 당연한 구성입니다만, 등장 당시만 해도 굉장히 획기적인 컨셉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퍼즐 RPG가 대중화된 지금, 오히려 퍼즐 퀘스트의 이름은 듣기 힘들어졌습니다. 퍼즐 퀘스트의 성공 이후로 내놓은 속편들이 죄다 성공적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퍼즐 퀘스트 갤럭트릭스는 일단 배경이 SF였고(SF가 뭐가 어때서!!! 라지만 사실 SF 소재로 성공한 게임이 드물죠) 퍼즐이 6각형 맵으로 바뀌면서 퍼즐을 풀기도 어렵고 그래서 운이 너무 크게 작용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제가 6각형 퍼즐을 좋아하지 않는 관계로 직접 플레이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이 영상만 봐도 도대체 블록이 어떻게 채워지는지 이해할 수가 없네요.


퍼즐퀘스트2는 다시 중세풍 판타지와 정방형으로 돌아왔습니다만 RPG 파트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RPG의 꽃이라고 할 수 있을 던전 탐사는 사실 1편에선 퍼즐 그 자체로 대체되었습니다만, 이번엔 그 던전 탐사 자체를 RPG 파트의 핵심으로 내세운 것이죠. 그리고 보다 세분화된 아이템 슬롯과 다양한 아이템(및 그 속성) 등을 보면 이건 그냥 디아블로라는 생각 밖에 안듭니다. 물론 디아블로는 훌륭한 게임입니다만 디아블로의 전투는 기존 RPG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된다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나하나의 전투가 퍼즐인데 거기에 디아블로까지 얹으니 게임이 상당히 무거워졌죠. 여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풍이었던 전작과 달리 땀내 후끈 나는 양키 스타일로 바뀌면서 캐주얼한 게이머들에겐 상당히 어필하기 힘든 스타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덤으로 아이폰용은 말 그대로 그냥 단순 포팅이라 손가락 조작에 전혀 특화되어있지 않았죠. 퍼즐의 젬을 제외한 모든 버튼들이 너무 작아서 정말 누르기 힘겨웠습니다.

2에서 굉장히 실망한 터라, 사실 신작을 기대하고 있진 않았는데, 얼마전 지인이 퍼즐 퀘스트 신작이 나왔다고 추천하시더군요. 바로 마블 퍼즐 퀘스트였죠.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이하 마아블로)를 플레이하고 있고 관련된 글도 많이 쓰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 전 딱히 마블 코믹스의 팬은 아닙니다. 마아블로도 애초에 아무 기대 안하고 그냥 신청한 베타가 되었다가 디아블로 스타일의 게임 플레이가 좋아서 하고 있는 것이고, 페이스북 / iOS용 마블 얼라이언스도 페북 게임 치고 드물게 RPG라서 좀 하다가 관둔 것이지요. 마블 워 오브 히어로즈는 당시 모바일 CCG 연구 보고서를 쓰기 위해 플레이했었고 끝나자마자 지웠습니다.

쓰고 보니 참 설득력이 없긴 합니다만, 어쨌든 전 마블 게임의 경우 대부분 '마블' 게임이라기 보다는 마블 '게임'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합니다. 이 마블 퍼즐 퀘스트 역시 '퍼즐 퀘스트 신작인데 스킨이 마블'이라는 느낌으로 게임을 설치했죠.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20불을 현질한 뒤였습니다. 이거 굉장히 쉽지 않은게, 전 아이튠즈 미국 계정을 사용 중입니다. 미국산 신용카드가 없기 때문에 오픈 마켓에서 기프트카드를 사서 충전하고 있지요. 기프트카드는 상품권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무통장 입금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구매할 수 없습니다. 오픈 마켓에서 검색한 뒤 주문하고, 모바일 뱅킹으로 돈을 송금하고, 코드 찍힌 메일 기다리고, 다시 이걸 모바일에서 언락하는 이 귀찮은 프로세스는 1년에 한두번 있을까 말까한 일입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 모든 난관을 헤치고 20불을 질러버렸단 말이죠.

그러니 이 게임을 여러분께 소개하지 않을 도리가 있겠습니까.


1. 보다 캐주얼해진 퍼즐 전투

우선 퍼즐 구조부터 전작들과는 약간 다릅니다. 기본적인 비쥬얼드 룰(애니팡 룰)을 따라 매 턴 마다 젬 하나를 그 상하좌우 1칸 이내의 다른 젬과 서로 바꿀 수 있고, 같은 젬이 셋 이상 가로 또는 세로로 이어지면 해당하는 젬들은 사라지며(매치), 매 턴 마다 최소 1개의 매치는 만들어야 한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4개를 일렬로 이으면 턴을 상대에게 넘기지 않고 추가턴을 받았던 1,2편과 달리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추가턴 없이 그 4개를 포함하는 한줄을 통째로 날립니다. 가로로 4개가 이어졌다면 한 행(Row)을, 세로로 4개가 이어졌다면 한 열(Column)을 날리죠. 5개의 보석이 연결되면 앞서 언급한 추가턴을 받고 하나의 크리티컬 젬(위에 M)을 얻게 됩니다. 크리티컬 젬은 와일드카드처럼 아무 젬으로든 연결될 수 있고, 매치가 이루어지면 크리티컬 데미지를 줍니다. 

퍼즐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전투 방식 그 자체에 대한 것입니다. 1편이든 2편이든 기본적으로 퍼즐 퀘스트에서 젬을 없애서 데미지를 주는 것은 해골 젬을 없앴을 때 뿐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공격은 퍼즐 보드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킬이나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고, 퍼즐은 이 스킬/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는 행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죠. 각 스킬이나 아이템을 사용하기 위해선 각종 색상의 마나가 일정량 이상 필요하고, 젬을 없애면 해당하는 젬의 색깔에 해당하는 마나를 확보할 수 있다는 구조였습니다.

퍼즐 퀘스트에서도 젬을 매치시키면 스킬 사용에 필요한 자원인 AP(마나)를 얻는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적에게 직접 데미지를 주기도 합니다. 각 캐릭터와 레벨에 따라서 각 젬이 얼마의 데미지를 주는지는 다릅니다만, 어쨌든 젬을 없애는 것 자체로 데미지를 줍니다. 매 턴 데미지를 주고 받기 때문에 전작들에 비해 게임 페이스가 빠릅니다.



 

스킬 또한 이전보다 발동조건이 단순해졌습니다. 퍼즐퀘스트 1,2만 하더라도 각 스킬들은 2~3가지 색상의 마나를 조합해서 사용해야 했습니다. 파이어볼을 쓰려면 빨간 마나 10 + 파란 마나 3 + 노란 마나 2. 이런 식이었죠. 하지만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각 스킬은 하나의 마나만을 사용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아이언맨의 리펄서 블라스트의 경우 빨간 AP 10개만 모으면 사용할 수 있죠. 옆에 보이는 노란 젬, 파란 젬은 각각 그 색깔의 마나를 사용하는 다른 스킬들입니다.

오른쪽 스크린샷을 보시면 퍼즐 보드 위에 4개의 동그라미와 막대기가 보일 겁니다. 좌측부터 3개의 동그라미는 3명의 히어로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막대기들은 해당하는 각 히어로가 가지고 있는 스킬들과, 그 스킬을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AP의 종류(색깔), 그리고 그 AP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나타내죠. 각 히어로들은 최대 3개의 스킬을 가질 수 있는데 제일 왼쪽에 있는 토르(망치)의 경우, 현재 스킬이 1개 뿐이며 이 스킬은 녹색 AP를 소모합니다. 이제 절반 가량 채웠네요.

마지막 구슬은 색상이 없는, 환경 젬을 상징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선 파란 빌딩이 그려진 젬들이죠. (7젬 아닙니다.) 이 젬은 흰색 AP를 생산하는데 히어로 스킬은 이 흰색 AP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매 전투마다 배경이 정해지고, 해당하는 배경에 따라 이 흰색젬으로 쓸 수 있는 스킬이 달라지죠. 위에선 도시가 배경인데, 스킬을 사용하면 핫도그를 먹고 히어로들이 50점의 HP를 회복합니다.


2. 하지만 사실 더 깊어진 게임 플레이

 

 

이렇게 써놓으면 마치 게임이 이전보다 굉장히 간략화된 것 같습니다만, 사실 게임플레이는 이전보다 훨씬 풍성해졌습니다. 아까 스크린샷을 보시면 각 젬 마다 기호가 그려져있고, 이 기호는 3개의 히어로 아이콘들과 일치합니다. 이 기호는 해당하는 젬을 맞췄을 때 어느 히어로가 공격을 할지를 나타냅니다. 각 히어로들은 고유의 HP와 각 색깔의 젬을 맞췄을 때 상대에게 주는 데미지가 각각 달리 설정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각자 고유의 스킬들을 가지고 있고, 각 스킬들은 필요한 AP의 종류와 양이 다르죠.

위에 보이는 아이언맨 마크 40은 현질로 뽑아낸 3성 히어로로 분명히 강력합니다. 하지만 노란색과 빨간색 이외의 젬에 대해선 공격력이 떨어지고, 빨간색, 노란색, 파란색의 AP에 대해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퍼즈도라에선 색상만 맞으면 해당하는 색상의 모든 몬스터가 공격하기 때문에 단색덱과 같은 전략도 가능합니다만, 마블 퍼즐 퀘스트에선 해당하는 색상으로 가장 아프게 때릴 수 있는 히어로만 공격하기 때문에 각기 색깔에 대해 강점을 가진 파티를 잘 짜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파티를 짜는 전략 뿐만 아니라, 게임 플레이에서도 조금 깊게 들어가면 생각할 여지가 많습니다. 상단을 다시 한번 보시면 좌측에 3명의 히어로가, 우측에 3명의 악당이 배치되어있고 이 중 각 1명씩이 강조되어있습니다. 가장 앞에 나와있는, 가장 크게 나타나는 히어로나 악당이 바로 공격을 받을 대상이 됩니다. 플레이어는 악당들 중 누구를 때릴 지 선택할 수 있지만, 악당들은 가장 앞으로 나와있는 히어로를 공격합니다. 따라서 HP가 가장 약한 놈을 먼저 팬다거나, 가장 스킬이 아픈 놈을 먼저 패서 없애는 등의 전략이 가능합니다. 물론 스킬의 대상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에 찝어서 스턴을 건다거나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는 공격을 받을 히어로를 직접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단지 마지막으로 공격한 캐릭터가 앞으로 나오죠. 단순하게 플레이한다면 그냥 보이는 대로, 콤보가 많이 나올법한 대로 젬을 매치시킬 수도 있습니다만 좀 더 복잡하게 생각하자면 공격이 끝난 후 누가 공격을 받을지도 의식해야 합니다. 좌측 스크린샷 기준으로 봤을 때 만일 노란색 젬으로 매치를 만든다면 (물론 위 스크린샷에선 불가능합니다만) 아이언맨이 아프게 때린 뒤에 제일 앞에서 남겠죠. 그런데 아이언맨은 현재 HP가 가장 적습니다. 위 스샷에선 292점이지만 만일 HP가 간당간당한 상태라고 생각해보죠. 그때도 과연 자신있게 노란 젬을 맞출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소개한 것 만으로도 풍성한 게임 플레이이긴 합니다만, 이정도에서 그쳤다면 전 이렇게 긴 리뷰를 쓰지 않았을 겁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는 기존의 매치3 퍼즐과 완전히 차원이 다른 수준의 게임플레이를 제공합니다. 매치3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 법한 것이죠. 바로 특수 타일입니다. 오른쪽 스크린샷에서 숫자가 붙은 해골이나 주먹이 그려진 타일들을 의미합니다.

해골이 그려진 특수 타일들은 쉽게 말해 시한폭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타이머가 0이 되기 전까지 없애지 못하면 정해진 특수효과 - 주로 데미지를 주고 주변 타일들을 없앱니다. -가 발동됩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굉장히 평범해 보이겠죠. 이런 폭탄이야 매치3에서 흔히 보는 것이잖습니까. 문제는 이런 타일을 적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겁니다. 플레이어의 스킬 중에도 이런 타이머를 세팅하는 스킬들이 있고, 타이머가 0이 되면 효과가 발동해서 상대에게 데미지를 줍니다. 이 스킬을 사용하고 나면 플레이어들은 물론 본인도 해당 타일을 없애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AI가 해당 타일을 없애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플레이를 해야겠죠.

주먹 타일은 보드에 남아있는 동안 타일 하나당 1점씩의 데미지를 적에게 줍니다. 이 타일들 역시 가급적이면 계속 남겨야 합니다. 방패 타일들은 같은 방식으로 데미지를 막아주고, 칼 타일들은 추가 데미지를 줍니다. 

이제까지 매치3 퍼즐의 게임 플레이는 타일들을 '없애는' 플레이를 중심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젬을 많이 없애라(비쥬얼드), 특정한 종류의 젬을 없애라 (주키퍼), 젬을 빨리 없애라(애니팡), 특정한 위치의 젬을 없애라(쥬얼 퀘스트), 위에서 나온 것들을 다 하면서 방해하는 젬들을 같이 없애라(캔디 크러쉬 사가) 등등. 하지만 특정한 타일을 없애지 않고 남기는 것을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포함시킨 게임은 마블 퍼즐 퀘스트가 처음입니다.

비쥬얼드가 처음 나왔을 때 '게임비평'은 퍼즐 게임의 새로운 역사를 연 게임이라고 평한 적이 있습니다. 이전까지 모든 퍼즐 게임에서 한번에 여러개의 타일이나 블럭 등을 날려버리는 플레이들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구조였습니다. 플레이어가 원한 대로 연쇄를 만드는 것은 어렵고 이 과정에서 게임에 실패할 수 있지만 어쨌든 성공하기만 하면 막대한 점수로 보상받는 것은 물론, 타일이나 블럭들이 날아가면서 퍼즐의 난관 또한 상당히 해결됩니다. 하지만 비쥬얼드의 오리지널 플레이는 더 이상 맞출 젬이 없으면 게임이 끝나기 때문에 당장 매치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뒤에 계속해서 매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량 연쇄가 발생하게 되면 점수는 높아지지만 오히려 게임을 계속 클리어해나가기 어려워지는 역설이 발생하지요.

마블 퍼즐 퀘스트의 특수 타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해가 되는 특수 타일을 없애는 것은 이전부터 존재했던 게임플레이지만, 나에게 도움이 되는 특수 타일을 없애지 않도록 보존하고, 또한 상대가 없애지 못하도록 방해해야한다는 개념은 매치3 퍼즐 게임 플레이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입니다. 이 것 하나 만으로도 마블 퍼즐 퀘스트는 칭송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3. PVE 파트

 

 

퍼즐 파트가 상당히 강화된 반면 퀘스트 파트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던전을 탐험해야했던 퍼즐퀘스트2는 물론, 거점 단위로 이동하던 퍼즐퀘스트1에 비해서도 굉장히 간략하게 축소되었습니다. 게임은 챕터로 나누어져있고, 각 챕터들은 여러개의 배틀로 쪼개져있습니다. 각 배틀들 사이엔 선/후 관계가 있어 특정 배틀을 먼저 클리어해야 다음 배틀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분기 처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사실 어느 쪽을 먼저 고르든 아무런 상관은 없습니다. 그리고 각 배틀 앞 뒤로는 만화 스타일의 짧은 대화씬이 들어가지요.

기존의 퍼즐 퀘스트 시리즈가 콘솔 게임에 바탕을 둔 구성이었다면, 마블 퍼즐 퀘스트는 바하무트, 확밀아, 퍼즈도라 등 탐색과 스토리, 분기 보다는 진행 그 이외엔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바일 게임의 구성입니다. 특히 기존 시리즈들과 달리 이미 깼던 배틀을 다시 플레이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각 배틀을 클리어하고 나면 히어로들의 레벨을 올리는데 사용되는 ISO-8, 히어로 하나를 뽑을 수 있는 고용 토큰, 히어로 보유 한도를 늘리거나 히어로를 뽑는데 쓰이는 히어로 포인트, 특정 히어로 카드 자체 등 다양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각 배틀 마다 이들 중 최대 4가지의 보상을 내걸죠. 뭘 받을지는 랜덤입니다. 즉, 모든 보상을 받기 위해선 최소 4번 이상 클리어해야 합니다. 위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녹색 체크가 모든 보상을 다 받았다는 의미이고 노란색 도돌이표는 한번 이상 클리어 했지만 모든 보상을 받진 못했다는 뜻이죠. 실제로는 꽝도 존재하기 때문에 굉장히 여러번 플레이해야 합니다.



 

이런 식의 구성을 가진 게임들은 보통 에너지나 하트, 행동력 등과 같은 방식으로 컨텐츠에 접근하는 빈도를 통제함으로써 컨텐츠가 지나치게 빨리 소모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수익을 발생시킵니다. 하지만 마블 퍼즐 퀘스트는 이와 달리 히어로들의 HP를 통해 직접적으로 통제합니다. 전투 중 입은 부상은 전투가 끝난 후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회복됩니다. 부상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전투에 참가시킬 수 있지만 그만큼 전투 중 사망할 확률이 높아지겠죠. 사망한 히어로는 전투에 참가할 수 없습니다.

아주 느긋한 플레이어라면 쉬엄 쉬엄 플레이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 플레이어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아이템을 써서 즉시 회복 시켜주거나 (당연히 공짜로도 얻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론 캐쉬템입니다.) 더 많은 히어로를 보유해야겠죠. 그러려면 히어로 보유 한도를 늘려야 할 테구요. 당연히 둘 다 캐쉬템이지만 퍼즈도라 처럼 돈을 쓰지 않아도 게임 중 캐쉬 포인트를 찔끔찔끔 얻을 수 있습니다.


4. PVP 파트


 


마블 퍼즐 퀘스트는 특이하게도 PVP 컨텐츠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엔 실시간으로 대전하는 줄 알았으나, 사실은 다른 플레이어의 덱을 가지고 AI가 플레이합니다. 시스템이 골라주는 5명 중 한명을 상대로 플레이하게 되고, 상대와의 전력 격차에 따라 승리시 포인트를 얻습니다. 이 포인트를 가지고 순위를 메기고, 일정 포인트에 도달할 때 마다 또한 보상을 받습니다. 어쨌든 상대를 고를 수 있기 때문에 난이도를 조절할 수 있고, 보상이 상당히 후하기 때문에 스토리에서 막혔을 땐 이렇게 PVP를 뛰어서 얻은 보상으로 성장시키는 것도 좋은 컨텐츠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힘은 책임과 함께 오는 것 처럼, PVP가 PVE보다 마냥 유리하지는 않은 것이, PVP는 보상이 큰 만큼 히어로들이 부상을 더 자주, 크게 입습니다. PVE는 보스전에서만 턴을 주고 받습니다. 자코들은 타이머 타일을 설치해서 데미지를 주긴 해도 기본적으로 턴을 가져가지 않으므로 기본 공격도 없습니다. 타이머 타일들을 계속 제거해나간다면 데미지를 전혀 입지 않고 클리어할 수도 있지요. 하지만 PVP는 턴을 주고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데미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더 잘 키운, 더 희귀한, 더 강한 히어로를 만나기 때문에 현질의 욕구도 같이 올라간다는 것 또한 중요하지요.


5. 히어로의 성장


 

 

사실 이 게임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바로 성장에 관한 부분입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에서 히어로는 레벨과 스킬, 2개의 축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이 둘이 아주 사악한 방법으로 서로 연결되어있지요.

왼쪽 스크린샷은 레벨 성장입니다. 각 레벨별로 젬에 대한 데미지, HP 등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레벨은 많이 사용한다거나, 다른 히어로를 갈아먹이는 것이 아니라 게임 중 얻는 ISO-8을 먹여야 오릅니다. 288이라고 적혀있는 바로 저 보라색 수정이지요. 그런데 ISO를 먹이는 RAISE LEVEL 버튼이 비활성화되어있습니다. 그리고 141이라고 적혀있는 레벨 캡 외에 좌측에 별도로 최대 레벨이 18이라고 적혀있지요. 도대체 둘의 차이는 뭘까요?

그리고 오른쪽 스크린샷은 스킬 성장인데, 파란색 AP를 먹는 Ballistic Salvo 스킬은 스킬 레벨도 없고, 현질로 올리는 버튼도 아예 빠져있습니다. 과연 이 스킬은 몇레벨이 되어야 열리는 걸까요? 정답은 '그런거 없다' 입니다.

마블 퍼즐 퀘스트에서 각 히어로는 최대 3가지의 스킬을 가질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1개의 스킬만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 중 무엇을 가지고 있을지는 랜덤이지요. 다른 스킬을 장착한 같은 히어로의 기본 카드를 먹이면 해당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오른쪽 스크린샷의 경우는 빨간색 스킬을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에다가 노란색 스킬을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을 먹인 결과물인 겁니다. 파란색 스킬을 쓰려면 다시 파란색 스킬 쓰는 아이언맨 마크 40을 얻어서 갈아먹여야겠지요.

또한 이 스킬의 레벨은 ISO를 먹여서 올리는 레벨과 별도로 올라갑니다. 새 스킬을 얻을 때와 마찬가지로, 같은 히어로 카드 중에서도 해당 스킬을 가지고 있는 기본 카드를 얻어서 갈아 먹이거나, 돈을 먹여야 합니다. 별 1~2개짜리 싸구려 카드는 스킬 하나 올리는데 드는 비용이나 히어로 하나 뽑는 비용이나 비슷했는데, 별 3개짜리 레어 히어로는 스킬 하나 올리는데 드는 비용이 무려 10달러에 육박합니다. 그나마 이미 갖고 있는 스킬은 돈으로라도 올릴 수 있지만, 위의 파란 스킬 처럼 아직 배우지 못한 스킬은 돈으로도 못채웁니다.

 

 

또한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이, 히어로라고 다 같은 히어로가 아니라는 겁니다. 모던 호크아이, 클래식 호크아이 등 다양한 종류의 히어로가 있으며 이들은 희귀도나 성능이나 스킬 등이 모두 각각 다릅니다. 갈아 먹여서 스킬 올리려면 자신이 갖고 있는 바로 그 카드가 필요합니다. 별이 많을수록 - 희귀할 수록 카드 먹여서 스킬 올리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그나마 아이언맨 마크 40는 키울만 합니다. 아이언맨 마크 40이 무조건 나오는 뽑기가 1100 포인트거든요. 어차피 돈 먹여서 키울려고 해도 1200씩 드는데 블루 노리고 한번 땡겨볼만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스킬 레벨을 올릴 때 위에 나와있는 아까 언급한 최대 레벨도 함께 올라간다는 겁니다. 레벨 캡은 이렇게 스킬 먹여서 올릴 수 있는 최대 레벨의 한계가 되는 거지요. 물론 돈을 안내도 히어로를 얻을 수는 있습니다. PVP 포인트 보상이나 PVE 배틀 보상으로 히어로를 직접 받을 수도 있고, 히어로 뽑기 토큰을 받을 수도 있으며, 꽝으로라도 무조건 얻는 ISO로 히어로 뽑기에 도전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연히 원하는 히어로가 뽑혀 나온다는 보장이 없지요. 마크40 같은 레어 히어로라면 더더욱 말입니다.

지금 후드나 매그니토 같은 빌런들도 뽑을 수 있는데, 이걸 안뽑은게 정말 다행입니다.


6. 퍼즈도라에 대한 양이(洋夷)들의 대답

사실 퍼즐 퀘스트 갤럭틱스나(안해봤지만) 퍼즐퀘스트2의 경우, 게임 플레이 자체가 이전 퍼즐 퀘스트보다 나아졌다고 보긴 힘듭니다. 소드 앤 포커나 룬스펠도 마찬가지구요. 실제로 퍼즐과 RPG에 대한 게임플레이 자체를 발전시킨건 퍼즈도라입니다. 파티 구성, 육성, 진화 등 퍼즐과 RPG 양쪽에서 퍼즐 퀘스트와는 확연히 구분되고 더 깊은 게임플레이를 보였죠.

마블 퍼즐 퀘스트가 여기에 각 색깔의 젬으로 가장 아프게 때릴 수 있는 단 한명만이 때리게 함으로써 다른 방식의 파티 구성을 만든 건 수평적 확장일 수 있겠습니다만, 그 한명이 다음 공격을 받도록 만듦으로써 공격 뿐만 아니라 방어도 고려하게 만들었고, 특수 타일들을 통해 타일을 없애는 것 뿐만 아니라 지키는 것 까지도 게임 플레이에 포섭한 점은 분명 수직적 확장입니다. 퍼즈도라의 성과가 눈부신 만큼, 마블 퍼즐 퀘스트의 성과도 칭송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 사실 대부분은 마블 게임이라고 생각하겠죠. 그리고 특히 국내에선 마블 게임이라서 더 안할 테구요.

다만 게임 플레이 뿐만 아니라 F2P 유료화 모델과 이에 따라오는 성장 / 육성 시스템이 덩달아 발전한 것은 유저 입장에선 좀 아쉽습니다. 퍼즈도라의 복잡한 진화 시스템과 달리 깔끔하고 알기 쉬운 것 까지는 참 좋은데 그 결과물은 퍼즈도라보다 더 사악하면 더 사악하지 덜하지 않은 물건이 나왔네요.

뭐 어쨌든, 게임플레이로나 유료화모델로나 이 게임이야말로 퍼즈도라에 대한 양이들의 대답이 아닐까 싶습니다.

by 고금아 2013. 12. 6. 04:33

스팀 가을 세일 기간 동안, 평가가 좋다는 말에 덥석 사버린 Gone Home 감상입니다. 원래는 리뷰를 쓰고 싶었습니다만, 누군가의 표현을 차용하자면, 리뷰 할 도리가 없군요.



게임은 1년여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케이틀린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됩니다. 자동 응답기에 늦은 밤 도착하고 공항에서 셔틀 버스를 탈테니 마중나올 필요 없다고 메시지를 남기긴 했습니다만, 어머니는 커녕 아버지도, 여동생도 보이지 않습니다. 케이틀린은 다들 어디에 있는 것인지,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아내야 합니다.



Gone Home은 위와 같이 케이틀린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마우스 이동과 WASD 키를 사용해 FPS 게임 처럼 자유롭게 집 안을 이동할 수 있고, 원하는 곳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문을 열거나 닫거나 물건을 집거나 보는 등의 모든 행위는 마우스 클릭으로 이루어지지요. 그리고 사실 이게 사용자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사실 이 Gone Home을 게임으로 보아야하는지는 상당히 의문스럽습니다. 물건을 줍고 소지품을 사용한다거나, 사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퍼즐을 푸는 등의 모든 게임 플레이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단지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널려있는 메모나 노트를 보는 것이 유저가 할 수 있는 전부지요. 물론 중간 중간 잠겨 있어 지나갈 수 없는 문과 같은 장애물도 존재합니다만, 이들은 모두 이동의 결과로 그냥 열립니다.

등장 인물 없이 노트나 메모만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하는 스토리 텔링은 이미 시스템 쇼크 2에서 선보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Gone Home에서 노트와 메모에 담긴 이야기들은 사용자가 스토리를 유추하기 위한 용도가 아닙니다. 메모를 건드리면 난데없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지금 이 집에 있지 않은 다른 등장인물의 독백을 재생되고 메모는 이 독백을 보충할 뿐이죠. 사실 이 독백이 상당히 생뚱맞기 때문에 주인공이 혹시 싸이코메트러가 아닌가 의심스럽습니다.

게임플레이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고, 스토리텔링 그 자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선 To The Moon과 비교되긴 합니다만 To The Moon은 유치하나마 미니게임 퍼즐이라도 있었던 반면, Gone Home은 그나마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 미니 게임을 떼놓고 보자면,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라는 점은 동일하지요. 그리고 To The Moon이 3인칭 시점에서 대사와 연출로 그 스토리를 전달한 반면 1인칭 시점으로 몰입감을 높이고 어떠한 연출 없이 독백으로 풀어간다는 점은 뚜렷한 차이입니다.

게임플레이를 떠나서 과연 Gone Home이 제공하는 경험은 만족스러운지를 본다면, 좀 애매합니다. 스토리를 전달하는 방식 자체는 조금 신선하긴 합니다만 결정적으로 스토리 자체의 스케일이 작고, 너무 단조롭습니다. 좀 신파긴 하지만 To The Moon의 스토리는 굉장히 완성도가 높습니다. 작고 간단한 일로 시작해서 반전과 큰 위기를 거쳐 최종적으로 다시 한번 반전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죠. 스토리 자체도 누구나 코끝이 찡해질만큼 서정적이면서 또한 유저들이 몰입할 수 있구요. 하지만 Gone Home은 그 구조가 상당히 단순하고 중반부에 이미 충분히 예측 가능하며 결말에 이르러선 허탈해집니다.

게임으로든, 스토리텔링 소프트웨어로든 $19.99는 폭리입니다. 플레이시간이 80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요. 하지만 $5 이내로 구입하실 수 있다면 뭐 VOD로 그냥저냥한 영화 한편 본다고 생각하고 즐길만은 합니다.


by 고금아 2013. 12. 5. 02:42

1. 프리덤 포스 : 프리덤 팩 $3.74 bit.ly/1iiPUpE
바이오쇼크 시리즈의 Irrational Games가 System Shock 2 이후에 개발한 RTS + RPG 게임입니다. 슈퍼 히어로 만화가 컨셉이라 말풍선, 컷 분할 등 만화적인 연출이 많이 들어가있죠.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은 모두 오리지널인데, 각각의 히어로가 개성이 있고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저가 직접 자신이 원하는 슈퍼 히어로를 만들 수도 있지요.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길에 놓인 자동차를 집어던진다거나 전봇대를 뽑아서 휘두른다거나 하는 식으로 게임 내의 모든 배경과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 건물 마저도 부수고 지나갈 수 있지요. 이게 12년 전 게임이라는 걸 감안하면 참 놀랍습니다.


2. F1 Race Stars F1 Race Stars $11.99 bit.ly/1iiOrQb
F1 라이센스를 가지고 있는 코드 마스터즈에서 만든 괴작. 쉽게 설명하자면 카트 라이더에 F1 스킨을 입힌 물건입니다. 일단 베텔, 알론소 등 실제 F1 드라이버들이 등장하고 이들로 게임을 진행하는데 각 드라이버 마다 특징이 뚜렷합니다. 예를들어 베텔은 슬립 스트림에 들어가면 자동으로 부스터를 얻지요.. (사기..) 그 외에 피트에 들어간다거나, 연료가 떨어지면 멈추지만 연료가 또 너무 많으면 느려지기 때문에 연료를 잘 관리해야하는 모드가 있는 등 F1을 소재로 한 재미난 시스템들이 아기자기하게 많이 갖춰져 있습니다. 물론 트랙은 카트라이더 처럼 초현실적인 배경이지요.

메타 크리틱에 현혹되지 마시고, 게임의 본질만 보자면 매우 훌륭한 캐주얼 F1 레이싱 게임입니다. 그런데 사실 정가 $39.99는 좀 비싼 감이 있지요. $11.99 정도면 가성비가 매우 뛰어납니다.


3. 알파 프로토콜 $7.49. bit.ly/1iiNmIb
이 건 지역 제한이 걸려있네요.. =_= 스타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들 2, 네버윈터 나이츠 2, 폴아웃 베가스 등 남이 만든 게임 속편 전문 제작사인 옵시디언의 첫(그리고 아직까지 마지막) 오리지널 IP로 매스 이펙트 엔진으로 만든 스파이 RPG입니다.

사 실 전투와 게임플레이 자체는 고만고만 합니다. 특히 전투는 살금살금 잠입하는 플레이와 람보처럼 닥치고 뛰어들어 다 쓸어버리는 플레이 둘 다 가능한데,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스토리텔링과 대화 선택지에 있지요.

모 든 상황에서 플레이어는 3가지 중 하나의 입장을 취할 수 있습니다. 능글맞거나, 단도직입적이거나, 아주 거칠거나. 전설적인 스파이 3B(제임스 본드, 제이슨 본, 잭 바우어) 중 하나를 연기하는 거지요. 그리고 선택지엔 타이머가 있어서 시간 내에 응답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됩니다. 그리고 등장하는 인물들도 70년대 액션 스파이물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전형적인 캐릭터들이지요.

전투가 좀 허술하긴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매스 이펙트와 같이 모던한 RPG 팬이라면 해볼만 합니다.


4. 시스템 쇼크2 $2.49. bit.ly/14axiNO
사세요. 바이오쇼크 시리즈 셋을 다 합친 것 보다도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추천 게임을 쎄워 BoA요.

by 고금아 2013. 11. 29. 11:41

GDF에도 쓴 글입니다. 관련 토론은 아마도 GDF에서 이어질 지도 모릅니다.




일주일 간격을 두고 배틀필드4(이하 배필4)와 콜 오브 듀티 고스트(이하 고스트)가 출시된지 약 20일 정도 지났네요. 처음엔 배필은 역시 배필이고, 고스트는 역시 콜옵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시간이 좀 지나고 나니 평가가 좀 바뀌었습니다. 배필은 역시 배필이지만 고스트는 콜옵 치곤 좀 이상하다 정도루요.

뭐 싱글은 콜옵 맞습니다. 오밀조밀하게 짜여진 스크립트들이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처럼 요란한 씬들을 구성하는 한편, 우주정거장이나 개와의 싱크로, 헬리콥터와 탱크 조종 등 중간 중간 새로운 경험들이 제공됩니다. 그런데 사실 싱글은 튜토리얼일 뿐, 우린 멀티 하려고 콜옵을 사지요.

그런데 멀티가 상당히 불쾌합니다. 분명히 콜옵은 콜옵인데 이전 모던 워페어 시리즈 만큼의 재미가 없어요. 새로운 맵과 새로운 무기들에 적응이 될 되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계속 해봐도 확실히 재미가 떨어집니다. 기본 요소는 콜옵 그대로인데 말이죠. 이걸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고스트의 멀티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콜옵 멀티의 기본적인 요소는 모두 간직하고 있지만 그 콜옵 멀티가 재미있는 이유는 모두 잃어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것도 '발전된' 게임 디자인을 통해서 말이죠.

우선 가장 기본적인 맵을 한번 보겠습니다. 전통적으로 콜옵의 멀티플레이 맵들은 서든 어택 처럼 고정된 기지를 지니는 대칭 구조가 아니라 비대칭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지가 없기 때문에 맵 곳곳에서 랜덤하게 스폰되지요. 사실 콜옵의 멀티가 재미난 이유의 90%는 바로 이 비대칭 구조 + 랜덤 스폰에서 옵니다. 대칭에 집착할 필요가 없으니 구석 구석 다양한 재미를 주는 레벨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고정된 스폰 포인트가 없으니 고정된 동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캠핑이 힘듭니다. 대칭구조 맵에선 '이 곳을 반드시 지나간다'는 것을 알고 캠핑하지만 콜옵에선 이 확신이 없지요. 그리고 전자는 뒷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후자는 항상 뒷치기의 위험에 노출됩니다.

대신, 콜옵의 맵들은 좀 더 크고 단순한 구조를 지닙니다. 맵이 큰 대신 스프린트 속도가 빨라서 조우 빈도는 높습니다. 그리고 고저는 있지만 일부 건물의 2층 정도를 제외하면 입체적인 구조물이 적고, 또 이렇게 내려다보는 장소는 모두 2중, 3중으로 뒷치기에 노출됩니다. 또한 야외 배경이라고 하더라도 구조물들로 인해 시야를 조절합니다. 넓고 짧게 보이거나, 좁고 길게 보이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죠.

그래서 전반적으로 콜옵의 멀티 플레이는 여타 다른 FPS 게임들에 비해 굉장히 캐주얼합니다. 어찌 보면 술래잡기라고 느껴질 정도루요. 이게 콜옵 시리즈의 멀티 플레이의 핵심 비결이었습니다. 하지만 고스트는 여기에 좀 더 게임 디자인 적인 기교를 부렸습니다.

고스트의 맵들은 콜옵의 맵들보다 좀 더 입체적입니다. 공간을 2~3개 층 정도 쌓아놓은 구조물이 많습니다. 기존 콜옵을 할 땐 미니맵에서 그냥 적의 위치만 보면 되었는데, 지금은 적의 위치 외에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도 따져봐야 합니다. 이렇게 맵이 입체적이다 보니 이 고저차를 이용한 플레이가 상당히 강조되어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또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고 사격하는 상황이 이전보다 훨씬 빈번하게 발생하죠.

또한 빛과 그림자에 의한 명암 효과도 이전 시리즈보다 두드러집니다. 이전엔 기본적으로 맵 자체의 조도가 일정했습니다. 실내 / 실외의 밝기 차이도 심하지 않았구요. 하지만 고스트는 이전 시리즈에 비해 명암 대비가 굉장히 뚜렷합니다. 같은 실외라고 하더라도 그림자에 숨어있으면 잘 보이지 않고, 또한 실외에선 실내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실내에서 실 외로 나갈 때 HDR 효과도 강합니다.

게임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런 고저차의 활용이나 명암 대비에 의한 은폐효과 등은 보다 전략적인 게임플레이를 유도하면서 결과적으로 게임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아니 최소한 (주력은 이미 다 떠났지만) 인피니티 워드는 기대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오히려 이전보다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불쾌해졌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전략적인 게임플레이를 최대한 활용하면 결국 캠핑 플레이가 나오니까요.

이전까지 콜옵 멀티의 재미는 단순하고 명쾌한 것에 있었습니다. 특히 죽음을 굉장히 쉽게 납득할 수 있다는 것이 포인트였죠. 딱히 숨을 곳도 없고, 숨는다고 유리하지도 않기 때문에 스나이퍼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캠핑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들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조우하니 보통은 총을 맞아도 정면에서 사격자를 바라보면서 맞고, 그래서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굉장히 쉽게 수긍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위치 아니까 랜덤 스폰해서 금방 그곳으로 달려가 복수를 할 수도 있었죠.

하지만 고스트는 다릅니다. 높고 어두운 곳에서 숨어있으면 일단 적에게 발견되기도 힘들고, 발견된다 한들 피아 식별에 시간이 소모됩니다. 그리고 시야 거리가 이전작들보다 넓고 길기 때문에 접근하는 공격자보다 대기하고 있는 캠퍼가 절대적으로 유리합니다. 그리고 맵이 이전보다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다시 리스폰 된 뒤에 원래 위치로 돌아가긴 커녕, 당장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기 힘듭니다. 그렇게 헤메면 이번엔 다시 다른 캠퍼를 만나서 사냥당합니다.

특히 저같은 SMG 개돌러들은 그냥 고기 과녁이 되어버렸죠. 캠핑 포인트에서 이미 에임 잡고 기다리고 있으니 소총이 에임들어가는 사이에 조준 없이 힙으로 먼저 쏜다는 SMG의 장점이 그냥 완벽하게 사라졌거든요. 그리고 언급한 것과 같이 시야가 넓고 길어진 것도 한몫 하구요.

레벨 디자인 뿐만 아니라 메타게임 디자인도 발전했습니다. 모던 워페어 2 까지만 해도, 특정한 종류의 총을 많이 쓰면 같은 종류의 다른 총이 언락되고, 새로 언락된 총을 많이 쓰면 도트 사이트나 소음기 같은 부착물이 언락되고 위장무늬가 언락됩니다. 그리고 많이 하면 PERK(장전 속도 증가, 레이더에 탐지 되지 않음과 같은 패시브 스킬들. 최대 4개 까지 장착 가능합니다.)들도 언락되고 뭐 그런 식이었죠.

고스트의 메타 게임은 다소 방식이 다릅니다. 레벨이 오르거나, 플레이를 잘하거나 하면 스쿼드 포인트라는 코인을 얻게 되고, 무기나 부착물 등은 이 코인을 소모해서 언락하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코인을 소모하지 않으면 어떤 무기나 부착물도 언락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코인이 충분하면 한번에 무기와 부착물 등을 여럿 언락할 수 있습니다. 모던3에선 새 총을 먼저 언락한 뒤에 이 총으로 또 한두시간 플레이를 해야 이 총에 도트 사이트를 달 수 있었지만 고스트에선 한방에 그냥 총 언락하고 도트 사이트도 달 수 있게 된 거죠. 하지만 PERK는 특정 레벨이 되면 자동으로 언락이 되고, 코인을 쓰면 바로 언락이 됩니다.

이전엔 언락하는 행위 자체는 게임플레이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부착물 달려면 좀 더 오래 플레이해야 하니 가끔 극복의 대상이긴 했지요. 언락해놓은 총기 / 부착물 / PERK / 킬스트릭 등을 어떻게 조합해서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군장을 꾸리느냐가 메타게임의 게임플레이였습니다. 하지만 고스트에선 언락하는 행위 자체도 게임플레이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어떤 무장이나 방어구를 먼저 풀 것인지, 특정한 PERK를 코인으로 먼저 풀 건지 등에 대해서도 전략을 짜야 한다는 거지요.

PERK의 편집도 보다 강화되었습니다. 이전엔 4가지 종류별로 1개씩의 PERK를 골라서 장착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젠 각 PERK마다 1~3점의 점수가 분배되어있고 총합 8점이 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유롭게 PERK를 조합하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메타게임을 강화해서 재미있어졌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게 아니니까 문제죠. 일단 언락에 대한 성취감 자체가 줄었습니다. 이전엔 설령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새로운 카모 패턴을 얻고, 부착물을 얻고, PERK를 얻는다는 성취감이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코인으로 지급하게 되니 내가 무언가를 언락했다는 것 자체가 크게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그냥 온라인 FPS에서 게임머니 조금 얻은 기분이에요. 특히 코인 지급 시점도 좀 애매한 것이, 이전 콜옵의 메타게임에서 장비와 부착물의 언락은 레벨과는 또 별개로 돌아갔습니다. 레벨업 하는 동안에 중간 중간 이것 저것 언락되어서 레벨업 과정에서도 성취감을 줬는데 코인은 이게 좀 애매합니다. 레벨이 오르면 어느정도 주는 건 맞는데, 그 중간에도 주긴 해요. 그런데 이게 언제 지급되는지가 좀 애매합니다. 이전엔 무기에도 숙련도가 있고 매 세션이 끝날 때 마다 무기에 대한 숙련도 진행상황을 보여줬는데 지금은 레벨 사이에 코인 지급 기준은 불분명합니다.

콜옵의 메타게임이 위대했던 것은 세션 단위로 진행되는 FPS 게임에서,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보상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게임플레이도 중요하지만 핵심은 동기부여라는 거죠. 하지만 고스트의 메타게임은 이 동기를 전혀 제공하지 못합니다. 월탱의 메타게임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고생고생해서 높은 티어의 전차를 하나 언락하고 나면 당장은 기쁘긴 한데 업글이 없어서 또 게임이 힘들어집니다. 그거 붙잡고 또 업글하고 살만해지면 다시 높은 티어의 전차를 얻는 식으로 계속 플레이를 유도하죠. 콜옵의 메타게임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새 총 하나 언락하면 다소 불편하지만 그거 들고 열심히 뛰어서 도트 사이트 붙이고, 소음기도 붙이고 또 그러다가 새 총 언락되면 써보고 이런 식으로 꾸준히 플레이를 유도합니다. 하지만 고스트에선 그럴 필요가 없어진 거지요.

이렇게 메타게임이 복잡해지면서,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에 대한 반응성도 이전보다 떨어집니다. 이전엔 세션과 세션 사이의 인터미션에서 잽싸게 커스텀 메뉴로 가서 방금 언락한 총이나 부착물들을 장착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니 당연했지요. 그런데 메타게임이 복잡해지면서 커스텀에 시간이 많이 들어 이젠 아예 방에서 나가지 않으면 인터미션에서 군장을 꾸리는 것이 힘듭니다. 그러니 언락에 대한 성취감은 더더욱 떨어지지요.

고저차와 명암 대비를 사용한 전략적인 플레이, 보다 유저 선택의 폭을 넓힌 메타게임. 개개로 보면 분명히 이전보다 발전된 게임 디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콜옵은 단순한게 매력인 게임이었단 말이죠. 그런데 여기다가 게임플레이를 얹어놓으니 오히려 역효과가 나면서 게임은 오히려 이전보다 재미가 떨어집니다. 아니, 사실 불쾌합니다. 과유불급이라는 속담이 영어엔 없었던 걸까요?

그러고보면 반대로 게임 후의 결과 화면은 쓸데 없이 줄여놓았습니다. 원래 콜옵은 게임이 끝난 후에 별 시시콜콜한 것에 대해서도 칭찬을 했습니다. "가장 많은 거리를 이동" "가장 높은 곳에 위치" "자기보다 레벨이 높은 적을 가장 많이 죽임" 아무리 게임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소소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플레이어의 기분을 전환시켜주고 다시 한번 게임에 뛰어들 동기를 제공했죠. 그런데 고스트는 이 마저도 없습니다. [자세히보기]를 누르면 볼 수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안보입니다. 이건 도대체 왜 뺀 걸까요?

by 고금아 2013. 11. 27. 03:25

GDF에도 쓴 글입니다. 아마도 관련된 토론은 (발생한다면) GDF에서 계속 보실 수 있을 겁니다.





파판14 같은 경우는 한 캐릭터가 여러 직업을 가질 수 있어서 스킬과 아이템 세팅을 바꾸면 굳이 부캐를 키울 필요 없이 한 캐릭터로도 모든 컨텐츠를 즐길 수 있다고 하죠. 뭐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미 플레이했던 구간을 부캐로 다시 처음부터 플레이하는 것에 비해 만렙 찍은 뒤에도(혹은 성장 구간 중에) 여러 직업을 꾸역꾸역 올려가는 것이 크게 좋은 일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그렇게 한 캐릭터에 여러 직업을 대응시키기 보다는 한 캐릭터에 하나의 직업만을 부여하고, 그 외의 직업은 부캐를 통해 플레이하도록 유도하고 있지요. 하지만 이 부캐는 유저가 필요해서(심심해서) 즐길 뿐, 게임 내부에서 어떤 보상이나 페널티를 주는 시스템으로 게임화 시킨 사례는 딱히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 부캐에 적극적으로 보너스를 부여함으로써 부캐를 키우는 플레이 자체를 게임에 안착시킨 사례가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스타워즈 구공화국 - 가문 시스템

스타워즈 구공화국(이하 구공온)에서 캐릭터가 전체 성장곡선의 중간쯤에 위치하게 되면 자신의 가문(리거시)를 하나 세우게 됩니다. 가문은 캐릭터와는 별개로 가문 자체의 레벨이 존재하고 경험치를 쌓아서 가문의 레벨을 올리게 되죠. 해당 계정의 모든 캐릭터들은 그 가문의 일원이 되고, 이 캐릭터들이 경험치를 얻을 때 마다 가문에도 일정량의 경험치가 쌓이게 됩니다. 그런데 서비스 초기엔 이 가문 레벨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나머지는 아직 구현중인 상태였죠. 뭐 EA / 바이오웨어에선 곧 구현된다고 했지만 다들 가문이 구현되기 전에 그만둬버렸기 때문에 노예 출신의 시스 인퀴지터와 밑바닥 삶을 사는 인간 바운티 헌터와 제국군 정보부의 외계인 요원을 같은 가문으로 묶는 걸 보니 과연 스타워즈 스케일이라는 정도의 단상만을 남겼습니다.

새로운 확장팩이 나온 김에 2년만에 접속해보니 그 가문 시스템은 완성되어 있더군요. 생각만큼 그렇게 거창하진 않고, 자잘하지만 어쨌든 부캐가 핵심 엔드 컨텐츠인 게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문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성장, 동료, 여행, 편의라는 네가지 카테고리와 그에 부속된 다양한 보너스들로 구성됩니다. 위 스크린샷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장비를 수리해주는 드로이드를 불러낼 수 있는 기능이 배치되어있네요. 이 외에 탈것을 좀 더 이른 레벨에서도 탈 수 있게 해준다거나, 경험치 획득량을 높여준다거나 뭐 이런 보너스들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보너스들에는 상위의 보너스가 존재하는데 위의 드로이드 호출의 경우, 수리 드로이드를 불러내는 쿨타임을 줄여준다거나 유지 시간을 늘려주는 형식입니다. 하위의 보너스를 먼저 갖고 있어야 상위의 보너스도 얻을 수 있지요.


이 보너스들은 사실 캐릭터에 귀속되는 부분유료화 서비스이기 때문에 카르텔 코인(현금)으로 바로 구입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머니로도 구매할 수 있지요. 단, 카르텔 코인과 달리 게임머니로 구매하기 위해선 각 보너스가 요구하는 것보다 가문 레벨이 더 높아야 합니다. 가문 레벨이 높으면 원하는 보너스를 게임머니로 구매할 수 있고, 반대로 현금을 쓰면 가문 레벨에 관계 없이 보너스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죠.

이 모습이 가문 시스템이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인지 부분유료화를 채택하면서 이런 모습이 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부분유료화 모델에서는 제법 괜찮은 장치이긴 합니다.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자 하는 유저의 욕구와 그 서비스를 위해 돈을 직접 지불하고싶지는 않아하는 유저의 저항 사이에서 완충재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현금을 쓰지 않고 보너스를 받기 위해 가문 레벨을 올리고자 마음먹는다면 다시 월정액 결제나 캐릭터 슬롯 추가구매로 이어지는 흐름을 유도하고 있지요.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 - 히어로 시너지 시스템

사실 구공온에서 부캐 키우기가 엔드컨텐츠가 된 것은 기획 의도였다기 보다는 기획의 실수에 기인합니다. 한번 훑고 지나가는 성장 구간을 엄청난 고퀄인데 비해 엔드컨텐츠는 양으로나 질로나 매우 빈약하니 만렙 찍고 할 게 부캐를 키우는 것 뿐이었죠. 게다가 이 게임은 2개 진영 4개 클래스가 모두 다른 메인 스토리를 매우 고품질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부캐를 키우는게 정말 재미가 있었습니다.

반면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이하 마아블로)의 경우는 처음부터 여러 캐릭터를 굴리는 것을 전제로 구성된 게임입니다. 실제 수익 모델 자체도 캐릭터 판매가 주된 수익원이죠. 그래서 다른 게임이나 구공온과 달리, 이 게임은 작정하면 2일 내에 성장구간을 끝내고 엔드 게임에 돌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있습니다. 개발사 입장에선 유저들이 다양한 캐릭터들을 다 사주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유저 입장에선 캐릭터를 좋아한다거나, 옆에서 보니 좋아보인다는 개인적인 감상 외엔 여러 캐릭터를 사모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히어로 시너지 시스템이 등장하기 전까지는요.

히어로 시너지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각 히어로가 2가지 씩의 시너지 버프를 지니고 있다는 겁니다. 하나는 25레벨에서 열리고 다른 하나는 50레벨에서 열리죠. 예를 들어 블랙 위도우가 25레벨이 되면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않은 적에게 2% 추가 데미지 효과가 생겨납니다. 50레벨에서도 2%가 열려 합치면 총 4%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헐크는 최대 HP 상승,  휴먼 토치는 광역 스킬 데미지 상승 등 각 히어로들의 개성에 맞는 효과가 부여되어있습니다. 그리고 25레벨과 50레벨에서 얻는 보너스가 서로 다른 경우도 존재합니다. 아이언맨은 25레벨에선 장거리 데미지 보너스, 50레벨에선 에너지 데미지 보너스를 줍니다. 싸이클롭스는 25레벨에서 에너지 데미지, 50레벨에선 경험치 획득량 보너스를 주지요.

그리고 각각의 히어로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최대 10명으로부터 이 시너지 버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처럼 50렙은 커녕 25레벨도 많지 않은 가난한 쪼렙이야 뭐 되는대로 다 켜고 있습니다만, 시너지를 줄 수 있는 히어로가 10명이 넘게 된다면 각각의 히어로별로 가장 좋은 조합을 선택해야하죠. 블랙 위도우가 주는 버프는 직접 붙어서 싸우는 헐크에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하지만 긴 사거리로 멀리서 쏘는 호크아이에겐 도움이 될 겁니다. 반대로 토르가 주는 근접 데미지 증가 효과는 호크아이에게 도움이 못되겠지요. 그래서 시너지를 받을 10명의 히어로 덱을 구성하고, 이 덱을 구성하기 위해 캐릭터를 모으고 성장하는 것이 하나의 메타게임이 됩니다.


가문 시스템의 한계와 히어로 시너지 시스템의 성과

게임의 성격과 지향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시스템을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구공온의 가문 시스템은 한계가 매우 뚜렷합니다. 단순히 현금을 지불하지 않고 게임 머니로 구매할 수 있는 권리를 단계적으로 열어갈 뿐, 그 안에 어떠한 선택이나 전략이 존재하지 않지요. 게다가 가문 시스템에서 얻는 보너스들은 계정 전체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캐릭터별로 적용된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위 스크린샷의 수리 드로이드는 이미 65레벨 본캐에서 언락을 했지만 저 1레벨 캐릭터에서도 사용하려면 다시 게임머니나 현금을 지불해야만 하지요. 시간이든 돈이든 들인 노력에 비해 효율이 너무 낮기 때문에 메타게임은 고사하고 부캐를 키울 동기 조차도 제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현질할 보람도 없습니다.) 보너스들을 계정 적용으로 바꿨으면 그나마 좀 나았을 겁니다. 혹은 가문의 레벨을 요구조건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문 포인트를 소비하는 형식으로 바꾸거나요.

부캐는 사실 구공온보다 마블 히어로에서 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 게임의 주된 수익원은 히어로를 판매하는 것인데, 기본적으로 마블 히어로들이 각기 개성이 뚜렷한만큼 각 유저들의 호불호도 갈려서 딱히 좋아하지 않는 히어로는 굳이 구매하고 플레이할 이유가 없었죠. 하지만 이제 시너지를 얻기 위해선 평소에 좋아하지 않거나 관심이 없던 히어로들도 습득하고 성장시켜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동안 버려지던 컨텐츠들의 효용이 상당히 올라갔죠. 

만약 이 시스템이 히어로를 루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던 서비스 초반에 도입되었다면 이 시스템은 유전고렙 무전쪼렙을 유도하는 것으로 욕을 먹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5~10분에 한번씩 떨어지는 토큰을 모아 히어로와 교환받게 된 이후이기 때문에 그런 비판으로부터는 상대적으로 자유롭습니다. 그리고 시너지를 무한정 허용하는 것이 아니라 10명으로 한정지으면서 캐릭터를 20개 30개씩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유리하지 않도록 제한을 걸어두었고 이 10명을 구성하는 것에 대해 전략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히어로 시너지 시스템 만으로 마아블로가 다시 부흥할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만, 적어도 지금 플레이 중인 유저들을 더 오래 붙잡아둘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해 보입니다.



by 고금아 2013. 10. 11. 18:59

GDF에도 쓴 글입니다.


최근엔 딱히 고민하거나 생각하고 있는 거리가 없어서 뜸했습니다만, 간만에 쓸만한 거리가 하나 생각나서 포스팅을 쎄워봅니다. 바로 PVP 게임에서의 팀킬에 관한 것이죠. 엄밀히는 아군공격이지만, 편의상 그냥 팀킬이라고 합시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PVP 게임들, 특히 FPS 게임의 경우 팀킬은 절대로 허용되어선 안되는 장치입니다. 간혹 On/Off 옵션을 단 채로 나오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서비스 직후에 벌어지는 혼돈의 카오스를 목격하고 나면 금방 제거하게 되지요. 반면 해외의 FPS 게임들은 팀킬에 대해 제법 개방적입니다. 대부분의 게임들이 팀킬을 기본으로 허용하고 옵션으로 끌 수 있게 하지요.

사실 팀킬이라는 게 반드시 막아야 할 절대 악이라고는 볼 수 없습니다. 게임에 좀 더 전략성을 부여할 수도 있고,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습니다. 밀리터리 게임의 경우는 리얼리티를 더할 수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동시에 게임의 경험을 완전히 망쳐버릴 위험 또한 큽니다. 순전히 재미있다고 자기 기지에서 아군을 무차별 학살하는 싸이코패스도 많습니다만, 실수에 의한 팀킬을 팀킬로 응징하고 다시 팀킬로 보복하는 등의 악순환이 벌어지는 경우도 그렇게 드물지는 않습니다.

이 팀킬 문제를 외국 개발자는 도덕의 문제라고 생각하더군요. 그런데 사실 전 이게 꼭 한국의 도덕이 고담시티 레벨이고 싸이코 패스가 많아서라기 보다는 기본 시스템의 차이에서 온다고 보는 편입니다. 해외 FPS 게임들은 대부분 서버를 개인이나 클랜이 설치하고 유지합니다. 그리고 그 개인이나 클랜이 서버의 룰이나 맵 등을 입맛에 맞게 세팅해놓고 각자가 알아서 원하는 서버를 선택해서 들어가는 구조지요. 한국처럼 계속해서 방이 만들어지고 닫히는 시스템에서야 사실 어디가서 강퇴를 당하더라도 금방 다른 게임에 들어가서 다시 난동질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사후 제제보다는 차라리 그냥 아예 게임에서 팀킬을 할 수 없도록 막아서 분란의 소지를 없애는 것이 더 효과적이죠. 하지만 저런 환경에선 괜히 뻘짓하다가 밴 먹으면 게임을 플레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람 많고 핑 좋고 거기에 모드 / 맵 / 세부 옵션이 마음에 드는 서버를 찾기란 쉽지가 않거든요. 이는 팀킬 뿐만 아니라 욕설이나 트롤링 등 대부분의 비매너 행위 전반에 걸쳐 적용됩니다.

사실 저 구조의 덕을 가장 많이 본 게임이 바로 배틀필드입니다. 탈것, 폭발물, 드넓은 전장, 강력한 커맨더 등 깽판을 치려고 마음 먹으면 정말 아주 제대로 난장판을 만들 수 있는 게임이죠. 물론 팀킬을 끌 수 있긴 합니다만 이는 아군의 총알과 수류탄으로부터 입는 데미지만 무효화할 뿐, 팀킬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탱크와 같은 차량으로 치여 죽일 수도 있지요. 아군의 차량으로부터 입는 물리 데미지를 방지한다고 해도, 그대로 밀고 벽에다 갖다 박으면 차량에서 오는 데미지가 아니라 벽과 충돌한 충격량 때문에 죽습니다. 그나마 이 로드킬은 감지할 수라도 있지요. 폭발물로부터 데미지는 입지 않아도 내부 물리 엔진에 의해 폭발력으로 밀려나는 효과는 남아서 이 폭발력으로 아군을 배경과 부딪히게 해서 물리 데미지로 죽이는 건 못막습니다. 차라리 같은 원리로 정상적으로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옥상에 올라가서 스나질 하는 건 차라리 애교죠. 또 아군 옆에 서있는 차량을 폭파시켜서 폭탄의 폭발이 아닌, 차량의 유폭으로 데미지를 줄 수도 있고 심지어 헬기 테일로터로 사람을 갈아죽이기도 합니다. 이런 걸 내부 팀킬 방지 시스템으로 하나하나 방지하거나 감지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신 서버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관리자들이 해당 유저를 영구강퇴하는 방법으로 강력하게 제제하지요.

배필 온라인의 경우는 일단 처음에는 겁도 없이 팀킬 On으로 시작해서 한번 지옥을 맛보고, 팀킬을 절대로 켤 수 없게 만든 뒤에도 대한민국 창의력 대장들과 씨름해야 했죠. 정말 열심히 막았습니다만 끝끝내 야구하듯이 헬기 꼬리를 휘둘러 아군을 벽에 날린 뒤 그 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죽이는 플레이는 막지 못했습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배틀필드는 ㅈ같은 게임이고 한국엔 싸이코패스 게이머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둘 다 사실이라고 생각하긴 합니다만) 게임이 허용하는 행위가 많을수록 그것이 악용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것이 되겠습니다.

한편 월드 오브 탱크 (이하 월탱)의 경우는 반대로 아군에 데미지를 주는 시스템이 아니라, 리스폰을 없앰으로써 팀킬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선보였습니다. 사실 사망에 대한 페널티를 완화하는 것은 장르를 불문한 대세이긴 합니다. FPS의 경우는 리스폰 타임을 줄이거나 없애는 식으로 이 페널티를 줄여왔죠. 하지만 월탱은 리스폰이 없습니다. 게임에서 죽으면 그냥 게임 밖으로 나가도록 유도하죠.(원한다면 남아서 진행상황을 계속 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죽었다고 게임에서 내보내는 건 게임 플레이 기회 자체를 박탈하기 때문에 굉장히 가혹합니다. 하지만 월탱의 경우는 그렇게 게임에서 나가도 다른 전차를 타고 금방 다른 게임에 합류할 수 있죠. 게임 플레이 기회를 박탈하지 않기 때문에 굉장히 캐주얼한 페널티입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건 금방 다른 게임에 투입되면서 기분 자체가 환기된다는 점입니다. 팀킬을 당했건, 팀 메이트들이 ㅂㅅ들이라 진형도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밀어 전선이 무너졌건, 일베충이 헛소리를 하든 간에 플레이어가 새로운 게임에 몰입하게 되면서 이전 게임은 그냥 잊혀진다는 거죠. 신고 기능이 있고 아군 데미지에 대해서 페널티를 물리긴 합니다만 그보다는 일단 죽으면 게임에서 제거되기 때문에 보복 팀킬이 불가능하다는 것 또한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물론 이러한 월탱의 케이스를 다른 PVP 게임 - 특히 FPS - 에 바로 적용하긴 힘들 겁니다. 리스폰을 없앤 것도 사실은 탱크라는 소재의 특성상 리스폰이 상당히 부자연스럽기 때문일 수도 있고, 신고가 가능한 것도 게임 템포가 FPS에 비해 현저히 느린 덕분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구조적으로 아군에게 데미지를 주는 행위를 방지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다른 요소로도 팀킬을 방지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요, 개인이 설치한 서버가 계속 지속되고 이 설치자가 서버에 대한 통제권을 갖는 시스템에선 팀킬을 포함한 모든 비매너 행위에 대해서 매우 강력한 제제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방'이 일시적으로만 존재하는 한국식 시스템에선 이런 식의 사후 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차라리 게임에서 팀킬의 가능성을 완전히 제거해서 분란의 소지를 없애는 편이 더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게임에서 할 수 있는 행위가 많아지면 그만큼 이를 방지하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의외로 이에 대한 해결책은 팀킬 그 자체가 아니라 게임을 둘러싸고 있는 전체 구조에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라는 써놓고 보니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들이군요.

by 고금아 2013. 10. 11. 03:12

2014년 밸브가 뭔가 큰 건을 하나 발표한다는 소식이 처음 들렸을 때, 대부분은 그동안 소문만 무성했던 밸브의 게임 콘솔 스팀박스를 발표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밸브는 리눅스를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 된 스팀OS + 스팀 OS가 구동되는 하드웨어 + 스팀OS용 컨트롤러로 구성된 하나의 패키지를 발표했습니다.

저는 사실 스팀박스 자체의 미래에 대해서도 상당히 비관적이었습니다만 발표 내용은 제 상상을 초월하고 있었습니다. 오픈 아키텍쳐를 기반으로 한 게임용 콘솔이라뇨! 3DO의 재림을 보는 것 같았죠. 보자마자 DOA 사인이 왔습니다. 사실 리테일이 기반인 시장에서 디지털 마켓 & 다운로드 서비스 자체도 당시엔 말이 안되는 것이긴 했지만 이건 정말 심각한 과대망상으로 보였지요. 처음엔 스팀 OS 하드웨어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독자 콘솔이라는 포장에서 오는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떼어내고 생각하니 의외로 이게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하나하나 풀어보려고 합니다.


1. 어째서 굳이 하향세인 거실용 콘솔인가?

HDTV는 분명 크고 박진감 넘치는 화면을 선사합니다만, 그 반대 급부로 과거보다 큰 공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과거 PS2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사실 방 안에 작은 TV 하나를 두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만 42인치 TV를 개인 방 안에 둔다는 건 사실 좀 어려운 일이긴 하죠. 설치부터 플레이까지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HD 해상도를 지원하지 못함에도 Wii가 그렇게 불티나게 팔렸던 것은 한 명의 게이머를 위한 기기가 아니라 공동 공간인 거실에서 가족 전체가, 게임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더라도 재미나게 놀 수 있는 장치로서 포지셔닝 된 덕이라고 전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의 놀이도구로 다른 콘솔과 다른 타겟층을 가진 Wii를 제외할 경우, 현세대기의 보급량은 오히려 전세대기보다 적습니다. (전세대 = PS2 1억5천5백만 + 엑박 2천4백만 = 1억7천9백만 / 현세대 = PS3 7천5백만 + 엑박360 7천8백2십만 = 1억6천3백2십만. 출처 : 위키피디아)

반면 개발비는 치솟았고, 그 결과 게임을 잘 모르는 사람도 열광할 수 있는 AAA 급 게임들이 대박을 치지 않으면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이 현세대기가 처한 상황이죠. 그래서 전 개발비가 더 치솟을 차세대기 시장을 오히려 더 암울하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수한 게임 콘솔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PS4보다 AAA 게임을 구동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셋탑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 엑박원의 전략이 더 우수하다고 보았죠. 뭐 정신 나간 가격 때문에 맛이 가긴 했습니다만.

아무리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지만, 거실을 중심으로 한 콘솔 게임 시장이 스팀이 기반하고 있는 PC 시장보다는 훨씬 큰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콘솔과 PC를 둘 다 보유하고 있는 게이머 입장에서, 거실을 주무대로 생각한다면 PC판 보다는 콘솔용을 구매하겠죠. 즉, 많은 점유율을 가져갈 수 있든 없든 거실 진입 자체가 스팀 입장에선 매출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밸브 입장에서 거실을 뚫고 싶긴 한데 게임을 구동하는 전용 콘솔로 뚫으려면 난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가격, 하드웨어 성능, 마케팅, 서드 파티 확보 등 고려해야할 사항이 한둘이 아니죠. 하지만 스트리밍으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셋탑이라면 이미 타이틀들은 확보되어있고 하드웨어도 저렴한 가격에 공급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정도 사양이면 IPTV를 구동하는데에도 큰 문제가 없죠. 똑같이 게임 + IPTV 컨셉이지만 엑박원과는 차원이 다른 가격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2. 스팀 고객들의 취향은 전통적 콘솔과 다르다.

또한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은, 과연 스팀의 고객들이 거실에서의 게이밍을 원하냐는 것입니다. 먼저 스팀의 동접자 순위를 한번 살펴보죠.

위 도표는 스팀의 동접자 TOP 100 중 상위 30개만 추려낸 것입니다. DOTA2, 팀포트리스2, FM, 토탈워, 문명 등등 PC 독점작들이 상당히 많으며 이들 중 대다수가 인터페이스 상의 문제로 콘솔에서 패드로는 플레이하기 힘든 게임들입니다. 물론 콘솔에서도 잘나가는 게임들은 스팀에서도 잘 팔립니다만, 전체적으로 스팀 게이머들의 취향은 콘솔 게이머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밸브가 발표한 패드는 "이전에 키보드와 마우스로만 할 수 있었던 모든 게임은 이제 소파에서 할 수 있게 됩니다. 실시간 전략 게임, 마우스로 하는 간단한 게임, 전략 게임, 탐험+확장+착취+말살 우주 탐험 게임, 다양한 인디 게임, 시뮬레이션을 즐길 수 있다는 겁니다!" 라며 스팀이 기반하고 있는 PC 게임들을 플레이하기 편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PC 전용의 게임들도 불편하지 않게 거실에서 플레이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거죠.

우리는 스팀 OS가 일차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전 세대까지 엑박360이나 PS3으로 게임을 해온 콘솔 게이머가 엑박원이나 PS4가 아닌 스팀OS 하드웨어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PC로 게임을 해왔지만 가끔은 거실에서도 게임을 하고 싶은 게이머 계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층을 상대로는 스팀 OS 하드웨어 외엔 대안이 없습니다.


3. 스팀의 콘솔은 충분한 타이틀들을 보유할 수 있을 것인가?

콘솔이 자생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해당 콘솔에서 구동되는 소프트웨어들입니다. 아무리 콘솔이 저렴하거나 성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해당 콘솔에서 구동되는 타이틀이 충분치 않다면 해당 콘솔은 사실상 그 존재 의의가 퇴색되죠.

사실 서드 파티 개발사 입장에선 스팀 하드웨어 플랫폼이 시장에 충분히 보급되기 전까진 당장 얼마나 보급될지도 불확실한 스팀 하드웨어를 지원하기 위해 개발비를 지출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스팀 하드웨어는 PC처럼 완벽한 커스터마이징은 아닐지 몰라도 일단 당장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나만의 등의 수식어를 통해 다양한 하드웨어 구성을 지원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콘솔로 게임을 개발하는 또하나의 이유 - 단일한 하드웨어를 통한 개발의 용이함 - 이 사라지게 되죠. 언리얼 엔진4나 크라이엔진4에서 스팀 하드웨어의 포팅을 도와준다면 그냥 어차피 100억 쓸 꺼 101억 쓴다는 심정으로 추가 포팅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아직까지 에픽이나 크라이텍에서 스팀 하드웨어를 지원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밸브는 리눅스 기반으로 커스터마이징된 스팀OS를 공개하면서 이미 수백개가 넘는 게임들이 스팀OS를 지원하며 AAA 게임도 지원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만, 아직까지 그 리스트는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PC 게임들 조차 스팀 OS보다 훨씬 많이 보급된 맥으로의 포팅도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스팀OS의 타이틀 수급은 상당히 힘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밸브가 직접 공급하는 게임을 독점으로 묶어서 콘솔을 견인시키는 것입니다. 마소의 헤일로와 소니의 그란투리스모 처럼요. 물론 밸브 역시 하프라이프와 포털, 팀포트리스라는 막강한 IP를 소유하고 있긴 합니다. 레프트4 데드와 DOTA2 역시 잊어선 곤란하겠죠.

가마수트라에 따르면 하프라이프2의 시리즈 3편을 모두 합쳐도 판매량은 1100만장이 채 안됩니다.  하프 라이프2가 6백5십만장, 하프 라이프2 : 에피소드 1 1백40만장, (하프라이프2 : 에피소드2 외에 팀포트리스2와 포털1이 포함된) 오렌지박스가 3백만장이죠. 레프트 포 데드 역시 1,2편을 합쳐서 1200만장 가량입니다. 이 중 오렌지박스와 포탈2, 레프트 포 데드는 모두 멀티플랫폼이었죠. 과연 밸브가 이 퍼스트파티 게임들을 독점으로 묶어서 스팀 하드웨어에 베팅할 수 있을까요? (이미 오렌지박스와 레포데, 포탈을 공동으로 퍼블리싱 했던 EA와의 계약 문제는 없다고 가정할 경우입니다.)

하지만 이 타이틀 문제도 스팀 OS 하드웨어가 직접 게임을 구동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말끔하게 정리됩니다. 현세대기 초기엔 멀티 플랫폼 이식을 도와주는 미들웨어가 없었고 또한 플랫폼 홀더 측에서 개발비를 일부 지원하는 조건으로 독점 (또는 기간 독점)을 걸어 전용 게임들이 많았습니다만, 언리얼 엔진3가 발전하고 또 개발비가 치솟으면서 이제 왠만한 콘솔 게임들은 멀티 플랫폼으로 PC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차세대기의 개발비가 더 오를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독점작이 아닌 이상은 PC로도 출시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스트리밍을 기반으로 생각할 때 스팀OS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PC로 출시되는 게임들은 먹고 들어간다고 볼 수 있겠죠. 이때 스팀 OS 하드웨어의 메시지는 아주 간단합니다. 만일 거실에서 게임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 때문에 굳이 멀티 플랫폼 게임을 콘솔로 구매하고 있다면, 그냥 저렴하게 스팀OS 기기 하나 갖다놓고 PC와 거실 양쪽에서 즐기라는 겁니다.

또한 이렇게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굳이 자사의 킬러 타이틀들을 독점으로 묶을 필요도 없습니다. 콘솔로 팔리면 콘솔로 팔리는 대로, PC로 팔리면 PC로 팔리는대로 이득이죠.


4. 스팀의 하드웨어는 과연 PS4나 엑박원에 비해 경쟁력이 있는가?

사실 소프트웨어도 소프트웨어지만 하드웨어 자체의 경쟁력 또한 상당히 의심스럽습니다. 일단 가장 먼저 걸리는 것이 바로 하드웨어의 가격 문제죠. 엑박원이든 PS4든 기본적으로 대량생산 + 추후 공정 개선으로 생산 코스트가 줄어든다는 것과 일단 콘솔을 보급하면 나중에 로열티 수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전제로 생산비보다 낮은 가격에 밑지고 팔기 때문에 $399와 $499라는 가격이 책정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팀 하드웨어는 밸브 독점 공급이 아닌 오픈 아키텍쳐를 내세우고 있지요. 밸브가 부품을 대량으로 발주하거나 손해를 감수할 의사도, 방법도 없는 시스템입니다.

또한 오픈 아키텍쳐를 표방하고 있는 이상, 사실 엑박원이나 PS4와 같은 스펙으로 같은 성능을 낼 수 있을지 조차 의심스럽습니다. 이들은 특화된 OS를 가지고 있으며, 게임에서 성능을 내기 위한 특화된 하드웨어 구조를 지니고 있지요. 소음과 전력 소모, 발열은 덤입니다. 아니 사실 가격이든 소음이든 전력이든 발열이든 다 떠나서, 최적화는 둘째치고 게임이 제대로 구동될지조차 의심스럽죠.

이 모든 것을 정리하자면, 스팀 하드웨어는 엑박원과 PS4에서 돌아가는 게임이 돌아갈 수도 있고 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엑박원과 PS4보다 같거나 비싼 가격에 그보다 같거나 못한 스펙을 가진 머신이 됩니다. 물론 지금도 고사양의 PC로는 현세대는 물론 차세대의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3만5천원짜리 엑박 패드 하나만 꽂으면 완벽하게 콘솔처럼 플레이할 수도 있지요. 굳이 거실에서 PC로 즐겨야 한다면 그냥 PC를 TV에 연결하고 말지 굳이 그 고사양 PC를 스팀OS  전용기로 한정지을 필요도 없습니다.

사실은  하지만 스트리밍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비싼 하드웨어를 쓸 필요도 없고, 또한 개개 하드웨어에 대해 치열하게 최적화 할 필요도 없습니다. 엑박원이나 PS4에 비해 충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5. IPTV + PC 게임 스트리밍. 가격이 관건

엑박원이든 PS4 든, 거치형 콘솔들은 모두 게임은 거실에서 TV로 즐기는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시장은 거실에 꼭 그 게임 콘솔을 갖다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요. 스팀 OS 하드웨어를 이들과 같은 독립적인 거치형 콘솔로 정의하게 된다면 가격 경쟁력, 타이틀 경쟁력 모두 기대하기 힘든, 시작부터 실패가 예정된 프로젝트가 됩니다. 나와서는 안될, 귀태 콘솔이죠.

발상을 바꿔서 게임은 PC로 플레이하는 것이 기본이지만 가끔은 거실에서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일단 콘솔을 새로 구매하는 것은 매우 가성비가 떨어집니다. 콘솔 자체도 비싸고, PC와 콘솔 양쪽에서 게임을 구매해야하니까요.  하지만 저렴한 셋탑 박스를 추가하면 PC 게임을 TV로도 즐길 수 있다면, 그리고 여기에 스팀 특유의 세일과 쉬운 구매 & 설치가 붙어 나온다면 이건 굉장히 합리적인 선택지가 됩니다. 그리고 밸브 입장에서도 큰 돈을 들이지 않고도 엑박원 & PS4로부터 점유율을 빼앗아올 수 있지요.

일단 이 모든 것의 전제는 스트리밍 게임이 콘솔 직결과 유사하거나, 적어도 불편을 느끼지는 않을 정도로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엔비디아의 실드나 PS 비타가 스트리밍 게임을 제공한다고는 하지만 둘 다 모바일 디바이스에 맞춰 해상도를 낮추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80 해상도로 품질 높은 스트리밍을 제공할 수 있을지는 사실 좀 의문이긴 합니다만, 어쨌든 이 부분만 해결된다면 콘솔 게이머와 PC 게이머, 캐주얼 게이머와 하드코어 게이머, 스탠드 얼론 게이머와 온라인 게이머 모두가 구매할만한 제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가격 문제 또한 짚고 넘어가야합니다. 스트리밍 셋탑이라는 가정 하에서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격은 $99 입니다. 셋톱박스로도 애플TV와 경쟁할 수 있는 가격이지요. 만일 이 가격을 지키기가 불가능하다면, 최대한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가격은 셋탑 치고는 다소 비싸지만, 게임이 되는 것을 감안한다면 납득이 가는 선인 $199라고 봅니다. $200을 넘어서게 되면 WiiU와 비교되겠죠. 아무리 WiiU의 인기가 적다고는 하지만, 게임을 직접 구동하지 않는 스트리밍 기계가 전용기와 유사한 가격이라면 심리적인 저항선이 클 것으로 생각됩니다. IPTV는 WiiU에도 있고 말이죠.

by 고금아 2013. 9. 24. 04:09

클베때부터 제가 강력하게 밀었던 마블 히어로즈 온라인(마아블로), 기본적으로 디아블로의 탄탄한 구조에 기반을 두면서 MMO 답게 필드에서의 이벤트도 존재하고, 꽝이 나오길 바라며 긁는 랜덤 카드 등 여러가지로 흥미로운 게임이었습니다만 준비한 컨텐츠가 단 2주만에 모조리 소진되면서 급격하게 식어버렸습니다. 특히 굉장히 시간을 들여 힘들게 입장해야 할 카우 레벨이 버그로 인해 무한정으로 제공되었던 것이 결정타를 날렸죠.

그 이후 한달만에 주력상품인 히어로와 코스튬을 세일하는 등의 노력을 펼쳤으나 그닥 반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얼마전 있었던 패치에선 엔드 게임 구조가 바뀌면서 기존 유저들이 다시 돌아오고있는 모습입니다. 저 역시 최근엔 마아블로를 다시 플레이하고 있지요.

사실 마아블로의 새로운 엔드 게임 컨텐츠가 다른 게임에 비해 월등하게 참신하다거나 신박하다거나 재미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종전에 비하면 훨씬 낫고, 지금 즐기기에 충분히 재미있네요. 유저들은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구요. 그런 의미에서 과거엔 어땠고 지금은 어떻게 바뀌었나를 한번 살펴볼까 합니다.

히어로 / 코스튬 획득 방식

우 선 가장 크고 뚜렷한 변화는 히어로와 코스튬을 획득하는 방식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 히어로와 코스튬은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만, 이들은 게임 도중 아이템의 형식으로 드랍되기도 했죠. 다만 그 확률이 매우 드물었고, 그나마도 유저들의 경험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이나 아이언맨 등 비싼 히어로(세일 전 기준 16달러)들 보다는 호크아이와 같이 저렴한 히어로들 (세일 전 기준 6달러 - 이 등급의 히어로들은 돈을 내지 않아도 계정 생성시 1개, 기본 퀘스트로 2개가 지급됩니다.)들이 자주 떨어졌다고 합니다. 특히 해당 유저가 이미 가지고 있는 히어로들이 많이 떨어진다고 알려졌습니다. 물론 가지고 있는 히어로가 많을 수록 중복의 확률이 높기 때문에 이는 경험적 착시일 확률이 있습니다만, 실제로 저같은 경우 20달러 이상의 히어로를 습득한 건 데드풀이 유일한데 이미 구매한 뒤였고, 저렴한 호크아이는 이미 4개나 습득했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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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면 코스튬의 경우는 상점에 판매 중인 코스튬 뿐만 아니라 상점에선 판매하지 않는 희귀한 코스튬도 떨어집니다. (이를 체이스 코스튬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코스튬들은 사용자가 가지고 있지 않은 히어로를 중심으로 떨어진다고도 하지요. 전 반반이었는데 특히 울버린용 체이스 코스튬을 주워서 이걸 쓰기 위해 울버린을 구매하기도 했습니다.

마블 히어로즈에 등장하는 각 히어로들은 기본 스킬 외에 30레벨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얻을 수 있는 '궁극기'라는 것을 하나씩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언맨의 경우 파티 타임이라고 해서 영화 아이언맨3에 나온 것 처럼 아이언맨 떼를 소환해 일점사를 가하고 헐크의 경우 운석을 잡아던져 광역 데미지를 주는 등 아주 강력한 스킬이죠. 20분마다 한번씩 사용할 수 있는 이 궁극기들은 다른 스킬들과 달리 레벨이 오를 때 얻는 스킬 포인트로는 해당 스킬을 업그레이드 할 수 없고, 해당하는 히어로를 갈아 먹여야만 그 레벨이 오릅니다. 마치 확밀아에서 한계돌파를 하듯이 말이죠. 특히 상점에선 히어로를 한번만 구매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궁극기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선 미친듯이 파밍을 해야 합니다. (또는 랜덤 아이템인 포츈 카드를 열심히 찢어야죠.)


새로운 습득 방식

이 러한 히어로 습득 / 궁극기 업글 체계는 게임을 오래 꾸준히 하는 유저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엔드 컨텐츠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히어로 드랍 확률 자체가 낮고, 싼 히어로 중심으로 떨어지다 보니 비싼 히어로들은 이 궁극기 업그레이드를 체험해볼 기회가 상당히 드뭅니다. (하드코어 유저들은 상대적으로 비싼 히어로들을 사용하고 있지요)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고, 일단 접할 기회가 많지 않으니 재미를 느끼기도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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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래서 마블 히어로즈는 이제 히어로 자체를 드랍하는 것이 아니라 이터너티 스피리터(이하 ES)라는 토큰을 드랍하고, 이 토큰을 주워서 원하는 히어로로 교환받는 식으로 변경했습니다. 위 스크린샷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175ES를 내면 랜덤하게 하나의 히어로를 받을 수 있고, 200~600개를 내면 원하는 히어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200개를 내면 궁극기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지요. 능력치 초기화 아이템이 3달러인데 ES 125개이고 14.5달러 짜리 히어로가 ES 600개로 환율은 대충 40:1이 됩니다. 그리고 이 ES는 5~10분에 하나씩 떨어지지요.

이러한 변화는 몇가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첫째, 보상의 빈도가 상당히 높아졌습니다. 실제로 히어로를 획득하는데까지 걸리는 시간 자체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만 - ES 200개짜리 블랙 위도우를 얻기 위해선 1000분, 즉 16시간 이상을 플레이해야 합니다. - 그 동안 200번의 보상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이 ES는 떨어질 때 '땡그랑!' 하는 맑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요). '캐주얼 게임'에 의하면 캐주얼 게임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자주 등장하고 시청각적으로 화려한 보상이라는데, ES 시스템은 이를 충족시켜 줍니다.

둘째, 히어로를 습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투명해졌습니다. 원하는 히어로들을 얻기 위해 필요한 ES 갯수와 현재 보유량을 유저가 이미 알고 있고 습득 속도는 이미 체감하고 있지요. 원하는 히어로가 떨어질 때 까지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던 과거엔 게임에 끌려간다는 느낌이 강했지만, 모든 진행 상황이 공개되면서 유저는 자신이 게임을 주도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히어로를 획득하기 위해 게임에 참여하게 됩니다.

셋 째, 히어로 구매에 대한 효용도 계산이 가능해집니다. 이 과정이 불투명했던 과거엔 히어로 드랍은 사실상 구색이고, 실제로는 히어로를 구매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히어로를 습득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역산해낼 수 있습니다. 스파이더맨은 14.5달러이지만 시간으로 환산하면 3000분, 50시간이 됩니다. 돈을 내지 않고 ES로 구매하면 50시간 뒤에 1레벨짜리 스파이더맨을 얻을 수 있지만, 14.5달러를 내고 50시간을 플레이하면 궁극기를 3번 업그레이드 한 스파이더맨을 얻을 수 있지요. 합리적인 구매가 가능해집니다. 일부 체이스 코스튬도 상점과 ES 샵에 풀렸죠. 이게 궁극적으로 캐쉬 매출 향상으로 이어질지, 모두 함께 노가다로 가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겁니다.

넷째, 궁극기 업그레이드와 히어로 수집에 대한 엔드 컨텐츠 효용이 더 증대합니다. 사실 고렙이 되어서 뺑뺑이를 돌아도 그 만족감이 그렇게 크진 않습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게임은 계속 어려워지고, 살아남기 위해선 더 나은 아이템을 얻어야 하는데 아이템을 잘 갖출수록 더 나은 아이템을 찾긴 더 어려워지죠. 기존의 유저들은 노력 대비 산출에서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게 되면서 흥미를 잃었습니다. 하지만 ES 수집으로 궁극기를 업그레이드하고 히어로를 늘리는 컨텐츠 자체에 대한 접근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새롭게 즐길 거리가 추가된 것이죠.


기존의 엔드 컨텐츠 구성

기 존 게임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파밍이 이루어지는 엔드 컨텐츠의 구성 그 자체에 있었습니다. 디아블로엔 난이도에 따라 노멀 악몽 지옥 불지옥이 있지만 마아블로에선 일일 던전, 그룹 챌린지, 림보의 세가지 컨텐츠가 준비되어있었습니다. (각 컨텐츠마다 레벨별로 다양한 난이도가 준비되어있습니다.) 문제는 이들 중 림보를 제외하고는 효용이 극히 떨어진다는 거였죠.

일일 던전은 총 10개가 3개의 난이도로 제공되는데, 난이도에 관계 없이 각 던전을 클리어하면 카드 조각 1개를 얻을 수 있고 같은 던전에서 플레이를 반복할 수 있지만 카드 조각은 20시간에 한번씩만 주어집니다. 문제는 이 일일 던전이 너무 쉽고 던전 자체의 보상은 너무 작다는 것이죠. 레벨에 맞춰서 혼자 들어가도 10분이면 클리어할 수 있고, 자기 레벨보다 낮은 던전에 들어가면 3분 안에 카드 조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냥 그 안에서 몹과 싸워 얻는 보상은 정말 보잘 것 없죠. 그러다보니 이 일일던전은 플레이 자체에 대한 재미는 없고 그냥 카드 조각 할당량만 채우는 컨텐츠가 되어버립니다.

보다 재미있게 플레이하고 많은 보상을 얻기 위해선 그룹 챌린지에 도전해야 합니다. 이 그룹 챌린지들은 5인 풀파티를 기준으로 구성되어있고, 약 20분 정도의 길이를 갖습니다. 풀 파티가 아니면 쉽게 녹다운 될 정도로 전투가 흥미롭고 경험치나 아이템 보상도 짭잘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파티를 맺기가 쉽지 않다는 거지요.

마아블로를 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한 맵에서 소화할 수 있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MMORPG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적습니다. 마을에 해당하는 어벤져 타워에서도 20명 정도 밖에 안보이죠. 그런데 파티 메이킹을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그룹 챌린지를 하기 위해선 같이 그룹 챌린지를 뛸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 찾는데 시간이 더 걸리죠. 던전 자체는 시간 대비 효용이 높습니다만 전체 과정을 놓고 봤을 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립니다. 사망 횟수 제한이 걸리기 때문에 파티 메이킹을 지원하기도 어렵죠. 그러므로 그룹 챌린지는 길드에 소속되어서 아는 사람이 많지 않으면 정말 운 좋을 때에나 플레이할 수 있는 컨텐츠입니다.

일일 던전은 보상이 너무 적고, 그룹 챌린지는 플레이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사실 가장 인기 있는 컨텐츠는 일종의 서바이벌 모드인 림보였죠. 흔히 말하는 서바이벌은 플레이어들이 일정한 공간 안에 갇혀있고 외부에서 적들이 몰려온느 구성을 지녔지만, 림보에선 반대로 몹들이 자기 자리에 서있고 플레이어들이 맵을 돌아다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적들이 더 강해지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맵 곳곳에 있는 오브를 먹어야 한다는 설정이죠.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1~3분짜리 웨이브 7개를 버티고 나면 보스전이 있고 보스를 잡으면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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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리에서 떨어지면 그대로 죽을 정도로 몹이 강하고, 보상 또한 그룹 챌린지 못지 않게 좋습니다. 그리고 그룹 도전과 달리 파티 없이도 참가 신청만 하면 알아서 사람이 필요한 방으로 합류합니다. (파티를 맺은 상태라면 파티원과 같은 방으로 합류합니다.) 따라서 그룹 챌린지와 달리 파티를 구하는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죠. 하지만 림보는 20분에 한번씩만 오픈됩니다. 최악의 경우 20분을 기다려야 하죠. 그런데 20분을 기다린다고 반드시 플레이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10~12인을 기준으로 제작되어 짝이 맞지 않을 경우 방에 입장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20분을 기다렸는데 입장하지 못하고 다시 20분을 기다려야한다는 상황은 상당히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림보를 대체하는 새로운 컨텐츠 - 서바이벌

그 래서 마아블로에선 업데이트를 통해 림보를 없애고 대신 서바이벌이라는 모드를 새로 추가했습니다. 이름은 서바이벌이긴 합니다만, 사실은 서바이벌이라기 보다는 사냥에 가깝습니다. 강한 적들이 맵 구석구석 배치되어있고, 유저들이 이들을 쫓아다니며 보상을 얻는 구조이죠. 그리고 결정적으로 약 10분에 한번씩 3~4명의 보스들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보스떼들을 사냥하면서 보상을 얻는 것이죠. (일반 몹에서 오는 보상도 쏠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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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바이벌(사실 보스 입장에서 서바이벌 모드입니다만) 모드는 림보와 달리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언제든 클릭하면 자리 비는 방으로 입장하고, 나가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갈 수 있지요. 눈치 볼 것도 없이 그냥 시간 나면 잠깐이라도 들어와서 즐기고 싶은 만큼 즐기고 나가는 컨텐츠입니다. 심지어 스폰 장소 앞에 쓰레기 아이템을 매입해줄 NPC 까지 세워놓아서 굳이 인벤 버리러 나갈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또한 이 서바이벌은 림보와 달리 플레이 자체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상당히 적습니다. 림보의 적들은 상당히 강해서 무리에서 떨어지면 죽습니다. 그리고 3분 안에 누가 살려주지 않으면 그냥 방에서 쫓겨나지요. 그러니 살고 싶으면 무리를 따라다닐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능동적으로 게임의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하고 무리가 가는 대로 끌려 움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무리가 오브를 놔두고 먼길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무리를 따라다녀야 하죠.


하지만 서바이벌의 몹들은 림보 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강하진 않습니다. 물론 양으로나 질로나 혼자서 다 해결하기엔 벅차지만, 1~2명으로도 충분히 한 무리의 몹들을 해결할 수 있지요. 적들을 피해서 돌아다닐 수도 있구요. 3~4명의 보스 파티는 도전적이지만 플레이어가 모이면 충분히 잡을 만 합니다. 그러니 느긋하게 자기 원하는 대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플레이 자체에 대한 스트레스가 적어요.


일단은 긍정적이지만...

ES 건 림보건 간에 기본적으로는 스트레스를 줄이고 접근성을 높이는데에 중점을 둔 모양입니다. 유저들이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구요. 그런데 이 모든 변화가 실제로는 컨텐츠 소모를 더 촉진하는 방향을 가리킨다는 겁니다. ES는 원하는 히어로를 더 쉽게 얻을 수 있게 하고 서바이벌은 10분에 3명의 보스를 잡을 수 있게 합니다. (림보는 성공한다고 해도 플레이타임 20분에 보스 1명입니다.) 2달만에 서바이벌 모드를 추가한 것은 놀랍습니다만, 기본 게임 구성엔 차이가 없기 때문에 이게 언제 고갈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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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존의 레어 등급 위에 더 희귀한 코스믹 등급의 아이템을 추가한 것은 당장 파밍할 거리들을 추가해 컨텐츠를 저렴하게 늘려보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코스믹 아이템들 또한 부가로 붙는 옵션이 워낙 강해(모든 스킬 +1 and 확률에 따라 데몬 소환, 적에게 큰 데미지 등의 강력한 효과가 확률에 의해 발동) 일단 방어력과 레벨만 맞으면 딱히 골라잡을 필요까지 느껴지지도 않고, 5시간에 하나 정도는 떨어질 정도로 그렇게까지 귀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외려 사냥 속도만 높여 컨텐츠 소모를 오히려 촉진하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by 고금아 2013. 8. 21. 03:00

게임 디자인 포럼에 쓴 글입니다.

원 포스트를 방문하시면 이후 이어지는(이어질) 토론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오늘 페이스북에서 hwangmaru 님이 재미있는 글을 하나 소개해주셨습니다.


서포터는 왜 거지가 되었는가?

서 포터가 재미없는 희생적인 역할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LOL을 안하다보니 CS 못먹어서 그렇잖아도 적은 돈으로 와드와 오라클만 사느라 신발과 시야석만으로 게임을 끝내야하는 정도라는 건 몰랐습니다. 링크한 글에선 이런 희생때문에 서포터 플레이 자체가 재미가 없고 그로 인해 인해 서포터를 플레이하는 유저들이 나쁜 경험을 하고 있으니 서포터 플레이 경험을 개선하기 위해 고통을 강제로 분담케하는 조치가 필요하며 그 방법으로 와드 구매에 제한을 두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OECD 최하위권의 독해력을 자랑하는 국가 답게, 서폿 지금도 충분히 재미있는데 왜 까냐고 댓글들을 열심히 달았죠.

굳이 잘 플레이하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하는 롤 이야기를 끄집어 낸 것은 이게 제가 전부터 생각해온, FPS의 병과 시스템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게임이 요구하는 플레이와 플레이어가 원하는 플레이의 충돌이죠.

RPG 의 클래스건 FPS의 병과건, 기본적으로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을 분배하고 상호 협력을 유도함으로써 다양한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겠죠. 이런 롤 플레이는 기본적으로 인구 수가 적절히 분배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당장 D&D만 보더라도 전사 법사 사제 도적 4명이 기본 아니겠습니까.

여러 클래스가 고루 필요하다는 것은 게임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재미있다는 것은 거시적인 관점에서의 게임 플레이죠. 그런데 각 플레이어가 어떤 클래스를 고를지는 철저하게 개인의 선택에 맡겨집니다. 클래스의 고른 분포는 상수로 요구되지만 실제 클래스 분포는 변수라는 거죠.

그 렇다면 이때 개인이 클래스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재미가 될 것입니다. 협력이고 거시고 잘 모르겠고 일단 그 클래스가 재미있어 보여야 시작할테고, 실제로 재미있어야 계속 할테죠. 대부분의 게임들은 각각 클래스가 고유한 재미를 지니고 있고 그래서 유저들이 골고루 선택할 것을 전제로 설계될 겁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처 음 리프트를 할 땐 전사 계열을 키웠습니다만, 중간에 서버를 옮기면서 힐러를 키워본 적이 있습니다. 막상 전투에 들어가자 제가 할 일이라곤 그냥 짝대기 줄어든 파티원 찍어서 색칠하기 뿐이더군요. 남들은 뭔가 신나게 전투를 하는데 말이죠. WOW는 좀 낫냐고 물어봤더니 비슷하댑니다.

MMORPG에서 힐러들이 희귀한 것은 실제 플레이가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기 때문일 겁니다. 힐러가 재미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힐러 플레이를 재미있어하고 즐기는 유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그 플레이 자체를 재미있어하는 사람이 적다는 겁니다. (사실 개인적으론 그 힐러 재미라는게 인지부조화에서 오는 건 아닌가 의심하고 있긴 합니다만) 그러다보니 힐러라는 플레이를 지탱하는 것은 게임 플레이 자체가 아니라 보상구조에서 오는 경우가 많죠. 힐러에게 경험치나 보상을 좀 더 후하게 주는 식으로 시스템 내부에서 정의된 보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희귀해서 파티나 공대를 찾기 쉽고 귀족 대우를 받는 것도 충분한 사회적 보상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과연 그 보상으로 클래스를 끌고가는 것을 과연 잘 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애초에 파티를 기반으로 하는 게임이라면 당연히 어느 클래스를 고르든 파티나 공대 들어가기 쉬워야 하는게 아닐까요)

FPS 게임 역시 병과별로 무기와 특수능력을 동시에 제한하는 타입의 게임에선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FPS 게임에서 병과를 나누는 방법에 대한 것은 나중에 따로 다루겠습니다.) FPS게임에서 플레이스타일은 무기에 굉장히 큰 영향을 받습니다. SMG는 중거리에선 부정확하고 데미지도 약하지만 연사속도가 빠르고 일반적으로 이동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재빨리 접근해 근접전으로 게임을 풀어나가게 됩니다. 저격총은 먼 거리에서 줌도 되고 정확하며 데미지가 높기 때문에 장거리에서 강하지만 근거리에선 약하죠.

문 제는 병과별로 무기의 유형이 제약되게 되면 플레이어가 원하는 전투 스타일과 플레이어가 원하는 롤플레이가 서로 충돌할 수 있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유저 A는 쓰러진 동료를 일으키고 동료들의 HP를 채워주는 메딕 롤을 좋아하는 동시에 전투에선 중거리에서 점사로 끊어쏘는 플레이를 즐긴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의무병의 무기는 샷건으로 제한되어있단 말이죠. 그럼 유저 A는 원하는 전투 플레이와 원하는 롤플레이 사이에서 한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반대로 다른 한쪽을 포기해야 하지요.

만 일 이 무기의 차이가 플레이 스타일의 차이 뿐만 아니라 전투력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집니다. 배틀필드2의 경우 전장이 매우 넓고 피아 식별이 힘들기 때문에 '배 깔고 드러 누워 점사'가 가장 유리한 기동입니다. 그런데 대전차병의 무기는 근거리용인 SMG입니다. 일반 게임과 달리 교전 거리가 길기 때문에 플레이 스타일엔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냥 대인 전투력이 상당히 약한 것이죠. (그리고 실제로 데미지가 낮기 때문에 근거리에서도 강하지 않습니다.)

이런 밸런스의 핵심은 개개 병과가 사용하는 무기의 전투력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특수 능력의 효용에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합산하면 결국 전체적인 전투력은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대전차병의 능력을 대인전투력 40% + 특수능력 60%라고 본다면 SMG보다 더 쓸모 없는 샷건을 사용하지만 탈것을 수리하고 대전차 지뢰를 깔 수 있는 공병은 대인전투력 30% + 특수능력 70%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이론적으로는 이렇게 무기를 제한해서 병과의 특성을 강조하면서도 특수 능력의 차이에서 오는 밸런스 문제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무기에서 오는 병과의 특성'은 게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인전에서의 생존력과 결부되면서 보다 오래 살아남아 플레이하고 싶다는 욕구와 정면으로 충돌했습니다. 공병과 대전차병 모두 평균에 한참 못미치는 분포를 보였죠. 게임의 핵심인 탈것을 공격하고 수리할 수 있는 메리트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롤플레이가 성립할 수 있는 기본 전제는 클래스별로 다양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능력을 공통화시킴으로써 병과의 특성을 강조하고 협력을 유도하는 방법도 존재합니다. 제가 역사상 최고의 팀플레이 FPS로 꼽는 리턴 투 캐슬 울펜슈타인(이하 울펜슈타인)의 경우죠. 울펜슈타인에는 의무병 - 공병 - 장교 - 병사의 4가지 클래스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중 병사를 제외한 나머지 클래스들은 모두 같은 무기 풀을 공유합니다. 의무병은 치료 능력과 소생 능력을 지니고 공병은 수류탄을 좀 더 많이 가지며 폭약을 설치하고 해제할 수 있습니다. (울펜슈타인은 단계별로 목표를 이뤄나가는 속도를 겨루는 게임으로, 폭탄 설치는 어느 게임이든 한 단계를 클리어하기 위한 필수 조건입니다.) 장교는 탄약을 보급하는 한편 야외에선 공중 폭격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병사는 이들보다 HP가 높으며 기본 공용 무기 풀에 더해서 저격총이나 화염방사기, 미니건, 로켓포 중 하나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전체 전투력의 합산을 100이라고 본다면 병사는 순수히 전투력으로 100%, 나머지 병과는 모두 대인 전투능력 50% + 특수능력 50%를 채웠다고 볼 수 있죠.

대인 전투력에 차이가 없기 때문에 유저는 순수하게 자신이 어떤 능력을 원하는지에 따라 병과를 선택합 니다. 사람 살리는게 좋다면 의무병, 공중 폭격이 좋다면 장교, 저격을 하고 싶거나 뭔가 화끈하게 싸우고 싶다면 병사를 고르면 되죠. 그래서 역으로 특정 병과에 쏠리는 일도 없고 인구 비율이 일정하니 롤 플레이도 보다 원활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런 방침은 이후 ET 시리즈와 Blink에도 이어집니다.

또 한가지 생각해볼 것은 병과가 너무 많을 경우 오히려 롤 플레이가 힘들다는 겁니다. 배틀필드2에는 총 7종의 병과가 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클래스별로 인구가 균등하게 배치된 이상적인 상황에서도 내가 도움을 필요로하는 클래스는 7명 중 한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물론 팀포2는 12개의 클래스가 존재합니다만 이들은 사실상 협동 롤플레이를 유도하기 위해 존재한다기 보다는 여러가지 플레이 타입을 제공하는 구성입니다. 의무병을 제외하면 특별히 게임 중 특정 클래스의 도움을 강력히 필요로하는 경우가 없죠.

배필온의 악명높은 '병과 통합 및 총기 공통화' 패치는 바로 여기에 착안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총기를 공통화하는 대신 특수 능력을 압축해 병과 수를 줄였죠. 대인 전투력에 차이도 없기 때문에 유저들은 순수하게 원하는 플레이에 따라 클래스를 선택할 수 있으므로 병과 편중이 해결되었고, 병과의 절대 수가 줄었기 때문에 필요로하는 클래스를 만날 확률도 높아졌습니다. 대전차병이 소총까지 들면 너무 강력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반대로 공병은 수리와 C4를 들고 있습니다. 의무병은 치료 + 소생이 가능하죠. 전체적으로 능력이 상향되면서 또한 능력이 뚜렷해졌기 때문에 병과별 밸런스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뭐 유저들은 게임 접는다 만다 말이 많긴 했습니다만, 실제로 유저가 줄진 않았습니다. 대신 이 패치를 해도 게임은 여전히 어려웠고 캐주얼한 유저들은 이미 도망간 뒤였기 때문인지 기대한 것 처럼 유저가 늘지도 않았습니다. 개발 초기에 병과 통합을 좀 더 밀어붙였더라면 하고 생각합니다만 그땐 이미 이 통폐합안의 지지자였던 Voosco님이 도망가신 뒤였기 때문이라고 변명하렵니다. 뭐 어쨌든 패치 이후 통계상으로 부활, 수리와 같은 비전투 롤플레이의 빈도는 확실히 높아졌습니다.

그 외에 이 무기 공통화를 동반한 병과 통합이 가져온 확실한 성과가 한가지 있다면 총기 판매의 효율을 높이는데에도 일조했 다는 겁니다. 총기가 병과에 묶여있고, 또 병과가 다양할 경우 총기를 추가할 때의 효과는 그 병과의 갯수에 반비례해서 떨어집니다. 총기를 추가하는데 드는 비용은 일정한 반면(모델링과 애니메이션 등 에셋 제작 비용은 일정하짐나 사실 밸런스에 들어가는 노력은 병과수의 제곱에 비례합니다. 같은 계열 내에서 맞추는 동시에 다른 게열과도 맞춰야하기 때문이죠), 그 총기를 사용할 - 그래서 구매할 - 유저의 숫자는 쪼개지기 때문이죠.

FPS보다 더욱 더 롤플레이를 강조했던 MMORPG도 슬슬 이렇게 롤 보다 플레이 자체에 중심을 두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례로 길드워2의 경우 클래스가 다양한 이유는 싸우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워리어는 방패들도 붙어 싸우고, 환영술사는 환영을 불러내고, 네크로맨서는 좀비 부르고 뭐 그런 식입니다. 탱커 딜러 이런 구분 없습니다. 특히 힐러는 그냥 제거해 버렸죠. 정교하게 서로 호흡을 맞춰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는 롤플레이는 없습니다만, 대신 화끈한 화력전이 있습니다. 즐거운 축제죠. 최근의 마블 히어로즈 역시 힐러는 없고 근탱 - 근딜 - 원딜의 개념이 희박합니다. 붙어 싸우는게 불리하면 그냥 원딜이고, 잘 버티면 근탱, 근거리에서 순삭 당하진 않는데 실드나 유인기가 없으면 근딜이죠. 그냥 자기 캐릭터가 가장 유리한 위치에서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하는 것 만으로 협력 플레이가 됩니다.

울펜슈타인이나 배필온이나 길드워2나 마블 히어로즈가 병과에서 추구하는 방향은 한마디로 '부드러운 트레이드 오프'(제 가 생각해낸 개념입니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모두를 가질 순 없다. 하나를 얻는다면 하나를 잃는다. 이런 트레이드 오프는 게임의 핵심인 '의미있는 다양한 선택'을 만드는 핵심적인 장치이고 우리 모두 여기에 익숙해져있지요. 기존의 트레이드 오프는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 제로썸의 형식이었습니다. 속도가 빠르면 데미지가 적고, 공격력이 좋으면 방어력이 떨어지는 형식이죠. 저는 이것을 '단단한 트레이드 오프'라고 규정합니다.

하지만 '소프트한 트레이드 오프'는 제로썸이 아니라 플러스썸을 전제합니다. 무엇을 고르든 유저가 실제로 잃는 것은 없습니다. 물론 고르지 못한 것은 얻을 수 없겠지만 이는 이미 가진 것을 잃는 것은 아니죠. 유저는 여러가지 플러스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됩니다. 부페에 온 것 처럼요. 선택의 다양성과 그로 인한 게임플레이의 깊이는 유지하면서도 체감 난이도를 상당히 낮출 수 있지요. 이게 클래스에 적용되면 클래스별 미시 플레이의 만족도를 높이는 동시에 롤플레이도 더 원활하게 진행시킬 수 있습니다.

아, 그리고 처음의 롤 (Role 말고 LOL)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원글에서 제시한 와드 보유 제한이 과연 의미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와드 사느라 템을 못사는 근본 이유는 와드를 여러개 가지고 있을 수 있어서가 아니라 1명이 희생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전술이 고착된 탓이니까요. 이게 해결되지 않으면 반대로 와드는 여전히 서포터가 박는데 갯수 제한 고려해서 전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정교한 타이밍에 기지로 귀환해서 와드를 보급해올 의무까지 덮어쓸 수도 있다고 봅니다. 물론 기지에 가는 만큼 골드 수입은 더 줄어들겠죠. 그럼 또 그 귀한 와드를 정교하게 박아야 할 의무도 지겠네요. 와드 제한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서 와드 박는 부담을 다 같이 나눠갖진다면 그건 의미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라면 모를까 EU 스타일이 완전히 굳어져버린 지금, 정해진 플레이를 그것도 욕먹어가면서 계속하는 이유를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만, 일면식도 없고 앞으로 볼 일도 없는 5명이 팀플하기 위해선 그런 정석이 필요하기도 하며 그게 롤 확산에도 도움이 되었다는 지적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라이엇이 서포터를 살리기 위해 EU 스타일을 깨버릴 수 있을지도 좀 회의적이긴 합니다. 차라리 서포터에게 함께 플레이한 팀메이트 중 한명을 골라서 하루 정도 밴 먹일 수 있는 권한을 주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


by 고금아 2013. 7. 4. 02:35
이전에 작성했던 'FPS 게임에서 탈것을 등장시키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들' 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입니다만, 과금은 게임 디자인과는 별도로 취급하는 것이 GDF 방침인 것 같아 별도 포스트를 쎄웁니다.

연관 포스트 :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4&t=136&start=0

부분 유료화 모델과 탈것
FPS 게임에서 탈것을 도입할 때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고, 또 선행자들이 이를 어떤 식으로 해결하려 했는지는 이전 포스트에서 이미 다룬 바 있습니다. 하지만 흔히 말하는 '온라인' FPS로 가면 이제까지 언급된 것과 전혀 다른 문제를 맞딱뜨리게 됩니다. 탈것은 부분 유료화에 아주 크나큰 타격을 주거든요.


공짜로 주어지는 강함
PVP 게임에서의 부분유료화는 기본적으로 '강함' - 즉 '게임 내에서의 어드밴티지'를 상품으로 합니다. ('부분 유료화, 뭘 팔아야 하나' http://gdf.inven.co.kr/phpbb/viewtopic.php?f=15&t=83 를 참고해주세요) 물론 각각의 총들이 서로 다른 특성(반동, 연사력, 이동시 에임이 벌어지는 정도 등)로 인해 새로운 플레이 패턴을 제공한다는 기능도 있습니다만, 결국은 그 새로운 패턴이 유저에게 맞고 승률을 높여주니까 구매하게 되는 거겠죠. 실질 사용 시간에 비례해 수리비를 청구하는 종량제든, 일정 기간 동안 해당 총기를 사용할 권리를 제공하는 기간제든 기본적으로 과금의 방식의 문제일 뿐 기본적으로는 '강함'을 판매하게 됩니다.

하지만 구매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다른 컨텐츠들 - 총기, 방어구 등 - 과 달리 탈것들은 소유권이 없는 공공재 형태로 게임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들 총기, 방어구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제공하지요. 이렇게 압도적인 서비스가 무료로 제공되는 한, 여기에 돈을 지불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기본 총과 방어구를 들고 게임에 들어가 대인전에서 0킬 10데스를 당하더라도 탱크나 헬기를 잡으면 20킬 30킬을 할 수 있으니까요.


탈것 이용 권리 판매의 문제

여 기서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탈것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판매하는 것입니다. 돈을 낸 사람만 탈것을 탈 수 있다는 거지요. 이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매우 충실하며 강력한 구매 동기를 제공합니다만, 반대로 게임의 기본 전제인 공정함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물론 기존 총기들도 공정함을 일부 무너뜨리긴 합니다만 총알을 맞으면 죽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특수 병과에 주어지는 아이템으로만 파괴할 수 있는 비대칭 전력이기 때문에 지불 여부에 따라 이 접근 권한을 제한한다는 것은 게임 전체의 승패가 현질 여부에 따라 100% 갈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이 모델은 처음부터 계산에 넣을 수 없습니다. 연료 등의 개념을 넣는 것 또한 본질적으로는 게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탈것의 운용 자체를 제약하므로 마찬가지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소유권과 이용권의 효용 문제

기 존의 공공재 성격에 이용권리를 판매할 경우 또하나의 문제는, 돈을 내고도 서비스를 받지 못할 확률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탈것의 갯수보다 탈것의 이용권을 구입한 사람의 수가 많다고 가정해봅시다. 그렇다면 이용권의 구매는 탈것을 탈 수 있는 필요 조건일 뿐 충분 조건은 되지 못하죠. 그렇다고 탈것을 많이 늘리면 그땐 정말 총 따위는 안드로메다로 가버리겠죠.

돈을 내면 배타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탈것을 공중에서 떨어트려보자는 생각도 했습니다. 하지만 유전무패 무전필패의 망트리를 피하기 위해선 이렇게 불러내는 탈것이 뭔가 돈을 안 쓴 것 보다는 낫지만 그렇다고 기존 탈것들 처럼 강하지는 않은, 굉장히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해야 합니다. 당연히 탱크 같은 건 생각할 수도 없고, 공격능력이 빈약한 수송차량을 넣자니 점령전에선 전투력 못지 않게 이동속도가 또 생명이라 그러지도 못하겠고. 결국 걷는 것 보다는 빠르지만 차량이나 탱크보다는 느리고 총알을 어느정도 견뎌낼 순 있지만 오래는 못견디고 대전차 로켓이나 미사일은 물론 수류탄으로도 뽀갤 수 있을 법한 탈것으로 독일의 공수부대용 장갑차인 비젤을 떨어트린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습니다만 개발 코스트에 비해 회수할 수 있는 매출이 너무도 불투명해서 포기했습니다. 동접이 1천 미만으로 떨어지면 천원에 탱크 1대씩, 5백 미만으로 떨어진다면 5천원에 이족보행로봇 한대씩 팔겠다는 농담만 남았죠.

Image
(이게 초미니 장갑차 비젤입니다.)


이용 시간에 대한 과금

그 래서 그 다음으로 검토된 것이 이용 시간에 대한 과금입니다. 내구제 총기를 사용한 시간에 비례해 수리비를 청구하는 것 처럼 탈것을 실제로 탑승해서 사용한 시간에 대해 과금하자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도 소유권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 총은 내 창고에 있지만 탱크는 창고에 없습니다. 그리고 내구도가 떨어진 총은 파괴되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성능이 상당히 떨어지지만 탈것은 그렇지가 않죠.

배필온의 악명높은 '컨디션' 시스템은 총이나 방어구 같은 아이템에 붙어있던 유지비용을 계정 자체로 옮김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하려고 했습니다. 총을 들고 싸우든 죽어있던 탈것을 타든 간에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 자체로 계정의 컨디션이 감소하고 컨디션이 저하되면 보병 뿐만 아니라 자신이 탑승하고 있는 탈것의 성능까지도 감소하게 만든 거죠. 그래서 총은 안사더라도 탈것을 타려면 컨디션 회복비용은 지불해야 했습니다. 유레카!


더 나은 서비스에 대한 추가 과금의 문제

저 '컨디션' 시스템을 이야기 할 때 대부분 아이템 유지비에 비해 과금 구조가 뚜렷하고 회수 비율이 가혹해서 유저들로부터 원성이 자자했다고 기억합니다만 사실 이 시스템이 가진 가장 큰 - 그리고 본질적인 - 문제는 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받고자 하는 유저가 있어도 이를 받쳐주질 못한다는 겁니다.

확밀아의 경우, 유저가 원한다면 (대한민국의 실정법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카드 뽑기와 홍차 녹차에 무한정으로 돈을 쏟아부을 수 있습니다. 퍼즈도라, 캔디 크러쉬 사가도 마찬가지이며 월드 오브 탱크도 마음만 먹으면 골탄을 쏟아부을 수 있죠. 그리고 이 가격이 불공정함을 납득할 만큼 높으면서도 또 비싼만큼 돈값을 하기 때문에 중과금유저 소과금유저, 비과금 유저들이 공존하는 생태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컨디션 시스템은 탱크의 원래 성능을 뽑아내는 것 까지가 한계죠. 돈을 내고 컨디션 한계를 돌파하면 초사이어인이 되어 더 성능이 좋아진다...는 설정도 가능은 합니다만 이미 탈것이 무식하게 강하기 때문에 단지 돈 만으로 제한을 걸기엔 공평성을 담보하기가 어렵습니다. 탈것에 대한 버프도 판매한 적이 있긴 합니다만 이 경우에도 돈을 쓴 사람은 돈 쓴 것에 비해 효용이 떨어지고 돈을 안쓴 사람은 그 버프 효과가 과하다고 생각되어 외면받았습니다.


다양한 탈것의 출시

사 실 가장 원했던 것은 성능도 다르고 외관도 다른 새로운 탈것을 파는 것이었죠. 기왕이면 전체 전투력은 비슷한 레벨로 유지한 채 특성을 다르게 해서요. 기본 M1A2에 비해 탱크를 상대로 한 공격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장갑차나 소프트 스킨 차량에는 더 큰 데미지를 주고 방어력이 더 좋은 챌린저2, 전차 주포 공격엔 약하지만 1회에 한해 대전차 미사일의 공격은 무력화 시킬 수 있는 T-80U, 장탄수가 적지만 사이즈가 작고 험지 기동력이 좋은 K1A1 이런 식으루요.

장단점으로 밸런스를 맞출 수 있고 시각적으로 확실히 티가 나기 때문에 이건 기술적인 문제를 넘어서 도전해볼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소유권 문제가 발목을 잡았죠. 돈을 낸 사람이 M1A2 탱크를 잡아타면 갑자기 탱크가 K1A1이 된다.. 당장 봐도 황당하고 이상한 상황이잖습니까. 컨디션이나 버프 효과의 경우는 단일 탑승자 > 운전자 순으로 정리를 하긴 했습니다만 최소 외관이 확연하게 바뀌진 않았죠. 그런데 만약 좌석이 여러개인 장갑차에서 여러 사람이 서로 자리를 계속 바꾼다고 생각해보세요. LAV-25였다가 갑자기 K200이 되었다가 다시 M2 브래들리가 되었다가 BTR-80이 되었다가... 차량에 대한 데코레이션 아이템 역시 같은 이유로 무산되었구요.


소유권을 전제로 한 탈것의 과금

결 국 부분유료화 게임에서 탈것에 대한 과금은 소유권 문제를 명확히 정리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결론이었습니다. 그래서 홈프론트의 탈것 시스템을 보고 이거다 싶었죠.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홈프론트는 누가 타고 다니다가 일부러 버리지 않는 한, 전장에 주인 없는 탈것이 뒹굴진 않습니다. 무조건 게임 중 획득한 포인트를 사용해야 스폰시에 그 탈것을 타고 나오죠. 각 맵마다 각 팀이 가질 수 있는 탈것의 한계도 정해져있구요.

이걸 카스온라인에서 '총기를 살 수 있는 권리 판매' 모델과 엮으면 그림이 나옵니다. 사용자는 상점에서 원하는 탈것을 사다가 캐릭터 세팅에 박아넣으면 포인트가 허락할 때 100% 자신이 원하는 탈것을 타고 스폰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폰 비용(포인트)를 조절하면 탈것의 전투력도 수직적 방향으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기본 제공된 M1A2는 500포인트를 소모해야 타고 나올 수 있지만 K1A1은 엇비슷하거나 더 약한 전투력이지만 400포인트면 탈 수 있고 르클레르는 M1A2보다 성능이 더 좋지만 600포인트를 소모해야 한다는 거죠. 그리고 여기다가 게임 중 포인트 획득에 대한 부스트까지 팔면 밸런스를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2중 3중의 과금 천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제가 그냥 홈프론트 빠라서 IP 경매에 나올 때 사자고 주장했던 건 아닙니다.


결론

사 실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들 중 부분유료화 모델을 채택한 게임은 워록과 배틀필드 온라인 이 둘 뿐이었습니다. 레니게이드와 홈프론트, 퀘이크 워즈 ET는 패키지 게임이고, 플래닛 사이드(1편)는 월정액 게임이었죠. 2편은 부분유료화로 전환되었다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어쨌든 정리하자면요.


1. 탈것은 그 압도적인 전투력 때문에 다른 컨텐츠의 판매를 저해할 수 있는 위험이 크다.

2. 따라서 탈것이 등장하는 게임은 어떤 식으로든 탈것에 대해 과금을 해야 한다.

3. 기본 플레이 상에서 소유권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소유권이나 배타적 이용권을 판매하는 것은 게임의 존립 기반을 흔들 수 있다.

4. 소유권이나 배타적 이용권 없이 유지비를 징수하는 것은 존립 기반은 해치지 않으나 추가 과금이 어렵다.

5. 소유권 문제만 해결된다면 게임 존립 기반을 해치지 않으면서 부분유료화 모델을 100%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by 고금아 2013. 6. 25.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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